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신치수는 진안 출신으로 문태서(文泰瑞)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신치수(辛致守)[?~?]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 초에 문태서 호남 의병단에 가입한 후 박춘실(朴春實) 선봉 부대에 배속되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각지에서 유격 활동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심우상은 문태서(文泰瑞)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심우상(沈尤相)[?~?]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문태서(文泰瑞)의 호남 의병단에 가입 가입한 후 박춘실(朴春實) 선봉 부대에 배속되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각지에서 유격 활동에 참가하여 전공을...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안왈오(安曰五)[?~?]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손상되는 상황이 도래하자 의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안왈오를 포함한 의병대들은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擧義)한 후, 전라북도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명을 이끌...
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 1907년 정미 7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그 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한국군마저 강제로 해산되었다. 유지명(柳志明)[1881~1909] 은 일본의 내정 간섭을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1907년 9월 초순경부터 스스로 창의 대장 또는 삼남 의병 대장이라 칭하고, 삼남 의병 대장의 인장이 찍힌 의병 소모 격문 1부와 의병 계칙(戒...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문태서(文泰瑞)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하준태(河俊太)[?~?]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문태서(文泰瑞)의 호남 의병단에 가입하여 박춘실(朴春實) 선봉 부대에 배속되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각지에서 유격 활동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 200여...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문태서(文泰瑞)의 호남 의병단에 가입하여 전라북도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한청여(韓淸汝)[?~?]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문태서의 호남 의병단에 가입한 후 박춘실(朴春實) 선봉 부대에 배속되었다.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각지에서 유격활동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 200여...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장.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장으로 완도와 해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황준성(黃俊聖)[1878~1910]은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에서 태어났다. 개항기 군인으로 참령에 이르렀으나 구식 군대가 해산되면서 집단 항의하는 데 동참하였다. 1907년 12월 체포된 후 평리원(平理院)에 의해 유배형 10년을 선고 받고 전라남도 완도에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