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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C010301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재민

[화재로 옮긴 마을 터]

해인리 해인동은 원래 지금의 자리보다 아래쪽 서낭당 부근에 터를 이룬 마을이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해인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화재를 피해 한 가구, 두 가구씩 현재의 마을 터로 옮겨 오면서 결국 지금의 해인동이 만들어졌다고 이종출[1936년생] 씨가 전해 준다.

“옛날 저 밑에, 거기 장승 서 있고 한 데, 거기 마을이 이루어졌다 카데요. 거 있다가 하도[자주] 불이 나서니깐[발생하니까] 한 집씩 한 집씩 지금 터로 옮겨졌다 캐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잦은 화재로 마을의 터까지 옮겼지만 화재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승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산봉우리 중 하나의 모양이 불꽃의 형상과 닮아서 불이 자주 일어납니다.” 하고 말해 주었단다.

“옛날 어른들한테 듣는 얘기로는 여기 마실에서[마을에서] 보이는 산봉우리가 불꽃의 형상과 비스무리하게[비슷하게] 생기가꼬[생겨서] 그렇다 하대예[불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이 많이 난다꼬…….”

도승은 소금이 불을 일으키는 기운을 막아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면서, 화재를 막기 위해서는 불과 같은 형상을 한 봉우리에 소금을 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불과 같은 형상을 한 봉우리에 소금단지를 묻으며 마을에서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부엉이 날뫼에 소금단지를 묻다]

불꽃의 형상을 닮은 봉우리를 마을 사람들이 ‘부엉이 날뫼’라 부른다고 말해 준 사람은 김성열[1957년생] 씨였다.

“부엉디[부엉이] 날마[날뫼]라고 부엉디가 이만큼 한 게 ‘부엉, 부엉’ 그러면서 울어요. 그래가 이제 부엉디 집을 지어 가지고 부엉디 날마라고 우리가 이름을 지었거든. 근데 그 부엉디가 나오다가 안 나온 지 한 10년도 더 넘었어. 그래가 부엉디가 고마 이사 가고 없다고 우리가 그캤어.”

부엉이 날뫼는 마을회관 뒤편에 자리한 임도를 따라 약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과거 부엉이가 살아 부엉이 날뫼로 불렸지만, 현재는 부엉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전한다. 어찌됐든 부엉이가 살던 이곳에 소금단지를 묻기 시작한 뒤로, 거짓말같이 마을에서는 더 이상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변화한 소금단지 풍습]

해인리 해인동에서 부엉이 날뫼에 소금단지를 묻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해인동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한 구전으로는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선대의 기억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소금단지 묻기 풍습은 정해진 방법과 절차가 없다. 그 풍습은 사람들이 변화하듯 조금씩 변화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전까지 소금단지 묻기는 소금을 넣은 단지를 땅에 묻은 것이 아니라, 땅을 일정하게 판 후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원래는 단지에 소금을 넣어 묻어 두었지만, 항아리조차 귀한 시절인지라 자꾸 항아리를 파내어 가져가는 사람들이 생기자 땅을 파고 소금만을 묻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도난에 대한 위험이 줄어들자, 2008년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을 준비하면서 단지를 마련하여 단지 안에 소금을 넣어 땅에 묻고 있단다.

소금단지는 2년에 한 번씩 묻는다.

소금단지를 묻는 해가 되면 그 전에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은 김천장에서 깨끗한 소금을 구입한다. 보통 소금단지 묻기는 음력 정월 보름[1월 15일] 오전에 행하는데, 이날은 동제를 지낸 다음날로서 동제 제관이 소금단지의 제관이 되기도 한다.

소금단지를 묻을 때는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제관과 유사 등 마을의 일부 사람들만 참석한다.

소금단지를 묻은 곳을 파헤치는 것은 단잔배례[술 한 잔에 절을 올리는 것]의 간단한 제의 후에 시작된다. 그러고는 작년에 묻어 놓은 소금단지를 열어서 남아 있는 소금의 양을 확인하고 2년 동안의 마을 화재에 대한 것을 점치기도 한다. 소금의 양이 적은 경우 화재 발생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에는 소금단지 안 소금의 양을 확인한 후 소금을 채워 넣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지만, 지금은 이전의 소금을 버리고 새 소금을 단지에 채운다고 한다.

화재에 취약했던 과거 소금단지 묻기 행사는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상호 조심하게 하기 위한 기재였다.

소금의 양을 통해 사람들은 화재의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금단지 묻기 행사는 화재를 방지하고 대비하기보다는 동제와 함께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제의적 기능이 더 강한 것처럼 보였다.

[정보제공]

  • •  김성열(남, 1957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해인리 향우회 총무)
  • •  이종출(남, 1936년생, 부항면 해인리 주민, 해인리 노인회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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