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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광명시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서 공동으로 발행한 광명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조사 보고서. 『광명의 역사』는 경기도에서 2004년 완료 예정으로 추진한 ‘향토의 역사와 유적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조사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향토의 역사와 유적 조사 사업’은 경기도 각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재 관련 조사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그 결과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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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일원에 분포한 조선시대 묘역. 조선시대 민묘로 피장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주변에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의 토기와 자기, 와편 등의 생활 유적이 산포되어 있다. 가학동 고묘군은 두 곳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지역은 가학동 산223번지와 산224번지 일대로 학온동사무소 맞은편 동쪽 산 정상부에서 등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00m를 지나 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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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가학동 고인돌군은 광명시 가학동 산102-1번지, 산104번지 일대 벌말마을의 뒤쪽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분포 상황은 서쪽 끝에 탁자식 고인돌이 있고 동쪽으로 5기의 고인돌이 거의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가학동 고인돌군은 낮은 구릉의 정상부에 있고 형태는 탁자식이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타원형과 삼각형 두 종류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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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장. 가학동 노리실 고인돌 채석장은 노리실마을에 있는 광명새마을주말농장에서 북동쪽 끝 부분에 있는 소로를 따라 약 100m를 지나면 완만한 산 능선에 있다. 발견된 석재들의 전체적인 형태는 타원형과 장방형의 네모꼴이 많고, 크기는 200×124×32㎝, 180×140×75㎝, 149×77×15㎝ 등 다양한 크기가 발견된다. 가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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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가학동 유물산포지는 광명 지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유물산포지이다. 2007년 현재까지 33곳에서 전통 시대의 생활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마을, 노리실마을, 공세동마을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가학동 유물산포지에서는 주로 토기류와 자기류, 그리고 기와편들이 발견되었다. 광명시 가학동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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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 주변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절구 역할을 한 도구. 가학동 출토 갈판은 1996~1997년에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가학동 고인돌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학동 고인돌군 인근의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갈판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에 절구 역할을 한 분말용 도구로, 곡물이나 열매를 부수어 가는 데 사용되었다. 밑에 놓인 갈판은 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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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로 만든 무기. 돌칼[磨製石劍]은 몸체와 자루로 구성되며, 손잡이 대신 슴베[莖]가 있는 경우도 있다. 돌칼의 형태는 칼끝에서 뾰쪽하다가 양날 부분으로 가면서 넓어져 양쪽 날이 평행하게 내려간다. 칼 몸체의 단면은 마름모꼴, 혹은 볼록 렌즈 형태가 일반적이다. 돌칼은 선사시대에 전투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집터와 고인돌에서 각 1점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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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돌화살촉은 선사시대 사냥 도구인 활의 부속품으로, 돌을 가공하여 화살의 머리에 붙였던 화살촉이다. 석촉(石鏃)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돌화살촉은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하며, 청동기시대에는 주거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된다. 돌칼과 함께 고인돌 부장 용품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재질은 흑요석, 편암, 판암 등 다양한 재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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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늬 없는 토기. 가학동 출토 민무늬토기는 광명시 가학동 고인돌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음식물을 보관하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민무늬토기는 대체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바탕으로 하고, 외부 지역으로부터 새로 유입된 제작 수법이 더해져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초기 빗살무늬토기의 잔재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민무늬토기로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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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반달돌칼. 반달돌칼은 청동기시대 전반에 걸쳐 주요한 수확구로서 사용되었고,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는 철제 반달칼로 대체되었다. 반달돌칼은 형태가 한쪽이 곧고 다른 한쪽이 둥근 반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까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농업 도구 중 몇 안 되는 유물이다. 반달돌칼을 만드는 데는 납작한 편암, 점판암 계통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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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묘제인 가학동 지석묘는 북방식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학들이 놀았다 하여 가학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장수바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1960년대까지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광명사거리에서 안산 방면의 벌말 뒤쪽 산 정상부인 터골산과 북쪽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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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덕휘(德輝), 호는 동곽(東郭). 증조할아버지는 강숙돌(姜叔突)이고, 할아버지는 강뢰(姜賚)이며,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낸 강유경(姜惟慶)이다. 강찬(姜燦)[1557~1603]은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사변가주서를 거쳐 1587년(선조 20)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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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역사학에서 고대는 선사시대 이후부터 중세 이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존재하였던 사회 구성체와 정치 조직체를 고대 사회와 고대 국가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역 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중앙 집권적인 관료제(官僚制)와 율령(律令)을 실시하였으며, 왕위의 부자 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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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통일신라시대 한주에 속했던 지금의 경기도 광명지역은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친 뒤 고려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여러 차례 행정구역의 변천을 거쳤다. 고려시대의 광명 지역은 금주(衿州) 지역에 소속되었으며, 10도(道) 중에서는 관내도(關內道)에 편성되었다. 금주는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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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고대 무덤. 광명시의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고대 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 외에 삼국시대 무덤인 고분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명 지역이 한강 이남의 주요 교통로이며 현재의 안양천에 인접한 지역임을 감안하면 차후 유적의 발견성은 높다고 추정된다. 광명 지역의 고분은 고인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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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거의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구주 지방, 중국 동해안 지역과 동북 지방, 그리고 한반도 등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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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무열왕(武烈王)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전제 왕권(專制王權)을 형성하여 진골(眞骨)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경덕왕(景德王) 때부터 진골 귀족들의 세력이 다시 강화되자 경덕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화(漢化) 정책을 실시하여, 757년(경덕왕 16)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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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광명시 철산3동 광덕산 근린공원에 설치된 체육 시설물 주변에서 고려시대 이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광덕산 유물산포지에서는 토기와 자기류, 그리고 기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덕산 유물산포지에서 발견된 토기류는 옹기의 밑 부분인데, 남아 있는 조각으로 보아 몸통은 굽에서 급하게 올라가며, 몸통과 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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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된 교육계몽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에서 거의 전 계층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던 대중 운동으로서,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특히 활발하게 전개된 청년 운동과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야학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현 광명시 소하동에서는 문맹 퇴치 운동 차원에서 노동 운동 및 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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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광명 지역에 실시한 대규모 임야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은 일제가 한반도 내에서 식민지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국 임야의 소유권을 재확정하고자 추진한 사업으로, 1916년 시험적인 준비 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조사와 측량 등을 마쳤다. 이에 부수하는 심의 처리 등의 사무는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주관으로 1919년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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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동 삼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100미터 떨어진 산 능선 아래쪽 밭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자기편, 기와편 들이 확인되었다. 유물들이 산포된 면적은 대략 661㎡이며,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광명동 유물산포지에서 수습된 토기류는 회백색을 띠는 연질토기 입술 조각 및 겉면과 안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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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현 경기도 광명시]에서 개소한 출장소. 광명출장소는 현 경기도 광명시의 모태가 된 출장소이다. 1970년대에 서울시 영등포구와 시흥군 간의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이 계획되면서 광명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시흥군의 행정 구역이 본격적인 조정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63년 이미 시흥군 서면의 광명리와 철산리가 서울시 도시 계획에 편입되었고, 1966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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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고구려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고, 신라의 영토가 된 후 경덕왕(景德王)이 곡양현(穀壤縣)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관할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州)로 고쳤다. 금주는 달리 금주(黔州)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원래 금천강씨(衿川姜氏) 시조(始祖)인 강궁진(姜弓珍)의 근거지였다. 강궁진은 고려 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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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시대 금천강씨 문중의 묘역. 금천강씨는 고려 창건 개국공신으로 삼한벽상공신이 된 강궁진(姜弓珍)이 태조왕건으로부터 본관을 금주로 하사받은 사성(賜姓)이다. 이후 금주가 금천(衿川)으로 지명이 변경되어 금천강씨가 되었다. 강궁진의 고조인 강여청(姜餘淸)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강궁진을 1세로 이어진다. 강궁진은 고려 명장 강감찬(姜邯贊)[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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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시조는 신라의 왕족인 김흥광(金興光)이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김씨는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代)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급제자가 배출되었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이 나왔다. 김흥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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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김씨 25세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을 지낸 김종(金綜)이고, 어머니는 이양(李樑)의 딸이다. 김원록(金元祿)[1546~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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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시조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고, 명종 때에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응수(金應壽)[1567~?]는 사복시 잡직인 마의(馬醫)에서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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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상경(商卿), 호는 가정(柯亭). 익찬공파 26세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약평(金若枰)이다. 조선조의 명장으로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金宗瑞)[1390~1453]의 후손이다. 부인은 파평윤씨로 현령을 지낸 윤숭선(尹崇先)의 딸이다. 김희열(金希說)[1497~1551]은 1519년(중종 1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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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5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광명시 광명사거리를 지나 오류동 방향으로 건너가는 천왕교 남쪽에 너부대 유물산포지가 있다. 이곳에는 너부대근린공원이 원형에 가까운 남북으로 약간 긴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부를 중심으로 각종 체력 단련 시설이 있으며 구릉의 주변부에는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다. 너부대 유물산포지의 유물은 구릉의 정상부와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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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 터. 노온사 터는 노온사동(老溫寺洞)에 있던 절터로 마을의 명칭은 노온사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마을의 이름은 원노온사동, 노온절, 노온절리, 노온사리, 논사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모두 사찰명과 유래하여 불리고 있다. 노온사동은 원래 큰말마을, 대말마을이 현재 마을에서 서남쪽 7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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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던 대표적인 농가 건축. 노온사동 능말 양주만씨댁은 1951년에 지어져 2008년에 헐렸다. 튼 ‘ㅁ’자 집으로 광명 지역의 전통적인 농가 건축의 형태를 잘 나타내던 민가였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2003년경에 광명시에서 조사하여 발간한 책자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광명시 노온사동 능촌에 있는 능촌길 주변에 있었다. 노온사동 능말 양주만씨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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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노온사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노온사동 34번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서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노온사동은 광명시에서 가학동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의 토기류와 자기류, 기와류 등의 유물들이 확인된 지역이다.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가 수습된 지역은 새터말마을 입구에서 왼쪽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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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도덕산(道德山)에 있는 백제시대의 보루(堡壘). 도덕산 보루군은 도덕산성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1977년의 조사에 따르면 둘레 700m 정도의 토석축(土石築)으로, 삼국시대 산성지(山城址)라 보고되었다. 그러나 1986년의 조사에서는 도덕산[198m] 성지(城址)로 삼국시대 후기의 백제 유적과 함께 성지나 봉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2003년의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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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대한제국기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독립 운동과 항일 운동이 부단하게 전개되었다. 광명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하였다. 1866년 시흥군 서면 철두리에서 태어난 장원겸(張元謙)은 충청남도 직산군 일대에서 길찬범(吉贊範)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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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 경기도 광명 지역을 포함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정치연맹체로, 삼한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에서부터 작은 것은 수천 가에 이르렀다고 나와 있다. 마한 54개 소국은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라 하고, 작은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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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공세골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유씨 문중의 묘역. 문화유씨 묘역에는 유성구(柳聖龜) 등이 안장되어 있다. 유성구(柳聖龜)는 자가 원명(元明)이고 1620년에 출생하여 38세인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3등 26위에 입격하였다. 유경익(柳敬益)[1639~?]은 유성구의 아들로 자가 여숙(汝肅)이며, 35세인 1673년(현종 14) 진사에 2등 19위로 입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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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은 놀이 속에 있다. 놀이는 민중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살림살이도 흥이 나고 신바람이 나야 잘 굴러 간다. 신명 없는 삶은 재미가 없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사회에서 민중의 삶이란 일하고, 여가를 보내고, 의례 행위를 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일상의 삶을 놀이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 ‘신명’이다. 일상의 삶에 신명이 결합됨으로써 삶은 놀이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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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으로 소현세자의 빈. 본관은 금천(衿川). 고려 때 귀주 대첩의 영웅이며 벽상공신을 지낸 강궁진의 아들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이므로 금천강씨로 부른다. 아버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40년(인조 18)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는 1611년 5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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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石器時代)는 석기의 제작 방법에 따라서 뗀석기[일명 타제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와 간석기[일명 마제석기]를 사용하던 신석기시대로 구분된다. 그리고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에는 세석기(細石器)를 사용하였던 중석기시대가 존재하였다. 인류는 농경(農耕)을 시작하면서 구석기시대의 채집 경제에서 신석기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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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先史時代)는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다만 중석기시대의 경우 그 존재 여부에 대해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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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곽은 기능에 따라 도성(都城)과 장성(長城), 읍성(邑城), 산성(山城) 등 다양하게 구분을 한다. 도성은 왕궁의 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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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량(仲亮), 호는 서은(西隱). 증조할아버지는 성복영(成復榮)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성열(成烈)이며, 아버지는 홍문관교리를 지낸 성우규(成禹奎)이다. 성종영(成鍾永)[1827~1890]은 1865년(고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1880년(고종 17) 상서원직장을 거쳐 1886년(고종 23) 예안현감과 연산현감, 18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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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은 성태경(成泰慶), 자는 치장(稚長), 호는 서암(書岩). 증조할아버지는 성수(成樹)이며, 할아버지는 성진익(成鎭翼)이고, 아버지는 성용연(成龍淵)이다. 외할아버지는 홍윤철(洪潤哲)이다. 성하경(成夏慶)[1823~1899]은 1855년(철종 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때는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였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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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시 소하2동 341-1번지, 342번지 일대와 소하2동 367~370번지, 377-1~3번지 일대에 걸쳐 소하동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있다. 광명시 소하2동에서 조선시대 토기, 자기, 기와 조각들이 확인되었다. 소하동 유물산포지는 설월리마을 서쪽에 위치한 금강정사 앞에 있는 밭이다. 이곳에서는 회청색과 회백석을 띠는 연질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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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명 지역을 포함한 시흥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이 소위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외형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전국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기도에서도 3·1운동 이후 1920년대 말까지 178개의 청년 단체가 20개 군에서 결성되었다. 이 가운데 시흥 지역에서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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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광명시의 역사. 2010년 현재까지 광명 지역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조사, 보고된 적이 없다. 그러나 목감천 등 하천 주변에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광명시의 지형적 특성으로 미루어 향후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광명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철산동 고인묘와 가학동 지석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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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의 사당. 영모재(永慕齋)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응수(金應壽)[1567~?]의 공덕을 기리고,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제사용 건물이다.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 사당(祠堂)이라 부르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의(祭儀) 기능이나,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각종 물품을 보관,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온신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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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조선시대 묘역.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묘이며 주변의 광명 차량 기지 주위와 옥길리주유소 부근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자기편 및 도기편, 기와편이 산포하고 있다. 옥길동 고묘군은 옥길동 두길리마을에 있는 광명YWCA 건너편의 동서 방향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물 산포 지역은 고묘의 동쪽에 위치한 지하철 7호선 광명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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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옥길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옥길동 98-2번지와 옥길동 18-2번지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광명시 옥길동 두길리마을과 식골마을 일대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자기, 그리고 기와류 등이 수습되었다. 토기류는 경질과 연질의 토기가 골고루 섞여 있는 몸통 조각들이 수습되었다. 무늬는 주로 격자문이 새겨져 있으며 안쪽 면에서는 손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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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편을 나누어 윷을 던져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단면이 반달 모양인 가락[또는 알]을 던져서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에 따라 말을 움직여 노는 우리나라의 민속놀이이다. 한자어로는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다. 매우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지만 놀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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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이(善而). 아버지는 이원익(李元翼)의 형인 통진현감과 흡곡현감을 지낸 이원보(李元輔)이다. 이성전(李性傳)[1551~1585]은 1570년(선조 3)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3등, 1577년(선조 10) 알성시(謁聖試)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과 병조좌랑을 지냈다. 묘소는 광명시 일직동에 있다. 석물로는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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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이신(李愼)[1570~1634]은 임진왜란 때 영유 지방에서 시행된 무과 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하였다. 평안도 안주와 강계판관 등을 비롯하여 주로 평안도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 그리고 함경북도병마절도사와 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인조반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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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중(正中), 호는 월호(月湖)·설창(雪窓)·남곡(嵐谷). 아버지는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示+多)이다. 이정은(李貞恩)은 일찍이 수천부정(秀川副正)에 봉해졌다가 종친부도정(宗親府都正)을 지낸 뒤 수천군(秀泉君)에 봉해졌다. 인품이 독실하고 돈후하여 스스로 겸손하며, 식견과 도량이 있고, 학문의 이치를 터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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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제2대 왕인 정종[재위 1398~1400]의 손자로 아버지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이며, 어머니는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이종무(李從茂)의 딸이다. 형제로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부윤부수(富潤副守) 이효숙(李孝叔), 송림부수(松林副守) 이효창(李孝昌) 등이 있다. 이효성(李孝誠)[?~1518]은 형제인 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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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밤일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왕족 이효성의 묘소. 조선 전기의 왕족이며 공신인 이효성(李孝誠)[1445~1517]은 본관이 전주(全州), 시호는 공소(恭昭), 양명(襄明)이다. 할아버지는 정종이고 아버지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이며, 어머니는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이종무(李從武)의 딸이다. 부인은 전씨이다. 형제인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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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광명시는 경기도의 남서부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동, 남동쪽과 남서쪽은 경기도 안양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광명시는 광주산맥 끝자락인 수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학산(駕鶴山)[220.2m], 서독산(書讀山)[180m], 구름산(雲山)[230m], 도덕산(道德山)[183.1m]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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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광명 지역은 시흥군 서면과 남면으로 편제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으면서 현 광명시의 전신으로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광명 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 항일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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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광명 지역에 설치된 통치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이 427년(장수왕 15) 수도를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한 후 적극적인 남진(南進) 정책을 실시하여,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전사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에 한강 유역을 고구려 영토로 편입하기 위하여 종래 백제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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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전주이씨 익녕군파 문중의 묘역. 전주이씨 묘역은 이원익(李元翼)의 종손인 이승규[전 연세대학교 의대교수]가 이원익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묘역에 그의 선조와 후손의 묘소를 이장하여 조성한 묘역이다. 여기에는 이원익의 묘소를 비롯하여 이정은(李貞恩), 이의전(李義傳), 이수약(李守約), 이증현(李曾賢), 이상현(李象賢), 이존도(李存道), 이인복(李仁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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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이다. 외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김계락의 딸이다.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와 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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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오늘날 광명시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있는데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광명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시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양상이다. 이에 비해 전통적인 살림집의 형태를 지닌 단독주택은 개축 및 신축으로 인해 점차 줄어가는 추세이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광명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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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춘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창녕성씨는 창녕성씨 문중의 족보인 『계축보(癸丑譜)』에 따르면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하며, 묘소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맥산 기슭에 있다. 성인보의 3세손 성공필(成公弼)·성한필(成漢弼) 대에 크게 두 계통으로 갈라졌고, 6세손에 이르러 성기(成紀)를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를 포함하여 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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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있는 창녕성씨 문중의 묘역. 창녕성씨 묘역에는 성종영(成鍾永)[1827~1890], 성낙유(成樂游)[1865~1925], 성희경(成禧慶)[1884~1961], 성기석(成基錫)[1919~1990] 등 모두 4기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성종영은 돈녕부도정을 지낸 인물이다. 성기석은 성종영의 5세손인데,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 단파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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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철은 인류가 도시나 국가를 형성한 문명 단계에 들어서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여 청동기를 잇는 새로운 금속으로 등장하였다. 청동에 비해 철의 원료는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서 야철(冶鐵) 기술만 습득하면 어디서나 생산이 가능하였다. 이후 강(鋼) 제조 기술이 발명됨으로써 예리한 이기(利器)의 제작이 가능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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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2동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철망산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하안2동 산19-10~12, 21~24-15번지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광명시 하안2동 시립도서관 남서쪽에 해발 85m의 철망산이 있다. 철망산의 평면 형태는 동서축이 조금 긴 형태로, 정상은 뾰족한 모습이다. 유물들은 대개 철망산 동쪽 능선 상에서 수습되었다. 수습된 유물은 조선시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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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철산동 지석묘는 광명시 철산동 222-1번지[시청로 20]에 있다. 철산동 지석묘는 본래 광명시 철산동 462-33번지에서 확인된 고인돌이나 현재는 광명시민회관 경내로 옮겨져 있다. 철산동 지석묘의 형태는 강화도 삼거리에 있는 3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두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히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과거에는 북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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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청동(靑銅)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청동을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대이다. 청동기는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고 주석·아연·납 등 몇 가지 다른 원소의 금속을 배합하여 합금(合金)하는 야금술(冶金術)이다. 이러한 야금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석기시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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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사현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청송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한다. 심홍부의 증손 심덕부가 우왕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왕비 세 명을 비롯하여 재상과 청백리,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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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역대 명현을 모시고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함께 지닌 지방의 사설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재 양성과 유교적 향촌 질서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원은 붕당의 정치적 이해를 지닌 역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1865년(고종 2)부터 흥선대원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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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일제가 한국의 토지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실시한 경제 정책. 일제는 1910년 9월 오키나와와 대만에서 토지를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해 9월 30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관제(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공포하고 1912년 8월에는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전 근대적인 소유 관계 아래에 놓여 있는 토지 소유 관계를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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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에 있는 조선 전기 평해구씨 문중의 묘역. 평해구씨 묘역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 뒷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방도 351호선과 지방도 397호선을 잇는 포장 소로와 바로 인접해 있다. 평해구씨 묘역에는 모두 4기의 무덤이 있는데, 구치곤(丘致崑)의 무덤을 중심으로, 우측 아래쪽에는 구차숭(丘次崇)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 1기가 있고, 위쪽으로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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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지. 하안동 건물지가 지닌 변화 과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밤일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의 밭 경작지로, 인위적 훼손이 심하며 현재 진행 중인 마을의 재개발과 연관하여 주변의 지형 또한 변화가 예상된다. 하안1동 안터마을 남쪽에 위치한 물류 창고 단지 뒤편 주말농장과 밤일마을로 가는 소로를 따라 50m 지점의 길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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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하안동 고인돌은 광명시 하안1동 산 168-7번지 일대로, 광명시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 능선 끝자락의 완만한 지형에 있다. 하안동 고인돌은 남북으로 흘러내린 산 능선에 위치해 있는데, 고인돌의 긴 방향이 바로 산 능선의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보면 개석식 고인돌로 판단되며, 고인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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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광명시 하안1동 343~346번지와 하안1동 3517번지 일대에 걸쳐 있다. 하안동 유물산포지는 광명시 하안1동 안터마을과 도덕산 남서쪽 계곡부 하단부에 걸쳐 있다. 안터마을에서 범일마을로 가는 왼쪽 산 능선 아래 밭에서 수습된 유물은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토기류와 자기류 조각들이다.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면적은 1,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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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백제를 멸망시킨 후인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은 667년(문무왕 7) 무렵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 유민의 저항을 진압하고 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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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광명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은 553년(진흥왕 14)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664년(문무왕 4) 한산주(漢山州)로 개칭되었고,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할 때 9주의 하나가 되었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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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1910년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광복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펼쳐졌다. 광명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주로 3·1운동과 야학 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은 광명 지역에서도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소하리에 거주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