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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3·1운동을 주도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태성(姜太成)[?~1919]은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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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때 함께 순국한 강태성(姜太成)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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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23일부터 1951년 3월 11일까지 경기도 화성 출신 교사 유정수가 국민방위군에 대해 기록한 일기. 『국민방위군 일기』는 유정수(柳靘秀)가 국민방위군에 소집된 1950년 12월 23일부터, 귀향길에 오른 1951년 3월 10일 사이에 작성한 76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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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교창(金敎昌)[1889~1954]은 1889년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仙源面) 창리(倉里) 64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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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교철(金敎哲)[1880~1955]은 1880년 7월 27일에 태어났다. 1911년 배재학당, 1912년 피어슨 성경학원 등에서 수학하였다. 1914년에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장진의숙을 설립하였으며, 남양교회 담임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만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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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조부는 동지성균관사·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한 김정집(金鼎集)이며, 부친은 고종대에 공조판서·사헌부 대사헌·한성부 좌윤을 역임한 김창희(金昌熙)이다. 모친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판관을 역임한 조희필(趙熙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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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근(金德根)[1889~1958]은 1889년 5월 1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花樹里) 경찰주재소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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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삼(金德三)[1876~1962]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으며, 이때 김덕삼은 선두에서 장안면사무소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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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3·1운동을 주동하고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덕용(金德用)[1900~1919]은 1900년 1월 6일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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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정(金度貞)[1889~1871]은 1889년 11월 10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42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송산면에서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 등이 계획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송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은 송산면사무소 근처에서 1,0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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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우(金明友)[1887~1951]는 1887년 1월 14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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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홍면옥(洪冕玉)[이명 홍면(洪冕)]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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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호(金明鎬)[1887~1951]는 1887년 6월 16일 태어났다. 김여근(金汝根)이라고도 불렸다. 김명호는 1919년 4월 3일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長安面水村理)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4월 3일의 시위는 수촌리 주민 100여 명이 아침에 밀양산에 모인 뒤, 독립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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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실(金成實)[1869~1931]은 1869년 4월 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49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과 28일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홍면옥(洪冕玉)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성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등지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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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열(金聖烈)[1871~1919]은 1871년 11월 3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충청남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홍원식(洪元植)이 1914년 제암리에 이주하여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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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김성열(金聖烈)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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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연방(金然昉)[1881~1919]은 1881년 7월 21일 태어났다. 김연방은 대한제국의 시종원시어(侍從院侍御)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에 화성시 장안면(長安面)과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장안면사무소에 모여 장안면장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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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준(金容俊)[1881~1936]은 1881년 2월 28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68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옥(洪㻐玉)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의 만세시위에서는 일본인 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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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규(金允圭)[1894~1962)는 1894년 12월 16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이고, 부천군(富川郡) 대부면(大阜面)에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1일 노병상(盧秉相)·홍원표(洪元杓)와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부천군 대부면 자신의 집에서 천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어 군중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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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식(金應植)[1879~1944]은 1879년 12월 4일 태어났다. 1919년 2월부터 동지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다가,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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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오(金應五)[1885~1949]는 1885년 11월 2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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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출신의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 김재관(金在官)[1933~2017]은 1933년 경기도 화성군 남양읍에서 태어났다. 1956년 서울대학교 공과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정부초청장학생[DAAD]에 지원하여 서독 뮌헨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유학하였다. 1958년 석사를 졸업하였고, 1961년 박사를 졸업하였다. 독일 DEMAG사에서 근무하다가, 1964년 박정희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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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정헌(金正憲)[1876~1919]은 1876년 2월 7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화성시사』4권에 따르면, 직업은 대장장이였다고 전해진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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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학(金鍾學)[1885~1925]은 1885년 6월 5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고, 면장 김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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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김세열(金世烈)이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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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김세열(金世烈)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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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흥렬(金興烈)[?~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의 휘하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고향인 팔탄면에 돌아와 천도교 전도사가 되었다. 1910년에는 수원교구 순회교사가 되었으며, 1918년에 천도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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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흥복(金興福)[?~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이 주도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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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삼(金興三)[1882~1938]은 1882년 2월 18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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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식(金興植)[1893~?]은 1883년 12월 22일 태어났다. 김치덕(金致德)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흥식은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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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병상(盧秉相)[1891~1982]은 1891년 9월 2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신남리이고, 부천군(富川郡) 대부면(大阜面)에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1일 김윤규(金允圭)·홍원표(洪元杓)와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부천군 대부면의 김윤규의 집에서 천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어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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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발안면 출신의 문학가이자 대학교수. 마광수(馬光洙)[1951~2017]는 1951년 4월 14일, 6·25전쟁 중 1·4 후퇴로 서울에서 피난가던 중 경기도 화성시 발안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군속 사진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화천·인제·양구 등지를 오가며 살았다. 마광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안전 사고로 사망하였고, 1학년 말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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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상익(文相翊)[1893~1960]은 1893년 7월 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10번지이다. 남양의 사립 보홍학교에서 1년여 동안 신학문을 배운 뒤, 1911년 8월부터 1916년 11월까지 경성토지조사국의 기사로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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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용운(閔用云)[1876~1929]은 1876년 6월 25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91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만세시위 도중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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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광남(朴光男)[1896~?]은 1896년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태어났다. 배재학당 3학년으로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1일, 서울 중구 서소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박광남 등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소공동을 거쳐 충무로 방면으로 행진하여 조선총독부까지 이르렀다. 조선총독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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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장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석진(朴錫鎭)[1896~1934]은 1896년 12월 1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14-1번지[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장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반월면은 일제 강점기에 수원군에 속하였는데,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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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호(朴永鎬)[1899~1994]는 1899년 1월 1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8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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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낙열(白樂烈)[1865~1937]은 1865년 12월 20일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에 천도교 남양교구 금융원이 되었으며, 남양교구 강습소를 설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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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순익(白順益)[1882~1963]은 1882년 9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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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었던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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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었던 송산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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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성호(宋聲浩)[1856~1919]는 1856년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세진(宋世振)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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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혁(宋鍾赫)[1868~1919]은 1868년 8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노인(宋老人)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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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완(申尙玩)[1898~1951]은 1891년 5월 6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용주사(龍珠寺)로 알려져 있다. 신장균(申章均)·전장춘(田章春) 등으로도 불렸다. 1917년 봄 용주사의 법계 시험에서 중덕(中德)으로 선발되었고, 불교계 최고 교육기관 중앙학림(中央學林)에 진학하여 학생대표, 유심회(維心會) 회장 등의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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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발생한 청소년 수련 시설 화재 사건. 씨랜드청소년수련원화재사고는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지금의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청소년수련의집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이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 교사 4명 등 총 23명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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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상용(安相鎔)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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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의 둘째 아들이자, 안명순(安命淳)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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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의 첫째 아들이자, 안관순(安官淳)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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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린(安鍾麟)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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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봉순(安鳳淳)[1894~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김덕용(金德用)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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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순국한 안경순(安慶淳)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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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순원(安順元)[1886~1950]은 1886년 3월 1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681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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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유순(安有淳)[?~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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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안종환(安鍾煥)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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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종락(安鍾樂)[1871~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안종린(安鍾麟)·안종환(安鍾煥)·안정옥(安政玉)·안종엽(安鍾燁)·안종후(安鍾厚)·안진순(安珍淳)·안필순(安弼淳) 등과 함께 3월 25일 향남면 발안리에서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4월 5일 향남면 발안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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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무순(安武淳)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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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정옥(安政玉)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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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정옥(安政玉)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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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종후(安鍾厚)[1889~1919]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옛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제암리교회 권사이다. 1911년 제암리교회 설립에 기여하였으며 홍원식과 구국동지회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25일 안종린(安鍾麟)·안종환(安鍾煥)·안정옥(安政玉)·안종락(安鍾樂)·안종엽(安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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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의 진상을 전한 전동례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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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락(安鍾樂)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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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순서(梁順西)[?~1919]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 출신이다.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순서 또한 2천여 명의 군중 가운데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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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대현(呂大鉉)[1918~1991]은 1918년 4월 4일 태어났다. 1941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재학 당시, 일본에서 항일 비밀결사 효민회(曉民會)를 이끌고 활동하던 최홍준(崔弘俊)과 만나게 되었다. 최홍준은 여대현에게 일본에서의 민족 차별의 실상에 대해 전해들었고,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여대현과 최홍준은 독립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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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출신의 배우. 여운계(呂運計)[1940~2009]는 1940년 2월 25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서 출생하였다. 무학여자고등학교 재학 당시 방송반과 합창반에서 활동하였다. 195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진학하여 대학극회 단원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낙훈·이순재·오현경 등과 함께 ‘대학극 1세대’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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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출신으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예술인(體育人)은 시각·공연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화성지역에는 한국예총화성지회가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동탄문화센터 2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하에 문인협회, 미술협회, 국악협회, 음악협회, 무용협회, 사진협회, 연극협회, 연예예술인협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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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 오병훈(吳炳訓)[1884~1910]은 1884년 3월 1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행정리이다. 1908년 6월 1일 박영진(朴永眞)과 함께 경기도 수원군 안중면[현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출신인 정헌진(鄭憲鎭)으로 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6월 10일 수원군 매곡면(梅谷面)의 조병철(曺秉喆)에게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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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장.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서 의병을 일으킨 우용안(禹龍安)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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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유성구(劉成九)[1881~?]는 1907년 11월 30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읍 발안장(發安場)[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에서 홍순래(洪順來)의 권유에 따라 진희서(陳希西)·김선여(金先汝) 등과 함께 궐기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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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장. 유현서(柳鉉西)[1882~1909]는 1882년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 유순만(柳順萬)으로도 불렸다. 1907년 음력 8월 김형직(金衡直) 의진에 가담하였다. 동료 의병 7~80여 명과 함께 총기를 들고 1907년 음력 10월까지 충청북도 보은·연풍·문의 등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의병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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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남한과 북한의 전쟁. 1945년 8월 15일 한국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한반도에는 38선을 경계로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좌우합작 등 통일된 민족 국가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1947년 이후 미·소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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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화성 지역 일대에서 일제의 만행에 맞서 전개한 무력 항쟁.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한국인의 자립권과 생존권이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외세를 쫒고 나라의 자립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한말 영국 기자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는 『자유를 위한 투쟁[The Fight For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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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경백(李敬伯)[?~1919]은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우정면사무소의 집기 및 문서를 파괴하였다. 이어 시위대는 화수리(花樹里)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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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송곡리 출신의 예술인. 전문적인 세습 재인(才人) 출신. 부친 이재학(李在學)과 조부 이하실(李夏實)이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가(歌)·무(舞)·악(樂)을 담당하는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都大房)이었다. 모친은 해주 오씨(海州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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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행정리에 거주하며 『우리동네』 연작을 집필한 소설가. 이문구는 산업화 과정 속에서 소외된 농·어촌, 도시 외곽의 사람들 삶에 관심을 두고, 산업화에 소외된 이들의 삶을 그들의 언어와 삶의 양식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소설가이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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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1994년까지 경기도 화성·수원 지역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이춘재가 저지른 14건의 살인 사건. 이춘재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이춘재가 경기도 화성군[지금의 경기도 화성시]과 수원시,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에서 저지른 살인 사건이다. 2019년 9월 18일 범인 이춘재가 특정되기 전까지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다.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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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일어난 3·1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전도선(全道善)[1892~?]은 1892년 12월 4일 태어났다. 전도산(田道山)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8일에는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이 일제 경찰에 제압당하는 중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쏜 총에 어깨를 맞는 일이 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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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용가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정재만(鄭在晩)[1948~2014]은 1948년 3월 4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65년 송범무용연구소를 운영하던 송범의 문하로 들어가, 클레식 발레·모던 발레·민속무용[스페인 및 남방 무용]·한국전통무용 등을 배웠다. 1968년 서라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하여 김백봉에게 사사받았다.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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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진희서(陳希西)[1883~?]는 1883년에 태어났다. 1907년 7월 24일,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7월 31일에는 군대해산 조칙을 순종을 통해 내렸는데, 나라의 무장력이 해체된 상황에서 대한제국 군인들은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진희서는 1907년 음력 11월 30일 유성구(劉成九)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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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출신으로 체육 분야에 종사하는 자. 체육인은 체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올림픽·아시안게임·전국체육대회 등 각종 체육 대회 및 각종 리그에 출전해 각기 맡은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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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화성독립운동아카이브에는 음덕[마도] 출신이라고 되어 있으나, 판결문에는 안성시 원곡면 거주라고만 언급되어 화성과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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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던 쿠니사격장을 폐쇄하고 매향리평화생태공원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한 매향리 주민들의 투쟁. 매향리(梅香里). 한반도 중서부 경기도 서남해안에 자리한 서해안의 작은 농어촌 마을이다. 화성시 우정읍 관할 행정 구역이며, 서남쪽으로 아산만에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남양만과 접하고 있다. 매향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농지를 일궈 쌀을 생산하였고, 염전을 조성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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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공방.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그릇 푸레독과 푸레도기를 복원·제작하는 업체이다. 한미요 배씨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마를 운영하는 배씨 흙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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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운평리 출신의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한백응(韓百膺)과 차수정(車洙貞) 사이에서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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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 홍건(洪建)[1838~?]은 1838년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안창식(安昌植) 등은 이를 반역행위로 보고 일제와 개화파 관리를 처단하기 위하여 의병을 모아 봉기하였다. 안창식 등은 1896년월 1월 2일 지방 유생들과 함께 180명의 민병을 이끌고 홍주 관아에 집결하였다.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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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 출신의 서양음악가.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대한제국 말기 주사(主事)를 지낸 홍준(洪埻)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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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석우동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문학가.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닌 홍철유(洪哲裕)이며,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백부 홍승유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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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계 지도자. 부친은 구한말 개화파 관료 홍정후(洪正厚)이다. 모친은 한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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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홍원식(洪元植)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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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현주(洪顯周)[1883~1945]는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송교리[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출신이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光復團)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연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1916년에 가입하였다. 홍현주는 충청도 지방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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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묘소가 있는 독립운동가. 부친은 황윤조이며 자작 및 소작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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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황칠성(黃七星)[1894~?]은 1894년에 태어났다. 황칠성(黃七成)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송산면 사강리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6일 부터 시작되었는데, 황칠성은 이태순(李泰順)의 권유를 받고 3월 28일 독립만세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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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대한적십자회에서 간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조직한 대한적십자회가 3·1운동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20년 간행하였다. 식민지 조선에는 한국 적십자회를 흡수한 일본 적십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적십자회는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