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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범진은 1907년 6월 26일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 426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활동에 투신하였다. 강범진은 국민부(國民府) 동만지방(東滿地方) 조직위원으로 만주와 간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독립군으로 이춘갑(李春甲) 등 3명을 인솔하여 회비를 징수하려고 출장을 가던 중 계관산에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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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구자훈(具滋勳)은 1921년 1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 469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1936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교생인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한석(金漢奭)·김용갑(金溶甲)·김해인(金海仁)·최낙권(崔洛權)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 구자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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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김갑순은 1872년(고종 9) 5월 김현종(金顯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갑순은 그의 부친과 형님의 요절로 13살 때인 1884년(고종 21)에 호주가 되었다. 김갑순은 조선 말기에 내장원봉세관(內藏院捧稅官)을 거쳐, 1906년에는 공주군수, 1911년 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갑순은 1914년 충청남도 참사(參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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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관회(金寬會)는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24일 동료 교사 이규상, 영명학교 졸업생 김사현, 동경 청산학원생 오익표·안성호, 목사 현석칠 등과 함께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다. 독립 만세 운동 모의과정에서 김관회는 영명학교 학생들을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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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헌(金秉憲)은 1880년(고종 17) 1월 17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터에서 황병주(黃秉周)·이정춘(李正春) 등과 같이 장날에 모인 500여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 주동자인 황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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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철은 1894년(고종 3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김수철은 이에 자극받아 영명학교 교사인 김관회·이규상·현언동과 졸업생 김사현, 재학생 오익표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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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용갑(金溶甲)은 1920년 7월 25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76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교생인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한석(金漢奭)·김해인(金海仁)·구자훈(具滋勳)·최낙권(崔洛權)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 김용갑과 명랑클럽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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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해인(金海仁)은 1918년 9월 22일 충청남도 대덕군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6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교생인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한석(金漢奭)·김용갑(金溶甲)·구자훈(具滋勳)·최낙권(崔洛權)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 김해인과 명랑클럽 회원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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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동은 1895년(고종 32) 2월 12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5년 서일(徐一)·현천묵(玄天默) 등과 같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건너갔다. 1919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하여 김좌진(金佐鎭), 이범석(李範奭) 등과 같이 항일투쟁을 하였다. 1924년에는 중국군 운남육군강무학교(雲南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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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2년 공주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김순태, 유석준을 비롯한 공주소년연맹원들과 함께 반전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같은 해 3월 5일 영명학교를 비롯하여 시내 요소에 반전 격문을 부착, 살포하였다. 사건 발생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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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에서는 만세 시위운동, 동맹 휴교 투쟁, 사회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1935년의 조선총독부 자료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주로 3·1운동 연루자인 「보안법」 위반자가 80명, 「치안유지법」위반자가 15명, 소작 쟁의나 노동 쟁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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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민영선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인물로 조선 말기 주사와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말기 명화학교에 기부금을 냈으며, 공주청년회 주관 자선행사에 후원금을 기부 하는 등 공주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민영선 1920년 6월 성보영 등과 함께 남선흥업주식회사(南鮮興業株式會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남선흥업주식회사는 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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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벌인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반일 가두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그 후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 김순태(金淳泰), 공주소년연맹 위원장 안병두(安炳斗) 등과 함께 반전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1932년 3월 5일경 영명학교(永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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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박준식은 1884년(고종 2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말기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승훈랑(承訓郞)을 역임하였다. 박준식의 축재과정은 명확하지 않으나 궁내부주사를 역임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에는 공주권업주식회사 사장, 우성수리조합 평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5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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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6년 여름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는 수원고등농림학교 기숙사 내 한국인 학생모임인 조선인학생담화회를 중심으로 항일학생결사인 건아단(健兒團)이 조직되었다. 건아단은 당시 민족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농민의 계몽을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적한 학생결사였다. 건아단의 학생들은 먼저 농촌사회의 개발이 곧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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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덕순은 1892년(고종 29) 2월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서덕순의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 중추원 의관, 1911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덕순은 조선 말기 명화학교(明化學校)를 다니다가 1910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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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범순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고종 38)에 중추원 의관, 1911년에 충청남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범순은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말 기준으로 205㏊의 토지를 소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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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경제인. 성보영(成普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한 경제인이다. 조선 말기 주사(主事) 출신인 성보영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남선흥업, 금성금융조합, 공주권농조합 등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또한, 성보영은 1921년 공주청년수양회(公州靑年修養會)의 부회장으로 당시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전조선청년당대회(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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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심원택은 충청남도 공주군 사곡면 호계리에서 태어났으며, 윤이병(尹履炳) 등 동지들과 함께 1907년 6월 19일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고 매국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성토하였다. 일본이 1907년 7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양위시키고,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여 침략 정책을 강화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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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병두(安秉斗)는 1910년 7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주외면 옥룡리 364번지(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36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안병두는 공주소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 10월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방흥리에서 소작쟁의가 발생하자 박명열(朴命烈)과 함께 쟁의를 지도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이학근(李學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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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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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익표(吳翼杓)는 1888년(고종 25) 6월 8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의 아오야먀[靑山]학원에 재학 중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고향에 내려와서 1919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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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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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귀영(尹貴榮)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1929년 12월 2일 발생한 공주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1929년 12월 2일 당시 윤귀영은 공주소년동맹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즈음인 1929년 12월 2일에 동맹휴학 운동을 벌인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929년 12월 3일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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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관세(李寬世)는 1908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대원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29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 운동을 벌였다. 이관세는 1929년 11월 27일 공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생 30여 명을 모아 식민지 교육의 결함과 총독 정치를 비판하며 동맹휴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주도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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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관직(李觀稙)은 1883년(고종 20) 7월 1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사현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00년(고종 37) 대한제국(大韓帝國)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의 보병과에 입학하여 1903년(고종 40) 9월 20일에 졸업하였다. 1905년(고종 42) 4월 18일부터 육군 보병 참위(參尉)로 육군연성학교(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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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상(李圭尙)은 1894(고종 31) 5월 21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당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규상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에 걸쳐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된데 자극받은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현언동(玄彦東)과 졸업생 김사현(金士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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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림(李秉霖) 1889년(고종 26) 6월 4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기한(李綺漢) 등과 함께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일대에서 8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1919년 4월 1일 정오 무렵 이병림과 시위군중은 인근의 광정리(廣亭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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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억(李秉億)은 1919년 4월 1일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이기한(李綺漢)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병억은 시위군중 800여 명을 이끌고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石松里)에서 출발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 지역까지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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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이상구(李相龜)는 1859년(철종 10) 3월 16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664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 체결에 격분하여 김복한(金福漢)·안병찬(安炳瓚) 등이 주도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고, 1906년(고종 43) 2차 홍주 의거를 계획하고 문석환(文奭煥)과 더불어 종사(從事)로서 종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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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현(李升鉉)은 1878년 10월 4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날 천도교인(天道敎人) 황병주(黃秉周)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에 유구 장터에 모인 군중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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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이원선(李元善)은 1877년(고종 14)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08년(순종 2) 11월 23일 전라남도에서 일본에 대항하여 일어난 조경환(曺京煥) 의진(義陣)의 우익장(右翼將)이 되어 총 70여 정을 휴대한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남도 영광(靈光)·함평(咸平)·나주(羅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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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은 1899년(고종 36)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진리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1911년 독립운동을 펴기 위해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그 후 길림성(吉林省)에서 주진수(朱鎭洙)·손일민(孫一民)·우재룡(禹在龍) 등이 조직한 광복회(光復會)에 참여하였다. 1917년 군자금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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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의병. 임대수(林大洙)는 1882년(고종 19) 2월 12일 현재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당리에서 출생하였다. 임대수는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나서 쇠퇴하여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충청남도 일대에서 의거의 기치를 올려 19개 군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순종 1) 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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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진(丁洛鎭)은 1925년 5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송원리 683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 동경철도학교 재학 중인 1941년 12월에 항일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정낙진은 우리조선독립그룹의 주도역할을 맡았던 현창석(玄昌碩) 등과 함께 여러 차례 모여 독립의식을 길렀다. 정낙진과 우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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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정한명(鄭漢明) 1892년(고종 29)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선대로부터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이다. 정한명은 1930년 말 기준으로 76㏊의 전(田), 39㏊의 답(畓) 등 16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한명은 다른 공주 지역의 대지주들과 함께 남선제사에 자본을 투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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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조병옥(趙炳玉)은 1894년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를 거쳐 1911년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였다. 1914년 연희전문(延禧專門)을 졸업하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1918년 펜실베이니아주 킹스턴의 와이오밍 고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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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천영관은 1919년 4월 14일 현재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8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교생인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한석(金漢奭)·김용갑(金溶甲)·구자훈(具滋勳)·최낙권(崔洛權)·김해인(金海仁)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 천영관과 명랑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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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낙권(崔洛權) 1923년에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6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교생인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한석(金漢奭)·김용갑(金溶甲)·김해인(金海仁)·구자훈(具滋勳)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하였다. 최낙권과 명랑클럽 회원들은 일본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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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태식(崔泰植)은 1900년(고종 37) 7월 4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내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최태식은 1919년 4월 1일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石松里)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약 6㎞ 길을 행진하였다. 그 후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내촌리를 거쳐 정안면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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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현석칠(玄錫七)은 1880년(고종 17) 1월 23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중순경 한성임시정부 수립운동에 기독교 대표로 참가하여 국민대회의 간부를 맡아 운동자금을 제공하고 격문(檄文)을 인쇄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현석칠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에 걸쳐 충청남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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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창석(玄昌碩)은 1922년 10월 28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경 전수대학 재학 중인 1940년 9월에 박인석(朴寅錫)·채용석(蔡用錫) 등과 함께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뜻을 모으고, 전수대학 내 동급생인 정종락(鄭鍾樂)·김원식(金源植)·권오황(權五煌)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1941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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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홍원표(洪元杓)는 1904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0년 26세의 나이로 할아버지 홍종협(洪鍾夾)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홍원표는 1930년 상속 당시 소작인 2천 명의 소작료 1천 석과 채권 3만 원을 탕감해 주는 자선사업으로 공주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홍원표는 27㏊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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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병주(黃秉周)는 1884년(고종 21) 11월 2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천도교 신자인 황병주는 1919년 3월에 교주인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체포된 사실을 알았으며, 고향인 공주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의 충청남도 공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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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연성(黃璉性)은 1876년(고종 12) 8월 28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백교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유구 장날 벌어진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황연성은 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시위를 주도했던 황병주(黃秉周)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자 황병주를 구출하기 위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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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교육자. 황인식(黃寅植) 1889년(고종 26) 12월 23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1909년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제1회로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1912년 6월 모교인 영명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21년에는 영명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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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타관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12일 공주읍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려다가 일본 경찰의 탄압에 의해 저지당한데 이어, 유구 장날인 1919년 3월 14일에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4월 1일 정안면 지역에서는 유림인 이기한(李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