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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545
한자 洞祭
영어음역 Dongje
영어의미역 Communal Village Ritual
이칭/별칭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집필자 박영숙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에게 마을 공동으로 올리는 의례.

[개설]

동제(洞祭)는 마을을 수호해 주는 상징으로서 동신(洞神)을 정하고 일정한 시간과 절차를 통해 주민의 평안과 풍년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당산제’이라고도 한다. 동제는 우리나라 고유 민속 신앙의 유형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바탕을 이루며 농촌마을 공동체를 유지, 강화시키는 마을 신앙의 하나이다. 모든 마을에서 예외 없이 지내던 동제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과정에서 미신으로 치부되어 대부분의 제당이 사라지고 그나마 존속되어 오던 일부 마을의 동제마저 1980년대에 농촌 인구가 격감하면서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마을에서는 동목과 조산, 장승과 같은 신앙의 상징으로 삼았던 신체(神体)에 대한 금기적인 의식과 숭배심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조사 지역은 김천시 15개 읍면과 1개 동의 151개 마을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중 109개 마을이 1960년대까지 동제를 지냈고 109개 마을 중 현재까지 동제를 지내는 마을은 5개 마을로 확인되었다. 5개 마을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은 1970년대 말을 전후해 동제를 지내지 않기로 결의했거나 마을 인근의 사찰에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의탁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동제를 지낸 마을의 수는 산간 지대인 김천시 증산면대덕면, 부항면이 많았고 그 다음으로 감문면, 어모면, 봉산면, 개령면, 남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목적]

김천 지역 동제의 목적은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년, 재해 방지에 두고 있다.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대덕면 덕산리, 감문면 문무리 등 일부 산간 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경우 호랑이 등 맹수로부터의 주민 보호가 동제의 부가적인 목적이 되기도 하였다. 또 김천시 어모면 도암리의 경우는 사람과 함께 소와 같은 가축의 무탈도 함께 기원하였다는 사례가 축문을 통해 확인이 되었다. 일반적인 동제는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데 예외적으로 연중 2회 또는 수시로 동제를 지낸 사례가 증산면을 비롯한 일부 산간 지대에서 볼 수 있는데 갑작스런 마을의 우환을 타계하기 위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명칭]

김천 지역에서 제의가 행해졌거나 행해지고 있는 마을의 제의에 대한 명칭은 일반적으로 동제(洞祭), 산신제(山神祭), 당제(堂祭), 장승제, 별신제, 동고사, 서낭제 등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명칭은 동제와 산신제이다. 동제의 경우 76개 마을[농소면 8, 남면 5, 아포읍 7, 개령면 2, 감문면 9, 어모면 9, 봉산면 4, 대항면 1, 감천면 2, 조마면 3, 구성면 8, 지례면 3, 부항면 3, 대덕면 6, 증산면 6]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산신제의 경우 31개 마을[아포읍 1, 농소면 1, 개령면 2, 감문면 4, 봉산면 1, 대항면 1, 감천면 1, 조마면 1, 구성면 2, 지례면 3, 부항면 5, 대덕면 3, 증산면 6]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신당과 신체]

김천 지역의 동제당 형태는 신목(神木)에 왼새끼를 둘러서 일반 수목과 구분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신목을 ‘신수(神樹)’, ‘동목’, ‘당나무’, ‘당수나무’, ‘동시나무’ 등이라고도 한다. 또 그 신목 아래에 돌무더기, 혹은 조산 형태의 제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바위와 장승으로 신당과 신체를 유지하고 있다. 김천 지역에서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수목을 대상으로 한 신당 형태가 가장 많았으며, 신목을 기본으로 하고 조산·입석·암석·장승 등이 곳에 따라 부가되어 동신당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신당과 신체의 형태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목의 경우에는 81개 마을[아포읍 7, 농소면 7, 남면 5, 개령면 3, 감문면 9, 어모면 6, 봉산면 5, 대항면 3, 감천면 2, 조마면 4, 구성면 7, 지례면 4, 부항면 4, 대덕면 9, 증산면 6]이며, 산상신당은 12개 마을[감문면 3, 어모면 3, 구성면 1, 지례면 1, 증산면 4]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장승이 3개 마을[농소면 2, 아포읍 1]이며, 입석·바위 등 암석이 4개 마을[개령면 1, 구성면 1, 부항면 3]이다.

김천시의 경우 대부분의 마을에서 신목을 동신(洞神)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여 신목 아래에 제단을 마련하고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렸는데 점차 신목 밑에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어 당집 또는 성황당을 짓거나 조산, 돌무더기를 덧 세웠다.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봄내마을해인리의 경우가 대표적이 사례에 속한다. 간혹 신목이 없는 평지에 토지신당이라고 하는 형태가 감문면에서 일부 볼 수 있었다. 산제당의 경우 산에 상당, 중당, 하당 또는 상당, 하당의 형태로 나누어 제를 지내는 산상 신당이 증산면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구성면, 지례면, 어모면의 일부 마을은 산제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난 후에 마을의 신목에 내려와서 다시 동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시기]

김천 지역에서 동제를 지내는 시기는 음력 1월 1일부터 15일 사이가 88개 마을[아포읍 8, 농소면 8, 남면 5, 개령면 4, 감문면 13, 어모면 7, 봉산면 5, 대항면 2, 감천면 1, 조마면 2, 구성면 7, 지례면 7, 부항면 7, 대덕면 4, 증산면 7]로 가장 많았다. 또 12월 30일은 13개 마을[어모면 1, 감천면 2, 조마면 2, 구성면 1, 대덕면 5, 증산면 2]에서 지냈으며, 특별히 증산면의 3개 마을은 1월과 7월, 연중 2회 동제를 지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관 및 절차]

김천 지역 마을에서 동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지난해에 흉사를 겪지 않고 경사가 있었던 가정의 호주를 제관으로 삼았다. 보통 동제를 자정에 지내고 제주집에서 음복할 때 동네 회의를 개최하여 다음 해의 동제 제관을 선출하였다. 선출된 제관은 예외 없이 마을의 부역으로부터 벗어나며 초상과 같은 흉사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동제일이 되면 제관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였다가 밤중에 제단으로 가져가 제상을 차리는데 제례 시간은 자정이 가장 많았다.

제관이 1인의 경우는 45개 마을[아포읍 7, 농소면 6, 남면 2, 개령면 2, 어모면 2, 봉산면 2, 대항면 1, 감천면 2, 조마면 1, 구성면 3, 지례면 5, 부항면 4, 대덕면 1, 증산면 6]로 가장 많았다. 또 제관이 2인 경우는 45개 마을[아포읍 1, 농소면 1, 남면 3, 개령면 2, 감문면 5, 어모면 3, 봉산면 1, 대항면 2, 감천면 1, 조마면 2, 구성면 4, 지례면 2, 부항면 4, 대덕면 8, 증산면 6]이다. 이외에도 3인이 7개 마을, 4인이 3개 마을, 8인이 1개 마을, 20인 이상이 6개 마을로 나타났다. 특히 제관 수가 20인 이상이 되는 감문면, 어모면의 경우는 주민 대다수가 제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숫자상으로 20인 내지 40인까지 제관으로 뽑는 경우가 있었다.

주민들은 제사 당일 초저녁부터 외출을 삼가고 정숙하게 보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금기 사항이었다. 특히 제관은 선출된 그날로 즉시 부정한 것과 궂은일을 삼가며 금줄을 쳐서 궂은 사람, 부정한 사람, 험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또 육류, 어류를 먹지 않고 술과 담배를 삼가며 매일 찬물로 목욕하면서 부부가 한방에 들지 않고, 출입문 밖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외부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다.

한편으로는 제관의 선출이 끝난 즉시 마을 원로들이 동제당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이 있는 다른 마을 사람이나 타인이 마을 안에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였다. 제주의 집은 도가(都家) 또는 당주(堂主)라 부르며 제관 집에서 제물을 장만하여 집사가 운반하고 동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마을 공동 경비를 사용하가나 공동으로 추렴하였다.

[의의와 평가]

2010년 1월 현재 김천 지역에서 동제가 원형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마을은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파천동 봄내 당제, 해인리해인리 동제 등 2개 마을, 아포읍 국사리 애기마을국사1동 애기 동제, 대항면 덕천리 죽전마을의 덕천리 죽전 동제, 구성면 양각리 모산마을양각리 모산 동제 등 총 5개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인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농촌 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되면서 동목과 신당들이 훼손되었고 또 동제를 미신으로 보고 금기시하였던 사회 분위기도 한 몫을 하였다. 아울러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고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농촌이 갖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이완된 측면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천 지역의 동제와 관련된 신목과 신당, 조산, 장승 등이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없어 해를 거듭할수록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지역 농촌의 독창적인 공동체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민속자산인 동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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