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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천가에 수구막이[수구가림] 마을 숲이 있어 가림천(佳林川)이라 하였고, 여기에서 가림리라는 지명이 나왔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두미면에 속한 곳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탄곡·은천·내동[선인동]·사인동·옥산을 병합하여 진안면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진안읍 가림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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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섬 동쪽에 깊은 소가 있는데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하여 ‘가매쏘’라고 한다. 이 ‘가매쏘’가 음이 변하여 가막리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까마득히 먼 산골이라 해서 ‘가막이’라고 불렀던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여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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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갈산리와 용산리를 병합하고 각각 한 자씩 이름을 따 와 갈용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갈산리와 용산리를 병합하며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용담댐의 건설로 갈거·무거·조포만 남고 경내의 전 마을이 수몰되었다. 수몰 이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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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현리는 마을 뒷산에 칙이 많고 베루[벼랑]를 왕래한다 하여 ‘갈베루’ 또는 ‘갈연’, ‘갈현’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탄전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산상정리·신전리·중기리를 병합하여 진안군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으로 전 마을이 수몰되었고, 이후 새로 마을을 조성하면서 중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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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정리는 계곡물이 마을 한가운데로 흘러 소가 이뤄져 강창리(江昌里)라 부르다가 몇 차례의 수재를 겪자 일제 강점기 때 강정(江亭)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천안 전씨·영산 신씨·동래 정씨·남양 홍씨·연안 송씨 등 5개 성씨에 의하여 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마령면의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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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큰 바위가 있으므로 ‘거석’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진안군 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페합에 따라 금계곡·사인암·금평·마곡과 삼북면의 벌리 일부를 병합한 후 거석리라는 이름으로 부귀면에 편입되었다. 거석리는 남북으로 기다란 모양이다. 북으로는 운장산의 한 등성이가 남으로 내려와 갈라져 동으로는 북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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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기존의 다섯 리를 병합하였는데, 그중 계남리과 서비산리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계서리라 하였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마령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방화리·계남리·갈마리·오동리·서비산리를 병합하여 마령면 계서리라 하였다. 계서리는 내동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동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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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부귀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소속 금산사의 말사. 사찰 측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672년 원효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주지의 말에 따르면 1923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25년에 진안의 관공서 건물을 해체하면서 그 해체된 나무를 절골 신도들과 진안군 신도들이 짊어지고 메어 날라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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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일(李天一)를 시조로 하고, 이공원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공주 이씨의 시조는 이천일(李天一)로 『을축보(乙丑譜)』에 의하면 A.D. 53년(신라 박혁거세 5) 중국한나라에 들어가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에 올랐고, 흉노(匈奴) 정벌에 공을 세워 요동백(遼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신라로 돌아와 여러 벼슬을 거쳐 공산군(公山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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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렁들을 끼고 이뤄졌으므로 한자로 ‘구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안군 정천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다시 상전면으로 편입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모든 마을이 수몰되었고, 금당 마을과 세동 마을은 산기슭에 새로 조성되었다. 고산 줄기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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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니리(曳泥里)[예리구미]의 ‘구(龜)’에 ‘용(龍)’를 임의로 더하여 구룡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여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암곡리[바우실]·석곡리[돌고개]·예니리를 병합하여 구룡리라 하고 진안면으로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진안읍 구룡리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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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운봉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회군하는 길에 임실 지역 상이암에서 진안 지역 마이산을 향하는 길에 산수가 수려한 이곳에서 장차 좋은 신하를 구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는 데서 구신리(求臣里)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조선 말 진안군 일서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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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이도 1동리(二道一洞里)·상도 2동리(上道二洞里)·상도 3동리(上道三洞里)·상도 4동리(上道四洞里)를 병합하였다. 군내면 상도리에서 유래하였으므로 ‘군’과 ‘상’의 글자를 하나씩 취하여 군상리라 명명하였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군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이도 1동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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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군내면과 하도리에서 각각 한 글자씩 취하여 군하리(郡下里)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군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도 2동리·하도 3동리와 하도 1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하리를 만들고 진안면으로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진안읍 군하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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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세가 활과 같다 하여 궁항이라 하였으며 회시내골이라는 이름은 활의 화살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활목골 또는 궁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수암을 병합하여 궁항리가 되며 부귀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궁항리는 북쪽 운장산의 서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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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남계리를 가리켜 ‘남쪽으로 시내 건너’라 하여 남계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정(五井)·용정(龍井)·분토동·무등리의 일부를 병합한 뒤 남계리라 해서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으로 대운치를 경계로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와 접경하며, 대운치에서 갈라진 배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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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 있는 옛 절터. 『진안 군사』에 따르면 “사찰의 명칭은 흔히 정수암(晶水庵)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정확한 창건 연대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간혹 다른 기록에 보이는 내원암(柰院庵)이 아닌가 싶다”라고 하였다. 구한말 이석용 의병장의 『창의록』에도 내원사의 존재가 확인된다. 운장산의 남쪽 부귀면에서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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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노양리·보성리·괴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노양리와 보성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노성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노양리·보성리·괴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노성리를 만들고 진안군 안천면에 편입하였다. 용담댐 건설로 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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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촌리는 풍수지리상 나는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있다는 비안합로(飛雁合蘆)의 형국이라 갈거리 또는 노촌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진안군 일동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비사랑리·상미치리(上美峙里)·하미치리·마치리(馬峙里)를 병합하여 노촌리라 하고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백운면의 북동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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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산리(湖山里)와 능산리(能山里)를 병합하여 능산리의 ‘능’과 호산리에 있는 금곡[쇠실]의 이름을 한 자 따서 능금리라 하였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일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만들어져 진안군 동향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는 국사봉이 군계를 이루어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와 접경하고, 동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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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전주-장수 간 길목에 위치하여 단령역(丹嶺驛)이 있었으므로 역말(驛村)이라 부르다가 단령과 사양동(斜陽洞)의 이름을 따서 단양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도역촌·하도사양동·하도일동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역촌의 단령역과 사양동의 이름을 따 단양리라 하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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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량리와 대평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이름을 각 한 자씩 따서 대량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량리와 대평리 일부를 통합하여 만들어져 동향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서 구량천이 능금리로부터 흘러와 대량리의 중앙을 관류하여 남서쪽으로 흘러나가는데 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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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에 들이 넓다하여 대벌리(大伐里)라 하다가 뜻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대불리(大佛里)로 고쳤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평리[중리]·화성리[개화동]·백운동[처사동]을 병합하여 만들고 진안군 주천면에 편입하였다. 운장산에서 서쪽 금남 정맥을 경계로 하여 전라북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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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덕산 줄기인 추동 골짜기로부터 흐르는 물을 덕천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일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동·장재동·추동·신동[놋점이]·안방리·판치리·지소리[불명]·내동[불명]을 병합하며 덕천리를 만들고 마령면에 편입하였다. 만덕산 줄기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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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산 밑으로 큰 고개가 있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예로부터 이를 덕고개 또는 덕현이라 부른 데서 덕현리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진안군 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서촌(鳳棲村)·내동(萘洞)·윤기·동산리를 병합하여 덕현리라 하고 백운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은 내동산을 경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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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통리는 사방으로 길이 나 있다하여 도통이라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 이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지곡리(紙谷里)·산주리(散珠里)·중평리(中坪里)·음수동(飮水洞)을 병합해 만들어 성수면에 편입하였다. 내동산 골짜기로부터 북서쪽으로 길다랗게 펼쳐진 모양이다. 내동산 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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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창’이라는 명칭은 마을이 마령현 동쪽에 위치해 있고 사창(社倉)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창촌(倉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 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무등리(茂等里)·신리(新里)·석전리(石田里)·화산리(化山里)·은안리(銀安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동창리를 만들고 백운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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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령면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마령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당리[금촌]를 병합하여 동촌리라 하고 마령면에 편입하였다. 동북쪽으로는 마이산 서봉과 동봉을 경계로 진안읍 단양리와 접경하고, 북쪽으로는 처사봉·금당대·탕건봉을 경계로 진안읍 연장리와 접경하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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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태가 흡사 말(斗)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두남리(斗南里)라고 부른다. 조선 말 진안군 삼북면의 지역으로 매남이 또는 두남이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석성리(石城里)·회구룡동(回九龍洞)을 병합하여 두남리라 하고 부귀면에 편입하였다. 부귀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옥녀봉의 한 줄기가 남서쪽으로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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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그물로 자라를 잡는 형국인 어망곡(魚網谷)이 이포 쪽에 있고 척금 쪽에는 이목곡(梨木谷)이 있어 그물의 ‘망(網)’과 배꽃의 ‘화(花)’를 취하여 망화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되었다. 2000년 용담댐 건설로 망화리 전체가 수몰되어 현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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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모산리와 두산리를 병합한 뒤 모정이 있다 하여 모정리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일남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모산리와 두산리를 병합한 후 모정리를 만들어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용담댐 담수로 모정리 전 마을이 수몰되었으나 수몰민들이 용정과 정자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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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출신의 학자 이규형의 문집. 이규형(李圭衡)의 문집 『모현 시집』은 모현공의 유고(遺稿)를 아들 이한수(李漢綉)와 이한식(李漢植)이 정리하여 1994년 간행하였다. 번역은 황안웅(黃安雄)이 하였고, 출판은 최규영이 맡았다. 『모현 시집』은 단권(單券)의 인쇄본이다. 지질은 양지로 크기는 가로 19㎝, 세로 26㎝이다. 『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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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릉리는 원래 원래 어자리라 했는데 1940년경 현재 무릉리 입구 길목인 삼거리에 홍수가 나 ‘무이암’이라 새겨진 바위가 드러나게 되었으므로 ‘무릉’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다고 하여 무릉리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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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물곡리는 앞내가 거꾸러 거슬러 흐르는 것 같이 보이므로 물거실, 수도리 또는 물골, 문곡이라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도치·하도치·궁동·종평리를 병합하여 물곡리를 만들고 진안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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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송리에는 400여 년 된 반송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 소나무가 커지면서 소반 모양을 닮아가기에 마을 명칭을 반송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 말 진안군 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점촌(店村)·두원리를 병합하여 반송리를 만들어 백운면에 편입하였다. 북으로 선각산 줄기 갈미봉 서쪽 골짜기와 남으로 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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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반월리는 풍수상 운중반월(雲中半月)[구름 속의 반달]이라 해서 반월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두미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기리[산재]·송내리[솔안]·지소리[산수동]·고암리·금마곡[지매실]을 병합하여 반월리라 하여 진안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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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암리 주변에 차돌 바위가 많았기 때문에 흰바우 또는 백암리라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 일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번암리(磻岩里)와 백운동리를 병합하여 백암리라 하고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북으로 덕태산을 경계로 백운면 운교리·노촌리와 접경하고, 동으로는 금남 호남 정맥 줄기가 전라북도 장수군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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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화리에는 이화낙지(梨花落地)[배꽃이 땅에 떨어짐] 형국의 명당이 있다 하는데, 배꽃이 희므로 ‘화(花)’와 통하는 ‘화(華)’를 이용해 백화리(白華里)라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중화리(中華里)·이현리(梨峴里)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교통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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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인 봉란산이 채봉포란(彩鳳抱卵)의 형국이라 하여 마을 명칭이 유래한다고 한다. 조선 말 진안군 내면의 지역으로 봉란산 밑이 되므로 봉이알 또는 봉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미곡·소태정·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리라 하고 부귀면에 편입되었다. 봉암리는 전주~진안 간 국도 26호선이 보룡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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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리와 학산리 일부를 병합한 후 봉산리와 학산리에서 한 자씩 글자를 따서 봉학리라 불렀다 한다. 조선 시대 용담현 지역이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용담군 일남면 관할 구역으로 지정한 봉산리(鳳山里)[샛담·양지담·주막담]와 학산리(鶴山里)[가리점·학골·맞바위·항가골·상조림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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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金阜)를 시조로 하고, 김만서(金晩緖)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사천 김씨의 시조는 김부(金阜)로 신라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며, 고려 때 무신인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시조 김방경(金方慶)의 5세손이다. 『정유보(丁酉譜)』에 의하면 사천 김씨의 옛 관향은 안동이었는데, 고려 말에 김방경의 현손인 김제안(金齊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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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긴 각석(刻石). 1895년 을미 횡액 이후 남학의 교도들이 칠성대에 숨어들어와 제단을 쌓고 기도터로 ‘산왕단(山王壇)’이라는 큰 글씨로 새겼다. 칠성대에 오르면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바위에 굵은 글씨로 내려 써 내려간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남학 교도들이 이곳 칠성대에 숨어 들어와 단을 쌓고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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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락리에는 안자동이 있는데, 안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에서 뜻을 취해 삼락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삼락리는 용담군 일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안락리(顔樂里)·승금리(勝金里)·지장리(智藏里) 및 이북면 보성리(保城里)를 병합해 안천면에 속하게 되었다. 2001년 용담댐 건설로 모든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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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리는 성주봉(聖主峰)과 천반산(天盤山) 사이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동면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천반리(天盤里)[장전]·성덕리[원행리]를 병합하여 성산리라 하고 진안군 동향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는 구량천을 경계로 동향면 자산리와 접경하고, 동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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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안군 외면의 지역으로 길게 뻗어 있는 가느다란 골짜기라서 가늘목 또는 세동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진안군 외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적천리·덕봉리·우정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우정리를 병합하여 세동리가 되었고 이후 부귀면에 편입되었다. 세동리는 예로부터 전주-진안 간의 길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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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영묘사에 배향된 송병선이 제자인 진안에서 활동한 이덕응에게 써준 친필 유묵. 송병선(宋秉璿)[1836~1905]은 송시열의 9대손으로 대사헌을 지낸 인물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순절하여 많은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다. 1900년에 궁내부 판임관으로 임명된 이덕응이 송병선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송병선 친필」은 1897년에 송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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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초등학교. 송풍 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고운 심성을 지니고 바르게 행동하는 세계 문화 시민 육성’이다. 세부적으로는 창조적 지식 탐구, 충·효·예의 실천, 공동 선 추구, 강건한 체력이라는 교육 목표를 갖고 있다. 기초 학력을 증진하고 창의성을 계발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기르며, 질서와 준법을 존중하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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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현리(松峴里)와 풍덕리(豊德里)를 병합하였는데, 각 한 자씩 따와 송풍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말 용담군 일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현리와 풍덕리를 병합하여 송풍리라 하고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이후 송풍리는 용담면에서 유일하게 수몰 지역에서 제외되었고,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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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안읍 쪽에서 볼 때 진안천의 동쪽이라 해서 대일리(垈一里)를 수동리라고도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동리로 명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 진안군 탄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산정리·대일리·내송리(內松里)·외송리(外松里)를 병합하면서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으로 대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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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자천이 원장 마을 앞을 흐를 때는 수성천이라 하였는데, 때문에 마을을 수천동 또는 수동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에서 수천리라는 이름이 나왔다. 조선 말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원장리를 병합하여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되었다. 원장·하거·송림 등의 마을이 속하였다. 용담댐 건설로 수천리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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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항리는 황금리 등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합쳐서 정자천에 합수되는 곳이라는 뜻에서 ‘물목’ 또는 ‘수항’으로 불리다가 수항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야곡(夜曲)·대곡(大谷)·벌리(伐里) 일부를 병합한 후 수항리라 하여 부귀면에 편입되었다. 남북으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쪽은 운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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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을 통폐합할 때 신지동과 괴정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신괴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지리·괴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괴리라고 하여 안천면에 편입하였다. 고산의 한 갈래가 동진하여 싸리재·갈티재에 이르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동향면 자산리와 접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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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큰 마을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이후 새로 마을이 들어섰으므로 새터 또는 신기라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 일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곡리(內谷里)와 평지리(平地里) 일부를 병합하여 신기리라고 하고 성수면에 편입하였다. 신기리는 진안군에서 가장 작은 법정리이다. 내동산의 한 줄기인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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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학리(松鶴里)와 신풍리(新豊里)를 병합하며 이름에서 각 한 자씩 따서 신송리(新松里)라 했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학리·신풍리와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신흥리와 오공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송리라 하고 진안군 동향면에 편입하였다. 동쪽으로는 영구산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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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중에 암석이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옛 기록에 ‘신암(薪巖)’이라 한 것으로 보아 땔나무나 험한 바위를 뜻하는 이름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조선 말 진안군 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전(大田)·유동(楡洞)·신암(莘岩)·임하(林下)·반전리(盤田里)를 병합한 후 신암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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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양리(鳳陽里)와 신창리(新昌里) 일부를 병합한 후 이름에서 각 한 자씩 따서 신양리라고 하였다. 조선 말 용담군 일서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양리와 신창리 일부를 병합한 후 신양리라 하였고 진안군 주천면에 편입하였다. 그 후 용담댐 건설로 광석 마을 전부와 금평 마을·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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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소속한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정리 일부와 신리를 병합하였는데, 이름에서 각 한 글자씩 따 신정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진안군 외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승·방각·외판치리와 가정리 일부, 일북면 신리와 서촌을 병합하여 신정리를 만들고 진안군 부귀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은 잔승 마을 뒤 용마봉을 경계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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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연장 마을 앞은 풍수지리상 마을 숲이 있고 연못을 조성하여 연정리(蓮汀里)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연장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일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평리(大坪里)[한들]·동리·연지리·대연장 2동·관암리를 병합하여 연장리라 하고 마령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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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돈암공 휘 기열 행록」에 의하면 정미년[1907]에 27지사와 더불어 구국의 기치를 들고 가재를 방매하여 병기를 모아 의병에 가담하였으며 기미년[1919] 3·1 운동 때 진안군의 주모자로서 태극기와 선언문을 양손에 들고 적병 속에 돌진하여 큰 소리로 꾸짖어 일제 만행을 꾸짖었다. 본관은 함양(咸陽). 증조할아버지는 동몽교관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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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김종한이 찬한 「옥은공 오도한 묘갈명」에 의하면, 1884년 진사시에 장원하고부터는 다시는 진사[벼슬에 나아감]를 생각하지 않았다. 형제와 함께 경서를 탐독하고 후진에게 의로써 훈몽하니 가문이 화기가 있었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운서(雲瑞). 증조할아버지는 오명일(吳命一)이고 할아버지는 오수원(吳守源)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을 지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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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속하는 법정리. 다섯 봉우리의 산에 둘러싸여 있어 오룡동이라 하였으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오룡리라고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의 외면에 있는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정리와 내면 오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한 후 오룡리라 하고 부귀면에 편입하였다. 북쪽은 주화산 줄기가 흘러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부귀면 봉암리와 접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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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천리 냇가에 머귀풀이 많아 머우내라 불렸다. 머위의 한자는 오동나무 오(梧)와 통용되므로, 한자로 오천리라 하였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동쪽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현리와 평촌을 병합하여 오천리라 해서 진안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진안읍 오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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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길을 따라 흐르는 내[川]가 있어 거리(渠里) 또는 옥과 같이 ‘맑은 내’라 하여 옥거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운교리를 병합하고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으로 전 마을이 수몰되면서 수몰 이주민을 중심으로 댐 주변에 옥거리라는 이름의 마을을 새로 조성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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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서남쪽에 있는 까끔날이 용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와룡리라 했다고 한다. 조선 말 용담군 군내면 와룡리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로 개편되었다. 1996년 용담댐으로 수몰이 되기 전까지는 와룡 마을에 65호, 신정 마을에 23호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용담댐 담수로 인하여 전 마을이 수몰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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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여 그 지형이 마치 활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외궁리의 위치가 활목 또는 활목의 바깥쪽에 해당되므로 외궁리라고 하였다. 조선 말 진안군 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리(新里)·외궁리·상촌과 이서면의 중기(中基)·점촌 일부를 병합하면서 성수면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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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을사조약 이후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용담 향교의 전교 임병도(林炳棹)가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여 용강 학교를 설립하였다. 용강 학교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근대 학교의 설립이 추진되고 향교가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상황에서 1906년 소학교령이 폐지되고 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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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전북 역사 문화 학회에서 편찬한 용담면의 향토지. 『용담 면지』는 조선 시대에 간행된 각종 역사 지리지를 근간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용담댐 건설로 변화한 용담면의 현황을 기록한 향토지이다. 『용담 면지』는 용담댐의 건설로 용담현 터, 태고정 등 문화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전북 역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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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중학교. 용담 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고운 심성을 지니고 바르게 행동하는 세계 문화 시민 육성’이다. 세부적으로는 창조적 지식 탐구, 충·효·예의 실천, 공동 선 추구, 강건한 체력이라는 교육 목표를 갖고 있다. 기초 학력을 증진하고 창의성을 계발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기르며, 질서와 준법을 존중하고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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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덕리는 평소 물이 부족하여 건천리(乾川里)로 불렸으나, 어느 날 용왕께 비를 내려달라고 염원하자 비가 내려 용덕(龍德)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서면의 신창리(新昌里) 일부를 병합하고 진안군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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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평리와 운용리를 병합하며 이름에서 각 한 자씩 따와 용평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남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평리와 운용리를 병합하여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하였다가 1987년 1월 1일 상전면으로 편입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어 성주봉의 동쪽 끝자락 용담 호반에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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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동과 반룡리를 병합할 때 ‘반룡’과 ‘포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용포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말 진안군 이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외리·하외리·포동·반룡리를 병합하고 용포리라 하여 진안군 성수면에 편입하였다. 진안군과 전라북도 임실군 사이의 협곡에 길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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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교리 가운데 있는 산의 형국이 운중반룡(雲中盤龍)의 형상인데 그 앞에 다리가 있어 운교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진안군 일동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천리(酒泉里)·신전리(薪田里)·원산리(圓山里)를 병합하고 운교리라 해서 백운면에 편입하였다. 백운면의 중앙에 동서로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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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장리(雲藏里)와 구평리(九坪里)를 병합한 후 운장과 구봉산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운봉리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일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운장리와 구평리를 병합한 후 운봉리라 하고 진안군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주천면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서쪽의 복두봉 줄기가 동북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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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구운(九雲)·유산(乳山)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운산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상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사동·언건리·송대리·유산리·구운리·신흥리를 병합하여 상전면에 편입하였다. 1987년 1월 1일 상전면에서 진안읍으로 편입되었다. 운산리는 부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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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용담면, 부귀면 등 운장산 주변의 지리, 역사, 문화 등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 보고서. 운장산과 더불어 살았던 삶속에 녹아 있는 가치관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분야별로 조사되었다. 또한 운장산 주변[주천면, 정천면, 용담면, 부귀면]의 산세와 지형, 그 곳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비롯한 다양한 기이한 수목들이 어디에 분포하고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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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주자천이 반달처럼 에워싸 흐르므로 달계 또는 달기라고도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달계역의 존재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달계’라는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달계’의 ‘달’을 월(月)로 보고 월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전승으로는 벌판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닭이 우는 새벽부터 일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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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평리라는 이름은 원월평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운장산에서 뻗어 내린 옥녀봉의 맥이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있어 옥녀가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면 장군이 따라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하여 족답월(足踏月)이라 하다가 월평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말 진안군 상도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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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포리 앞을 흐르는 금강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졌다. 조선 말 진안군 탄전면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쟁토리(爭土理)·대구평(大丘平)·양지리(陽地里)·금단리(琴丹里)·항동(項洞)·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고 월포리라 하여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동쪽 고산의 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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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촌리에 있던 이산묘 재단의 아동 복지 시설. 6·25 전쟁으로 많은 전쟁고아가 발생하여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에 이산 애육원을 설립하였다. 1951년 1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8 이산묘에서 이산 애육원을 설립하여 당시 6·25 전쟁 고아들을 수용, 보호하였다. 1959년 12월 이산 애육원을 재단 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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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1624년(인조 2) 서울에 올라가 월사 이정구 문하에 들어갔으나 그 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가 공주로 파천하니 그 때 나이 15세에 지원병이 되어 충성을 다 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부친 전대승(全大昇)이 순절하자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안장하고 3년간 시묘하면서 병서를 탐독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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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출신의 유학자 이병항이 지은 문집. 전북 진안군 정천면 출신의 유학자이며 교육자인 이병항(李秉恒)이 1939년에 필사 편집한 문집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은(靜隱) 이병항(李秉恒)[1862~1946]이 자신이 저술한 시, 산문, 상량문, 행장, 논설, 연보, 산록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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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정천 면지 편찬 위원회에서 편찬한 정천면의 향토지. 『정천 면지』는 조선 시대에 간행된 각종 역사 지리지를 근간으로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용담댐 건설로 변화한 정천면의 현황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수록하였다. 『정천 면지』는 용담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이주해야 했던 주민들의 실상을 확인하고 과거부터 내려온 정천면의 역사를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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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있는 초등학교. 조림 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미래 사회 대비 경쟁력과 바른 인성을 지는 어린이’이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창의적이고 바른 인성을 지닌 어린이로 기르기 위해 “큰 꿈을 가꾸고 미래를 열어 가는 행복한 학교”를 학교 경영의 기본 방향으로 한다. 최종적으로는 ‘큰 꿈을 가꿔 가는 행복한 어린이’, ‘열정과 사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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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조포 마을에 있는 황단에서 순종을 추모하며 지내는 제례 의식.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조포 마을 황단제는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인 융희 황제[순종, 1907~1910]를 모시는 제례로 진안군 주천면 화양산 황단제 보다 늦게 설단 되었다. 1910년 융희 황제[순종] 재위 4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한일 병탄이 이뤄졌다. 그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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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 지역에서 향민들이 자치적으로 만든 향약 관련 전적. 전라북도에서는 정읍 고현 내 향약과 남원 원동 향약이 가장 오래 되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주천 향약의 경우 『주천 향약서』에 1700년대 광산 김상원이 창립하고 김기열이 글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주천 지역 「사립 화동 학교 설립 청원서」[이병항 찬]의 내용 중에 있는 “금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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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었던 근대 교육 기관.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학교 설립 분위기가 확산되고 기존의 교육 기관이던 진안 향교가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진안 지역에서는 새로운 학교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진안군청 주사 오정열이 주도하여 진안 향교의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여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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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는 향토 문화 예술 단체. 진안 향토 문화 예술 연구회는 진안 지역 문화 예술의 역사 등 향토 역사를 조사 연구하기 위해 미술, 문학, 국악 등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결성하였다. 진안 향토 문화 예술 연구회는 본래 진안 지역의 향토 작가 미술 초대전을 위한 진안 출신 미술인 모임인 진안 향토 작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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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 있는 남학(南學) 관련 유적. 1895년 남학 교주 및 간부 8명이 순교한 이른바 을미 횡액 이후 남학 교도들이 이곳에 숨어 들어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운장산 남쪽 계곡에 있는 칠성대는 넓은 바위 뒤에 자연석의 제단이 있어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던 곳이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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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 있는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긴 각석(刻石). 1895년 남학 운동을 주도한 남학 교주 및 교도 8명이 순교한 이른바 을미 횡액 이후 남학 교도들이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운장산 계곡에 숨어들어와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 칠성대인데, 칠성대 옆 바위에는 ‘칠성대(七星臺)’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남학의 5대 교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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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인. 하규일(河圭一)[1867~1937]은 본관이 진주(晉州)이고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한학을 배웠다. 당시 가객으로 이름 높은 작은아버지 하중곤(河仲鯤)[하준권(河俊權)]으로부터 가곡을 배웠으며, 19세에는 하중곤의 제자인 최수보(崔守甫)의 아래에서 배웠다. 명창 하순일(河順一)과 사촌이다. 1901년 한성 소윤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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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설화가 전해오는 배넘실 마을은 금지 마을이라고도 한다.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속한 자연 마을이자 행정 마을로 상전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8㎞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 수동리 원수동 마을, 북쪽으로 월포리 양지 마을, 서쪽으로 정천면 월평리 하초 마을과 인접해 있다. 해발 고도 260m에 위치한 배넘실 마을은 마을 뒤로 해발 500m 내외의 머구재를 비롯한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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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병자호란으로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김중정(金重鼎)은 한양을 떠나 주천면 주양리 주자천 유역에 와룡암(臥龍庵)을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와룡암은 전라북도 동부 지역 최초의 학당으로 300여 명의 제자들이 배출되어 기호학파의 맥을 이었다. 김중정의 9대손인 김태현(金泰鉉)은 와룡암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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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있는 사립 화동 학교에서 부르던 교가와 응원가. 화동 학교 교가 및 응원가는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 지역에 설립된 화동 학교에서 1908년에 부르던 노래이다. 김영로(金永輅)가 작사를 하고 허강(許岡)이 작곡하였으나 현재 악보는 전하지 않고 가사만 남아 있다. 주천 지역 최초의 신학문 교육 기관으로 사립 화동 학교가 설립되어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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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서 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진안 군수와 학부대신에게 발송한 청원서 초안. 진안 지역에서 1908년 사립 화동 학교가 설립될 무렵은 을사조약과 대한 제국 국군 해산 등으로 뜻 있는 인사들이 구국(救國)을 위해 각지에 낙향하던 시기였다. 전라도에서는 김우식(金宇植), 김영철(金永哲), 박문혁(朴文赫), 육상필(陸相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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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화양산에 있는 황단에서 올리는 제례. 화양산 황단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화양산 정상에 있다. 1919년에 수당(守堂) 이덕응(李德應)[1866~1949]이 순종의 윤허를 받아 ‘천(天)’, ‘지(地)’, ‘인(人)’ 삼극(三極)을 모시는 황단을 세웠다. 그 후 매년 8월 그믐 정오에 황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