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마을 주민 이규복[남, 83세]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가산사 터가 있는 곳에서 목조건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석조불상도 있었으나 도난당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가산사는 1900년대 초반에 이미 폐사된 절임을 알 수 있다. 진천읍 가산리 갬절이마을 북쪽 능선으...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갈월산성(葛月山城)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성인·홍계남이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여 이 성을 중심으로 싸워 왜군을 대파하였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했다는 설이 있다. 갈월산성의 건립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터.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보루로 추정되며, 남쪽의 엽둔재를 지키는 초소와 같다. 임진왜란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洪季男)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5리 엽둔재의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해발 371.7m의 봉우리 외...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강세황의 신도비. 강세황[1712~1791]은 1772년(영조 48) 61세의 나이로 영릉참봉이 되었고, 그 뒤 한성부판관·남양부사·병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천추부사로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정헌대부에 올랐다. 강세황은 79세인 1791년(정조 15)...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구릉지 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걸미산성(榤尾山城)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옹정마을 위에 있는 해발 약 80m의 낮은 구릉지 야산에 위치한다. 동쪽에 ‘덕문이들’로 속칭되는 넓은 들판을 끼고 있고, 북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을 사이에 두고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과 마주보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도당산성(都堂山城),...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광혜원리 절터와 관련한 문헌 기록이 전하지 않아 사찰의 이름이나 내력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도로 확장 공사 때 광혜원리 절터에 있던 석조 불상 1구를 광혜원농협 앞에 보호각을 마련하고 안치하였다가, 관리가 어렵게 되자 1984년 인근의 광흥사로 옮겼다. 불상은 파손이 심하나 대좌와 광배에 고식...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 광흥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 산 2번지 광흥사 경내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이다. 본래 만승면 광혜원리 451번지 광혜원리 절터에 있었으나 1984년 지금의 광흥사로 이전되어 봉안된 것이다. 광흥사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 재질로, 파손과 마멸이 심하여 본래 모습을 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교성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기와 등은 발견되지 않으나, 진천 교성리 연화대좌의 양식으로 보건대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된다. 또한 소재지의 명칭이 탑골이고, 거대한 불상의 석조대좌가 전하여 오래된 절터였으리라 짐작된다. 남산의 북록에 위치한 지형으로 보아 북향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얼마...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에 걸쳐 있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국사봉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이 없어 산성의 명칭과 유래 및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인근 주민이 국사봉에 둥근 보루를 쌓고 난을 피하였다는 기록이 보일 뿐이다. 국사봉산성의 정상부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조망되는데, 특히 진천의 남서쪽, 즉 천...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일제강점기 유학자 김긍현의 불망비. 김긍현(金肯鉉)은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에서 출생한 유학자로, 1923년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4,000평의 부지를 기부하여 학교 설립에 공이 큰 인물이다. 김긍현 불망비는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전답을 희사한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2...
-
삼국시대 만노군(萬弩郡) 태수를 역임한 신라의 귀족.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소연(金消衍).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12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며, 아내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아들은 삼국 통일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金庾信)이고,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가 되었다....
-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은 상산임씨의 천년 세거지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신라 말의 인물인 임희를 시조로 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에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특정 성씨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주하여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산동마을 주민들도 천 년 세거지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연년의 신도비. 남연년[1653~1728]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란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일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으며, 1729년(영조 5)에 숭선군(崇善君)으로 추봉되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 기념물로 알려져 있으나,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글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만노산(萬弩山)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 절터. 문헌 기록이나 명문기와 등 절의 이름을 밝혀 주는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와 연혁은 알 수 없고, 빈대가 많아 절이 망하였다는 전설만이 전해 온다. 주변에서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어골문(魚骨文) 기와편이 발견되어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현재 칡넝쿨 등 수풀이 우거지고 절터에 이르는 길...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양천산(凉泉山)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 대운사 터를 고려시대 절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면서, 작은 암자와 목불, 그리고 석불이 남아 있는데, 이것들을 사람들이 수신과 기복의 목적으로 서로 보호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37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폐사된 사실은 기록하지 않고 양...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소속 교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결과 성립되어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으로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영국성공회·잉글랜드교회라고도 한다. 선임 주교이자 명목상의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다 같이 충성하고 「성공회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가 규정하는 교리와 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쇄된 후 중창되었는데, 『상산지(常山誌)』 신편에 따르면 찬의 조중우가 충청북도 진천으로 내려와 머물렀을 때 절을 건축하여 영은사로 일컫고 승도 수인을 두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광무 11년, 즉 1907년(순종 1)조창호가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 관계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의 도당산과 행정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산성. 도당산성은 진천군내 서편의 낮은 구릉지에 축조된 산성으로서 넓은 평야 지대를 이루는 진천 지역의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만노군의 치소(治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문헌 기록은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신통리·용정리 두타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삼국시대의 ‘도서성’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다. 도서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만노군(萬弩郡), 즉 지금의 진천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두타산에 있다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장군 실죽(實竹)이 도서성을 쌓고 백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백곡면 명암리 명심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50여m를 가면 오른쪽으로 조그만 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70여m를 가면 마을 사람들이 절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나온다. 이곳이 명암리 절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골짜기에 주춧돌과 같은 커다란 바위가 있는 대지가 있다. 지표조사 결과 기와편이나 토기편은 찾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문안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문안산(文案山)[420m]은 사방의 전망이 대단히 좋은 전략적 요충지로, 문안산성(文案山城)은 삼국시대에 이미 축조되어 주로 진천의 남쪽 방면을 방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진천군으로 진입하다 보면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사이의 속칭 ‘잣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시루봉에 있는 초기국가시대에서 일제강점기 절터. 백련암 터는 본디 길상사의 옛터로서, 일제강점기 백련암(白蓮庵)이란 작은 암자가 들어섰다가 이 암자도 없어지면서 빈터로 남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길상사가 태령산(胎靈山)에 있는 사찰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원서원의 터. 백원서원 터에는 현재 사적비가 세워져 있는데, 사적비에 따르면 조선 후기 문신 신잡(申磼)의 주도로 진천에서 학문과 효행이 높았던 인재(麟齋) 이종학(李鐘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 행원(杏園) 이부(李阜), 송애(松厓) 이여(李畬)의 4위를 모시는 서원을 건립하여 1699년(숙종 25)...
-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 관아에서 긴급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사전적 의미로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써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급히 전달하는 군사 통신 시설을 말한다. 봉수제의 유래를 보면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이미 상당히 정비된 봉수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삼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터. 봉암 향현사(鄕賢祠)는 조선 후기 진천의 대표적인 처사인 채지홍(蔡之洪)[1683~1741]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채지홍은 본관이 인천으로, 호는 삼환재(三患齋) 또는 봉암(鳳岩)이다. 16세 때에 송시열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문장과 성리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당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와 사석리 사이 봉화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봉수 터. 봉화산 봉수는 남쪽의 청주 것대산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음성 망이산 봉수로 연락을 취하던 간봉으로, 서쪽에는 문안산성(文案山城)이 있고 북쪽으로는 도당산성(都堂山城)이 있어 전략상 요충지에 세워진 봉수대였다. 『상산지(常山誌)』에 1731년(영조 7) 이인좌의 난...
-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탱(鎭川 靈水寺 靈山會掛佛幀)」은 본래 진천읍 상계리에 있던 백련암(白蓮庵)에서 1653년(효종 4)에 제작되었다가 백련암이 폐사되면서 지금의 영수사로 옮겨 왔다. 초파일 등의 중요한 행사 때 절 마당에 걸어 두고 많은 신도들이 한꺼번에 예불할 수 있도록 사용한다. 진천 지역 유일한 조선시대의 괘불탱으로 삼베에 채색으로 그렸으며 길이 8...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달마(...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사곡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은 없지만,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수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중악의 석굴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김유신이 진천에서 태어났다고 하여도 어린 시절부터 경주에서 생활하고 성장하였으므로 이곳을 김유신의 수도처로 보는 데는 무...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전적인 의미에서 사찰은 석가모니 등 다양한 종류의 불상을 모셔 놓고 승려들이 거처하면서 불도를 닦아 수양하는 한편, 불교 교리를 설함으로써 불교 신앙을 전파하고 개인 또는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곳으로서 일반적으로 절이라고 하며 사원(寺院)·정사·승원(僧院)·가람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전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진천송씨 선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 송인(宋仁)[?~1126]은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벼슬이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常山伯)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당 터. 서발한사당(舒發翰祠堂)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金庾信)과 그의 아들 김삼광(金三光)을 배향했던 사당이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기 전까지 서발한 김유신과 그의 어머니 만명부인 그리고 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의 목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1876년(고종 13)...
-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선사는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이른다. 현재 진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아서 당시의 구체적인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은 미호천 주변의 초평면 연담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 1점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이 이곳에 거주하였을 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군사상의 목적으로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城)이란 보통 성벽(城壁)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넓다.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나무로 만든 목책(木柵)과 돌로 쌓은 석축(石築), 벽돌로 쌓은 전축(磚築)이 생겼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다시 그 바깥에 네모꼴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성림사는 1979년 수풀 속에 싸여 있던 마애불이 발견되면서 세워진 사찰로서 절 앞의 편평한 밭에서 와편과 토기·자기편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옛 절터임은 분명하며, 고려시대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된다. 성림사는 이전에는 작은 약사전과 양옥의 요사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성석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산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 1㎞쯤 가다 보면 진천읍 성석리 지석마을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지석’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소개하는 유래비가 있다. 약 70여 년 전까지 백곡천(栢谷川)의 합수머리에 2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합목리 성주암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여래좌상.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합목리 산38번지[덕금로 599-19] 성주암 법당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70여 년 전 성주암을 창건한 승려 일향(一香)이 법주사에 있다가 성주암을 창건하기 전에 진천 영수사(靈水寺)로 옮겼는데, 그때 함께 갖고 온 불상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정황과 조각 수법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터. 본관이 순흥인 안동(安迵)은 1835년(헌종 1)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54세라는 고령으로 인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덕산읍 두촌리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70여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안동이 67세를 일기로 죽자 제자들이 1849년(헌종 15) 숭현사(崇賢祠)를 짓고 안동과 그의 할아버지인 농애(...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상 2구. 진천군 진천읍 이월면 신월리 되마루마을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898-1번지 도로 양편에 화강암으로 된 석상 2구가 있는데, 마을을 수호하는 석장승으로 보인다. 석상 1구는 반파된 상태이며, 전에는 하반신이 결실된 채 상반신만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상반신이 없어지고 예전에 결실...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 기념물로 알려져 있으나,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양백리 절터는 고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인근 마을에서는 양백리에 있는 절을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소재한 은적암의 산 너머에 있다 하여 속칭 ‘은적늠이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백리 절터에는 몇 가구로 이루어진 산촌...
-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연곡리 삼층석탑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김유신길 641] 비선골마을의 폐사지에 신축된 보탑사 지장전의 좌측에 모셔져 있다.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너졌던 석탑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결실된 부분이 많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기단은 이중기단이고, 3층과 상륜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보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588번지 보탑사 경내에 있는 화강암 소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곡리 절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탑사 삼층목탑 뒤 속칭 약수산 암반 위에 안치되어 있는, 118㎝ 높이의 결가부좌한 불상이다. 불상은 나발(螺髮) 형태의 머리 위에...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영수사는 918년(태조 1년)에 증통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확실한 문헌 기록이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절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처음으로 기록이 나타나는데 간단히 위치만 소개되어 있다. 1...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산 542번지 영수사 관음보전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백련암에서 옮겨온 것이라 하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높이 90㎝의 영수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목불로 도금이 되어 있고, 불두에는 근래에 제작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는...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리 고인돌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양암마을 75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점촌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2.5㎞ 내려가면 양암마을이 나오는데, 옥동리 고인돌은 마을 안 옥동초등학교 동쪽의 지방도 513호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위치는 199...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탑. 옥성리 사지탑은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동북쪽 산 아래 옥성리 절터에 있었다. 현재는 도난당하여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옥성리 절터를 1963년 처음으로 조사한 정영호 교수의 글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 부락에서 골짝으로 약 1㎞쯤 올라가면 노변 밭둑에 삼층석탑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상. 옥성리 석불좌상은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429번지 느랭이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06㎝ 높이의 옥성리 석불좌상은 마멸이 심하여 전체적으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불두의 나발(螺髮)이나 육계(肉髻)·백호(白毫) 부분의 구분이 어려우며, 상호(相好)의 눈·코·입·귀가 모두 마멸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 전적지.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부터 1910년까지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34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1910년 한봉수는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체포되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옥성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는 골재 채취 공장 맞은편에 위치한다. 옥성리 절터의 주변이 모두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유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절터에 대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 기록은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상산지(常山誌)』에 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구암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구암마을 774-3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약 15㎞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다가 나오는 구암마을 노인회관 뒤쪽 언덕 밭 가운데에 있...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용전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용전마을 64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약 2㎞ 가다가 왼쪽으로 넓은 논이 보이면서 나오는 용전마을 동쪽...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612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용정교를 지나면 초평면사무소가 있는 생곡마을에 이르는데,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초평면사무소 뒤 언덕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19...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용정리 절터는 삼국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명칭이나 내력은 전혀 알 수 없다. 용정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북쪽의 야산에 위치한다. 초평면사무소 바로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약 250m 가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 용화사(龍華寺)는 속칭 ‘걸미산 미륵당’이라 불린다. 용화사(龍華寺)는 1959년에 비구니 한자심이 신축한 절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절터로서 현재 거대한 석조미륵불입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서 석조여래입상이 발견되어 진천문화원으로 이전하였다가 최근 다시 경내로 이전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번지 용화사 경내에 있는 용화사 석조보살입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1980년 용화사 앞의 개울가에서 불두와 불신이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 그 후 복원되어 진천문화원 정원에 전시되었다가 다시 용화사 경내로 봉안되었다. 법주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원덕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 129번지[원동길 92]에 있다. 진천읍에서 진천상업고등학교 남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원동마을 어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m 가면 오른쪽 밭 가운데에 서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판석(板石)[널돌] 모양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언순의 정려 유언순은 7세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른과 같고 슬퍼함이 지나쳐 병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모 조씨(趙氏)에게도 효성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16세 때 아버지가 병이 나자 직접 약을 달여 드리고, 아버지의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
멀리서 보면 굴고개를 닮았다고 하여 굴테[일명 굴티]라고도 불리는 구산동마을은 크게 외구마을, 내구마을, 중리마을로 나뉜다. 진천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6㎞쯤 떨어진 양천산 연자봉 기슭에 터전을 잡고 있는 구산동마을은 왼쪽으로 미호천을 끼고 있다. 굴테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밖굴테 혹은 바깥굴테라고 불리는 외구마을은 전주최씨의 600년 세거지로, 조선 개국원종공신인 최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효자 이교영의 효자비. 이교영[1890~1976]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친가에 갔다가 병이 나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급해 왼쪽 장지를 끊어 어머니께 수혈하니 나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시 어머니가 병이 재발하자 왼쪽 무명지를 끊어 수혈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문 부부의 정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 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성문이 죽은 후 아내 정씨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운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목을 베어 치마에 싸서 귀향한 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묻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뒤를 따라갔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푼 이종천의 공적비. 이종천(李鍾千)[1922~1985]은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나 해방 후 덕산읍의회의원 및 진천향교장의(鎭川鄕校掌議) 등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종천은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의 도로가 협소하여 이용하기 불편하자 도로 개선에 앞장섰다. 그의 사후 7개 마을 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역참 터. 장양역(長楊驛)은 고려시대에는 충청도에 속한 주요 역참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청좌도 율봉도(栗峰道) 찰방 소속이었다. 1751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천현 역원 방리조에 의하면, 장양역은 말 15필과 역리 38명, 남자 노비 66명, 여자 노비 30명이 있었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자 터. 절정(節亭)은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인 김사혁(金斯革)[1320~1385]이 지사곡마을에 세운 정자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김사혁의 호가 절정(節亭)이다. 1345년(충목왕 1) 음서로 태관서승(太官署丞)이 되어 관계에 입문한 이래 병부랑시중(兵部郎侍中)·계금위(戒禁衛) 등을 거쳐 동북면행영절제부사...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소장된 정철이 명나라 황후에게 받은 술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의 원병과 함께 그 이듬해인 1593년 4월 1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정철(鄭澈)을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보내었다. 정철이 소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명나라 황제로부터 용연(龍硯)을, 황후로부터 옥배(玉盃)을 받았다. 현재 은배(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소장된 정철이 선조에게 받은 술잔. 조선 중기 선조(宣祖)가 즉위했을 무렵 조정은 동인(東人)·서인(西人)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이에 정철(鄭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선조에게 정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주벽(酒癖)이 심하여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고 모함하자, 선조가 정철에게 복숭아 모양으로 된 은배(銀盃)를 하사하여 하루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전반적인 주생활 행위를 의미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생활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 현존하는 주거 형태는 주로 19세기~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그 양식은 토담집과 일반적인 주거양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산서원의 터. 최석정(崔錫鼎)은 1671년(현종 12) 문과에 급제한 후 부제학·한성부판윤·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97년(숙종 23) 우의정이 되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 후 좌의정·영돈녕부사를 거쳐 1701년(숙종 27) 영의정에 올랐다. 만년에는 향리인 진천 초평면 금곡으로 물러나 태극...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에 있는 신라시대 절터. 지장사(地藏寺)가 지장보살을 모신 절이어서 마을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지장사 터에 관하여 『문화유적총람』에는 “고려시대에 지장보살을 모셨던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지금까지 지장골 절터라고 전해지는데, 사찰이 있었던 유지와 와편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지장...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잠덕산 지장사 터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지장사 터 부도는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산 40-8번지 옛 절터인 지장사 터에 있는 석종형 부도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도는 묘탑을 가리키는 것이며, 묘탑은 사리를 봉안한 탑이므로 이와 같은 종류의 탑은 모두 묘탑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묘탑, 곧 부도라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도당산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산천조와 사묘조에 “신라진평왕시 만로군태수 김서현 처 만명 임신 20월생 자왈유진 상태어현15리 화위신 인위태령산 자신라시 치사우춘추강향축행제 고려잉지지 본조 태조 8년 시정지 영소재관치제”라 하여 신라 때부터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덕숭의 정려. 조선 세종 때 한산군수를 지낸 김덕숭은 효심이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병환으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해서 지금의 백곡저수지 아래 여계소(女溪沼)에 내려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며칠간 기도를 올렸는데, 무릎 자리가 녹아 생긴 구멍으로 잉어 2마리가 나와 1마리는 살려주고 다른 1...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산 68-1번지 사자산 북쪽 절벽 바위에 새겨진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은 1982년 12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국가 소유로 진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은 사곡리 사자산, 속칭 장수굴이라고 불리는 자연 석굴 옆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에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번지 용화사 경내에 있는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공적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사후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옛 지명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산 7번지에 있는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에 조성되었으며,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국가 소유로 진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진천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목인 초평...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진천 대모산성은 616년(진평왕 38)에 백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모산성(母山城)으로 비정하려는 설이 있으나 대모산성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제강점기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상산지(常山...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는 강학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그리고 강당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향교골에 있으며, 진천읍 동남쪽 급경사면에 위치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채경언의 정려. 채경언은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살아나게 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연못가에서 사흘간 빌어 잉어를 구해 어머니께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각각 3년씩 총 6년간 시묘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인조 대에 정려(旌閭)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채수복의 묘소 및 사적비. 채수복[1910~1945]은 1930년 서울의 협성실업학교 재학 중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는데, 출옥 후에도 서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역참 터. 고려시대에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한 역참의 하나로 퇴량역(堆糧驛)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청좌도 율봉도 찰방 소속의 대랑역(臺郞驛)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진천현조에는, 민간에서 추량역(推糧驛)을 태량(台量) 또는 태랑(台郞)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와 문봉리 태령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태령산(胎靈山)의 정상부를 감싸고 돌로 축조한 산성인데, 이 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군중면 문봉리와 상계리 사이의 태장산에 있는 성지로, 국유림이며 봉평리 부락의 서쪽 작은 구릉에 있다. 석축으로서 둘레 150간, 높이 4척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평산리 고인돌군은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평사마을 12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신정리를 거쳐 문백면으로 가다 보면 성주머리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좁은 밭 한 가운데에 고인돌이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총...
-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외구마을은 일명 효자촌(孝子村)이라고도 불린다. ‘효자촌’이란 이명(異名)에서 알 수 있듯이 외구마을은 예부터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예의가 바르며, 부모님을 잘 섬기는 동네로 유명했다고 한다. 신중희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최유경, 최사흥 부자 효자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외구마을 오른쪽으로 나 있는...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고려시대 특수 행정구역 터. 부곡(部曲)은 신라 때부터 고려 말까지 있던 특수한 말단 지방 행정구역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인구가 적어서 군현에 미치지 못한 지역을 ‘향(鄕)’ 또는 ‘부곡(部曲)’이라 하여 군현에 딸리게 하였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향이나 부곡의 주민을 특수 천민 집단으로 단정하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진천읍 지암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 환희산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축조 경위 등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 환희산(歡喜山)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산성의 존재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산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