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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유학(幼學) 강검(姜儉)의 아내이다. 『진양지』권3「열녀조(烈女條)」에 따르면 정씨(鄭氏)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에 왜적들에게 항거하여 정절을 지키려다가 죽었다고 한다. 진주 가좌촌에 살았다고 한다. 중종 때에 열행이 알려져 정려되었다. 진주는 예향(禮鄕)으로써 예로부터 선비가 많기로 이름난 고장으로 많은 선비들의 덕행과 절행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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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강몽정(姜夢禎)의 딸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따르면 강씨(姜氏)는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에 부모를 따라 산 속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부모와 형제가 함께 왜적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하자 불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불에 타죽어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세였으며 진주 사죽리(沙竹里)에 살았다. 정려(旌閭)는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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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화(子華). 성안중(成安重)의 아들이며, 성일휴(成日休)의 아우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성일장(成日章)은 재예(才藝)가 남보다 뛰어나고 학문적인 명성이 일찍 알려져서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불행하게도 급제를 하여 그 이름을 날리지는 못해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강응규(姜應奎), 강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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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慶), 호는 무심옹(無心翁). 교리(校理) 성안중(成安重)의 셋째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강호에 은거하여 영리를 멀리 하였으며 자호를 무심옹(無心翁)이라 하고 초당은 무심정(無心亭)이라 일렀다고 한다. 방당(方塘)에 임하고 자연을 대할 때에도 모두 무심으로 이름 지었다. 손수 ‘피를 엮어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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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고령. 자는 군흡(君洽). 신숙주(申叔舟)의 증손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사람됨이 평안하고 조용하며 스스로 지키어 명리를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따로 서당을 지어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힘썼으며 날마다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어 스스로 즐겼다 한다. 진주 조동(槽洞)에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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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사운(士雲)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양응룡(梁應龍)은 그 천성이 속되지 않고 뛰어나 사람들과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고 전한다. 진주에는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비들이 많은데, 양응룡도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조선시대 진주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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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따르면 오인(吳仁)은 아버지가 등에 커다한 부스럼이 나서 매우 심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직접 입으로 농즙(膿汁)을 빨아서 낫게 하였다고 한다. 진주 수곡리(水谷里)에 살았다. 진주는 유교적 덕목이 뿌리 깊게 이어지는 예향(禮鄕)으로 오인을 비롯한 많은 효자를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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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효자. 윤사관(尹思寬)은 부장(部將) 윤춘란(尹春蘭)의 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의하면 윤사관이 살고 있던 집에 큰 불이 나서 노모가 방에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자 직접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어머니를 업고 나오다가 불꽃에 쓰러져 모자가 함께 죽었다고 한다. 진주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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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상(士相), 호는 반곡(盤谷). 효자 정보(鄭堡)의 장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정내의(鄭乃毅)는 효성이 하늘에서 타고나서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섬기며 부모의 뜻에 순응하여 어김이 없었다. 이미 자라서는 집안에서 배운 대로 몸소 행실을 삼가고 학문에 힘써 문학이 일찍부터 이루어져 여러 번 향해(鄕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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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자는 공약(功若), 호는 관란(觀瀾). 승지(承旨) 정대융(鄭大隆)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따르면, 정달현(鄭達賢)은 효성이 깊다고 이름이 나서 나라에서 교관(敎官)을 증직하고 정려(旌閭)를 명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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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여길(汝吉), 호는 여우재(如愚齋). 생원(生員) 정문익(鄭文益)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문장이 넉넉하고 넓으며 지조가 높고 고상하였고, 가정의 교훈을 잘 지키고 따르며 자취를 거두고 숨겨서 기르니 주변의 선비들이 그 풍채와 용모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정대형(鄭大亨)은 장수(長壽)하여 후에 품계가 가선(嘉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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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선비.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빈(聖彬). 학포(學圃) 정훤(鄭暄)의 현손(玄孫)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기상이 높고 반듯했다고 한다. 집안에서도 법도가 있으며, 뛰어난 학문과 의로운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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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원(士元), 호는 기옹(綺翁)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진사에 합격하고 호남으로부터 침곡(針谷)으로 옮겨와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 학포(學圃) 정훤(鄭暄)와 더불어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문장을 서로 지어 주고받아 시문(詩文)이 제현(諸賢)의 문집 가운데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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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역학자·선비. 자는 이남(以南)이다. 1558년(명종 13)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진주 진성면 동산리 월정마을에 살았다 하여 사람들이 동산옹(東山翁)이라고 불렀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이름을 숨기고 재주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우람한 체구에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자 부귀영화에 초연하여 스스로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재기가 탁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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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경주(景周).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複)의 후예로서 장령(掌令) 하계부(河季溥)의 손자이다. 일찍이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을 수련하였는데, 여러 가지 문장 중에서 특히 시(詩)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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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공극(公極), 호는 동야(東野). 각재(覺齋) 하항(河沆)의 아들이다. 가풍을 이어받아 언행이 깨끗하고 단정하며 예학(禮學)이 깊었다고 한다. 사조(思潮) 오장(吳長), 유덕룡(柳德龍)과 더불어 벗으로 지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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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유중(孺仲), 호는 고재(顧齋).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둘째 아들이다. 일찍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평상시에도 옷을 끄르고 있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편히 있지 않았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의 학문에 종사하더니 우산(愚山)에서 글을 읽으면서 역병에 걸렸다. 정종로가 날마다 두 번씩 병을 묻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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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낙경(洛卿), 호는 만취(晩翠). 송판(松坂) 하완(河浣)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계범(河啓範)은 품성이 너그럽고 온화하며 총명하면서 기록하는 데 힘써 문예가 남보다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벼슬을 구할 뜻이 없고 항상 굳은 절개로써 스스로를 가다듬고자 애써 만취(晩翠)로써 호를 삼았다. 같이 즐기며 학문을 닦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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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희량(希亮). 진주 신당리에 살았다. 천성이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우며 행실이 돈독하여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글재주로 이름이 있었고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은 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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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일숙(一叔), 호는 단연(丹淵). 모송재(慕松齋) 하인상(河仁尙)의 현손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일찍이 학문을 이루었다. 세도가 날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문달(聞達)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리의 학문에 잠심하였으며 괴천(槐泉) 유문룡(柳汶龍)[1753~1821], 홍와(弘窩) 윤동야(尹東野) 등 주위의 선비들이 모두 추종하였다. 진주에는 그 학문적 성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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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청언(淸彦)이고, 호는 국헌(菊軒)이다. 학식이 매우 넓고 뛰어나며 정의감이 투철하고 절개가 곧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또한 집안을 다스릴 때 항상 바른 가르침으로 다스리려고 노력하였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도량(度量)이 넓고 컸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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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혼원(混源), 호는 구이당(具邇堂). 진사 하협(河悏)의 아들이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순수하며, 맑고 곧고 바른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을 실천함에 있어서도 독실하였다고 한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찰방(察訪) 권극경(權克經), 상사(上舍) 안시진(安時進)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을 나누었다. 하달영이 세상을 떠나자 겸재가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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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백원(伯源). 죽헌(竹軒) 하성(河惺)의 아들이며, 영모정(永慕亭) 하진보(河晋寶)의 손자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고 한다.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발랐으며 학업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약관(弱冠, 스무 살)에 동계(東溪) 권도(權濤)의 신주(神主)를 썼는데 원근의 사림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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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용강(龍岡).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며, 어머니는 진양정씨 정승훈(鄭承勳)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참봉 송흠원(宋欽遠)의 딸과 현풍곽씨(玄風郭氏) 통덕랑(通德郞) 곽창후(郭昌後)의 딸이다. 용강(龍岡)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남양 땅 와룡강(臥龍岡) 아래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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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관부(寬夫), 호는 괴와(愧窩).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증손이다.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행실이 깨끗하고 발랐다고 한다. 학문을 추구할 때는 깊고 세부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글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을 잘 지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일찍부터 『속주지(續州誌)』를 찬수(纂修, 문서를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음)하였으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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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진숙(晉叔), 호는 한계(寒溪). 설창(雪窓) 하철(河澈)의 손자이다.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나고 문장과 필법으로 당시 선비들 가운데 이름이 났다. 약관(弱冠, 스무 살)의 나이에 향교의 교육과정을 마쳤고, 성리학에 깊이 통달했으며, 또 예학(禮學)을 밝게 익혀서 원근의 선비들이 찾아와서 물을 정도였다. 『진양속지(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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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신여(愼汝), 호는 사와(士窩).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다섯째 아들이다. 부친의 성품이 엄준하여 어릴 때부터 범절이 몸에 배어서 덕기가 어른 못지않았으며 차차 자라가면서 힘써 문사를 배워서 다듬었고 주자학 공부에 전념하여 주자서 읽기를 자신의 말을 외우는 것과 같이 하였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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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도경(道卿). 설창(雪窓) 하철(河澈)의 셋째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학문에 재능이 있었다. 1702년(숙종 28)에 무과에 올라 네 고을에 두루 역임하면서 모두 치적이 있었다. 비록 무로써 드러났다 하더라도 부귀영달에 뜻을 삼지 않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형 양정재(養正齋) 하덕망(河德望)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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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녀·열녀.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하득곤(河得鯤)의 딸 하씨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 아버지가 병이 들어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상태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정려(旌閭)되지는 않았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 진주는 예향(禮鄕)으로써 많은 지조있는 선비들을 배출했는데 그에 못지않게 효자와 효녀도 많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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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단사(丹砂). 치와(癡窩) 하응명(河應命)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슬기로우며 문장이 뛰어나 여러 번 향시에서 합격하였으나 부모상을 당하여 본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써 그 문하에서 학문을 이룬 사람이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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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민(汝敏).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손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벼슬길에 뜻을 끊고 후진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덕천서원(德川書院)과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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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강중(康仲), 호는 예암(豫菴). 석계(石溪) 하세희(河世熙)의 현손이다. 나이 31살에 죽었으나 당시에 작은 안자(顔子)라고 칭할 정도로 학덕이 높았다. 후산(后山) 허유(許愈)가 그 묘에 표(表)하여 이르기를 ‘천자(天資)가 수미(粹美, 순수하게 아름답다)하여 등이(等夷)에서 훨씬 뛰어났고 여기에 조예가 정심한 것을 더했으며 행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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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택후(澤厚), 호는 인재(忍齋). 하호(河灝)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윤관(河潤寬)은 일곱 살 때부터 뜻이 맑고 깨끗하며 고상하고, 품은 뜻과 행실이 발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바르고 총명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찍부터 과거는 포기하고 다만 향시에 급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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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이보(履甫), 호는 죽와(竹窩). 하윤관(河潤寬)의 손자이며 하응회(河應會)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일호(河一浩)는 타고난 자질이 너그럽고 후하며 마음이 넓고 깊어 사람들이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아니했다고 평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으며 학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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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중(師仲), 호는 용와(容窩).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종형인 예암공 하우현(河愚顯)을 따라 글을 읽다가, 부친의 명으로 남계(南溪) 이갑용(李甲龍)의 문하에 들어가 정식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여러 번 서울로 과거를 보러갔으나 담당자가 뇌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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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내윤(乃潤), 호는 사연(舍淵). 하자호(河自灝)의 현손이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밭을 갈고 글을 읽었다.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극히 하였다. 만년에는 방장산(方丈山) 가운데에 살면서 학문에 진력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선비의 본분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몸소 실천한 진주의 대표적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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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흘(士屹)이고 호는 사고헌(四顧軒)이다. 습정재(習靜齋) 하응운(河應運)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성품이 강직하여 선행(善行)에 앞장섰다고 한다. 일찍이 여러 선비들과 더불어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일찍이 이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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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천기(千期), 호는 태와(台窩). 진사 지명당(知命堂) 하세응(河世應)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에 38세로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 주부, 직장 등의 벼슬을 지내고 승문원정자 벼슬로 승진을 했으며, 외직으로는 찰방 등의 벼슬을 지냈다. 당시 조정은 당쟁으로 시끄러웠다. 일찍이 부친인 지명당 하세응은 장희빈의 신원을 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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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오(省吾).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일찍부터 가풍을 이어 받아,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옛 성현의 글을 마음에 두고 깊이 새겨 당시의 선비들이 군자다운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감사 우복룡(禹伏龍)은 효우(孝友)스럽고 독실한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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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백(愼伯). 한여철(韓汝哲)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에 합격하였다. 집에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으며 주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독하였다. 그의 나이 약관(弱冠, 스무 살)이 못되어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우 한응(韓膺)을 가르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우에게 항상 ‘네가 성인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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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중(愼仲). 한여철(韓汝哲)의 아들이며 한계(韓誡)의 아우이다. 친구를 접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신의로 하였고, 그 주장이나 의견이 항상 반듯하여 그 또래의 친구들이 항상 듬직하게 여기며 어려워하였다. 형 한계(韓誡)와 더불어 형제가 모두 사람에게 간언(間言, 이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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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임진왜란 이후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적들에게 정절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절개를 온전히 하고 죽었다고 한다. 정려(旌閭)되지는 못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