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언성을 시조로 하고 박세광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고령 박씨 시조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아들인 박언성(朴彦成)이다. 대표적인 고령 박씨 인물로는 박인걸(朴仁傑), 박제순(朴悌順) 등이 있다. 박인걸은 1236년(고종 23) 야별초(夜別抄) 소속으로 몽골군과 싸웠으며, 관직은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다. 박제순은 1468년(세조 14) 과거에 급제하였고,...
-
이황을 시조로 하고 이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고성 이씨 시조는 고려 전기 인물인 이황(李璜)이다. 이황은 1033년(덕종 2) 교위(校尉)로 있으면서 거란군을 생포한 공으로 관직 1급을 하사받았으며, 1063년(문종 17)에는 호부 상서에 임명되었다. 이외에 고려 시대 대표적인 고성 이씨 인물로는 이교(李嶠)가 있다. 이교는 1357년(공민왕 6) 형부 상...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포구. 고온포는 조선 시대에 수원부 압정면(鴨汀面)에 속하였다. '고온'이란 지명은 기후가 따뜻하고, 마을 주민의 인심이 온후하고 화목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고온포가 자리한 지역의 마을 이름도 원래 고온리였는데, 나중에 매향리(梅香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살던 ‘서원’과 ‘구장’이라는 두 사람의 문장가가 마...
-
경기도 화성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 조선 초기 본관(本貫) 제도의 정착과 행정 구역 개편은 화성 지역 성씨 집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 화성 지역은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관할하였다. 조선 전기 수원과 남양 지역에 정착한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은 수원·남양을 비롯하여 속현인 쌍부·영신 등...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창곡리에 있는 금산사에서 조선 후기부터 봉행하고 있는 제사. 금산사의 건립과 김유신에 관한 제향은,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문치주의와 문관을 중시했던 사회분위기가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점차 김유신으로 대표되는 무관을 중시하게 되는 인식변화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
제갈공순을 시조로 하고 제갈형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갈씨는 제갈씨(諸葛氏)에서 나뉜 성씨이다. 제갈씨의 시조는 제갈량(諸葛亮)의 아버지 제갈규(諸葛珪)이며, 제갈규의 20대손인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로 귀화하여 한국 제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고종 대에 이르러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가 각각 제씨(諸氏)와 갈씨(葛氏)로...
-
김이상을 시조로 하고 김약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김씨의 시조는 『의암집(毅菴集)』 「남양김씨족보서(南陽金氏族譜序)」에 의하면 김이상(金履祥)이다. 또한 득관조(得貫祖)는 남양백(南陽伯) 김약해(金躍海)로 나타나 있다. 김약해의 둘째 아들인 진사(進士) 김계(金桂)는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신안(新安)[지금의 평안북...
-
방계홍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방씨 시조는 방계홍(房季弘)이다. 방계홍(房季弘)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봉하여졌다. 이후 2세인 방의강(房儀康)은 문하시랑(門下侍郞)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역임하였다. 4세 방원요(房元要)의 딸은 남양 홍씨 홍은열(洪殷悅)의 손자 홍의(洪毅)와 지역 내혼을 한...
-
서간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서씨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양부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에서 건너와 당성(唐城)[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정착하였다고 하는 서간(徐趕)이다. 벼슬은 태사(太師)에 올랐으며,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남양 서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효자 정려(旌閭)를 받은...
-
송규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송씨 시조는 송규(宋奎)이다. 송규는 당나라 출신으로 신라에 귀화하여 경순왕 때 이부 상서를 지냈고,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송림리에 정착하여 일생을 보냈다고 전한다. 남양 송씨는 다시 송세보(宋世輔)를 파조로 하는 도촌파(道村派)와 시랑(侍郞) 송공절(宋公節)을 파조로 하는 안서파(雁西派)로 나뉜다. 송세보는 정당문학(政...
-
전풍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전씨의 시조는 전풍(田豊)이다. 1774년(영조 50)에 간행된 『남양전씨족보(南陽田氏族譜)』에 따르면,중국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재직하던 전풍이 고려로 와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남양 전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세종 때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른 전흥(田興)이...
-
홍선행을 시조로 하고 홍덕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으로 나뉜다. 남양 홍씨가 당홍과 토홍으로 나뉜 데에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전혀 다른 계파로 구분하고 있다. 당홍은 당나라에서 고구려로 건너온 8명 중 1명인 홍천하(洪天河)를 시조로 하는데, 홍천하가 남양[당시의...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남양도호부 부임 관리들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선 시대 비석군. 남양도호부 선정비는 16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세워진 일련의 선정비군이다. 대다수는 남양도호부사의 선정비이나, 경기도관찰사, 남양군수, 음덕면장의 것도 일부 섞여 있다. 『남양군읍지』와 선정비를 통해 당시 남양도호부사의 재직 기간을 살펴보면 대체로 2~3년 정도이다....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향교. 남양향교는 1397년(태조 6)에 건립되어 향촌의 교화와 선현에 대한 제사를 담당함으로써 남양 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기능했다. 남양향교는 본래 남양도호부의 동쪽인 역골[驛谷]에 위치했으나, 습한 지형으로 인해 목조건축물이 썩고 무너지자 1873년 남양부사 안기영의 주도로 지금의 글판이[文坂]로 이건되었다....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인에게 지내는 제사. 석전제는 대성전에 배향한 공자와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유현(儒賢)에게 지내는 문묘의례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제례이다. 석전제는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제례여서 국가에서 형식을 규정하였는데, 매년 봄과 가을 중월(仲月)[음력 2월, 8월]의 상정일(上丁日)[최초로 정자(丁字)가 든 날]에 행하도록 하였으며,...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지역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 포구. 당은포(唐恩浦)라는 명칭은 신라의 삼국 통일을 원조한 당을 높이고, 당의 은혜를 드러내려는 의지를 담아 작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 해당하는 당성군(唐城郡)을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는데, 당은포라는 명칭도 같은 시기에 생겨났을 것이다....
-
경기도 화성 지역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있던 역. 동화역(同化驛)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던 역으로, 양재도(良才道)에 속하였다. 한양과 과천, 수원, 충청도를 잇는 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가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동화역이 속한 양재도를 따라 한양으로 북상하기도 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액서원. 화성 매곡서원은 갑술환국[1694년]으로 송시열이 신원되면서 경기지역 유림의 공의에 따라 송시열을 배향하고자 세워진 서원이다....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액서원. 명고서원은 1661년(현종 2) 좌의정을 역임한 조익(趙翼)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712년(숙종38)에는 조익의 아들인 이조판서 조복양(趙復陽)과 손자 부제학 조지겸(趙持謙)을 추가로 배향했다. 이곳은 화성시 송림동을 중심으로 형성한 풍양 조씨 세거지의 중심부로 기능했다....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서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청나라와의 전쟁. 1627년 1월에 발생한 정묘호란의 결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교역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금은 변경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는 등 수시로 조선을 도발하였다. 나아가 만주 점령 후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는 형제의 맹약을...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한국의 성씨 집단은 성씨와 본관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각 성씨 집단은 부계 혈연을 의미하는 성씨와 공간적 기원지라 일컬어지는 본관을 통해 다른 성씨 집단과 차별성을 갖는다. 성과 본관이 속한 가문을 나타낸다면, 이름은 동성동본의 성씨 내에서 종적 혈연관계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
-
경기도 화성시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경기도 화성 지역에 풍양 조씨가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전으로 추정되며, 매송면 원리와 송라리, 야목리 들목과 당곡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중 야목리 들목일대에 사는 풍양 조씨를 '들목에 사는 조씨'라 하여 들목 조씨로 부르고 있다. 들목 조씨들은 조계팽의 묘를 남양부 북쪽 소교촌 수작리에 쓰면서부...
-
최영규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성 최씨 시조는 최영규(崔永奎)로,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다. 1302년(충렬왕 28) 수주(水州)[지금의 경기도 수원시]의 풍속을 바로잡은 공으로 수성백(隋城伯)에 봉하여지고 최씨 성을 사성(賜姓)받았다. 수성 최씨는 이후 3세인 최원개(崔元凱)를 중시조로 하는 봉암공파와 종부령공 최문개(崔文凱)를 중시조로 하는 종부령공파로 분파...
-
경기도 화성시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수성 최씨 한림공파 독정종중은 최승장과 최함을 입향조로 하여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독정리에 세거하고 있다. 독정종중에는 『수원최씨세보』를 비롯해 1676년(숙종 2)부터 1871년(고종 8) 시기에 해당하는 준호구(準戶口)단자가 남아있다. 특히 호구단자에는 지역 양반의 관직과 거주지 변화, 가족 구성 및 보유한 노비...
-
공천원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공씨의 시조는 고려 후기에 활동한 공천원(貢天源)이다. 공천원은 1217년(고종 4) 거란 침입 당시 차상장군(借上將軍)으로 좌군병마사(左軍兵馬使)에 임명되어 적과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1217년 5월 대경(大卿)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1217년 11월 오군(五軍)과 가발병(加發兵)을 혁파하고 삼군(三軍...
-
백우경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성 지역의 내성(來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인 백우경은 신라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로, 좌복야(左僕射), 대사도(大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중시조인 백창직은 신라 경명왕 대에 중랑장(中郎將)을 지냈다. 시호는...
-
이자송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이씨 시조인 이자송(李子松)은 고려 후기 순위부(巡衛府) 상만호(上萬戶),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등을 지낸 문신으로, 본래 청양(靑陽)[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사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1362년(공민왕 11)에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원나라에 있었는데, 덕흥군(德興君)의 변란 때 가담하지 않은 공으로 밀직부사(密直副使)...
-
최자성·최루백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최씨는 고려 때부터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에도 지역 사족으로서 관직자를 꾸준히 배출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신면의 처 영광 정씨의 묘비. 신면공 영광정씨정부인 화관비는 조선 전기 문신인 신숙주(申叔舟)의 둘째 아들 신면(申㴐)의 부인 영광 정씨[1437~1497]의 묘비이다. 영광 정씨의 할아버지는 경기수군절도사를 지낸 정극근(丁克勤)이며, 아버지는 내금위 사직(司直) 정호(丁湖)이다. 남편 신면은 이시애의 난 당시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으며,...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신용개의 신도비. 신용개 신도비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신용개(申用漑)[1463~1519]의 신도비이다. 신용개의 본관은 고령이며, 할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 아버지는 신면(申㴐), 어머니는 정호(丁湖)의 딸이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신용개는 1488년(성종 19)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며 관직 생활...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액서원. 화성 안곡서원은 1666년(현종 7) 남양 지역 유림들의 공의에 따라 당시 현감이었던 민기중의 주도로 세워졌다. 기묘명현 박세희(朴世熹)와 그의 형 박세훈(朴世勳), 홍섬(洪暹)을 배향하고 있다. 이곳에 배향된 박세훈과 박세희는 조광조와 친분이 있거나 문인이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안곡서원은 조선 후기 기호사림의 주요 활동지로...
-
경기도 화성시 안곡서원에 배향된 박세희, 박세훈, 홍섬 3인에게 지내는 제사. 서원에서 실시하는 제례는 대체로 향교의 석전제의 형태와 유사하게 봉행되었다. 서원제례는 일반적으로 정기제향과 비정기제향으로 구분되는데, 정기제향으로는 춘추제향과 삭망분향제가 있다. 춘추제향은 석전제와 같이 중월(仲月)[음력 2, 8월]에 실시하였다. 다만 서원의 제례가 석전제에 비해 그 위계가 낮음으로...
-
조선 시대에 도성과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조선 시대에 화성 지역은 호서·호남 지방에서 한강 이북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국가의 공적 도로망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화성 지역에 4개의 역을 설치하였다. 역에서는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 공공 물자 운송에 필요한 말 공급 등의 업무를...
-
조선 후기 화성 지역에 세거한 연안 차씨 강렬공파 남산밑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연안 차씨 강렬공파 남산밑 종중은 파시조인 차운혁을 충신으로 정려한 것과 관련된 문서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무반 가계로 발돋움하는 데에 기여한 차응신, 차진성, 차도항 등의 임명 문서 및 3대 추증과 관련한 추증교지 등을 보관하고 있다. 이 고문서들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2...
-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공자 사상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학문 및 의례 활동. 유교는 삼국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져 보편화되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세워 유교적 교육을 실시했고 백제는 일본에 왕인 박사를 파견하여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신라는 국학을 세웠다. 삼국의 유교교육으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등 시문에 능하고 경전과 사기에 통달한 유학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이다. 보통 1차 전쟁이 일어난 1592년의 간지를 따서 임진왜란이라고 총칭하며, 일본의 2차 침입만을 따로 지칭하는 경우에는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에 화성·수원 지역은 남양도호부와 수원도호부가 관할하였는데...
-
경기도 화성시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 재양 서씨는 화성 지역의 옛 지명인 재양(載陽)[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양 지역의 내성(來姓)으로 나와 있다....
-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의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을 기리기 위해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정려는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곳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던 일을 이른다. 각 고을에서 정려 대상자가 선정되면, 그 고을의 관청이나 대상자의 직계후손, 고을의 유림 등이 중앙의 예조에 정문을 내려 주기를 청하고, 예조는 다시 왕에게 상소하여 왕의 명령...
-
경기도 화성시 송동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비. 정숙옹주 태실비는 조선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의 태실비이다. 태실은 왕실 자녀의 태를 전국 길지에 봉안하는 것으로, 신라에서 시작되어 조선 전기에 이르러 왕실 문화로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에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태의 보관은 곧 국운과 연관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청명산성은 산성의 축조 방식 및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 사이에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만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입지이다. 화성 지역 및 남양만 일대에 대한 통치 거점으로서 역할 하였을 것이다....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고려 후기 효자 최루백의 정려. 최루백(崔婁伯)[?~1206]은 고려 의종 대의 문신이다. 최루백의 아버지는 수원의 향리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최루백은 15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죽인 호랑이를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아버지를 장사지낸 후 여막을 짓고 무덤을 지켰는데 어느 날 꿈에 아버지가...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조선 전기 충신 한명윤과 부인 박행장의 정려.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인 한명윤과 그의 부인 열녀 박행장의 충열각이다. 한명윤은 1590년(선조 23년) 영동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약해 그 공으로 조방장의 품계를 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왜적과 싸우다 1593년 10월 52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한명윤은 출전하는 길...
-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
1789년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을 경기도 화성 지역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한 일. 정조는 즉위 직후 자신의 생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하고,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인 수은묘(垂恩墓)를 영우원(永祐園)으로, 제례를 치르는 곳을 경모궁(景慕宮)으로 격상시켰다.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의 묘를 소령원(昭寧園)으로 봉원(封園)한...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수군 진영. 화량진이 설치된 남양만 일대는 신라 시대 이래 서해안 지역의 교통·군사적 요지였다. 그러나 화량진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기 어려운데, 1358년(공민왕 7)에 왜적이 화지량(花之梁)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4세기 중반에는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화량진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남양만...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지역에 설립된 전문 예인 집단의 자치 조직. 화성재인청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재인(才人)·무부(巫夫)·광대(廣大) 등의 자치 조직이다. 재인청은 신청(神廳)·광대청(廣大廳) 등으로도 불렸으며,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각 군에 두었다. 각 도에는 도청(都廳)을 두었고, 도청의 우두머리를 대방(大房)이라 불렀다. 대방 아래에는 두 명의 도산주(都山主)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