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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의 진주강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지도. 「고려중요처도(高麗重要處圖)」는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번지 강응환(姜膺煥)[1735~1795]의 옛 가옥에 남아 있는 유물로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水使公姜膺煥家傳遺物)에 포함되어 있다.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은 교지 6점, 초상화 2점, 서책 2점, 지도 2점 등 총 4종 12점이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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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서 망북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망북단의 사연」은 고창읍 도산리 지동마을 536번지에 남향을 한 한옥이 있고, 그 집 뒤안의 장독대 옆에 가로 344㎝, 세로 290㎝, 두께 60㎝, 높이 160㎝의 두 개의 판석으로 받힌 북방식 고인돌과 그 북쪽 주변의 남방식 고인돌 3기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도산리 고인돌[도산리 지석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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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어사 박문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어사 박문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민담으로 고창 지역에도 다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창 지역에 박문수(朴文秀)[1691~1756]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어사 박문수의 사람됨에 관한 이야기,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 주거나 숨겨진 죄를 밝혀내는 이야기, 효부나 효자들의 행적을 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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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이서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서구 설화」는 조선 후기의 실존 인물로서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이서구(李書九)[1754~1825]의 비범한 행적에 관한 인물담이다. 그는 여러 벼슬을 역임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목민관으로서 탁월한 능력과 선견지명을 발휘하였으며,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그의 이런 행적은 설화로 전승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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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간행된 고창 출신의 유학자 정회찬(鄭悔燦)의 시문집. 정회찬[1759~1831]의 초명은 형기(亨基), 자는 회숙(晦叔), 호는 계당(溪堂)이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槐峙里)에서 출생하였다. 1771년(영조 47)인 13세부터 족숙(族叔) 이재(頤齋) 정인수(鄭仁壽)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가세가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흉년이 들면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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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강응환(姜膺煥)이 경상좌도수군절도사[동래수사]로 재직할 때 저술한 정적(政蹟). 강응환[1735~1795]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출생하였다. 1770년(정조 2) 통예원인의(通禮院引儀)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1779~1783년까지 경상도 칠원현감을 지냈다. 대구영장, 고령진병마겸절제사, 평안도창성도호부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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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에 고창 출신의 김축(金軸) 일문에게 내린 공신녹권. 『단서철권』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공신들에게 수여하던 상훈 문서와 쇠로 만든 표지, 즉 공신녹권을 일컫는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 해 5월 호남 사람들이 크게 기대를 걸었던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이 이끈 근왕병이 선조가 서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하여 공주로 돌아오자 김축은 무장에서 의병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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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간행된 읍지. 기록에 의하면 『무장읍지(茂長邑誌)』는 1544년(중종 39) 무장현감 유희춘(柳希春)이 최초로 간행했다고 하나 판종은 알 수 없다. 이후 1636년(인조 14)에 심제(沈𪗆)가 두 번째 『무장읍지』를 간행했으나 역시 판종을 알 수 없다. 세 번째로 1741년(영조 17)에 역시 무장현감 정권(鄭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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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승려 이긍선(李亘璇)의 문집. 이긍선[1767~1852]은 조선 후기 백파대사(白坡大師)라고 불린 승려이자 학자이다. 중종의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10세손 이종환(李宗換)[1729~1795]의 아들로 전라도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17세까지 선운사에서 과거 공부에 몰두하다 18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운사에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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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사에서 간행된 조선 후기 승려 명연(明衍)이 편찬한 책.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은 1704년(숙종 30) 경상북도 예천 용문사(龍門寺)에서 청허(淸虛)의 후예인 명연이 불가의 여러 경전의 설을 필요한 부분만 뽑은 후 염불을 권하는 글을 엮어 이를 언해한 것으로, 1787년(정조 11) 선운사에서 간행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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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에 간행된 고창 출신의 유학자 고우열(高友說)의 시문집. 고우열[1690~1757]의 자는 은경(殷卿), 호는 옥호(玉湖),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1690년(숙종 16) 흥덕현 옥호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옥제리]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는 가학(家學)으로 글을 배웠다. 19세 때 「유상대기(流觴臺記)」를 지었고, 48세 때 흥덕향교 명륜당의 ‘상량문(上樑文)’을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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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황서구(黃瑞九)가 고창 출신의 황윤석(黃胤錫)이 펴낸 『이재난고(頤齋亂藁)』에서 주요 내용을 뽑아내어 편찬한 시문집. 이재(頤齋) 황윤석[1729~1791]은 본래 『이재난고』라고 하여 일기 형태의 시문집을 남겼다. 1829년(순조 29) 황윤석의 후손 황수경(黃秀瓊)이 『이재난고』에서 시문을 발췌하여 당시 전라도관찰사 조인영(趙寅永)의 도움과 서문을 받아서 목판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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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에 간행된 고창 출신의 운학자(韻學者) 황윤석(黃胤錫)의 문집. 황윤석[1729~1791]은 조선 후기의 운학자이다.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월송외사(越松外史),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실학의 학풍을 이어받아 종래의 이학(理學)과 서구 학문의 조화를 시도하였다. 저서로 『이재유고(頤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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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강응환(姜膺煥)이 칠원현감으로 재직할 때 저술한 정적(政蹟). 강응환[1735~1795]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출생하였다. 1770년(정조 2) 통예원인의(通禮院引儀)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1779~1783년까지 경상도 칠원현의 현감을 지냈다. 1783~1794년까지 대구영장, 고령진병마겸절제사, 평안도창성도호부사, 경상좌도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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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 상라대에 있는 조선 후기 김도의가 세운 재실. 감모재는 조상을 사모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전사청(典祠廳)의 건물로, 전국의 여러 곳에 설립되어 있다. 고창군의 감모재는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세운 것이다. 김도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자는 의성(義成), 호는 여우정(如愚亭)이며, 본관은 청도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면 하라대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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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개숙(皆叔), 호는 치재(癡齋). 사평(司評) 강학손(姜鶴孫)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강계오(姜繼吳)이고, 할아버지는 강시언(姜時彦)이다. 아버지는 송암(松庵) 강필주(姜弼周)이며, 어머니는 황주변씨(黃州邊氏)로 변태(邊泰)의 딸이다. 모산(茅山) 강민저(姜敏著)가 형이다. 강만저(姜萬著)는 1655년(효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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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내숙(來叔), 호는 모산(茅山). 강희맹(姜希孟)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세거하다 처가[진주정씨(晉州鄭氏)]와 외가[무송유씨(茂松庾氏)]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강민저(姜敏著)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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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낙향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信伯), 호는 청계(淸溪). 대제학을 지낸 진산부원군 강계용(姜啓庸)의 13세손으로, 파조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의 7세손이다. 강순(姜恂)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 및 집안사람 100여 명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던 중 강화(講和)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을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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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영(伯英), 호는 하월당(荷月堂)·호은(湖隱). 문량공(文良公) 강희맹(姜希孟)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강계판관을 지낸 강계오(姜繼吳)이다. 강시언(姜時彦)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깊었다. 항상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하고 문장과 기절(氣節)이 뛰어나 주위의 추앙을 받았다. 이괄(李适)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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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에서 세조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강희맹의 둘째 아들 강학손(姜鶴孫)의 여섯째 아들 강흔수(姜欣壽)가 강응환(姜膺煥)의 9대조인데, 그의 6대조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외가인 무송유씨(茂松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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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로(大老), 호는 송암(松庵). 강희맹(姜希孟)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주강씨 고창 입향조인 강계오(姜繼吳)이고, 아버지는 병자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했던 강시언(姜時彦)이다 강필주(姜弼周)는 1621년(광해군 13) 할아버지 강계오가 연산군 때의 혼탁한 세상을 피해 남하, 은거한 영광 땅에서 태어났다. 이후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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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실학자. 강후진(康候晋)은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 등과 더불어 호남 실학자로 평가된다. 한국의 상고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특이한 관점과 식견을 지녔으며, 문헌을 널리 읽고 유적을 답사하여 확인하고 기록한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순(子順)·순보(順甫), 호는 태평산인(太平散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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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구부(懼夫), 호는 장봉(莊峰).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한 강유(康旒)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강응성(康應星)이다. 강흔(康訢)은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성장하여 상례와 여묘(廬墓)를 다시 갖추는 효행을 지켜 냈다. 학덕이 높은 수은(睡隱) 강항(姜沆)과 사귀면서 널리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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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高德鵬)은 41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를 규합한 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 고경명은 이미 순절한 뒤여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채홍국(蔡弘國)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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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소재로 전해온 문서. 문서란 경우에 따라서 서책·서적을 뜻하기도 하였고, 추안(推案)·국안(鞫案) 등 재판 관계의 신문·진술 기록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과 개인 간에 토지·노비·가옥의 매매, 재산의 상속, 전곡(錢穀)의 차용 시에 주고받는 글은 주로 문권(文券)·문계(文契)·문기(文記) 등을 썼으나, 흔히 땅문서·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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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빈거(賓擧), 호는 요은(鬧隱). 주부를 지낸 고억령(高億齡)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응진(高應軫)이고,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이며, 아버지는 고수겸(高守謙)이다. 부인은 칠원윤씨(漆原尹氏)로 참봉을 지낸 윤사근(尹思勤)의 딸이다. 자녀로 고재정(高在貞) 등이 있다. 고여흥(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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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은경(殷卿), 호는 옥호(玉湖). 주부 고억령(高億齡)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고수겸(高守謙)이다. 할아버지는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이며, 아버지는 옥숙(玉淑) 고재혁(高在爀)이다. 부인은 도강김씨(道康金氏)로 김세기(金世起)의 딸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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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문수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삼세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석가모니불이 104.5㎝, 약사불이 88.5㎝, 아미타불이 87.5㎝의 높이다. 문수사 목조삼세불상의 조성 연대는 ‘한산전(寒山殿)’에 걸려 있는 「문수사창건기」 및 「고창현취령산문수사한산전중창기(高敞縣鷲嶺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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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운사의 중심 불전. 고창 선운사 대웅전은 삼존불상이 안치돼 있는 선운사 본전으로, 대웅보전이라 한다. 선운사 가람 중심에 있으며, 천왕문과 만세루를 돌아 우뚝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건물 모두가 불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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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운사의 강당. 긴 장방형이고 ‘누(樓)’라는 이름은 붙어 있으나, 낮은 단층 건물이다. 선운사 만세루는 자연스러운 부재가 많이 사용되어 해학적인 느낌마저 주고 있다. 선운사 창건 당시부터 건립되어,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주로 강당이나 법회 장소로 활용되었다. 선운사 대웅전 바로 앞에 있다. 선운사 창건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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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대좌 밑면에 조성기가 묵서되었다. 묵서명을 통해 1633년 조각승(彫刻僧) 무염(無染)을 비롯한 도우(道祐), 성수(性修), 해심(海心) 등에 의해 조성되어 점안된 후 1634년 도금되어 법당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묵서명에는 존상들의 명칭을 비로자나[毘盧遮那], 약사(藥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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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전각. 선운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본래 이름은 장륙전(丈六殿)이었다. 선운사 대웅전 왼쪽에 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에 1471년(성종 5) 2층 전각으로 중건하였다가, 1713년(숙종 39)에 2층을 단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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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운사 참당암의 중심 불전.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부재와 치목(治木), 기법 등으로 보아 고창 선운사 대웅전보다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 후기의 것이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중간 정도 가다가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약 300m 지점에 선운사 참당암이 있다. 참당암 중앙에 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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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표 선돌과 자연 선돌. 1800년대 초에 고창현[현 고창군]에서 발생한 홍수 재난으로 고을이 황폐화되자 또 다시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마을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서 1803년(순조 3) 화표석주(華表石柱)를 고창읍 읍내리에 세웠는데, 천재지변과 자연 재앙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을 중심인 읍내리 세 곳에 세운 풍수 비보 기능의 화표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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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의 치소로 사용하던 건물. 고창에서 흥덕으로 11㎞를 더 가면 성내리가 있으며, 이곳에 무장객사, 무장향교와 함께 무장동헌이 있다. 무장동헌은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로 현감이 집무하던 곳이다. 1565년(명종 20)에 세웠으며, 한때 무장초등학교에서 교실로 사용하는 바람에 변형되었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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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창향교의 대성전. 고창군청 앞의 오거리에서 고창고등학교로 들어가면 그 뒤편에 고창향교가 있다.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 월곡리에 있던 학당사를 옮겨 와 1512년(중종 7)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1589년(선조 22) 중건하고, 그 후 순종 때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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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순서(舜瑞)·응중(應仲), 호는 방산(方山). 증조할아버지는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이고, 할아버지는 고재경(高在慶)이다. 아버지는 고우용(高友龍)이며,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인발(李仁馞)의 딸이다. 부인은 진주정씨(晋州鄭氏)로 정상악(鄭象岳)의 딸이다. 고한벽(高漢璧)은 5세 때인 1722년(경종 1)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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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황이후, 황세기, 황재중, 황윤석, 황수경을 제향하는 조선 후기 사당. 구동사는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사우로 1844년(헌종 10)에 창건하여 황이후(黃以厚), 황세기(黃世基), 황재중(黃載重), 황윤석(黃胤錫), 황수경(黃秀瓊)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황이후는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 창의한 선비로, 자는 구이(久而), 호는 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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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승려.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李氏). 법호는 백파(白坡), 긍선(亘璇)은 법명이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송계 이종환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긍선은 12세 때 선운사로 출가하여 시헌(詩憲)의 제자가 된 뒤 연곡(蓮谷)에게 사미계를 받았으며, 21세 때 상언(尙彦)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평안북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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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여(德輿), 호는 우졸재(愚拙齋).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노석(金魯錫)이다. 김경규(金慶奎)는 5세 때인 1811년(순조 11) 집에서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고, 1813년(순조 13)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배웠으며, 다음해 시를 지어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1817년(순조 17) 고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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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언(君言), 호는 의촌(義村). 종종 조의 명필로 알려진 김경희(金景熹)가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정묘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한 김여성(金汝聲)이다. 김남식(金南式)은 어려서 가학(家學)으로 공부를 하다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9세 때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도호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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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헌(以憲), 호는 청계(淸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김헌(金軒)이다. 김두남(金斗南)은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헌이 행재소로 달려가 근왕(勤王)의 대열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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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지(遠之), 호는 국재(菊齋). 집현전 학자 김양원(金暘元)이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참봉 김한련(金漢璉)이다. 김성진(金聲振)은 어려서부터 강개한 지기(志氣)가 넘치고 효행이 지극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고, 몰래 허벅지살을 떼어내 탕으로 달여 먹임으로써 주변의 찬사가 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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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흥덕현 출신의 3대 충신·효자. 김언룡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서(聖瑞), 호는 충효당(忠孝堂). 아버지는 김치진(金致進)이다. 김언룡(金彦龍)은 1562년(명종 17) 흥덕현 작천리 까치내[현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중광리]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 아버지가 죽자 상을 마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선비다운 면모를 지켰다. 선조 때 왕명을 받들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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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으로 출가한 열녀. 선군(船軍) 주안도(朱安道)의 아내이다. 김여귀는 남편이 병들자 정성껏 약을 다려서 구원했다. 남편이 죽자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고 호곡하다가 기절하였다. 당시 친정어머니가 말리면서 임산부는 상(喪)에 임할 때 과하게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목을 매어 남편을 따랐다. 당시 나이는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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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이(遠而). 명필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창의의 일원으로서 정유왜란 소사 전투에 명장의 전공을 세운 좌랑 홍우(弘宇)이다. 김여성은 1564년(명종 19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건주(建州)의 오랑캐가 침입하자 사계(沙溪) 김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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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자는 성규(聖圭)이고 호는 만수(晩睡)이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이고 진사(進士) 김양대(金養大)의 아들이다. 1842년(헌종 8)에 공음면 선동리(扇洞里)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고창읍 도산리(道山里)로 이사했다. 자질이 총명하여 일찍 문리가 통했고 효심이 깊어 부모를 잘 섬겨 정성을 다했다. 또한 부모의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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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서(公瑞), 호는 남계(南溪).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의 후예로, 이조판서 김호(金湖)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중겸(金仲謙)이고, 어머니는 장흥임씨(長興任氏)이다. 김정(金珽)은 29세 때인 1555년(명종 10) 진사시 3등으로 합격하였다. 당대에 문장과 절효로 이름이 났으며, 충암(冲庵)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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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김정회가 살았던 조선 후기 고택. 김정회(金正會)[1903~1970]는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이다. 김정회 고가는 1862년(철종 13)경에 지어졌다. 김정회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한학을 배웠고, 근대 고등교육기관의 하나인 경학원(經學院), 즉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원에서 경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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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장사군(長沙君) 김선(金璇)의 후손이다. 김천복(金天福)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수백 명과 가동(家僮) 수십 명을 산 아래 요새에 매복하여 수천의 적을 습격하여 베었다. 그래서 그곳을 토적동(討賊洞)이라고 이름 하였다. 삼종숙인 병사(兵使) 김수연(金秀淵),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금산전투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진주 촉석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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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의병. 김축(金軸)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대를 이를 큰아들만 집에 남기고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출진하여 6충, 1효, 4열부를 배출하였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고언(高彦), 호는 남계(南溪). 덕원군의 21세손으로 아버지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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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거짓 고변 희생자. 1733년(영조 9) 11월 4일 포도대장 신광하(申光夏)가 괘서사건에 대해 상소하였다. 신광하가 말하기를, “창원 사람 김계보(金繼寶)가 금년 8월 16일에 창평 땅에 갔는데, 태인 사람 홍구채(洪九采), 정읍 사람 김명신(金命信)·서정구(徐鼎九), 흥덕 사람 김팔기(金八起)·정제인(鄭齊仁), 부안 사람 김남역(金南繹) 등이 고만령(高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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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용(伯容), 호는 백곡(白谷). 증조할아버지는 김명원(金命元)이고, 할아버지는 김기서(金麒瑞)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경희(金景熹)이다. 김홍우(金弘宇)는 일찍이 윤두수(尹斗壽)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행(文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1593년(선조 26) 전주에서 치러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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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운사 도솔암의 16나한상이 안치된 불전. 나한전은 석가모니불과 제자들의 상을 안치한 법당이다. 도솔암은 원래 용문암(龍門庵)이라는 암자였다. 용문암 옆 용문굴(龍門窟)의 이무기가 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가져온 나한상(羅漢像)을 용문암 자리에 안치하였다. 그러자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때 다시는 이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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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맹단. 남당 회맹단은 혈맹단이라고도 하며, 채홍국(蔡弘國) 등 고창 지역 300여 명의 선비들이 구국의 기치로 호남 의병을 창의하고자 삽혈 동맹을 하고 쌓은 맹단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이 격문을 돌려 창의(倡義)하여 92명의 의사(義士)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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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3년 고창 유림이 참여한 임진왜란기의 의병 항쟁.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창과 장성 지역의 유림이 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왜군을 막기 위한 의병을 일으키면서 일어났다. 1차 남문창의는 1592년 8월 24일 김경수(金景壽)를 맹주로 하여 김홍우(金弘宇)·기효간(奇孝諫)·이수일(李守一) 등이 장성현 남문에 의병청을 세우고 격문을 보내 인근 고을에서 수많은 의병을 모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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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 있는 김유신, 김축, 김두남, 김지남 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 사당. 남산사는 1830년(순조 30)에 창건하여 김유신(金庾信), 김축(金軸), 김두남(金斗南), 김지남(金志南) 등을 향사하고 있다.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으로 본관은 가락이며,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13세손이다. 신라 김춘추를 임금으로 추대하였고, 660년(태종무열왕 7) 상대등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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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김연, 김석원, 김기서, 김경희, 심진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노산사는 1826년(순조 26)에 고려 후기 명신인 김연(金璉)을 주벽으로, 김석원(金錫元), 김기서(金麒瑞), 김경희(金景熹), 심진(沈搢) 등 5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주벽인 김연은 광산김씨 양간공파(良簡公派) 파조로, 1215년(고종 2)에 개경 동부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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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있는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등의 인물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덕천사는 1818년(순조 18)에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단종 폐위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3현만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복설하면서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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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미륵불. 마을에 조성된 미륵불을 마을 미륵이라 부른다. 미륵불은 도솔천 내원궁에 좌정하고 있는 미륵보살이 사바세계로 하생하여 성불한 부처를 말한다. 미륵이 사바세계로 출현하는 곳은 사찰의 가람 배치로 입증되고 있는데, 사찰에서 출현한 미륵불이 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마을로 내려온 미륵불을 마을 미륵이라고 한다. 도곡리 미륵암 미륵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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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는 정희주(鄭熙周), 정민상(鄭敏相), 정유상(鄭有相),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진주정씨(晋州鄭氏) 종모재(終慕齋) 정희주(鄭熙周)와 야은(野隱) 정민상(鄭敏相), 송은(松隱) 정유상(鄭有相), 항사재(恒思齋)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도봉사는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다. 1827년(순조 27)년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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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도산서당은 인근 학동들을 위한 강당으로 쓰였으며, 도산초등학교 개교 때 교사를 구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수업을 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도산서당은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이었다. 따라서 교우 관계를 보여주는 많은 시문과 송사 기우만이 쓴 「만수당기(晩睡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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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질(金質)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도암서원는 안동김씨의 서원으로 1613년(광해군 5)에 김질(金質)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어 그가 살던 집터에 창건하였다. 이후 1835년(헌종 1)에는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킨 증손 김경철(金景哲)을 배향하였으며, 1857년에는 김경철의 아우로 임진왜란 때에 왕을 호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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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동산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서원의 터. 고창군에서 정읍 방면으로 국도 22호선을 따라 23㎞ 달리면 동산마을이 왼쪽에 있다. 마을에 동산서원 터만이 있다. 동산서원은 이필(李苾)[1682~1746]이 1718년(숙종 44)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1633~168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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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집. 당집은 마을에서 서쪽으로 400m 떨어진 해변의 산 정상에 있는데, 당집 앞으로 초소가 서 있고 그 주위로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당산은 마을 들어오는 입구 좌우로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이 있었으며, 마을 노인회관 안쪽으로 큰 당산[천룡 당산]이 있고 선착장 쪽으로 언덕 위에 작은 당산이 위치한다. 당집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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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임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임리마을에는 앞당산과 뒷당산이 있다. 앞당산은 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할미 할애비당이라 불리는 돌 당산이다. 뒷당산은 마을 뒤쪽에 있는 천룡 당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천룡 당산은 천룡이 내려와 정주하는 곳을 의미하고, 천룡은 하늘의 용이라는 영물을 뜻한다. 고창 지역 농민들은 농사철을 앞두고 당산제를 지낼 때 하늘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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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수보살을 봉안한 전각. 문수사 문수전은 문수보살을 봉안한 전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상원사 대웅전에 봉안된 문수보살상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 영암 도갑사의 문수동자상이 있다. 그러나 문수사 문수전의 문수보살상이 승상의 모습으로 봉안된 곳은 문수사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창군의 영광, 함평 쪽으로 16㎞ 정도 직진하여 왼쪽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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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흥덕현감을 역임한 무신. 민후기(閔厚基)는 무과 출신으로 1727년(영조 3) 10월 흥덕현감으로 임명되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햇수로 무려 4년간이나 흥덕현감으로 재직했는데,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1728년(영조 4) 7월 22일, 동경연(同經筵) 송인명(宋寅明)이 말하기를, “흥덕현감 민후기는 부임한 뒤로 치적(治績)이 현저하고 군비(軍備)를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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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숙(和叔), 호는 매월헌(梅月軒). 찬성사(贊成事) 박열(朴說)의 13세손이며, 증참의(贈參議) 박현손(朴賢孫)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개(朴漑)이다. 박기호(朴奇琥)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각별하여 어려서부터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예로써 몸을 닦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곡식을 모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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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충국(忠國). 증조할아버지는 밀양 박씨 고창 입향조인 양오공(陽梧公) 박서봉(朴瑞鳳)이다. 박서봉은 1463년(세조 9)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무오사화로 스승인 김종직(金宗直)과 친척들이 화를 입자 가족을 데리고 밀양을 떠나 전라남도 무안 등을 떠돌다가 추산봉 아래인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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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유배되었다가 난을 도모한 역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양경(良卿). 증조할아버지는 박황(朴潢)이고, 할아버지는 박세환(朴世桓)이다. 아버지는 박태진(朴泰進)이며, 어머니는 김덕승(金德承)의 딸이다. 박필몽(朴弼夢)은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사서와 정언을 거쳤다. 1716년(숙종 42)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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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행원(行源), 호는 모재(慕齋).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박세영(朴世榮)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박유정(朴由精)이다. 박효형(朴孝亨)은 6세에 아버지 박유정이 임진왜란 때 달천 싸움에서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큰 소리로 울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 3년간 추복(追服)[상(喪)을 당하였으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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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김두남·김지남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백양사는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된 승지(承旨) 청계(淸溪) 김두남(金斗南), 월재(月齋) 김지남(金志南)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김축은 김극일의 현손(玄孫)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아들 김기경(金起庚)과 아우 김헌(金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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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여옥(汝玉), 호는 인천(仁川).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1530~1614]의 아우로 1549년(명종 4)에 출생했다. 형을 따라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행이 높아 참봉을 제수했으나 나가지 않았고, 형과 함께 아산면 반암리 호암(壺巖)마을 밑에서 은거(隱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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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의 조선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이 조선을 침입했을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의 여론은 군사를 일으켜 후금을 치자는 척화배금(斥和排金)[후금에 대하여 화의를 반대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당시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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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고창 출신의 유학자 오익창(吳益昌)의 시문집. 오익창[1557~1635]은 자가 유원(裕遠), 호는 사호(沙湖),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1557년(명종 12)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 장동(墻洞)에서 태어나 23세에 사마시에 뽑혔다. 성리학에 밝고 육예(六藝)에 통했으며, 특히 산수(算數)에 깊고 재략이 있었다고 전한다. 효종 때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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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승려.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李氏). 호는 설파(雪坡), 상언(尙彦)은 법명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이태영(李泰英)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상언(尙彦)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매우 가난하여 스스로 살길이 없었다. 이에 19세 때 선운사로 출가하여 희섬(希暹)의 제자가 되었으며, 연봉(蓮峯)과 호암체정(虎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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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 신평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선돌. 마을의 당산은 나무와 선돌로 만들어진다. 선돌은 자연 선돌과 조형 선돌로 만들어지는데, 상평리 신평마을 당산 선돌은 자연 선돌이다. 이 선돌은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낼 때 줄다리기를 한 후에 줄을 감아놓는 선돌 당산이다. 신평리에는 지신 당산과 선돌 당산이 있는데, 선돌 당산 2기 가운데 하나이다. 상평리 신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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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연(渷), 호는 충효당(忠孝堂). 아버지는 공조판서에 증직된 서호(徐浩)이다. 서경춘(徐景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남도 장성 남문에서 창의하여 군량관으로 군량 3만여 석을 모았다. 정유년에 양친과 아내 김씨가 같은 날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6년을 시묘하였다. 충효(忠孝)를 겸하여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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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치원(致遠), 호는 모의재(慕義齋).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참판 서호(徐顥)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서응성(徐應星)이고, 아버지는 서홍섭(徐弘涉)이다. 서일남(徐馹男)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김장생(金長生)이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로 전주에 내려오자, 소모유사(召募有司) 유철견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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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석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풍수 비보 입석. 석교리(石橋里)는 조선 순조 때에 전주이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이다. 석교리는 처음에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풍수상 지네 형국이라서 옹동이라 하였으나, 마을 앞에 돌다리가 생겨나면서 석교리로 마을 명칭이 바뀌었다. 석교리 마을 입구에 남근석이라는 입석이 있었는데, 이 입석을 석교리 미륵이라고 부른다. 이 남근석은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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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대웅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 벽화.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1840년(헌종 6) 화승인 원담(圓潭)과 내원(乃圓), 익찬(益贊), 도순(道詢) 등이 제작한 것으로 토벽에 그려져 있다. 「비로자나불 벽화」와 「아미타불 벽화」, 「약사불 벽화」 등 세 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신불(三身佛)인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과 삼세불(三世佛)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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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조선 후기 미륵 석상. 선운사 미륵은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과 관련 있는 자그마한 석불상으로, 미륵불라고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고려시대 마애불상의 양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 마애불의 배꼽에서 조선 후기 무장현의 손화중 동학 접주가 비기을 꺼냈다는 석불 비결 설화가 전해 온다. 선운사 미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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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입구 근처 부도전 내에 세워져 있는 조선 후기 기념비. 선운사 백파율사비는 1858년(철종 9년)에 세운 것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비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律師)의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白坡)만이 이에 해당할 만하며,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백파가 팔십 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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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선운사 범종은 불전 사물의 하나다. 종의 중간 부분에 있는 종기(鐘記)로 보아, 1818년(순조 18)에 개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6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쌍두 용뉴[종신을 매다는 고리]까지 총 높이는 124㎝이고, 구경 93㎝, 견경(肩經) 56㎝이다. 종 입구 가장자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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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선운사 사적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3권의 책. 선운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여러 문헌 가운데 하나인 ‘선운사 사적기’는 선운사의 중건과 창건, 사찰 내의 물품 현황 등을 기록한 고문서로, 『선운사적(禪雲寺蹟)』·『참당사사적기(懺堂寺事蹟記)』·『선운사고적(禪雲寺古蹟)』 등 3책을 말한다. 3책 모두 편찬 및 발간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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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원류(釋氏源流)』는 1425년에 중국 명나라의 승려 보성(寶成)이 인도와 중국에서의 불교의 전개 과정을 400여 편의 일화로 구성한 불교 역사서이다. 기존의 불교 역사서가 특정 종파의 입장이나 지식인인 승려의 입장에서 불교사를 정리하였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특정 종파에 국한되지 않고 통합적 입장에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화를 중심으로 불교사의 흐름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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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선운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도솔산선운사영산전조성시주록서(兜率山禪雲寺靈山殿造成施主錄序)」에 의하면, 1713년(숙종 39)에 태학(太學)과 태산(太山) 두 승려가 장륙화신불(丈六化身佛)을 봉안하고자 2층으로 된 각황전(覺皇殿)을 건립하였다. 100여 년 만에 각황전이 기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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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물과 유품. 조선 후기의 무신 강응환(姜膺煥)[1735~1795]의 후손 강성욱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로, 교지 6점, 초상화 2점, 서책 2점, 지도 2점 등 총 4종 12점이다.「청북변성도(淸北邊城圖)」와 「고려중요처도(高麗重要處圖)」, 그리고 『칠원정적』, 『내영정적』, 「강응환 영정」, 교지 등이 그것이다. 강응환은 17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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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고창 지역의 대표적인 서당으로는 고창읍 주곡리의 판경당(瓣敬堂)과 상하면 검산리의 스무재서당, 고수면의 김기서 강학당(金麒瑞講學堂), 흥덕면 흥덕리의 관서당(觀書堂), 그리고 고창읍의 도산서당이 있다. 유학자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상하면 검산리에 그의 5대조의 사당인 감모재(感慕齋)를 세우고, 그곳에 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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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해지는 4음보 율격 3장 6구 형식의 정형시. 시조는 고려 말부터 발달해 온 정형시를 말한다. 시조는 형태에 따라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나뉘는데 이중 평시조가 가장 흔한 형태이다. 평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은 다시 2구씩, 모두 6구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3·4조나 4·4조의 기본 운율에 4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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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황국재(篁菊齋). 호조좌랑을 지낸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安建)은 부모가 병이 나자, 자신을 비롯해 세 동생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부모에게 먹여 생명을 연장케 하였는데,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 집안에 효자가 넷이나 났다[一門四孝]는 칭찬이 자자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법에 따라 하고, 초하루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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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김해김씨 김극일의 직계 근친 25명의 의사와 다섯 명의 열부를 기리는 조선 후기 정려각. 어사각은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의 7년간의 전투에서 전사한 김해김씨 삼현파 한림공 용(勇)의 후손들과 그 비보를 받고 자결한 부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이들은 김해김씨[일명 삼현파] 의 후예로 김해김씨 단도판서공파, 일명 삼현파의 절효공 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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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명철(吳命喆) 처 삭녕최씨(朔寧崔氏)의 정려. 오명철(吳命喆)의 처 삭녕최씨(朔寧崔氏)는 덕행이 정숙하였다. 회임하여 만삭일 때 남편이 죽자 자진하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만류하여 한 달이 지나 해산하고 곡기를 끊은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예조에서 정려의 명을 내렸다. 고창군 아산면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지방도 15호선을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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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이화 처 완산이씨의 정려. 오이화(吳以和)의 처 완산이씨는 이운령(李雲翎)의 딸로서 1614년(광해군 6)에 출생하였다. 남편 상을 당해 두 번이나 죽으려고 했으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소생하였다. 노모와 어린아이를 위해서 억지로 일어나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복을 벗은 뒤 친정아버지가 의지할 곳 없는 딸을 데려갔는데,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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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유원(裕遠), 호는 사호(沙湖). 부원군 오광휘(吳光輝)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좌수우후를 지낸 오숙(吳淑)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오세영(吳世英)이다. 아버지는 진사 오인(吳寅)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학(李鶴)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함풍이씨(咸豊李氏)로 이유겸(李惟謙)의 딸이고, 두 번째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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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숙명(淑明).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부평부사를 역임한 오세훈(吳世勳)이고, 아버지는 공조참의에 증직된 오언린(吳彦麟)이다. 오희량(吳希亮)은 어려서부터 종조(從祖)할아버지 오겸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부모에 대한 효도가 깊고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였다. 형 오희철과 한 이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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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흥고씨 문중의 사당. 옥제사(玉堤祠)는 장흥고씨 문중의 사당으로, 임진왜란 당시 채홍국(蔡弘國) 등과 창의한 고덕붕(高德鵬)[1552~1626]과 고여흥(高汝興)[1617~1678], 고제만(高濟萬)[1860~1942] 등을 모시고 있다. 고덕붕은 임진왜란 때 채홍국 등과 함께 남당고개에 모여 단을 쌓고 창의한 인물이다. 고여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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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곡서원은 지방 유림들이 중국의 회암(晦庵) 주희(朱熹)[1130~1200], 백암(白巖) 김제(金濟)[1362~?], 농암(籠巖) 김주(金澍)[1365~?],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1389~1456],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문과 덕행, 그리고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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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으로 출가한 열녀. 고창의 사인(士人) 유경복(柳慶復)이 남편이다. 유경복(柳慶福)의 처(妻) 울산김씨는 고창으로 시집을 온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병에 걸려서 죽었다. 상을 당하여 극진히 상례(喪禮)를 다하느라 몸이 상하여 병들었고, 이어 자결하였다. 1786년(정조 10) 정려가 되었다. 유경복 처 울산김씨 정려각이 고창읍 성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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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경복(柳慶福)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정려각. 1786년(정조 10) 고흥유씨인 유경복(柳慶福)의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열행으로 정려되었다. 울산김씨는 어려서 부친을 여읜 뒤 편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행하였고 형제간에 우애도 돈독하였다.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이 큰 병에 걸리자 주야로 시탕(侍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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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학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실(汝實), 호는 성은(城隱). 할아버지는 유익하(柳翊夏)이고, 아버지는 유해종(柳海宗)이다. 유광적(柳光迪)은 1715년(숙종 41) 고창읍 양곡리[현 고창읍 노동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인 1719년(숙종 45)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 살 때인 1729년(영조 5) 어머니까지 잃었다. 고애자로 성장한 그는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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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사명(士明).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유춘발(柳春發)이며, 동생은 정랑(正郞)을 지낸 유동립이다. 유동휘(柳東輝)는 선조 말 사마시에 합격한 후 아버지의 성원으로 당대의 대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이후 시례(詩禮)에 능하여 천거된 뒤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1623년(광해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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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양수(陽叟), 호는 수한(睡漢).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상현(柳象賢)이다. 유세기(柳世箕)는 가학(家學)으로 한문을 익히고, 성장하자 서당에 나가 경전과 사서(四書)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시문(詩文)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효행의 가풍을 계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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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취직(就直). 할아버지는 고흥유씨 석탄파(石灘派)의 시조 유운(柳澐)이다. 아버지는 유경홍(柳慶弘)이다. 유여회(柳汝檜)는 가학(家學)으로 경사에 통달하였다. 48세 되던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고을에서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킨 뒤 군량을 모아 병영에 수송하는 일에 솔선수범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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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상경(商卿), 호는 삼소당(三笑堂). 관란(觀瀾) 유춘발(柳春發)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유동현(柳東賢)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유철견(柳鐵堅)이다. 친아버지는 유교령(柳喬齡)이고, 양아버지는 생원 유만령(柳萬齡)이며, 양어머니는 해미곽씨(海美郭氏)로 곽성구(郭聖龜)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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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수(汝壽).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유춘발(柳春發)이고, 아버지는 효행으로 통덕랑(通德郞)이 된 유동신(柳東信)이다. 유철견(柳鐵堅)은 1583년(선조 16) 고창 양곡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숙부 유동휘(柳東輝)와 함께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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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백(源伯), 호는 일평(一萍). 장사랑(將仕郞) 유봉(柳鳳)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다. 유필원(柳必源)은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글을 배운 뒤 전라북도 논산 출신의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소학(小學)』과 『효경(孝經)』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여 독실한 효심으로 39세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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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중(源仲), 호는 허재(虛齋). 세종 때 왕자 사부를 지냈던 경암(敬庵) 유구산(柳龜山)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고, 양아버지는 유영휘(柳永輝)이다. 유혜원(柳惠源)은 어려서는 형 유필원(柳必源)에게 글을 배웠고, 커서는 고부 선비 권극중(權克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8세 때인 1659년(효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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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 이괄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의병 항쟁. 선조가 승하한 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이이첨 등의 대북 정권은 왕권의 확립을 위해 서인과 남인 등 다른 붕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북계의 지지를 받은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는 등 무리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김자점(金自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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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덕비. 이교인은 문과에 급제하고 1859년(철종 10)에 승지로 불려갔다. 이교인이 선정을 베풀고 다른 지역으로 부임할 때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공음면사무소에 칠암리를 거쳐 대산면 쪽으로 가다 보면 군유오거리에 군유주유소가 나오는데, 이곳에 있다. 비석 윗부분이 비신과 한 몸으로 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현감이후교인청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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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부(古阜). 자는 대현(大顯). 문헌공(文獻公) 이경조(李敬祖)의 후손으로 판서를 지낸 이견의 5세손이다. 이대축(李大畜)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병이 깊어지자 변을 맛보고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했다. 상(喪)을 당해서는 3년간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진사시에 합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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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이만기(李晩器)는 좌랑(佐郞)을 지낸 이만중(李晩重)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환부(患部)를 혀로 핥았으며, 아버지가 죽자 3년상을 마칠 때까지 죽으로 연명했다. 형제가 우애하여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계(契)를 조직하여 인근 마을의 상(喪)에는 온 정성을 다해 돕고, 곡식을 모아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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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박(士博), 호는 성음(星陰). 장천군(長川君) 이보생(李普生)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 이형(李逈)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이시휘(李時輝)이다. 친아버지는 통덕랑 이인(李潾)이며, 양아버지는 통덕랑 이용(李溶)이다. 이문언(李文彦)은 성장하여 수촌(壽村) 백시덕(白時德)과 진사 백시명(白時明)의 문하에서 수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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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건(效乾), 호는 오은(梧隱). 조선 태종의 다섯째 아들 경녕군(敬寧君) 이비(李示+非)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이기수(李琪樹)이다. 이원남(李元男)은 1588년(선조 21)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동기에 대한 우애가 극진했다. 일찍이 스스로 『소학(小學)』을 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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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무경(茂卿), 호는 월촌(月村). 죽곡(竹谷) 이장영(李長榮)의 현손이다. 이익방(李益芳)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피 울면서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시묘하였다.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어머니가 나타나 약 세 알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아들 셋을 둘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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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를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인산사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우로서, 숙종 때에 예산(禮山) 대흥(大興)의 이약수(李若水) 묘 아래에 사우를 세우고 춘추향사(春秋享祀)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0년에 자손이 세거하는 이곳에 규모를 갖추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약수(李若水)의 자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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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 있는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가 살았던 조선 후기 생가(生家). 인촌 선생 생가는 교육자, 사업가, 정치가였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1891~1955]와 수당 김연수 형제가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이다. 김성수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으며, 정치,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 근대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김성수, 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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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군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제1차 침략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략이 정유년에 일어났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이때에 조국을 위기로부터 구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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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나서는 한편, 조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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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서(曺庶), 조의기(曺義起),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 사당. 정산사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사우(祠宇)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조서(曺庶)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의기(曺義起), 조선 후기의 효자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서의 자는 여중(汝衆), 호는 청간(淸澗)이고, 본관은 창녕으로 경기도 부천군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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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종모재(終慕齋). 절제사를 지낸 정종순(鄭宗舜)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정기현(鄭期顯)이다. 정희주(鄭熙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지성으로 모시어 뜻을 받들어 봉양을 다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어 대신하기를 원했으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하여 아버지는 16년을, 어머니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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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휴백(休伯), 호는 삼오당(三吾堂).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한빈(曺漢賓)이다. 조언징(曺彦徵)은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당대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의 시에 “상쾌한 숲과 샘[林泉]은 내게 가장 마땅하고 경서의 뜻풀이[經訓]와 농사 이야기[農談]는 내 분수에 마땅하네. 이 속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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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화암(花巖).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으로, 우승지 조후(曺厚)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호인(曺好仁)이다. 조익령(曺益齡)은 지략이 뛰어났으며, 충의를 자임하는 인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일상생활에 있어 ‘충신독경’(忠信篤敬)이란 네 글자를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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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오곡(梧谷).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령(縣令) 조호인(曺好仁)이다. 참봉 조익령(曺益齡)의 동생이다. 조익수(曺益壽)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조익령과 같이 군량미와 군기를 준비하고, 집에서 부리던 하인 18명과 함께 의병장 채홍국(蔡弘國)과 고덕붕(高德鵬)을 따라 흥덕 남당(南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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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은원(恩源),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조인준(曺仁俊)이다. 조첨(曺添)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곧으며 굳은 의지와 절개가 있었고, 밖으로는 연약한 듯하면서도 안으로는 강직했다. 어버이를 섬기되 정성을 다했고, 사람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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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혼부(混夫), 호는 계암(溪庵). 직제학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인숙(曺仁淑)이다. 조흡(曺潝)은 성품이 단아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신유일(辛惟一), 오전(吳晪), 유철견(柳鐵堅)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여 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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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송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선돌. 송암마을은 주산이 옥녀봉이며, 마을의 풍수 형국이 옥녀 직금형(玉女織錦形)이다. 옥녀 직금형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는 형국을 말하는데, 옥녀가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베를 짜는 형국이다. 마을 오른쪽 야산 지명을 북안등이라 하고, 왼쪽 야산 지명을 사침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풍수 형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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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죽산마을에 있는 오익창(吳益昌), 오전(吳晪) 부자(父子), 오병수(吳秉壽)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아산면 성산리 죽산(竹山)에 있는 함양오씨(咸陽吳氏)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 절암(節菴) 오전(吳晪) 부자(父子)와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죽산사는 아산면 성산리 죽산마을로 들어가는 언덕에 있다. 171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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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중거리 당산[지정 명칭 중거리 할아버지당]은 자연재해를 예방할 목적에서 1803년(순조 3) 고창읍 주민들이 합심 협력하여 고을 중심에 세운 풍수비보 기능의 석주이다.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중거리 할아버지당이고 현재 중거리 당산[중요민속문화재 14-2]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상, 중, 하 삼거리 중 상거리에 있는 당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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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미륵당산. 고창읍이 풍수 지리적으로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1803년(순조 3)에 고창읍에 세워진 풍수비보 기능의 석주 가운데 중리에 조성된 돌돛대형 석주이다. 1969년 12월 15일에 중요민속문화재 14-1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지정 명칭은 중앙동 할아버지당인데, 중앙당산 또는 미륵당산이라고 부르는게 더 적합하다. 중요민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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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풍수 비보 입석. 화표(華表)는 중국에서 풍수비보 기능을 하는 석주로서 사원 내에 조성된다. 진서화표 석주[지정 명칭 하거리 할아버지당]는 1801년(순조 1)에 대홍수를 겪은 고창읍 주민들이 재난을 방지하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합심하여 1803년(순조 3)에 조성한 것이다.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하거리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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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銅鐘). 참당암 동종은 법당의 의식 때 사용하며, 아담한 크기이다. 참당암 동종의 명기에 ‘건륭오삼년무오삼월내원중주조성(乾隆五三年戊午三月內院中鑄造成)’이라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88년(정조 12)에 주조된 것으로 보인다. ‘내원(內院)’은 현 도솔암 내원암을 뜻하는 것으로, 참당암 동종이 내원암에서 주조되어 참당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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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강(平康).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채충경(蔡忠敬)의 5세손이다. 증병조판서 채홍국(蔡弘國)의 셋째 아들이다. 훈련원정(訓練院正) 채경달(蔡慶達)이 형이다. 채영달(蔡英達)은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절개가 있었으며, 심성이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효성과 우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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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광보(光輔), 호는 야수(野叟). 고려 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채충경(蔡忠敬)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채치의(蔡致義)이다. 채홍국(蔡弘國)은 1534년(중종 29)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에 흥덕 남당촌으로 이주했다. 천성이 너그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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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오월(梧月). 아버지는 만오(晩悟) 최후경(崔候慶)이다. 최봉의(崔鳳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평소 아버지의 효행을 본받아 그대로 실천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고기를 잡고 땔감을 채취하며 극진하게 공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한 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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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신유박해 순교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례명은 마티아, 여겸(汝謙)은 자라고 한다. 무장현 동음치면[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거주하고 있던 전주최씨 현감공파의 후손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 상세한 계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여겸(崔汝謙)은 25세 때인 1788년(정조 12) ‘전라도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을 찾아가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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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인 최여겸의 순교지. 순교자 최여겸의 세례명은 마티아이고, 전라도 무장에서 출생했다. 최여겸의 신분에 대해서는 『한국천주교회사』에는 양인으로, 「황사영 백서」에는 상인(常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명단에는 양반 출신으로 되어 있다. 최여겸은 윤지충[바오로]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그 교리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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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마비. 칠암리 하마비는 갑촌마을 도암서원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데, 이곳은 김질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효자각도 있는 곳으로서,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 징표이다. 공음에서 영광으로 가는 국도 22호선 도로변, 즉 도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에 있다. 비석의 크기는 120×58×35㎝이고, 일반적인 월석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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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고수면 황산리 황산 서쪽 산기슭에는 3~4인이 앉을 만한 바위가 있다. 아래로는 3층의 돌층계가 있는데, 풍암정은 맨 위층에 서남간을 바라보고 건립되어 있다. 황산은 죽산인(竹山人) 무송당(撫松堂) 안방성(安邦成)이 어버이를 산 위에 모시고 손수 소나무 씨를 뿌림에 따라 푸르게 변했다. 그런 이유로 안방성은 무송(撫松)이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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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에 조성된 오거리 당산은 동·서·남·북·중앙의 5방위에 당산을 조성한 것이다. 당산은 자연 입석과 조형 입석으로 세웠다. 상거리[문화재청 지정 명칭 중거리 할아버지당, 현 항목명 중거리 당산], 중거리[문화재청 지정 명칭 중앙동 할아버지당, 현 항목명 중앙 당산], 하거리[문화재청 지정 명칭 하거리 할아버지당, 현 항목명 진서화표 석주]당산은 조형 입석으로 당산을 삼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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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자평(子平)이고, 호는 취은(醉隱)·해광(海狂).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 황처중(黃處中)이고, 할아버지는 의병장 황이후(黃以厚)이며, 아버지는 황종혁(黃宗爀)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증손자이다. 황세기(黃世基)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외조부가 글자를 가르쳤는데. 7세 때 시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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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옥(景玉), 호는 단옹(檀翁). 증조할아버지는 산촌(山邨) 황재만(黃載萬)이고, 할아버지는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며, 아버지는 수촌 황일한이다. 황수경(黃秀瓊)은 안촌(安村) 황이후(黃以厚), 구암(龜巖) 황재중(黃載重), 만은(晩隱) 황전(黃廛), 이재 황윤석 등 누대에 걸쳐 이어 오는 문벌 가정에서 출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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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실재(實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산뢰노인(山雷老人)·월송외사(越松外史).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취은(醉隱) 황세기(黃世基)이고, 할아버지는 산촌(山邨) 황재만(黃載萬)이며, 아버지는 만은(晩隱) 황전(黃廛)이다. 황윤석(黃胤錫)은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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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황윤석이 살았던 조선 후기 고택.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생가이다. 황윤석은 1759년(영조 35)에 과거에 합격하고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황윤석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였고, 유학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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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온수(溫叟), 호는 서은(鋤隱).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취은(醉隱) 황세기(黃世基)이고, 할아버지는 산촌(山邨) 황재만(黃載萬)이며, 아버지는 만은(晩隱) 황전(黃廛)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형이다. 황주석(黃胄錫)은 어려서는 가학(家學)으로 글을 배웠고, 자라서는 미호(渼湖)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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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흥덕향교 대성전. 흥덕향교는 1621년(광해군 13)에 창건되었고, 흥덕현[현 흥덕면] 유림들의 숙원 사업으로서 1675년(숙종 1) 어명에 의해 중창되었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유교 문화 속에서 운영된 교육 기관으로, 국가가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켜 지방에 세웠다. 흥덕향교 대성전은 자연석 바른층쌓기를 기초로 장대석의 기단을 두었고, 그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