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설(李相卨)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아버지 이행우(李行雨)와 어머니 벽진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순오(舜五), 호는 부재(溥齋)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23대손이다. 이상설은 1876년 6세 때 승정원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의 양자가 되어 서울...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료인. 본관은 김해(金海). 고조는 김집(金鏶)이고, 증조는 김달한(金達漢)이며, 할아버지는 김상일(金相一), 아버지는 김태로(金泰魯)이다. 어머니는 전주유씨 유일양(柳逸養)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 권종우(權種雨)의 딸이다. 김만희(金萬熙)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독실하였으며, 김혁신(金赫信)의 문하에서 경사를 공부하였...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 김사혁을 기리는 비. 김사혁(金斯革)[1320~1385]은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로, 호는 절정(節亭)이다. 1345년(충목왕 1) 음서로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어 관계에 입문한 이래 병부낭시중과 계금위 등을 거쳐 동북면행영절제부사로 홍건적을 물리쳤고, 이어서 전라도원수와 양광도병마대원수로...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국가유공자.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김규원(金圭源)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51년에 사망하였다. 김영국은 어릴 때부터 문리에 통하였고 특히 전쟁놀이를 좋아했다. 지금의 삼수초등학교 전신인 신명학원에 다녔다. 가정이 극히 빈곤하여 짚신이 아까워 맨발로 뛰어서 학교를 다니는 근면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194...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중(致中), 호는 효운(曉雲). 상촌 김자수(金自守)의 17세손이다. 김윤제(金潤濟)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하여 경사(經史)에 두루 능통하였다. 고종 때 궁내부에 들어가서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서양 열강들의 이권 침탈이 격화되고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자 사직한 뒤 고향인 진천군 문백면 사양...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김장열·박명섭의 반공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1945년 해방 후 미·소 양군의 주둔으로 우리나라는 38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신탁통치 문제로 반탁(反託)과 찬탁(贊託)으로 양분되면서 우익 진영과 좌익 진영이 대립하게 되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사상적 대립을 하게 되었다. 1946년 5월, 가산리 폭동사건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에 있는 김현필을 기리는 비. 김현필(金賢必)은 이월면 내촌리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금구초등학교 설립 당시, 대지를 마련하지 못해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그동안 근검절약하여 모은 토지를 선뜻 희사하여 농촌 지역에 배움의 전당을 마련할 수 있도록 덕을 베푼 인물이다. 이에 금구초등학교 설립 후 김현필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김...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벌인 항일 민족 독립운동. 1894년 7월 청일전쟁 전후 일제의 군사적 침략으로 조선이 반식민지가 되자 한민족의 국권 회복 운동은 항일 의병전으로 시작되었고, 1904~1905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실력 양성을 위한 구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진천의 의병전쟁은 전기 의병기[1894~1896]에는 소극적인 항일...
-
구한말·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국가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 진천은 한반도 중부권의 교통 요지로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3·1운동과 그 후의 무장 독립 전쟁, 그리고 문화 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자 진천 지역에서도 무장 항일 투쟁이 전개되었다. 의병 투쟁 전...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실시하는 디지털 기반의 지적(地籍) 구축 사업. 디지털 지적구축 시범사업은 충청북도 진천군이 도내에서 최초로 추진하는 세계 측지계 기반의 지적 구축 사업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화상리 소재 화상지구 662필지 634,312㎡를 대상으로 한다. 이번 사업은 전액 국비를 투입하여 실시하는 사업으로 경계 설정과 그에 따른 면적 증감 및 청산 등을 면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운동을 하고, 1931년 상해로 망명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박기성(朴基成)[1907~1991]은 1924년 일본 동경에서 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찬진(丁贊鎭)·홍영유(洪永裕)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서 출생하였다. 청주농업학교 학생으로서 1919년 3월 진천의 만세시위를 준비하다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고 퇴학당하였다. 박승하(朴勝夏)[1924~1973]는 청주농업학교 재학 중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청주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모의하였다. 그러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1897년(고종 34) 1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항일운동을 하였고, 졸업 후 『시대일보』·『동아일보』·『조선농민』의 기자, 이사, 간행자로서 항일문화운동을 하였다. 박찬희(朴瓚熙)[1897~1972]는 일본 동경 조도전대학 정경학과에 재학 중이던 1...
-
1919년 3월부터 4월 초까지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충청북도 진천은 구한말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으로, 반제국주의 항일 의식이 국치 이후에도 잠재하고 있었다.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진천 출신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경...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된 정치가. 송필만(宋必滿)[1887~1978]은 1887년 12월 3일 지금의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에서 태어났다. 호는 명고(鳴皐)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신학문을 배우고자 일본에 유학하여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과 함께 항일 운동을 하면서 사우스웨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영희(申英熙)는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치옥(致玉), 호는 고송(孤松)으로 ‘신영희(申瑛熙)’라고도 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면서 진천군에서도 3월 15일과 4월 2일~3일에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신영희는 여기에 적...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원(中元), 호는 향농(香農). 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헌(申櫶)으로, 1833년(순조 33)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논실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친의 영향으로 정약용(丁若鏞)의 실학사상을 접하였으며, 초기적 개화론자에 속한다. 1895년(고종 32) 세상을 떠났으며 묘는 강원도 춘천의 선영 아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동천(東川), 자는 윤수(允壽)이다. 전통적인 무반 가문의 후예로서 구한말 시위대에서 근무하였다. 군대해산 뒤 만주와 북경,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으며,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신팔균(申八均)[1882~1924]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의 손자이며 한성부판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신민회 계열의 항일비밀청년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에도 노력하였다. 오상근(吳尙根)은 1909년에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항일 비밀청년결사 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남형우(南亨祐)·안희제(安熙濟)·신팔균(申八均)·신채호(申采浩)·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옥동초등학교에 있는 장학비. 조광호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배움이 적었는데 조광호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가난을 이기고자 열심히 상업에 종사한 조광호는 가세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때 번 돈을 교육 사업에 기부하기로 결심한다. 10㎞ 이상 떨어진 읍내 학교에 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애국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한국전쟁 당시 후퇴 중이던 우리 국군은 북한군 을 맞아 진천의 문안산(文安山)과 봉화산(烽火山)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을 섬멸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6·25격전지 반공투사 위령비는 당시 진천지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애국 용사들의 숭...
-
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병한(尹炳漢)은 본관은 칠원(漆原), 호는 중암(重岩)이며, 1873년(고종 10) 3월 20일 충청남도 당진군 순석면 갈산리에서 출생하여 1932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참위인 윤병한은 일제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 항일전에 참여하다가, 한일병합 후 고향인 진천으로 돌아와 농민 계몽운동...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효자. 이교영(李敎永)은 본관이 성주(星州)로, 1890년(고종 27) 외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태어나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이교영은 평소 효성이 지극했는데, 42세가 되던 1931년 3월 어머니가 음성의 친정에 갔다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한 달 여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육영 독지가. 이병화(李秉華)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학으로 한학(漢學)을 익혀 칠서(七書)를 섭렵하는 한편, 일찍이 약관의 나이 때부터 상업에 종사하여 거금을 모았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 성공회의 임인재(任寅宰) 신부가 학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병화의 공적을 기리는 비. 1930년 삼수초등학교의 전신인 신명심상소학교는 운영비가 크게 부족하여 문을 닫아야 하는 비운에 놓이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병화(李秉華)가 1938년 아들 이윤섭과 상의하여 전답 3만 50여 평[당시 소 한 마리가 2원일 때, 2만 원 상당] 100석지기를 기부하였다. 이로 인해 신명심상소학교는...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870년(고종 7)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전 이조참판 이용우(李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고종 31) 이상설(李相卨)은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기리는 유허비.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고,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3월 니콜리스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광복장[현재의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유(舜有) 또는 민정(民庭). 1878년(고종 15) 3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3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상직(李相稷)[1878~1947]은 백부 이용우(李用雨)의 손에서 자라다가 이교중(李敎重)에게 입양되었고, 이상설(李相卨) 또한 이용우에게 입양된 관계로 그는 이상설을 종형이라 부르면서 숙식과 수학을 같이하고 추종...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영호(李榮鎬)[1899~1974]는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자, 진천군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윤병한(尹炳漢)·정관옥(鄭寬玉)·오은영(...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호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호신(李鎬臣)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천석지기의 부농이 되었으며, 많은 재산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1940년 상산초등학교는 현재의 삼수초등학교 터에서 28년을 지내오는 동안 협소한 부지와 노후한 교실로 인해 학생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수명(任壽命)[1894~1924]은 독립운동가 신팔균(申八均)의 아내로, 남편과 함께 만주에서 대한통의부단원으로 활약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남편 순국 후 자진하였다. 임수명은 1912년 서울 모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 경찰에 쫓겨 환자로 위장하여 입원했던 신팔균을 알게 되어, 2년 후 그와 결혼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일(延日). 본명은 정영택(鄭永澤), 호는 학주(學輈), 자는 성장(性長)이다. 1873년(고종 10) 12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서 출생하였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을 하다 합방이 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사변 뒤에는 상해에서 동아국제연맹을 조직,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광복후에도 남북통일기성회 회장으...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다. 정우섭(鄭友燮)은 학문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한 학자로서 1932년 『상산지(常山誌)』를 저술하였다. 상산(常山)은 진천의 다른 이름이니, 『상산지』는 곧 진천의 읍지(邑誌)이다. 현재 『상산지』는 1825년(순조...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죽계사 창건기를 쓰고 『상산지(常山誌)』를 서술한 송강의 8세손인 정재경(鄭在褧)의 고손이다. 정운하(鄭雲夏)는 고종 대에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 연구에 힘써 박학 통달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이루어지자 사설 서숙을 세워...
-
1950년 7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일어난 전투. 6·25전쟁을 도발한 북한군 주력부대는 6월 27일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하여 7월 3일 한강 방어선을 뚫고, 경부국도를 따라 남진하는 한편 경부국도 동쪽으로는 북한군 제2사단이 국군 제6사단 제19연대를 밀어제치고 이천, 장호원, 진천을 향하여 남진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의 이른바 제3차 침공계획을 보면, 중부 서쪽의...
-
1919년 3월과 4월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전개된 3·1운동.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1운동이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에 파급되었다. 충청북도 진천 출신 재경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은 서울에서, 박승하[청주농업학교]는 청주에서 각기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일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1919년 3월 15...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강(平康). 1910년(순종 4)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서 출생하였다.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뒤 상해로 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 복역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경도신문사 기자로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체포,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채수복(蔡洙福)[1910~1945]은 1930년 1월 16일 서울 협성실업학...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진천 출신 전몰군경들의 위패를 봉안한 탑. 본래 1945년 이후부터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진천 출신의 국군장병·경찰·군속 등의 호국영령 419위를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靈水寺)에 봉안하여 왔다. 이후 1965년 진천읍 읍내리 산3-2번지 정상에 충혼탑을 건립하고 458위의 영령을 봉안해 오다 1994년 6월 16일 현재 자리인 진천읍...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국민 태극기 물결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는 지역 사랑 행사. 진천군 태극기 물결운동의 주최 단체인 진천군 새마을회는 2008년 7월 30일에는 ‘장한어린이와 함께하는 1일 부모 되어주기 운동’을 벌여 관내의 불우어린이에게 복지공동체의 인식을 각인시킨 바 있다. 또한 버스정류장 가꾸기, 다문화가정 한국 전통문화 체험, 독거노인 어울 마당 등...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의거를 기념하는 비.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1910년까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강원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의병장이다. 그는 고향인 세교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유격전을 벌여 번개장군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진천 건설을 위해 전개하는 사회운동. Happy 진천운동은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점을 공유하고, 누구나 쉽게 행복한 진천 건설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 2015년 아름답고 살기 좋은 Happy진천시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전개되는 사회운동이다. Happy 진천운동은 Ha...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과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일원에 조성되는 미래형 도시.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계기로 지역의 성장 거점 지역에 조성되는 미래형 도시이다. 이전된 공공기관과 지역의 대학·연구소·산업체·지방 자치 단체가 협력하여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혁신도시는 모두 4가지 유형으로 건설되며 시도별 지역 산업과 연계된 도시별...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1889년(고종 26) 8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범바위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만주에서 한족회 간부로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에 대한통의부 지부를 설치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홍경식(洪景植)[1889~1961]은 1910년 일제가 나라를 강점하자 부친인 전 참판 홍승헌(洪承憲), 전 참판 정원하(...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 개항기 소론 양명학 계열의 문신으로 일제의 강점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한 우국지사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문일(文一), 호는 문원(文源). 정조 때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5세 종손으로, 고조할아버지 홍낙원(洪樂源)과 증조할아버지 홍경모(洪敬謨)가 모두 이조판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