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가학정(駕鶴亭)은 죽산박씨 중시조인 죽림(竹林) 박경(朴璟)이 임진왜란 후 용진산에 세운 정자이다. 1935년에는 박경의 후손 박동춘이 가학정을 재건하였는데, 당시에는 가학정 중건에 관한 사연과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염제(念齋) 송태회(宋泰會)[1872~1941]의 대서현판과 박동춘(朴東春)의 시, 노탄(老灘) 송규헌(宋奎憲)의...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지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 정지(鄭地)[1347~1391]는 고려 말엽의 무장으로 수군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여 수군을 쇄신하였다. 1377년(우왕 3년) 순천도병마사로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으며, 그 공으로 해도대원수·문하평리가 되었다.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경렬공정지장군사적비는 정지 장군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1980년...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 정지장군 사당. 경열사는 고려 말 무신 정지(鄭地)[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정지장군예장석묘'라는 명칭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 경내에 있는 유허비. 정지(鄭地)를 배향한 경열사(景烈祠)의 유허비다. 정지는 고려 후기 문하평리(門下評理),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節制體察使)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정지를 배향하였는데, 뒤에 7인을 추배(追配)하면서 팔현사(八賢祠)로도 불렀다. 추배된 7인은 유사(柳泗), 고중영(高仲英), 전상...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박재룡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재룡(朴載龍)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박재룡은 본관이 함양(咸陽)이다. 지산마을 서쪽 산골짝에 논 수만 정보가 말라 있는 땅이었는데, 최홍진(崔鴻鎭)의 주선으로 양과제(良苽堤)를 쌓는 일에 함께 힘을 보탰다. 1967년 겨울 관청 지원금을 교섭하여 범위를 넓히고 두어 길의 땅을 파서 둑을 쌓았다...
-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 있는 김정수의 유허비. 김정수(金鼎洙)[1887~1936]의 유허에 세운 비이다. 최윤환(崔允煥)이 글을 지어 1973년에 세웠다. 김정수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현(永賢), 호는 계남(桂南)이다 고광선(高光善)의 문인으로 이름난 효자였고, 땅을 주어 농민들의 기근을 줄여주고 병자들을 구제하였다. 1932년 관호정(觀湖亭)을 지어 문인들과...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은 불교문화유산, 역사인물유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불교문화유산은 불탑, 승탑, 석조 존상, 목조 존상, 석비, 석등 등이 포함된다. 역사인물유산은 무구류, 묘소 등을 들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에 있는 광람계 기적비. 광람계(光藍契)는 1918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면장 범재풍(范在豊)이 우치면과 본촌면 일대 주민 61명으로 계원을 삼아 창계하였다. 광람계라는 명칭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도 중국 남전여씨(藍田呂氏) 향약(鄕約)의 전범에 따른 유교적 이상향을 건설해 보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계원의 거주지는...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모두 26점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는 1점,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12점으로 유형문화재 3점, 무형문화재 2종목, 기념물 6점, 민속문화재 1점이다. 문화재자료는 11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1점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만산마을에 있는 김정복, 김정열 형제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 1922년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정복(金廷福)·김정열(金廷烈) 형제의 효행를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세웠다. 김정복과 김정열은 김계문(金啓文)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산군 유등곡면 향등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살았다.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의 병세가 위독하자 큰아들 김정복과 둘째아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광주목사, 관찰사, 찰방 등의 선정비군. 광주공원 선정비에는 주로 전라도 광주의 수령(守令)이었던 광주목사, 군수의 비가 있으며, 관찰사, 도지사들의 비도 있다. 그 외 유학자 안규용, 어사 조헌과 여규익, 소수의 찰방(察訪) 선정비가 있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근현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은 역사유산, 주거유산, 기록유산, 민속유산, 업무시설, 교육시설, 종교시설, 현대유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금곡마을에 있는 선돌. 금곡동 금곡마을 선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서 동쪽으로 약 100m에 있는 삼괴정(三愧亭) 바로 앞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배재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배재마을은 충장사(忠壯祠) 옆에 있던 마을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옛 화암마을에서 금곡동 배재마을로 넘어가는 무등산 자락에 있는 고개 이름이 이치(梨峙)이다. 이것이 우리말로는 배재이고, 마을 이름도 고개 이름에서 유래한다. 금곡동 배재마을 선돌은 배재마을에 있는 1기의 선돌이다. 마을의 액막이를 하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정자. 금은당(錦隱堂)은 일제 강점기에 송철호가 세웠으며, 정자의 이름 금은(錦隱)에서 금(錦)은 나주의 옛 지명이고 은(隱)은 은거의 뜻이다. 이 지역이 옛날 나주에 속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김덕령 장군의 회곽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회곽묘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배재마을 뒷산에 있었으며, 1974년 11월 19일 충장사(忠壯祠) 북쪽 구릉 지대로 이장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효자 김창환의 유허비. 김창환(金昌煥)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유허비(遺墟碑)이다. 김창환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관직은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조봉대부(行朝奉大夫)를 역임하고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증직(贈職)되었다. 기우만(奇宇萬)이 명(銘)을 짓고 오준선(吳駿善)이 찬(撰)하였다. 이중권(李重權)이 글을 짓고, 이재춘(李載春)이 글씨를 썼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1570년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신룡동 신촌마을에 학문의 공간으로서 초당을 세웠는데, 조선 후기에 후손 낙암(樂庵) 기정룡(奇挺龍)[1670~1738]이 기대승을 기리며 초당을 몇 차례 중수하였고 더 이상 중수가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그 후 정자가 퇴락하자 1919년에 기정룡의 후손...
-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도촌마을에 있는 윤의순의 효행비. 윤의순(尹義順)은 조선 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윤효손(尹孝孫) 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윤병철(尹秉哲)이다. 타고난 자품이 순박 온후하고 자상하였다. 전라남도 광산군 대촌면 도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삭녕최씨(朔寧崔氏) 최성한(崔成漢)에게 출가하였다. 윤의순은 시댁에서 남다른 부덕(婦德)을...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내남동 주남 고인돌은 주남마을 입구인 평강채씨 선산 아래쪽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내산동 망월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 망월마을 뒤편 구릉 지대에 있고, 나군은 내산동 망월 고인돌에서 남서쪽으로 100여m 떨어진 구릉 사면에 있으며, 다군은 내산동 망월 고인돌에서 동쪽으로 100여m 떨어진 밭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내산동 망월마을 고인돌은 마을 북동쪽에 형성된 구릉지에 있으며, 이곳 지형은 높이 55m의 북서향하는 구릉 정상부에 해당한다. 북서쪽으로 인접하여 몽심헌 김홍련의 비가 있다. 고인돌 일대는 높은 산지 사이에 저평한 구릉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 끝자락 여러 개소에 고인돌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었던 쌍내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1기의 선돌이 유실되어 3기가 남아 있다. 쌍내마을 사람들은 선돌이 마을에 들어오는 질병과 액을 방비해 준다고 믿어 선돌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사는 없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구암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노대동 고인돌은 광주대학교에서 노대동 노대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남쪽의 논 가운데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654-2번지에 해당한다. 노대동 고인돌은 구릉 말단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노대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과 취락 집단. 노대동 구암마을 고인돌군은 1990년 조사 당시 효덕동 구암마을 고인돌군으로 보고되었으며, 15번 시내버스 종점인 함안윤씨 제각(祭閣) 앞에 있었다. 1996년 조사 당시 행암동이 행정 구역상 기존 서구에서 남구로 변경되면서, 고인돌 명칭 또한 행암동 구암고인돌군으로 바뀌었다. 2004년 조사 당시에는 고인돌군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희달의 신도비. 류희달(柳希達)[1571~1631]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덕림사(德林祠)에 배향되었다. 신도비(神道碑)가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 장본면 지역이었고, 1906년 함평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나주군으로 다시 편입되어 본량면 동호리라 하였다. 1949년...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산동(大山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야리(大也里)의 '대'와 가산리(佳山里)의 '산'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가산 고인돌군은 가산마을 남쪽 논 가운데에 인접한 야트막한 구릉 아래 평지에 있고, 대산동 가산 고인돌 나는 가산 고인돌군 맞은편 산사면 밭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대산동 대야 고인돌 가군은 대야마을 구릉 지대에 있고, 나군은 진주정씨 민묘가 조성되어 있는 노송으로 둘러쌓인 구릉 정상부에 있다. 다군은 대야마을에서 남쪽으로 300여m 떨어진 한빛노인전문요양원 서쪽 논에 있으며, 라군은 대야마을 북쪽 구릉 정상부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고분. 대산동 우치고분은 대야마을 뒤쪽에 있는 진주정씨 문중 선산에 있다. 고분이 있는 지점은 높이 85m 부근의 구릉 사면부이며, 서쪽으로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 인접하여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덕림동(德林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덕산리(德山里)와 을림리(乙林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덕림동 을림 고인돌은 을림마을 남서쪽에 형성된 구릉지에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을림마을 78-1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 동쪽으로 560m 지점에는 평림천이 흐르며, 일대에 구릉지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 말단부에는 여러 고인돌군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옛 도촌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도금동 도촌마을 선돌은 2기가 있다. 선돌 2기는 모두 마을 앞 논에 있으며, 경지 정리를 하면서 기단을 만들어 다시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선돌을 '선바우', '삼두창 입석'으로 부른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도덕동 상지 고인돌군은 1990년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현재까지 변함없이 고인돌 3기가 유지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림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동림동 원동마을 고인돌이 분포한 원동마을은 영산강 지류인 평림천변에 있다. 마을 동쪽은 평림천 유역 충적평지를 마주하고 있고, 서쪽은 높이 100~200m의 산과 얕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동호동(東湖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장본면(獐本面)의 동촌리(東村里)와 용호리(龍湖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은 나주오씨 선산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299-1번지, 산22-2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이 있는 곳은 감도산 서쪽 사면 말단부로서 높이 30m 내외의 지역이다.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 서쪽 부근으로 평림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넓은 충적지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평택임씨 사우. 등림사는 조선 명종대 문신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1514~1547]를 주벽으로 송파(松坡) 임식(林植)[1539~1589], 관해(觀海) 임회(林檜)[?~1624]를 제향하고 있는 평택임씨의 사우이다. 임형수는 나주 송월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북병사를 지낸 임준(林畯)이다. 1531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망월동 분토마을 고인돌군은 광주동초등학교 북쪽의 논과 밭, 민묘(民墓) 주변에 7기가 있다. 고인돌군 동서쪽으로 구릉이 형성되어 있고, 고인돌군은 그 가운데 계곡부 평지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개산 고인돌 가군은 2004년 조사 당시 계곡 평지에서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논둑에 2열로 6기가 분포하였으며, 나군은 개산마을 남쪽의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3기가 있다고 기록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매월동 화산 고인돌군은 화산마을 서북쪽의 영식재(永武齋) 앞에 있다. 이곳은 개금산 서북쪽 끝자락으로 앞에는 곡간을 따라 좁은 충적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매월농원’이란 식당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을 따라 고인돌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무양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耽津崔氏) 문중이 최씨와 관련된 분들을 제향하기 위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서 세운 서원이다. 배향된 인물은 고려 인종 때 어의이면서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崔思全)을 중심으로 최사전과 관련된 후손 4명, 손암 최윤덕(崔允德), 금남 최부(崔溥), 문절공 유희춘(柳希春), 충열공 최덕현을 제향하고 있다...
-
고려 전기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자리한 탐진최씨 문중이 세운 서원. 무양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들의 호응을 얻어 고려 인종대 인물인 최사전(崔思全)[1067~1139]을 주벽으로 최사전의 후손인 금남(錦南) 최부(崔溥)[1454~1504]와 손암(孫菴) 최윤덕(崔允德), 문절공 유희춘(柳希春)[1513~1577], 충렬공 나덕현(羅德憲)[1573~1640]을 배향...
-
광주광역시 남구 구소동에 있는 1951년에 건립된 정자. 무학정(舞鶴亭)은 일명 불로당(不老堂)이라고도 하며, 1951년 유영강학을 목적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구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소동] 마을의 노인 최창규, 김용복, 최진평, 김칠계, 유설강 등 9명이 출자하여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눌재 박상의 신도비.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은 1501년(연산군 7)에 문과에 입격하였고, 중종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학행이 뛰어나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문간박선생눌재신도비명은1859년(철종 10)에 조선 전기 문신인 박상의 묘소 입구에 세운 신도비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벽진동 마산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마산마을 고갯마루 구릉 지대인 서산정공지여(瑞山鄭公之閭) 옆에 2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에 있는 벽진사를 의열사 사액 시 사제문을 새긴 현판. 벽진서원 사제문은 전라도 광주 벽진사(碧津祠)를 의열사(義烈祠)로 사액(祠額)하면서 1681년(숙종 7) 4월 24일에 숙종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으로, 강당인 숭본당(崇本堂)에 있다. 벽진서원 사제문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지었는데 사제문의 연호와 간지 연월일의...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병천사(秉天祠)는 1924년 광주의 부호였던 붕남(鵬南) 지응현(池應鉉)과 광주 유지들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극복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하려는 취지에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의재(毅齋) 지용기(池湧奇),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 철산(鐵山) 지여해(池汝海), 표곡(豹谷) 지계최(池繼崔)를 제향하기 위하여 1924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생용동 생용마을에 있는 복룡사 유허비. 복룡사(伏龍祠)는 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한 곳이다. 범세동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1369년(고려 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의 묘정비. 봉산사묘정비는 봉산사의 묘정(廟庭)에 세운 비이다. 봉산사는 현와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시는 사우(寺宇)이며, 봉산사묘정비에는 봉산사의 건립 취지와 고광선의 공적, 추숭(追崇) 내용이 새겨져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재실. 봉산재는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박상은 1473년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태어나 1501년부터 1529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시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에 유배되었으며, 『눌재집(訥齋集)』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다. 봉...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봉산재는 평택임씨 재실로 과거 탑동부락이라 불리운 광산구에 자리하고 있다. 평택임씨는 경기도 평택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이다. 봉산재에는 누가 배향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북구에는 모두 54점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는 17점이다.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는 26점으로 유형문화재 10점, 무형문화재 4점, 기념물 7점, 민속문화재 5점이다. 문화재자료는 5점이다. 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재 6점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1978년에 건립된 정자. 불리정(不離亭)은 1978년 전라남도 광산군 삼도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야(道也)마을에 정복규(鄭福圭)가 건립한 육각형으로 된 조그마한 정자이다. 조선 단종 때에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던 진주정씨(晋州鄭氏) 정분(鄭苯)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불환정(不換亭)의 ‘불환(不換)’은 “아름다운 강산을 삼공[고려시대의 세 벼슬을 이르던 말. 태위·사도·사공이 있고 조선시대 삼정승과 같은 뜻]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의 ‘삼공불환비강산(三公不換比江山)’이라는 고시(古詩)에서 비롯되었다. 상량문에 ‘승정기원후삼신묘(崇禎紀元後三辛卯)’라는 기록이 있어 1771년(영조 47)에 건...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각종 비석. 광주광역시 관내의 비는 『광주의 문화유적』에는 신도비 9기, 유허비 18기, 효열비 45기, 기타비 44기 등 116기가 조사된 바 있고,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에는 모두 539기가 조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재각. 사경재는 김해김씨 문중 재각으로 광복 이후 재건되었으나 제향 인물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사경재는 평택임씨 사경재 종중의 재실로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다. 사경재 종중은 만죽 임득지를 중시조로 하며, 임득지가 사화와 난을 피하여 광주광역시 광산구 외등마을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사경재가 있는 산이 평택임씨 세장산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산수동 용산마을 고인돌군은 용산마을 뒤편 김준태의 밭에 있다. 고인돌군이 있는 지점은 높이 36m로 구릉 정상부에 해당하며, 이 구릉 일대에는 구석기 시대~삼국 시대에 해당되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고인돌군 동쪽으로 670m 부근에 황룡강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저평한 구릉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산수동(山水洞)은 1914년 행정구역을 신설하며 함평군(咸平郡) 여황면(艅艎面)의 용산리(龍山里)와 용수리(龍水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삼거동(三巨洞)의 명칭은 세 갈림길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삼거동 삼암 고인돌군은 삼암마을 동쪽과 서쪽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114, 143, 624-3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이 있는 지형은 높이 30m에 해당하는 구릉 말단부로 곡간부와 인접한 곳이다. 고인돌 동쪽으로 평림천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저평한 구릉지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삼암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삼거동 삼암마을 고인돌은 가·나 2개군으로 구분된다. 가군은 삼암마을 동쪽에 형성된 높이 27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고, 나군은 삼암마을 서쪽 김종성 묘역이 있는 높이 30~40m에 해당되는 구릉 말단부에 있다. 삼암마을 고인돌 가·나군은 독립된 구릉 남쪽 말단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600m 지점에 평림천이 흐르고 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삼거동고인돌군은 평택임씨 선산의 구릉 남쪽 사면부에 있으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산50, 51, 51-1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고인돌이 있는 곳의 지형은 높이 70m 내외의 구릉 사면부이며, 이 일대에는 높이 80m 이상의 산지와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는 1963년에 건립된 정자.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 내에 있는 삼산정사(三山精舍)는 1963년 건립되었으며, 세운 사람은 미상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태령동에 있는 삼상위친계의 기적비. 삼상위친계(三相爲親契)는 광주성(光州城) 북쪽 서산(西山)의 서쪽 니상산(尼上山) 아래 사는 주민들이 상부상조를 위하여 결성한 계이다. 주민들이 곗돈을 모아서 전토를 사들이고 운영하면서 매년 봄 3월에 강신(講信)[여러 사람이 모여 약법(約法)이나 계를 맺는 것]을 하고, 난정수계(蘭亭修稧) 고사(故事)를 본 떠 시회(詩會)를 개...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룡마을 뒤편 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옛 성터. 생용동 성터는 후백제 시기[892~936년]에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성곽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생용동 성터는 '우치산성지(牛峙山城址)'라고 불리며 1894년(고종 31) 당시 국내외 정세에 대비한 피란처로 생룡마을의 범경준, 범윤길, 범윤기 등이 축조하였다. 길이...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 사우. 서강사는 고려 태사공 윤신달(尹莘達)을 주벽으로 하고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暾),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윤신달은 고려 초의 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이 되었으며, 파평윤씨의 세계에는 시조로 되어 있다. 윤관은 고려시대 명장으로 여진을 정벌하는 전쟁에서 동북에 9성을...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서강사에 있는 묘정비. 서강사(瑞岡祠)는 고려시대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주벽(主壁)으로 하고,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東北九城)을 개척한 영평현개국백(鈴平縣開國伯) 윤관(尹瓘), 호부상서(戶部尙書) 윤언이(尹彦頤),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 함안백(咸安伯) 윤돈(尹暾), 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하는 사우(祠...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서봉동 강골마을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강골마을 구릉 지대에 분포하였다. 이 지역 주변에 월성장서루(月城藏書樓) 터가 있으며, 강 건너 지평동 용강골 고인돌군과 마주 보고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서창동 불암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불암마을에서 남동쪽으로 400여m 떨어진 곡간 평지 서쪽 산 사면 과수원 안에 2기가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3기의 비석. 서창동 비석군(西倉洞碑石群)은 농선대시주비(農船大施主碑) 1기와 시혜비(施惠碑) 2기로 이루어져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상기의 성묘를 보위한 공을 기려 세운 비. 김상기(金相基)는 본관이 김해(金海)이고, 호는 석서(石西)이다. 김용후(金容厚)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우동면 노대[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세거한 집안이다. 기우만(奇宇萬), 고광선(高光善)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김상기(金相基)가 향교 장의(掌議)로 있으면서 대성전(大成殿) 성묘의...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석정동 내동마을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서 내동과 정착촌으로 가는 도로변 대나무숲 옆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석정마을 뒤편 밭과 구릉지에 4기가 있으며, 예전 7기의 고인돌이 있던 마을 앞에는 덮개돌만 쌓여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석정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석정동 정착촌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송학산 남단 구릉지 대촌-서창 간 도로변 우측에 분포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선교동 교동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 교동마을 너릿재 구릉 하단부에 2기가 있었다....
-
광주광역시에서 마을 공간을 표시하기 위해 돌로 세운 인공물. 선돌은 인간이 일정 공간에 인위적으로 세운 돌로 만든 조형물이다. 많은 선돌이 마을 공간을 표시하는 기능으로서 세워져 있으며, 현재에도 세워지고 있다. 선돌은 인간이 일정 공간을 점유해서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아가겠다는 표시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정 공간을 상상적으로 설정하고, 상상적 공간을 실체적 공간으로 확정하는 과정에...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최홍진의 공을 기려 세운 공적비. 최홍진(崔鴻鎭)이 1941년 연간에 건천(乾川) 상류에 양과제(良苽堤) 저수지를 축조한 공적을 기려 세운 공적비이다. 1941년에 가뭄이 심했는데 최홍진이 앞장서서 민생을 좀먹는 사람들을 배격하고, 마을 부로의 명을 이어 당국과 교섭하여 몇 달 안에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송산동(松山洞)의 지명은 송동리(松洞里)와 죽산리(竹山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죽산(竹山)마을의 이름은 마을에 대나무가 많았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었던 세동마을에 있는 선돌.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을 제각 옆에 1기만 남아 있다.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전라도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세동마을에 높은 벼슬을 한 금향군이 살아서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선돌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옛 죽산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송산동 죽산마을 선돌은 마을회관 양쪽에 2기가 서 있다. 왼쪽 선돌은 암돌 또는 여자 선돌, 오른쪽 선돌은 숫돌 또는 남자 선돌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돌은 기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남자 선돌은 도로 포장을 하면서 기단이 아스팔트에 묻혀 버렸다. 여자 선돌은 본래 주차장 쪽에 있었는데,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회관 왼쪽으로...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1964년에 이건한 정자. 장현규(張賢圭)가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 삼도리에서 초당을 짓고 지내다 사후 1868년(고종 5)에 장현규의 뜻을 기려 정자를 지었으나 퇴락하자 1955년 그 터에 중건하였다. 지금의 송음정(松陰亭)은 장현규의 증손 장동택(張東澤)이 나주에 있었던 것을 회룡마을로 1964년에 옮겨 중수한 것이다. 흥성장씨(興城張氏) 문중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 금치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선돌은 비보신앙(补救信仰)[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실한 곳으로 바꾸려고 하는 방법]에 따라 세워진 돌을 말한다. 송치동 금치마을 선돌은 총 3기가 있다. 2기의 선돌은 마을 입구 맞은편 길가에 있으며, 나머지 1기는 마을 안쪽에 있다. 과거에 경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돌을 눕혀 놓았...
-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 노대마을에 있는 김경두와 밀양박씨의 효열비. 김경두(金炅斗)[1812~?]와 김경두의 아내 밀양박씨(密陽朴氏)[1811~1840]의 효열 행적비이다. 김경두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중집(中集)이다. 호적상 아버지는 김창섭(金昌燮), 생부는 통정대부 김창익(金昌益)이다. 효심으로 양부모를 봉양하였고, 병환이 들자 손가락 피를 흘려 환을 지어 먹게 할...
-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입하마을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송하동 입하마을 고인돌은 송암일반산업단지에서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운과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도로 우측 구릉 지대에 있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송학동(松鶴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송계리(松溪里)와 봉학리(奉鶴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의 옛 봉학마을에 있는 선돌. 봉학마을에는 3기의 선돌이 있었으나 마을 경지 정리를 하면서 2기는 매몰되어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선독'이라 부르며,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액막이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봉학마을에는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와 '해등[바다등]', '황개들'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마을에는 지역 전승 민요로 「...
-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水原白氏忠孝旌閭閣)은 충신 백홍암(白弘嵒)과 효자 백찬수(白讚洙)[1822~1858]의 충효 정신을 기려 세웠다.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勃)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나아갔다. 돌아와서는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했는데 범이 늘 호위하였다 하여 호계라는...
-
광주광역시에 있는 일정 관품 이상 관리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비석.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묘소 앞이나 묘소로 가는 입구에 세운 묘도문자(墓道文字)의 하나로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보통 묘소의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묘소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가까운 곳에 세우기도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신동(新洞)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을 신설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에 있는 선돌. 1840년경 전라도 나주에 살던 선령남씨(宣寧南氏)가 서복마을로 이주해 평산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선령남씨가 들어오면서 마을 지형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국이라 하여 '태굴'이라고 부르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복으로 개칭되었다. 서복마을 입구에는 선돌 1기가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선돌에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신흥마을 일대에서 확인된 기왓가마터.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본량초등학교에서 신흥마을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분무골이라는 계곡이 나오는데, 계곡 주변에 형성된 작은 야산의 구릉지대에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압촌동 압촌마을 고인돌군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장흥고씨 문중 산 사면, 송학산 남동쪽 고갯마루 도로변, 송학산과 제봉산 사이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소로변 등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양동 월암마을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 양산김씨 선산 구릉 하단에 2기가 분포한다. 지형상 마을 앞 농경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며, 주변에는 민묘(民墓)가 산재하고 소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양동(良洞)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어 그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양동은 조선 후기 나주목(羅州牧) 도림면(道林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군 도림면 마암리(馬岩里), 복만리(卜萬里), 월전리(月田里), 석암리(石岩里)와 함평군(咸平郡) 갈동면(葛洞面) 내기리(內基里), 월악면(月岳面...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조선시대 묘역. 양송천묘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명한 문장가인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과 양응정 자손의 묘역이다. 1978년 9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고, 제주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양심당 이시원의 유허비. 이시원(李始元)[1410~1471]의 호는 양심당(養心堂)이며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의 큰아들로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냈다. 아버지의 시묘살이를 마친 뒤 양심당을 지어 강학하였다. 양심당이선생유허비는 1957년 이시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허비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정락교의 구휼 정신을 기린 비. 양파(楊波) 정락교(鄭洛敎)[1863~1938]의 주민 구제활동을 기려 광산군 석곡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소작인들이 세운 비이다. 정락교는 온양정씨(溫陽鄭氏)로 참봉(參奉)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석서정(石犀亭)의 옛터에 양파정(楊波亭)을 건립하여 광주부[지금의 광주광역시]에 기증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린 비. 1974년 열부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1971년에 건립된 정자. 영원정(永源亭)은 구한말 학자로써 광주노씨(光州盧氏) 문중의 화합을 위해 애썼던 노문영(盧文永)의 노년을 위해 광주노씨 문중에서 23인이 발의하여 자금을 모아 건립한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었던 기곡마을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던 선돌. 기곡마을 우산각 옆에 1기의 선돌이 있는데, 예로부터 전해지는 특별한 명칭은 없다. 기곡마을은 마을 형국이 키[箕]와 비슷하다고 하여 '치실'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기곡(己谷), 이후에는 기곡(箕谷)으로 표기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 일대의 복룡현 관아지로 추정되는 유적 터. 용곡동 복룡현 관아지는 광주광역시 용곡동 기곡마을과 용곡마을 사이에 있는데 평동 저수지와 직선거리로 770m 떨어져 있다. 발견 당시에는 홍태희의 가옥 좌측의 논과 광산김씨 선산이 있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신룡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용두동 신룡마을 선돌 2기는 각각 할아버지 선돌, 할머니 선돌로 불린다. 하지만 할아버지 선돌과 할머니 선돌에 대한 명확한 구별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선돌이 마을로 들어오는 질병과 액을 막아 준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용두동지석묘는 학동마을 동쪽에 있는 삼각산 서쪽 사면 말단부에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며, 행정 구역상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25번지에 해당한다. 고인돌군에서 서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영산강이 흐르며, 이 일대에는 여러 개소의 고인돌이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는 성터. 운림동 성터는 무등산의 줄기인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광주전남교구 종무원 소속 사찰. 운천사(雲泉寺)는 마애불(磨崖佛)이 먼저 자리 잡고 그 이후에 사찰이 들어선 경우이다. 원효대사(元曉大師) 가 무등산 원효사(元曉寺)에 머물던 어느 날,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가 가득함을 보고 제자 보광화상을 그곳에 보냈더니 뜻밖에 큰 바위에서 빛이 솟아 나오므로 그곳에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을 새겼...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원산동 돌덧널무덤은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산64번지에 해당하며, 임암동과 원산동 경계 지점인 높이 65m의 야산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원산재는 광산김씨의 재실로 배향 인물은 알려지지 않았다.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삼남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한국의 대표 가문 중 하나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원풍정은 1817년부터 초당으로 있던 것을 1912년에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1836~1920]가 건립하였으며, 1913년 풍수해로 무너진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노재규는 을사조약 체결 후에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면서 스승인 연재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대마도 유배 후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일곡...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녹동마을은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로 우측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분적산(粉積山)[높이 414.6m]의 동쪽 기슭에 있었던 마을이다.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마을 은행나무 바로 옆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와 선돌을 함께 할머니 당산으로 모셨다. 녹동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서원.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대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8년 임진왜란의 피해로 망월봉(望月峰) 밑 동천(桐川)으로 이건하였다가 1646년(인...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전동에 있었던 원두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원두마을[탑머리 또는 탑등]은 송정교에서 임곡동 간 철로변에 있었던 마을이다. 원두마을에는 여러 개의 돌을 쌓아올린 조탑(造塔) 형태의 선돌이 있었는데, 마을 경지 정리 때문에 선돌을 이전하면서 선돌의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원두마을에서는 선돌을 '처녀바우'라고 하여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 여겼던 것으로...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열비. 유인(孺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유인 행주기씨의 효열비. 행주기씨(幸州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행주기씨는 기권중(奇權仲)의 딸로, 장흥고씨(長興髙氏) 고경주(高庚柱)와 혼인하여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를 하였고 남편을 섬겼다. 고광은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건립 추진위원장은 박하만, 부위원장은 기세은이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읍취정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挹翠) 이방필(李邦弼)[?~1592]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오치동 구릉 위에 반송(盤松)이 있어 ‘읍취’라 하였으며 이에 대한 기록은 노사 기정진의 『읍취정기(挹翠亭記)』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정명을 지었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 이방필을 기리며 169...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읍향정(挹香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에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고원희가옥(高元熙家屋) 입구에 고영문(高永文)이 1930년에 지은 정자이다. 당시의 정자 주인 고영문이 지은 시를 보면 "내가 지은 이 띠집이 적으면서 고요하니 / 연꽃 피는 가을풍경 이곳에서 즐겼도다… 책을 들고 공부하니 가난함도...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 있는 의병장 심남일의 순절비. 대한제국기 의병장 심남일(沈南一)[1871~1910]의 본명은 수택(守澤), 호는 덕홍(德弘), 본관은 청송(靑松),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장흥, 영암. 해남, 보성, 남평, 능주, 나주 등지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능주 풍치(風峙)[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창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김세근의 묘. 의병장김세근묘에는 김세근(金世斤)[1550~1592]의 주검이 없으며, 김세근을 따라 자결한 부인 청주한씨가 합장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인 이택당은 1927년 탐진최씨가 세운 건물로 무양서원의 강당 역할을 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에 있었던 입석마을에 있는 1기의 선돌. 입석마을은 황룡강(黃龍江) 가장자리에 있었던 마을이다. 입석마을입석은 마을 주민의 주택 마당에 있다. 입석마을이라는 이름도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오씨 재실. 장사재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나주오씨의 재실이다. 나주오씨는 일설에 의하면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를 이루었다고 하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나주오씨는 나주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이후 오언 묘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본량동, 평동 지역에 거...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에 있는 전부일 장군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전부일(全富一)[1924~2004]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정길(丁吉), 호는 서봉(瑞峰)이다. 전방은(全邦殷)의 셋째아들로 임암마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입대하여 중국 만주(滿洲)에서 복무 중 부친상 비보를 들었지만 올 수가 없어서 땅을 치고 하늘을 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광복 뒤에는...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 장군의 무덤. 전상의(全尙毅)[1575~1627] 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박태용의 시혜불망비와 유적비. 박태용(朴台鏞)[1869~1941]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빈(聖彬)이다. 아버지는 박정보,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이다. 1893년(고종 30)에 덕행으로 온릉참봉(溫陵陵參)에 천거되었고, 1897년(고종 34)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에 있는 1950년대에 건립된 정자. 정각정(政閣亭)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길신(李吉信)이 아버지 이장섭(李章燮)의 뜻을 잇기 위해 1959년 전라남도 광주시 수곡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수곡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에 있는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정려비(旌閭碑)는 충효열(忠孝烈)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을 표창하는 비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정지 장군의 무덤.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에서 북서쪽으로 400m 지점에 경열사가 있으며, 정지(鄭地)[1347~1391] 장군 묘소는 경열사에서 북쪽으로 42m 지점에 조성되었다....
-
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인 광주향교의 연혁과 현황. 광주향교는 조선시대 광주목에 설치한 공립 교육기관이다.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화유산. 광주광역시 관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은 유교유산, 불교유산, 역사유산, 인물유산, 도자유산, 기록유산, 민속유산, 자연유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천서씨 재실. 존숙재는 이천서씨 문중의 재실로 1940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존숙재는 연동마을의 재각집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정집을 겸하고 있는 재실이다. 어떤 인물이 배향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림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종산재는 광산김씨 재실이다. 광산김씨는 광주광역시 광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라 신무왕의 아들 흥광공이다. 광산김씨는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3세손 김길(金佶)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대광(大匡)에 오른 김정(金鼎)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죽산박씨(竹山朴氏)의 중시조(中始祖) 박경(朴景)이 용진산 북쪽 산허리에 세운 정자인 가학정(駕鶴亭)과 성성재(惺惺齋)의 퇴락을 안타까워한 후손 박동춘(朴東春)이 자신의 집 뒷산 죽림골에 정자를 짓고, 박경의 시호[죽림처사(竹林處士)]를 따라 죽림정(竹林亭)이라 이름을 붙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초당. 죽파재(竹坡齋)는 조선 후기 문용현(文龍鉉)이 건립하고 강학 활동을 펼친 곳으로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중의 소유이다. 문용현은 5대조 문필상(文弼尙)이 '수헌(水軒)'이라는 초당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던 뜻을 이어 죽파재를 지었다. 문용현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글로 이름을 떨쳤...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최명구의 기념비. 죽헌최명구 기념비(竹軒崔命龜紀念碑)는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죽헌농계원(竹軒農契員) 일동이 최명구의 공적을 기려 세웠다. 우치면은 1931년까지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지야동[건국동 관할] 일원에 있었던 면 이름이다. 1931년 4월 1일 우치면과 본촌면을 합해 지산면이라 하였다. 1935년 광주군을 광산군으로 개칭하여 광산군 지산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지죽동 매화 고인돌군은 평동일반산업단지 북쪽 끝부분인 영천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는 소로를 따라 가면 ‘은혜와평강교회’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곳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법정동. 지평동(芝坪洞)의 지명은 지산리(芝山里)와 운평리(雲坪里)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평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지평동 용강골 고인돌 가군은 서봉마을 앞 황룡강 건너편 강변을 따라 14기가 있고, 나군은 서봉마을 앞 황룡강 건너편 ‘강변정’ 식당 입구에 3기가 분포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원제마을에 있던 선사시대 고인돌. 진월동 원제마을 고인돌 6기는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에서 동구 지원동 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쯤 떨어진 우측 저수지 주변 논 가운데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옛 진제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인 선돌. 진제마을은 광주-목포 간 도로변에 있었던 마을이다. 진월동 진제마을 선돌은 한때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의 신체(神體)로 모셨던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고성운의 은혜를 기린 비와 정순환의 선행을 기린 비.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소작인들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고성운(高聖運)[1857~1936]의 시은(施恩)에 보답하고자 세운 불망비와 효천면 주민 일동이 세운 효천면장 정순환(鄭淳煥)의 선행 행적비이다....
-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한반도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몰려 사는 동족 마을 조사는 1930년 조선총독부 인구조사 때 이루어졌다. 이때 통계를 중심으로 일본 사람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가 『조선의 취락』을 편찬하면서 같은 혈족끼리 많이 모여 살면서 선영을 모시는 제각이나 사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동네를 정리한 바 있다. 이후에 같은 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녕조씨 정려. 창녕조씨 삼강정려는 창녕조씨 일가 중 4대의 충(忠), 효(孝), 열(㤠)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897년 조정에서 명령을 내려 1923년 건립하였으며, 2011년 중건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1965년에 건립된 정자. 청송정(淸松亭)은 심영구(沈永求)가 큰아버지 심종수(沈鍾秀)와 아버지 심종선(沈鍾善)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1965년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동호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본촌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유인원(柳寅瑗)의 '청송정 기문(記文)'을 보면, 맏형인 심종수와 동생인 심종선 형제가 만년에 이르기까지 우애가 지...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이조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 광산이씨(光山李氏)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1433~1510]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이다. 이조원은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이선제의 학통을 이어 문장과 도학이 당대의 종사(宗師)라고 추앙을 받았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수암서원과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오현당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청주한씨 부인의 효열비. 청주한씨(淸州韓氏)는 29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성심껏 간호를 하였고, 남편이 운명하려 하자 살을 베고 피를 주어 며칠을 연명하게 하였다. 남편이 운명하자 본인도 따르려 하였으나,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상례를 잘 치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고, 좌우 손가락을 베고[斷指] 피를 입으로 넣어 연명하...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효자 2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청주한씨쌍효비는 조선 후기 효자 한필오(韓弼五), 한필룡(韓弼龍)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한필오와 한필룡 형제는 본관이 청주(淸州)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1760년 부친상을 당하자 두 형제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어머니가 노망(老妄)이 나자 두 형...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등촌마을 입구에 있는 2기의 선돌. 청풍동 등촌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에 2기가 있다. 오른쪽 선돌은 전면에 채흔(採痕)이 5군데 있으며, 기단(基壇)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4단으로 쌓았다. 왼쪽 선돌도 오른쪽 선돌과 같이 1.2m 반경으로 돌을 돌려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선돌을 올렸다. 등촌마을 사람들은 2기의 선돌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잡귀와 액운을 막아준다고...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고분. 청풍동 수혈식 석실분은 무등산 잣고개를 지나 제4수원지에 이르는 계곡의 중간 지점에 있다. 고분이 있는 곳의 지형은 높이 365m인 군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리는 사면 말단부로 계곡부가 인접한 곳이다. 고분 일대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통일신라~고려시대로 편년되는 무진고성지(武珍古城址)가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초은정(樵隱亭)은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효령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학동마을 뒷산 높은 언덕 위에 이호헌(李顥獻)이 지어 유유자적하였던 정자이다. 이호헌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이항로(李恒老)가 이끌었던 호서학파(湖西學派)의 최기룡(崔基龍)에게 경전을 배웠다....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각. 추원각(追遠閣)은 장흥고씨 재각으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흥고씨는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데 전라남도 담양 일대 제봉 고경명 후손이 유명하여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라 하며 호남 사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경명은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순곤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 김순곤(金順坤)[1918~1979]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순이다. 김용관(金容權)의 3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노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태어났다. 낙후된 고장의 발전을 위해 향토인이 함께 뭉쳐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남제지방(南堤池防)을 축조할 때 답 825평[약 272...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내마을에 있는 선돌. 충효동은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있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이 성안처럼 되어 있어 '성안' 또는 '성내' 마을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 정조 때 김덕령 장군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 하여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얻게 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산. 충효동 성안 고분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 왼편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에 있는 성터.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성안마을 일대에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신촌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2기의 선돌. 충효동 신촌마을 선돌은 신촌마을 앞 2기의 선돌을 말한다. 신촌마을은 광주광역시 제4수원지[석곡동 석곡수원지] 제방 밑에 있는 마을로 500여년 전에 남평문씨(南平文氏)들이 터를 잡아 성촌(成村)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남평문씨의 제각인 균산정(筠山亭), 서당이었던 괴양정(槐陽亭), 행주기씨(幸州奇氏)의...
-
광주광역시 비아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조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유허비. 취병조형유허비(翠屛趙珩遺墟碑)는 조형의 6대손 조운한(趙澐漢)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조인 조형(趙珩)[1606~1679]을 기리기 위하여 조형이 태어난 옛터에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칠석동 칠석마을 고인돌 가군 11기는 칠석마을 남쪽의 나지막한 구릉 사면에 있고, 나군 3기는 마을 북동쪽의 작은 구릉 지대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칠송정(七松亭)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장남인 함재(涵齋) 기효증(奇孝曾)이 복룡산 아래에 건립하였다. 기효증은 부친이 별세하자 광곡마을 백우산 밑에 온돌이 있는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기효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활동으로 공훈이 있어 선조로부터 벼슬을 하사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학문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를 기리...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탐진최씨 네 효자와 두 열녀의 정려각. 탐진최씨사효이열정려는 탐진최씨의 네 효자와 두 열녀의 효열정신을 기려 세웠다. 처음에는 효자 최언광(崔彦光), 최세효(崔世孝), 최웅걸(崔雄傑), 최두걸(崔斗傑)과 열녀 최세효(崔世孝) 처 함풍이씨(咸豊李氏)를 모셨으나, 1917년 최홍순(崔弘淳)의 처 평산신씨(平山申氏)를 추가로 모셨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평택임씨 삼강유허비. 평택임씨(平澤林氏) 임영수(林英秀)와 임영수의 아내, 임영수의 아들 임계(林桂)와 임계의 아내, 임영수의 손자 임광윤(林光胤), 임영수의 증손자 임은(林嶾)과 임두(林㞳) 등 4대에 걸친 충·효·열 삼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기우만(奇宇萬)이 1915년에 비문을 지었고, 후손 임철주(林哲周)가 1941년에 비문 글씨를...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었던 신암마을에서 신앙의 대상물로 신성시했던 3기의 선돌. 신암마을은 마을 뒷산 금당산(金堂山)[높이 303.5m]의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신암(新巖)'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신암마을에는 3기의 선돌이 있었는데,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낼 때 선돌에 금줄을 걸어 신성시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3기의 선돌. 풍암마을에는 당산나무 주변에 적석으로 간신히 지탱되어 있는 3기의 선돌이 있었다. 그런데 풍암마을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발굴·조사되어 풍암지구 제2근린공원[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풍암동 풍암마을 선돌은 원래 12기였으나 마을이 도시화하면서 차츰 줄어들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의 광복을 염원하는 글을 새긴 석대. 풍천대(風泉臺)는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항일 의적(義蹟)을 기념하는 삼층 석대(石臺)이다. 박노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항일의식 각성을 촉구하였고,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당.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며,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산동에 있는 고분. 하산동 고분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동곡동 간 도로변 우측에 히메기고개라 부르는 구릉에 있다. 고분은 높이 34m의 구릉 정상부에 있고, 주변은 곡간지(谷間地)가 형성되어 있어 고분이 있는 지점은 우뚝 솟은 형상이다. 고분 일대에는 서산유씨 민묘(民墓)가 들어서 있고, 잡목과 노송이 우거져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실. 학림정사는 한말 때의 유학자 임상희(林相熙)[1858~1931]를 배향한 재실이다. 임상희의 본관은 평택이며, 호는 금우(錦愚)이다. 1858년 3월 16일에 임곡 등임부락에서 출생하였다. 학행이 빼어났으나 나라를 잃자 후학 양성에 전력하였다. 문인록에 의하면 양성된 후학이 300여 명이며, 『금우유고집』 상하권이 있다. 임상희가...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풍이씨의 효열 정려각. 정호직(鄭浩直)의 처 함풍이씨(咸豊李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하동정씨 문중에서 세웠다. 함평이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노력을 다하였고 남편을 잘 위하여 죽은 뒤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세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1830년 10월에 정민영(鄭旻濚)이 기록한 '제효열질부이씨정려병서(題孝烈侄婦李氏旌閭幷序)'에 나온다....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행은정(杏隱亭)은 함안윤씨(咸安尹氏)로 참봉(參奉)을 역임한 윤희상(尹喜祥)에 의해 건립된 윤희상의 만년 휴식처이다. 1930년 건립 당시에는 이임정(履臨亭)으로 불리었다. '이임'이라는 말은 "얇은 얼음을 밟고 깊은 연못에 다다른 것처럼 언제나 그의 마음을 조심하고 주의한다."는 뜻으로 붙인 하나의 잠언(箴言)이다. 정자...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호은정(湖隱亭)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심노옥(沈魯玉)이 설계만 한 상태에서 원운(原韻)과 원기(原記) 등을 만들었고, 심노옥의 유지를 받들어 아들 심원하(沈遠河)가 1930년에 완공한 정자이다. '호은'이란 정자 이름은 물가에 숨어서 은일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은거호상(隱居湖上)의 뜻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정석남의 실적비. 정석남(石南實)의 효행 행적을 기리려 세웠다. 정석남은 동래정씨(東萊鄭氏) 정운선(鄭云先)의 딸이며, 어머니는 추계추씨(楸溪秋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정석남의 아들인 정재장(鄭載長)도 일찍 죽었다.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부모를 섬기는 데 마치 남편을 섬긴 것같이 하였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10리[약 4㎞] 밖 옥녀봉 동쪽...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고성이씨의 기행비. 고성이씨(固城李氏)의 효행을 기려 세운 기행비(紀行碑)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호송(金鎬松)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 해주최씨(海州崔氏)와 시할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를 20여년 간 봉양하고, 시어머니 간병을 4년 동안 하는 등 효행을 실천한 사실을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하였다. 위계도가 비문을 짓고 비문 글씨는 강인환이 썼다....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 복수마을에 있는 문화유씨 행적비. 문화유씨(文化柳氏)는 고재열(高在烈)에게 16살에 시집을 왔는데 반 년도 못 되어 사별하였다. 이후 문화유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생존하였을 때와 똑같이 섬기며 예를 갖추고 조카를 승중손(承重孫)으로 세웠다. 문화유씨의 효열 실천을 기리기 위해 김준식(金駿植)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김정회(金正...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진주강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강이회(姜以會)의 딸로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반두명(潘斗明)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잘 봉양하였고, 반두명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 낮에는 땔감을 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여 어려운 시가를 일으키고 시부모를 공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풍산홍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행적비. 풍산홍씨(豐山洪氏)는 1922년 22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대변을 맛보아 차도를 징험했다. 단을 만들어 새벽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축원을 하였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예절에 맞게 장례를 치렀다. 시조부모 초상 때에는 몸이 수척하도록 서러워하며 옛 제도를 따랐다. 시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나자 전답이 없어...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엄의 정려비와 정려각. 문신 정엄(鄭淹)[1528~1580]의 효자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은 본관이 광주(光州)로 정만종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김선진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김선진(金善鎭)[1916~1949]은 노조모와 편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향리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김선진은 고광선(高光善)에게 배웠으며 김문발(金文發)이 세운 부용정(芙蓉亭)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을 단독으로 환원시켰다. 해마다 7월 백중이 되면 쌀 두어 섬으로 마을 안의 궁핍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광훈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윤광훈(尹光訓)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羅州林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실적비(實蹟碑)이다. 윤광훈은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근면하였기에 가정이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고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는 등 효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때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내조가 지극하여 이것...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후주정(後洲亭)은 1910년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피탈당한 사실에 통탄한 이진영(李振永)이 아버지 이종수(李鐘秀)의 뒤를 이어 1911년에 세웠다. 이진영은 호(號)를 '후주(後洲)'로 삼았는데, 선조인 이중명(李重溟)의 아호(雅號)인 구주(鷗洲) 중에서 '주(洲)'를 취하여 지은 것이다. 후주정에서 400여 명의 후학을 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