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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38
한자 高麗星羅花郞兄弟 노래碑
영어음역 Go Ryeoseong Na Hwarang Hyeongje Noraebi
영어의미역 Goryeoseong and Nahwarang Brothers' Song Memorial Ston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5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민경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1910년 10월 29일연표보기
관련 인물 생년 1921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956년 9월 16일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1983년 11월 17일연표보기
건립 2009년 12월 30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52 지도보기
성격 노래비
관련 인물 고려성|나화랑
재질 화강석|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250㎝[높이]|1100㎝[너비]
소유자 나화랑기념사업회
관리자 직지문화공원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문화공원 내에 있는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

[건립 경위]

김천 출신으로 한국 대중가요 개척기에 가요 진흥에 큰 족적을 남긴 고려성나화랑의 업적을 기리고 김천 지역 가요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나화랑기념사업회에서 2009년 12월 30일에 세웠다. 애초 고려성·나화랑 노래비건립추진위원회로 출발, 송기석·조의환·박광제를 자문위원으로 하고 추진위원장에 정근재, 부위원장에 민경탁, 위원에 최복동·김경탁·조운현·안기호·조지환·장병길·이윤관 등이 활동하였다. 이후 사업 추진상의 어려움으로 회장이 두 번 바뀌어 민경탁 회장이 주도, 비문을 지어 2013년 1월 31일 나화랑 흉상을 제작, 2014년 12월 23일 고려성 흉상을 제작하며 회원 및 창녕조씨 지사공파 문중의 성원으로 완공하였다.

[위치]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52번지 직지문화공원 안의 폭포 왼쪽에 있다.

[형태]

화강암 재질의 병풍 형상을 한 지대석에 오석으로 된 석판에 비명과 약력, 대표곡 가사를 새겼다. 병풍석은 가장자리를 5단계의 층위를 두었고 중앙에 ‘고려성·나화랑 형제 노래비’라 비명을 새겼다.

[금석문]

왼쪽에는 고려성의 약력과 「나그네 설움」 노랫말을, 오른쪽에는 나화랑의 약력과 「무너진 사랑탑」 노랫말을 새겼다. 두 가요 작가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고려성(高麗星)[본명 조경환(曺景煥)]은 한국 대중가요 토착기에 「나그네 설움」·「어머님 사랑」·「비오는 해관」·「춘소화월」[백년설 노래], 「마상일기」[진방남 노래], 「금박댕기」[모란봉 노래], 「삼각산 손님」[구성진/태성호 노래], 「자명고 사랑」·「제물포 아가씨」·「세기의 항구」[박재홍 노래], 「고향에 찾아와도」[최갑석 노래] 등의 가요를 탄생시킨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출신의 가요 작사가이다.

1930년~50년대에 태평레코드사와 서울레코드사 등에서 작사가 박영호, 가수 백년설·박재홍, 작곡가 김교성·이재호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대변하여 주는 가요를 양산, 보급시킴으로써 한국가요 예술을 진흥시킨 가요 작가이다.

고려성은 1939년 7월 29일~7월 30일에 조선일보사와 태평레코드사가 공동 주최한 ‘태평레코드예술상 전국콩쿨대회’를 김천극장에 유치하여 한국 대중가요 개화기의 가수 진방남, 태성호, 백난아 등을 배출시킨 가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나화랑(羅花郞)[본명 조광환(曺曠煥), 고려성의 셋째 동생]은 가요 「무너진 사랑탑」·「울리는 경부선」[남인수 노래], 「닐리리 맘보」[김정애 노래], 「도라지 맘보」[심연옥 노래], 「향기 품은 군사우편」[유춘산 노래], 「뽕 따러 가세」·「가야금 타령」[황금심 노래], 「청포도 사랑」·「비의 탱고」[도미 노래], 「이정표」·「이국땅」·「낙엽의 탱고」·「핑크리본의 카드」[남일해 노래], 「열아홉 순정」·「님이라 부르리까」·「정동대감」[이미자 노래], 「울산 큰 애기」[김상희 노래]와 군가 「멸공의 횃불」[국방부 제정] 등 생애 500여 편의 가요를 작곡한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태생 한국 대중가요 1세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또한 그는 구전되던 우리 민요를 체계적으로 정리, 편곡하여 한국 최초의 민요 LP음반을 제작, 수많은 민요 음반 보급에 앞장섰으며 서양의 맘보 리듬 등을 최초로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시킨 선율의 마술사였다.

나화랑은 겨레의 유장한 정감을 전통가요에 담아내며 도미, 손인호, 박재란, 남일해, 이미자 등의 가수를 배출시킨 작곡가요 라미라레코드사의 경영주로서 음반을 양산한 음반 제작자로서 한국 대중가요를 크게 부흥시킨 음악인이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9.07 현행화 [참고문헌] 오탈자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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