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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70
한자 高德煥
영어음역 Go Deokhw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근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02년연표보기
활동 1919년연표보기
활동 1923년 4월연표보기
활동 1925년 1월 8일연표보기
몰년 1960년연표보기
출생지 서울
성격 교육가|사회 활동가
성별
대표 경력 송설교육재단 이사장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사회 활동가.

[개설]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가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씨 파에서 정열모를, 심씨 파에서 권태희를 지원했으나 심씨 여당 측의 노골적인 탄압에 굴복하여 정열모는 입후보를 사퇴, 제3자인 우문(禹文)이 당선되었다.

[활동 사항]

고덕환은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함양의숙(涵養義塾) 교사로 재직하다가 충주군 주사와 조선총독부 서기를 거쳐 동양척식회사 김천농감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고덕환은 김천 지역에 정착하고 양조 면허를 받아 양조장을 경영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권 회복이 활발해진 즈음 고덕환은 이에 동참하려 금릉청년회를 조직하였다. 1922년 10월에는 금릉유치원을 개설했다. 이어 민족의 동량을 양성하기 위해 당시 교육 시설로서는 일제 당국의 허가를 얻을 수 없으므로 금릉회관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1만 원을 기부 받아 2층짜리 교실 4칸[330.58㎡]을 건립하여 1922년 11월 12일에 준공한 후 1923년 4월에 금릉학원을 설립했다.

이에 앞서 1923년 1월 17일에 고등보통학교설립기성회준비회가 조직됐으나 가뭄과 금릉청년회 내부의 좌익계 책동 등으로 기성회 조직이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1925년 1월 8일 김천읍 사무소에서 기성회 업무를 촉진하기 위해 고덕환 외 4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출했다. 당시 집행위원회에서는 고등보통학교 설립 기금을 30만 원으로 정하고 면과 리·동까지 확대했으나 사업 추진이 여의치 못했다. 이후 1930년 2월 23일 서울에 살던 최송설당이 재산 관리인 이한기를 통해 고등보통학교 설립 기금으로 32만 원을 투척한다고 밝혔으나 조선총독부의 한국인 교육 억제책으로 인문계 학교 설립 허가를 하지 않아 난관에 부딪쳤다. 이에 학교 설립재단의 이사직으로 지명된 고덕환 등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여 1931년 5월 9일 김천고등보통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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