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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48
한자 李長源
영어음역 Yi Jangwon
이칭/별칭 호원(浩遠),초당(草堂)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560년연표보기
몰년 1649년연표보기
추모 1897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묘소|단소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연안(延安)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호원(浩遠), 호는 초당(草堂). 증조할아버지는 이구령이다.

[활동 사항]

이장원(李長源)[1560~1649]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7~8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의 여막(廬幕)에서 기거하는 3년간 흰죽만 먹으면서 시묘를 하였을 만큼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또한 예절이 어른보다 나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가난하였지만 아버지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끊이지 않게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아버지를 업고 삼성암(三聖庵)으로 피난을 갔다. 이때 호랑이 두 마리가 항상 따르며 부자를 호위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하였을 때 이장원의 효행에 감동받아 묘역의 소나무가 3년간 잎이 나지 않다가 시묘가 끝나자 잎이 났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효성이 금수와 초목에까지 미쳤다고 감탄하면서 말하였다고 한다.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 동계 정온 등과 도의로 사귀었으며, 선조 대에 음직으로 충무위 부호군에 제수되었다. “자연에 묻혀 사는 선비가 낚싯대를 던지고자 하고/ 문왕이 수레에 실려 돌아오기를 싫어하도다/ 충효밖에 할 일이 없으니/ 굴암 변에서 헛되이 늙었도다.”라는 시가 전한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에 있다. 묘갈문은 입재 정종로가 지었다.

[상훈과 추모]

1897년(고종 34) 어사 조경의 천거로 사재감첨정에 증직되었다. 충효당에서 향사하게 하였으며, 현재는 경덕사에 배향되었다. 후손 이현기가 1929년 이장원을 기리는 모성정이라는 정자를 바위 위에 세웠다. 이곳은 예부터 뒷산과 앞을 흐르는 내, 한가로운 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로, 이장원이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전하며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과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이 만사를 지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3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1) 이장원(李長源)[1560~1649년]은 ->이장원(李長源)[1560~1649]은 2) 거려(居廬)[묘 옆에 임시로 지은 집]에서 3년간 흰죽만 먹으면서 ->묘 옆의 여막(廬幕)에서 기거하는 3년간 흰죽만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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