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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렴서원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181
한자 景濂書院址
영어음역 Gyeongnyeom Seowon Teo
영어의미역 Site of Gyeongnyeom Private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원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1648년연표보기
폐지 1868년연표보기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성격 서원 터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터.

[개설]

김천 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성리학의 시조인 주돈이(周敦頤)와 주희(朱熹)를 배향한 서원이다. 서원의 이름은 주렴계(周濂溪)를 경앙(景仰)한다는 뜻으로, 김종직(金宗直)이 문당동 배천[白川]에 서원을 짓고 ‘경렴당(景濂堂)’이라 이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변천]

1648년(인조 26) 김산군수 조송년(趙松年)이 감천면 금송리 사미정(四美停) 자리에 창건하고 김종직, 조위(曺偉), 이약동(李約東)을 입향하였다. 1673년(현종 14)에는 이아리(爾雅里)로 옮기고 최선문(崔善門)김시창(金始昌)을 추향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김산군수 윤담(尹淡)이 자양산(紫陽山) 북진으로 이전시키고 상량문을 썼다. 1778년(정조 2) 조유(曺逾)을 추향하였으나 1868년(고종 2)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위치]

처음에 김종직김천시 문당동 배천에 경렴당이라는 이름의 집을 지었으며, 조송년이 김천시 감천면 금송동 금곡에 있는 사미정을 헐고 그 자리에 이 집을 옮겨 경렴원이라 칭하였다. 영조 때 지금의 김천시 성내동으로 옮겨 지었다.

[현황]

1984년 경렴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타 문중들과 숙의를 하였으나 뜻이 맞지 않아 벽진이씨가 중심이 되어 서원을 복원하였다. 벽진이씨의 집성촌인 양촌동 하로마을의 이름을 따서 하로서원(賀老書院)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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