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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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明一 |
영어음역 | No Myeongil |
이칭/별칭 | 사국,의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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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925년 |
몰년 | 1953년 |
본관 | 안강 |
대표관직 | 한국독립운동당 부총재 및 대변인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사국(士國), 호는 의산(義山). 아버지는 노원엽(盧元燁)이며,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로 김철묵(金哲黙)의 딸이다.
[활동사항]
노명일(盧明一)은 대구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 조선기계제작소에 취직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도를 더해가자 임상빈(任相彬)·박태일(朴泰一)·이도열(李道烈) 등과 함께 조선독립궐기를 내용으로 하는 문예지 『목양(牧羊)』을 제작·배포하며 항일운동을 펼쳤다. 1944년 7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944년 8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이후 1953년 부산에서 한국독립운동당 부총재 및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같은 해 6월 13일 반대 세력에게 살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이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