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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859
한자 鄭維翰妻永川李氏
영어음역 Jeong Yuhan Cheo Yeongcheon Yissi
영어의미역 Lady Yi from Yeongcheon, Jeong Yuhan's Wife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570년연표보기
몰년 1597년연표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열녀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가계]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찰방 이대유(李大有)이다.

[활동 사항]

정유한(鄭維翰) 처 이씨(李氏)[1570~1597]는 14세에 영일 정씨 집안의 정유한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예모 있는 행동거지로 집안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8일, 왜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쫓겨 충청북도 괴산에서 흑운산(黑雲山)[김천시 봉계 북쪽에 있는 산] 쪽으로 내려왔다. 그때 봉계에 있던 이씨가 동서와 함께 흑운산 쪽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왜적에게 발각이 되었다.

왜적이 그녀를 잡고 희롱을 하자, “네가 비록 섬나라 무도한 것이지만, 유부녀를 희롱하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나무랐다.

그럼에도 왜적이 그녀를 놓아 주지 않자, 이씨는 지니고 있던 장도(粧刀)로 왜적의 손이 닿은 유방을 잘라 버리고 자결하였다. 이에 분노한 왜적이 이씨를 무지막지하게 난도질한 뒤 시신을 발로 짓이겨 버렸다. 마을 사람 조홍(曺泓)이 숨어서 왜적이 이씨를 죽이는 광경을 지켜본 뒤 동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때 이씨의 나이 28세이었다.

[상훈과 추모]

1633년(인조 11) 조정에서 이씨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현재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5번지김천 신리 영천 이씨 정려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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