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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13
한자 寺址
영어음역 Saji
영어의미역 Temple Site
이칭/별칭 절터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집필자 김봉숙
[상세정보]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남아 있는 절터.

[개설]

사지(寺址)는 과거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기둥을 포함한 사찰의 상부 구조가 멸실되고 기단, 초석, 적심 시설 등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사찰의 터를 말한다. 김천시의 사지로는 현재 대성리 쌍비사지, 대양리 대양사지, 무안리 영천암지, 흥평리 진흥사지, 오봉리 갈항사지, 태화리 태평사지, 태화리 가막사지, 능치리 무야사지, 유성리 쌍계사지, 상부리 남산사지 등 10개가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2003년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김천시를 기준으로 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내용]

1. 대성리 쌍비사지(大聖里 雙飛寺址)[김천시 아포읍 대성리 290]

사찰의 창건 연대는 미상으로 석불 1구는 아포읍 국사리 소재의 아포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 1915년 이곳에 있었던 목불상은 계림사 금오산 약사암 승려들이 다비했다고 전해 온다. 현재는 높이 1.5m의 허물어진 축대와 장축 길이 200m, 단축 길이 60m의 대지 흔적만이 남아 있다.

2. 대양리 대양사지(大陽里 大陽寺址)[김천시 감문면 대양1리 산98-2]

신라 고찰로 전해지나 정확한 조성 연대 및 폐사 시기는 알 수 없다. 현재는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있어 과거의 사역 규모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축대와 돌계단 일부의 흔적만이 남아 있어 사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3. 무안리 영천암지(武安里 靈泉庵址)[김천시 감천면 무안리 863]

영천아미에는 5층 석탑이 있었다고 전하나 1950년대 도시에서 온 석재 상인이 가져갔다고 한다. 사지의 조성 연대 및 폐사 시기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사지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어 절터의 흔적을 찾기 힘드나 이곳에서 북쪽 위쪽에는 부처가 있었다는 ‘불당골’이 있다.

4. 흥평리 진흥사지(興平里 眞興寺址)[김천시 구성면 흥평리 269]

밭주인인 정환용의 제언에 따르면 이곳에 석탑이 있었는데 1940년대 일본인에게 팔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후 이곳에는 주초석 7~8개가 있었으나 밭 경작으로 묻혀 버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5. 오봉리 갈항사지(梧鳳里 葛項寺址)[김천시 남면 오봉리 65]

692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화엄법사 승전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 있었던 2기의 석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었다. 석불좌상은 보물 제245호로 사지에 있다.

6. 태화리 태평사지(太和里 太平寺址)[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928]

창건 연대와 폐사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경작으로 의해 사지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7. 태화리 가막사지(太和里 可幕寺址)[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449-4]

창건 연대 및 폐사된 시기, 과거의 사역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사지에 고려 시대로 판단되는 석조불상과 오층석탑이 남아 있어 사찰의 주 경영 시기 역시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일대에는 가막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초석과 기단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으며, 오층석탑 주변에서 다수의 와편이 발견되었다.

8. 능치리 무야사지(能治里 撫也寺址)[김천시 어모면 능치2리 960]

무야사는 신라 고찰로 전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나 폐사 시기는 알 수 없다. 현재 이곳은 석담으로 둘러진 가운데 방형의 건물 터가 남아 있다.

9. 유성리 쌍계사지(柳城里 雙溪寺址)[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82-19]

신라 시대 사찰로 도선국사의 창건으로 전해져 오지만 정확하지 않고 6·25전쟁 시 방화로 소실되었다. 현재 금당지로 추측되는 축대와 주초석, 연화대석 등이 남아 있다.

10. 상부리 남산사지(上部里 南山寺址)[김천시 지례면 상부리 210]

지금은 무너진 축대만 일부 남아 있어 과거에 절터였음을 말해줄 뿐 정확한 창건 연대 및 폐사 시기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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