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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강협(康協)[1674~1750]은 본관이 신천이며 자는 자경(子慶), 호는 농은(農隱)이다. 중시조는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지연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강후돈(康厚敦)으로, 강협은 강후돈의 넷째 아들이다. 강협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뜻을 잘 따르고 어질고 착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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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한 창녕성씨 회곡공파 집성촌.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하는 창녕성씨 회곡공파는 회곡공 성석용(成石瑢)[?~1403]을 파조로 하며, 성석용의 손자 성희(成熺)[?~1464]가 입향조이다. 금남면 달전리 전체 100가구 중 50가구가 창녕성씨이다. 금남면 달전리의 창녕성씨는 성석용을 파조로 하는 회곡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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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세거한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는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으로, 11세손 최은(崔垠)이 회덕에서 도암리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도암리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화순최씨이다.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사평공파(司評公派)의 입향조는 최은으로, 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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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세종 지역 출신의 양세 열부. 밀양손씨와 창녕성씨는 안동김씨 집안으로 출가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이다. 밀양손씨는 혼례를 올린 지 4개월 만에 남편 김기철(金基喆)과 사별하였으나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 김성흠을 낳아 잘 양육하였다. 창녕성씨도 출가한 지 2년 만에 김성흠이 죽자 외아들 김광묵을 잘 길렀으므로 시어머니 밀양손씨와 더불어 양세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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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김백열(金百悅)[1816~1868]의 본관은 안동이고, 김희중(金熙仲)의 둘째 아들이다. 김백열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으며, 말을 배울 때부터 윤리 도덕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김백열 나이 5세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던 중 하루는 꿈에 신선이 나타나 곶감이 아버지의 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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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 김언신(金彦信)은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의 입향조로 1624년 이괄의 난 때 공(功)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冊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두 아들과 함께 싸우다가 순절(殉節)[충절이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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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김연(金璉)[1712~1790]은 연기현 청라리 나발터[羅發垈]에 살면서 촌속(村俗)[시골의 풍속]에 익숙하고 예의(禮義)가 뚜렷하여 평판이 좋았다. 홀로 계신 아버지의 중병에 모든 약이 효과가 없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께 드려 목숨을 구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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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나주나씨는 김진창(金震敞)의 처로, 남편이 병들자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였으나 죽고 말았다. 사별 후 나씨는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성을 다하면서 어린 자식을 양육하였다. 시부모가 노환으로 숨지자 뒤를 따라 죽으니 동네 사람들이 조정에 알려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 받은 효열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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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남양홍씨(南陽洪氏)[?~1736]는 안동 사람 김환(金瓛)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 여기고 자결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병은 차도가 있어 회복하였는데 주변에서 남양홍씨의 정성에 신령이 감동한 것이라며 칭송한 열녀이다. 김환 처 남양홍씨의 아버지는 홍처한(洪處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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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세종 지역 부안임씨 입향조인 임난수의 둘째 아들 임목이 1437년(세종 19) 아버지 임난수의 유허(遺墟)[역사 기록에만 있고 유물이나 유적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남아 있는 옛 터]가 어린 금강 변에 건립한 정자이다. 임목은 1433년 양양도호부사(壤陽道護府使)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나성리로 낙향하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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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 장수황씨가 세종 지역으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모임과 조직. 장수황씨 연기종회는 친족간 친목을 도모 하고, 종중 재산을 관리 보존하고, 선조 제향봉행 및 기념사업 시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세종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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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민후건(閔後騫)[1571~1652]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호는 월하(月河)이다. 민후건은 사마시에 입격한 이후 공조정랑으로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원종공신이 되었고, 낙향 후 병자호란 때 연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등 적극적인 향촌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던 민후건은 26세 때 모친이 병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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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박기정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혼례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자 수절하였다. 홀로 시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양자를 들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한 열녀이다. 아버지는 광산(光山) 사람 김귀택(金龜澤)이다. 광산김씨는 무안 사람 박기정(朴基鼎)과 혼례를 치르고 3일 만에 남편과 재행(再行)[혼인한 뒤에 신랑이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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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박이명(朴履命)[1823~1890]은 본관이 고령(高靈)이고, 자는 성지(性之)이다. 1857년(철종 8) 무과에 급제한 뒤 남포현감을 지냈다. 박이명은 영성군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증손이자 박승규의 아들이며, 처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대장의 딸이다. 박이명은 어려서부터 먹을 것이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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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의병. 배경걸은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의 종사관으로 들어가 청주성 전투에서 많은 적병을 무찔러 공(功)을 세웠다. 배경걸[1536~1634]은 성산배씨 14세손으로, 자는 호이(豪而), 호는 노천(蘆川)이다. 연동면 노송리의 성산배씨는 녹야당공파로 4대조인 직제학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한다. 청산현감을 지낸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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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의 강화최씨 집성마을. 강화최씨 집성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서울에서 이거·입향 후 500여 년간 발전하여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한 특별한 마을이다. 동족조직이 강한 모습이 숭모단 제향,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을 샘 제사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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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봉서재(鳳棲齋)는 1600년대 말 장원주(張元冑)[1634~1700]가 만년에 창건하여 자제와 인근 마을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장원주는 연서면 고복리 결성장씨(結城張氏) 연기파(燕岐派) 입향조이다. 자는 자장(子將), 호는 봉옹(鳳翁)이다. 또한 장원주는 결성장씨 옛 연기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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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설립된 봉암서원의 터. 봉암서원(鳳巖書院)은 1651년(효종 2)에 건립되어 1665년(효종 6) 연기현에서는 유일하게 사액을 받은 서원이다. 제향 인물은 한충(韓忠),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등이었다. 봉암서원은 다른 서원 사우들과 마찬가지로 1864년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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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사관정(四觀亭)은 조선시대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타우(打寓) 이상(李翔)[1620~1690]이 건립한 정자로, 근방에 있던 뇌암서원(雷岩書院) 원생들의 휴식처였다고 전해진다. 1872년에 작성된 「전의현지도」에는 뇌암서당(雷岩書堂) 남쪽에 사관정이 있는데 이상이 거처하면서 동쪽으로는 운주산(雲注山),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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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아버지는 성석장(成碩章)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태한의 딸이다. 큰아버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성규장(成奎章)에게 양자로 출계(出系)[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성이복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부 성규장이 병들자 ‘하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하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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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이초(愼爾初)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신이초에게 출가하여 다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이 갑자기 숨지자 장례를 치른 후 식음을 전폐한 지 7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이다. 신이초 처 기계유씨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從孫女)이다. 기계유씨[?~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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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세거한 부안임씨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는 전서공(典書公) 임난수(林蘭秀)의 정착 이후 600여 년을 이어 오는 부안임씨의 동족적 유서가 깃들어 있는 집성촌이다. 세종리에 거주하는 주민들 성씨는 대부분이 부안임씨이다. 임난수의 둘째 아들인 임목은 양양공파, 임서는 사직공파, 임흥은 위의공파로 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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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세거한 장수황씨 집성촌. 장수황씨가 세종특별자치시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과 조직, 유서(由緖)[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내력과 이유]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時祭)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부강면 등곡리에 있다. 제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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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양홍씨 5대 9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연서 효교비는 조선시대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나온 남양홍씨 집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들 9명의 효자들은 홍연경(洪延慶)[1579~1647]과 아들 홍정설(洪廷卨)[1615~1671], 손자 홍우적(洪禹績)[1634~1701]·홍우평(洪禹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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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세거한 남양홍씨 남양군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1리에 입향하여 300 여년간 뿌리른 내린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주(洪澍)를 파조로 하는 남양군파(南陽君派)로, 입향조는 홍순손(洪順孫)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의 신대리와 이웃한 성제리에는 남양홍씨 남양군파가 세거하고 있다. 예로부터 연기 지역은 ‘천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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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윤태풍의 처 경주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경주최씨 정려는 경주최씨[1842~1866]의 열행을 기리고자 유림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1930년에 건립된 유적이다. 경주최씨는 최규(崔珪)의 딸로 옛 대덕군 신탄진에서 태어나 파평윤씨 윤태풍(尹泰豊)에게 출가하였다. 후손들의 전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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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유언하의 처 부안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유언하(兪彦夏)[1749~1819] 처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부안임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두칠(林斗七)의 손녀이자 임시윤(林時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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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부동리에 있었던 이성호의 처 의성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의성김씨 정려는 이성호(李聖浩) 처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성호는 예전에 있었던 정려 현판에는 이문근(李文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손의 전언으로는 이문백(李文柏)이 맞다고 한다. 정려기에 의하면 의성김씨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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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윤태풍(尹泰豊)의 부인으로, 남편은 파평윤씨이다. 경주최씨는 윤태풍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효로 섬겼다. 남편이 병들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약을 사서 간병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3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호위를 하였다는 효열부이다. 윤태풍 처 경주최씨의 아버지는 최규(崔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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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으로 세조 즉위를 도운 좌익공신 3등 문신. 이예장(李禮長)[1406~1456]의 본관(本貫)은 전의(全義), 자는 자문(子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직(李丘直), 할아버지는 이정간(李貞幹), 아버지는 부윤 이사관(李士寬)이다. 이예장은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 생원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438년(세종 20)에는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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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임명즙(林命楫)[1744~1808]의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백섭(伯涉)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에서 임종유(林宗儒)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명즙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심이 지극하였다.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어린 나이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스럽게 간호하였다.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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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연기 지역에 거주한 임헌회와 그 후손의 인장.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19세기 말 성리학자이다.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문인으로는 간재(艮齋) 전우(田愚), 경의당(敬義堂) 김진수(金振遂) 등이 있다. 임헌회의 문집교지와 함께 인장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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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부안임씨 전서공파 입향조인 임난수의 넷째 아들. 임흥(林興)은 임난수의 아들로, 고려 후기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고위 관직을 지냈다. 조선 건국 후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벼슬을 받지 않았다. 임흥의 본관(本貫)은 부안(扶安)이다. 아버지는 세종 지역 부안임씨 입향조인 임난수, 어머니는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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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정종 10남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이 이거·정착한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의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덕천군(德泉君)이후생(李厚生)[1397~1465]의 후손들이다. 덕천군은 정종의 10남으로, 덕천군파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일대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공주·연기 일대에 덕천군의 전장(田莊)[개인이 소유하는 논밭]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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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동서지간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와 결성장씨(結城張氏)는 옥천전씨 집안으로 출가한 동서지간으로, 남편과의 의와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자결한 이열부이다. 창녕성씨[?~1735]는 전오복(全五福)과 혼인하였다. 남편 전오복이 1735년(영조 11)에 죽자 뒤를 따라 자결(自決)[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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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의현감을 지낸 문신. 정천경(鄭天卿)[1547~1600]은 충장공 정분(鄭苯)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조봉대부 정인덕(鄭麟德)이다. 정천경은 1585년(선조 18) 을유 식년시 진사3등으로 합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가하여 적군을 무찌른 공으로 선무원종 2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597년 임천군수로 부임하였고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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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누각과 정자. 제산정(霽山亭)은 일제강점기에 제산(霽山) 임영휴(林永烋)와 아들 임헌두(林憲斗)가 금강 변에 건립한 정자이다. 임영휴는 효자로 이름난 임수준(林秀俊)의 둘째 아들로, 비서승(秘書丞)까지 오른 인물이다. 물려받은 천석지기 농토를 줄이면서 이웃을 도왔으며, 후덕한 성품을 근동에서 모르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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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세거한 강화최씨 집성촌. 강화최씨 집성 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이거·입향한 뒤 500여 년 동안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는 등 동족 조직이 강한 특별한 마을이다. 숭모단 제향(祭享)[제사]과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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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진회현 처 김해김씨는 16세 어린 나이에 반곡리 진회현에게 출가한 후 18세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남편을 따라 자결(自決)[스스로 목숨을 끊음]하려 하였으나 유복자(遺腹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가 있어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출산한 아들을 훌륭하게 기른 열녀이다. 김해김씨는 16세 되던 해인 1917년에 반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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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 집단이 이룬 마을로서 하나의 성씨가 특정 마을의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집성촌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형성되어 500~600년의 전통을 지닌 마을들과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이거 정착하여 300~400년의 전통을 지닌 마을들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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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최지성은 1795년에 장원급제하여 정조 재위 시 이조정랑과 사간원정언 등을 지내고 현풍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최지성의 할아버지는 최고(崔暠)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최의경(崔義敬)이다. 어머니 청도김씨(淸道金氏)는 김헌재(金憲再)의 딸이다. 최지성(崔之聖)[1756~1805]의 본관(本貫)은 강화, 호는 환재(環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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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전주이씨(全州李氏)[1759~1779]는 최지철(崔之喆)의 아내로, 혼인 1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5개월이 지난 후 태중에 남편의 유복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자결한 열녀이다. 최지철 처 전주이씨의 아버지는 이대형(李大亨)이다. 전주이씨는 이대형의 딸로, 11세 되던 해에 모친이 죽자 3년 시묘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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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있는 현대 정자.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위치한 한림정(翰林亭)은 조광조(趙光祖)의 제자로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은거(隱居)[세상을 피해서 숨어 삶]한 신준미(申遵美)[1491~1562]와 관련된 유서 깊은 유적이다. 신준미의 본관은 평산이고, 호는 초려(草廬)이다. 아버지는 별제를 지낸 신원(申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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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채윤호와 채윤구 형제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위치한 합강정(合江亭)은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구릉지대에 건립되었던 누정으로, 16세기 초반 합강리에 세거하는 인천채씨 집안의 채윤호(蔡允浩)[1485~1546]와 채윤구(蔡允龜) 형제가 창건한 정자로 추정하고 있다.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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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에 있는 김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김연(金璉)[1712~1790]은 본관이 강릉이며, 자는 성기(聖器)이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지역인 충청도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익려(金益礪)는 무과에 급제하였고, 어머니는 배계도(裵繼度)의 딸인 남해배씨(南海裵氏)이다. 김연의 부인은 승의랑(承義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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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는 김종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종철 정려는 김종철(金宗喆)[1755~1817]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79년에 건립되었다. 김종철은 본관이 강릉이며, 자는 여명(汝明)이다. 김상기(金尙基)[1724~1788]와 송필후의 딸 은진송씨[1729~1767]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종철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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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는 김한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한정 정려는 김한정(金漢鼎)[1757~180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김한정은 본관이 강릉, 자는 중삼(重三), 호는 구곡(龜谷)이다. 현재 세종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서 태어났다. 이곡(梨谷) 김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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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있는 민후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효자 민후건 정려는 민후건(閔後騫)[1571~1652]의 충효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숙종 3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민후건은 여흥(驪興)[현 여주] 사람이다. 자는 효윤(孝胤), 호는 월하(月河)이다. 민후건은 대사헌 청백리 민휘(閔暉)의 5대손이며,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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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성이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성이복 정려는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효행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남기고자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1892년에 건립되었다. 성이복은 본관이 창녕이고, 자는 양숙(陽叔)이다. 생부는 성석장(成碩章)[1689~1743], 생모는 전의이씨 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