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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43
한자 李尙益
영어음역 Yi Sangik
이칭/별칭 소헌(素軒)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1707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벽진(碧珍)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소헌(素軒).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흥선이다. 동생으로 이상필(李尙苾)이 있으며, 형제가 모두 김천 지역에서 효행을 행하였다.

[활동 사항]

이상익(李尙益)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동생 이상필과 함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경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집 밖에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먼저 부모님께 드렸고, 음식을 가져갈 수 없는 먼 곳에서는 차마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형제가 번갈아 가면서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여 약을 달여 들였다.

아버지가 형제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전답 문권을 다른 형제보다 많이 주자 “사람이 할 도리를 하고 보상을 받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돌아가시자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 일로 형제가 차별을 받을 수 없다.”라면서 전답 문권을 찢어 버리고 전답을 형제들과 똑같이 나눠 가질 만큼 형제애도 뛰어났다.

[상훈과 추모]

1622년(현종 2) 방백의 효천(孝薦)으로 조정에서 공양미를 내렸다. 그리고 1707년(숙종 33) 조정에서 호조좌랑에 증직하였으며, 복호(復戶)도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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