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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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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2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고북중학교 앞 길가에 총 12기의 가구리 비석군이 있다. 1. 전고북국민학교장신영주공적비(前高北國民學校長申英柱功積碑)는 옥개형으로, 1989년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95㎝이며, 비신은 높이 130㎝, 너비 45㎝, 두께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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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가구리 선돌은 마을의 음기를 제어하기 위한 풍수상의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건립한 남근(男根) 형태의 선돌이다. 이를 좆대바위, 개좆바위 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오래 전에 제의는 중단되고 단지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가구리 선돌은 서산에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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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각 도자기에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의 양식과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과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시기에 따라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각 시기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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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폐합할 때 가전리(柯田里)의 ‘가’자와 사장리(沙場里)의 ‘사’자를 따서 가사리(柯沙里)라 하였다. 가전리는 옛날 갈대밭이 많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밧[柯田里], 사장말[沙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마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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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산. 가야산은 평야 및 구릉 지대가 넓게 펼쳐진 충청남도 서북부에 높게 솟아 있는 산으로, 서산시, 당진군, 예산군, 홍성군의 경계 역할을 한다. ‘가야’라는 산 이름은 불교에서 신성시되는 코끼리인 상왕의 범어 카야(Kay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야산 자락에는 개심사, 일락사, 서산 마애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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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가정의 여러 신을 믿는 의례 행위. 가정 신앙은 가정의 안녕과 화목을 기원하기 위해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집안 곳곳에 신을 모셔 놓고 섬기는 한국 고유의 신앙 행위이다. 서산 지역의 가정에서는 가중팔신(家中八神)이라고 하여 집안 곳곳에 여러 신령을 좌정시켰다. 대표적인 집안의 신령들은 성주, 조왕, 삼신, 칠성, 지신, 왕신 등이다. 이들 신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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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는 홍주목 운천면 가좌동리와 서산군 동음암면 남당리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해미군 운천면에 속하여 있던 가좌동리를 상가리(上佳里)와 상리(上里)로 분할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운천면 상가리, 상리, 서산군 동음암면 남당리와 고양동리(高陽洞里)의 일부를 합쳐서 서산군 운산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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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남당동[남댕동]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지표 조사 및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조선 시대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 유적이 알려져 왔으나, 현재는 서해안고속국도 건설과 민가 조성 과정에서 대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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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서 굴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간월도 굴부르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채취하는 굴의 풍요를 위하여 마을 여성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굴왕제, 군왕제 등이라고도 한다. 간월도는 대대로 갯가에 의지하여 살아온 섬마을이었다. 1980년대 초반 간척 사업으로 인해 연륙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마을 앞 갯벌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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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간월도 당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저녁 간월도 북쪽에 있는 당산나무[보리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간월도 당제는 대체로 음력 12월 20일에 준비를 하는데, 이날을 ‘당주 놓는 날’이라고 부른다. 마을에서 대동 회의를 열어 부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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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후기 무학대사가 이 섬에서 수행 중 유난히 밝은 달빛을 보고 불도를 깨달았다 하여 간월도(看月島)라 이름 붙여졌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간월도라는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려 후기부터 간월도라 불렸고,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태안군 안상면 소속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산군 안면면 간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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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작은 암자. 전언에 의하면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고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을 간월도(看月島)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보낸 간월도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530년(중종 25) 찬술한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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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 있었던 비정규 교육 기관. 간이 학교는 일제 강점기 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한국인 아이들에게 초등 교과 과정을 2년 동안에 마치도록 한, 보통학교 부설의 속성 초등학교였다. 수업은 대체로 일본어 교육을 목적으로 하였다. 일제는 1920년대 문화 정치를 실시하면서 1개 면에 1개 초등학교를 설립한다는 목표를 앞세웠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930년대 들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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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마리(渴馬里)라는 이름은 마을 지형이 풍수상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되어 있어 붙여졌다는 설과, 큰 벌판이 곶이를 이루었다 하여 갈마곶(渴馬串), 갈마지, 갈마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마곳[渴馬洞]이라는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마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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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상갈리(上葛里)·하갈리(下葛里)의 ‘갈(葛)’자와 산북리(山北里)의 ‘산(山)’자를 따서 갈산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갈테[上葛里]·아갈테[下葛里]·산북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산동(葛山洞)은 조선 시대의 서산군 노지면 산북리와 갈치리 지역으로, 1895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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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 산뒤마을에 있는 고분군. 갈산동 고분은 서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의 거리에 있다. 북서쪽의 굴재말봉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상부에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하여 고분군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지표면에서 도굴 갱과 함께 고분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마을의 축대를 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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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갈현리(葛峴里)의 ‘갈’자와 산지동(山芝洞)의 ‘산’자를 따서 갈산리(葛山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우고지[葛峴里], 회츈골[會仙洞], 무르틔[山芝洞], 좌셰[佐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회선동리와 좌세리(佐世里) 지역이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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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면 갈산리 무르티고개가 나오는데, 무르티고개를 넘기 전 북쪽에 있는 자연 마을이 바로 갈산1리의 산막마을이다. 갈산리 절터는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의 뒤편 은봉산 남향 사면의 하단부에 위치한다. 1997년 충청남도 지역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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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고개 밑에 형성된 마을로 갈고개, 갈현, 갈고리라고 하였다. 갈고개는 갈현리(葛峴里)에서 왕정리(旺井里)로 넘어가는 고개로 칡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고[葛古里], 용현리(龍峴里), 과동(果洞), 갈현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갈현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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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강촌(江村)의 ‘강’자와 서당동(書堂洞)의 ‘당’자를 따서 강당리(江堂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강촌, 셔당동[書堂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강당리는 조선 시대에 화변면 우천리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강촌, 시동(詩洞), 서당동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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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설상으로는 저수지에 위령제를 지내 저수지의 범람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낸 사람의 이름인 강수에서 따 강수리(江秀里)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강경리(江鏡里)의 ‘강(江)’자와 수현리(秀峴里)의 ‘수(秀)’자를 따서 강수리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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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 버드렁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서산시 부석면 소재지에서 태안 방면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약 4.5㎞ 정도 가면 강수리에 이르며, 이 지점에서 동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2㎞쯤 가면 강수리 버드렁마을이 나타난다. 강수리 유물 산포지(江秀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의 버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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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1619년에 편찬된 서산 지방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강흡(姜洽)이라는 사람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흡은 향임으로서 기품이 맑고 강하여 시비가 분명하였으며,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자 했다. 백성 가운데 범법자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죄목을 붙여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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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개심사의 ‘개심(開心)’은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이며, 백제 때 지어진 사찰로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진덕여왕 5년,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서산 개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개심사 사적기」는 근현대의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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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조선 시대 전각.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개심사(開心寺) 내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 개심사 대웅전(瑞山開心寺大雄殿)의 전면 좌측에 자리하며 개심사 심검당(開心寺尋劍堂)과 마주 보고 있다. 「개심사사적기(開心寺事蹟記)」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에 모든 전각을 중수하였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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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에서 제작된 목재 경판. 개심사 소장 목판은 조선 중기에 불교 경전 및 의식문 등을 다량으로 인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불교는 설법과 불경으로 전파되었는데, 짧게는 수십 자(字)에서 길게는 수십만 자(字)의 불경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목판에 불경을 새겨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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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오층 석탑. 개심사 오층석탑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심사를 중수한 1350년(충정왕 2)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개심사 대웅전의 앞마당에 위치한다. 개심사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세워져 있다. 지대석의 한 변이 170㎝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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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개심사(開心寺) 내에 위치하고 있다. 개심사 명부전(開心寺冥府殿)은 「개심사사적기(開心寺事蹟記)」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 인정, 부익, 현오 등 3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9년(고종 26) 김설세가 작성한 「개심사중창수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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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에서 출토된 향로. 개심사명 청동은입사향완은 개심사 금동여래좌상 및 개심사 오층석탑과 함께 1948년 6월과 1960년 2월 등 두 차례 조사되었다. 현재 충청남도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003년 10월 30일에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개심사명 청동은입사향완은 고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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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조선 전기 당우.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개심사(開心寺)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 개심사 대웅전(瑞山開心寺大雄殿)의 전면 우측에 자리하며, 개심사 무량수각(開心寺無量壽殿)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1962년 건물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개심사 심검당(開心寺尋劍堂)은 1477년(성종 8)에 3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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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서산 일대에도 예외 없이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당시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횡행했는가 하면,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으로 성장한 부호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른바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거머쥔 새로운 주도 세력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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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거산리(巨山里)의 ‘거’자와 하성리(下城里)의 ‘성’자를 따서 거성리(巨城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하셩산[下城里], 금뫼[巨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의 하성산리(下城山里)와 거산리, 서산군 동음암면 동거리, 서산군 동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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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거성리 사창(巨城里社倉)은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과 해미의 접경지로 대교천의 동편에 있다. 지금은 내륙 지역이지만, 전언에 의하면 1900년 이전까지 마을 앞의 음지말들과 홍안들 일대가 모두 바다였고, 배가 들어와 정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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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건물이나 구조물 등을 쌓아 만드는 일 또는 사람이나 물품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선사 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각 지방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소나무가 주요 건축 자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목조 건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서산 지역은 역사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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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연(金堧)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0년대 중반에 입향 한 이후 서산 지역에서의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단구자김적이나 학주김홍욱 등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다. 특히 이곳 출신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가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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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사(崔泗)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최씨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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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천장암에서 수도한 승려.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경허(鏡虛)[1849~1912]는 1849년(헌종 15)에 전주 자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주 청계사에 들어갔다. 청계사 주지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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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계복(戒福)은 아버지 순평(順平)이 죽자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다. 상을 치르는 3년 동안 소금과 간장을 먹지 않아 몸이 나뭇가지처럼 야위니 보는 사람마다 감복하였다. 또한 부모의 심정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재산을 나눌 때는 척박한 토지는 자기가 갖고 기름진 논밭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주었다. 집에서 쓰는 가재도구와 곡식도 사사로이 차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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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전체적으로 볼 때 서산 지역의 산지는 북쪽이 막힌 말굽 형태이다. 동쪽의 산지는 가야봉, 석문봉, 상왕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가야산지로, 홍성과 예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의 산지는 서산 시내의 북쪽에서 상왕산, 부춘산,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동서 방향의 산지로, 가로림만에 인접해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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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군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은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서산에 왔던 수령 중 최고의 선정(善政) 수령으로, 서산 5현으로 추대되었다.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력하고 『호산록(湖山錄)』 발행을 권유하는 등 서산의 사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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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고구현은 현재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이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고구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고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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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삼고개리(三古개里)에서 ‘고’자와 아남리(牙南里)에서 ‘남’자를 따서 고남리(古南里)가 되었다. 삼고개리는 세 고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아남리는 사람의 어금니처럼 생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고[三古介], 아남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아남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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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있는 고분군.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성연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의 거리에 있는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위치한다. 이 마을 북서쪽으로 해발 98m의 야산이 있는데, 고분군은 이 산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지표 조사와 지역 주민에 대한 탐문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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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서산 지역 최초의 고등학교는 1943년 서산농림학교로 개교한 서산중앙고등학교이다. 이후 1927년 설립된 서산공립여자농업보습학교가 발전하여 1955년에 서산여자고등학교로 개교했으며, 이어 1956년 서령고등학교, 1967년 서일고등학교, 1974년 부석고등학교, 1971년 지금의 서산고등학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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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의 집성촌은 조선 시대에서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동족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고북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성씨로는 양천 조씨(楊川趙氏), 산밑 김씨, 가구 김씨(加口金氏), 통개 최씨, 봉생 엄씨(鳳生嚴氏), 황골 문씨[黃谷文氏], 날새 오씨, 금도 박씨(金島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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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음곡리(古音谷里)의 ‘고’자와 두산리(斗山里)의 ‘산’자를 따서 고산리(古山里)라 이름 붙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곰실[古音谷里], 말산[斗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고음곡리와 수철점리가 있었던 지역이다. 1895년의 행정 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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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기와 가마터.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도 609호선을 사이에 두고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과 마주 보는 지역에 해당한다.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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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고산리 백자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자리한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은 고풍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높이 280여 m의 험준한 산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남동향 사면에 자리한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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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인,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인,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튼튼하고 끈기 있는 건강인, 새롭게 탐구하는 탐구인, 아름다움을 즐기는 심미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높은 뜻, 값진 땀’이었다. 1934년 5월 10일 진장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4년 4월 1일 팔봉국민학교 진장분교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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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파도리(古波島里)는 본래 파지도(波知島)라 하였는데, 1974년에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고려 때 파지도영(波知島營)을 두었다가 조선 태종 때 호리로 수영을 옮기게 되면서 옛파지섬 또는 고파지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파지도만호(波知島萬戶)의 수영이 바다 가운데 30리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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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진성. 고파도성(古波島城)은 서해안으로 진입하는 왜적을 상륙 전에 바다에서 막기 위해 세운 진성(鎭城) 가운데 하나이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서산군 관방조에 “고파도는 군의 서쪽 문현면에서 35리 떨어져 있으며, 오래전 수군만호가 있었다. 1516년(중종 1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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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색리(高色里)를 고풍리(高豊里)로 고쳤다. 이는 주민 생활의 안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군자동(君子洞), 무릉동(武陵洞), 운곡[雲谷里], 고빗[高色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풍리는 조선 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 고색리와 군장동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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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고풍리 산신제는 매년 음력 1월 5일 면남산에 있는 산제당 터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일은 매년 음력 정월 초에 택일(擇日)하였는데, 2001년부터는 정월 초닷샛날로 정하였다. 마을에서 초상이나 해산 등의 부정이 없는 집안 가운데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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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토성. 공림산성(公林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성내에서도 관련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태안 방면으로 약 5㎞ 정도 가면 도로 우측으로 예천동의 공림마을이 있다. 공림산성은 서산시 예천동의 공림마을 북쪽에 위치한 공림산[태성산 또는 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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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원료를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만들어 내는 산업.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주된 산업이 농업과 수산업 중심의 1차 산업이었다. 그러나 대형 방조제의 건설과 함께 도로가 확·포장되고, 산업 단지의 조성과 함께 각종 산업체가 입지하면서 인구가 증가하는 등 일대 변혁 일어나 산업 구조가 점차 2·3차 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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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자연환경과 풍속, 사적 등을 경험하며 유람하는 일. 서산시에는 131㎞의 해안선, 가로림만의 갯벌, 서산AB지구의 철새 도래지, 가야산 등의 자연 자원이 있다. 또한 충청남도의 북서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예로부터 대륙 문화 수입과 교류의 장으로 다양한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포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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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관기리의 ‘관’자와 하류곡리의 ‘유’자를 따서 관유리(館柳里)가 되었다.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 관기리와 하류곡리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 관유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지성면을 해미면으로 고치면서 해미면 관유리가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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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일제 강점기인 1934년 부석사의 주지 법운(法雲)이 사산 포교당으로 건립하였다. 1950년 법운의 제자 성담이 중수 및 증축하여 관음사라 불렀다. 1965년 높이 3m의 미륵불을 조성하였고, 1966년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의 영랑사에서 높이 1.5m의 석조 지장보살상을 옮겨 미륵불 옆에 봉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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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광물 자원을 캐내는 곳. 충청남도 서산시 지역은 대보화강암과 결정편마암이 주된 지질로 구성되어 있어 연약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산시 지역의 지질 구조로 인해 지하자원의 분포와 매장량이 매우 빈약하다. 서산시의 광산 현황, 광산별 광물 생산, 광종별 광구 수, 광산물 생산 실적, 광산 종업원 수를 시기별로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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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김연(金璉)을 중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며 신라가 멸망하자 경주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김흥광을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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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광물의 채굴·선광·제련 등의 작업을 행하는 산업. 광업은 광업법상으로 광물의 채광·채굴 및 여기에 따르는 선광·제련·기타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상으로는 유용 광물의 채굴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만을 주로 지칭하며, 따라서 제련에 관련된 산업은 산업 분류상 제조업 중에서 금속 관련 공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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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포구. 구도마을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의 중심 마을이며 구도포구 주변은 평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구릉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호리성(虎里城)이 있다. 호리성은 조선 시대 가로림만으로 상륙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고파도의 파지도영(波知島營)을 태종 때 옮기고 1516년(중종 11)에 해안가에서 30m 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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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 시대라는 용어는 원래 톰센(Thomsen)의 삼시대법에서 정의한 석기 시대를 러벅(Lubbock)이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눈 것에서 유래하였다. 돌을 때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는 시대라는 기술 발전 단계상의 한 개념으로 등장했으며, 이 시대의 시기 구분은 주로 석기로 대표되는 유물의 변화 양상에 따라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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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 자는 우경(虞卿), 호는 경재(敬齋). 1729년 정리된 담양 국씨 족보에는 성유(聖喩)로 적혀 있고, 1974년 족보에는 현남(賢男)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국여명(鞠汝明)으로, 호는 정숙(靖肅)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로 유창수(柳昌壽)의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서령 유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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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국현남(鞠賢男)의 정려. 국현남[1589~?]의 본관은 담양(潭陽)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국현남은 아버지가 연로하여 점점 귀가 어두워져 잘 듣지 못하자 매일의 생활을 종이와 나무껍질, 그리고 목편에 글로 쓰고 그려 보여 드리고, 또 그것을 상자 속에 모아 놓았다. 1646년(인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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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포구 마을이다. 본래는 천수만 내에서 안면도에 딸린 황도와 더불어 가장 큰 섬이었다. 그러나 1982년 10월 26일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대대로 갯가에 의지하여 살아온 간월도는 뭍으로 변했다. 가구 수는 80여 호에 25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큰말·벗말·달박골·갱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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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밀리(貴密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귀밀’이라는 명칭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서산의 지명사』에 의하면 예전부터 귀밀리는 비록 그 규모는 작을지라도 세대를 이어 살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특히 귀밀리 논은 어떤 풍흉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좋은 경작지로 인근에 소문이 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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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교육. 개항기 서산 지역에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근대적인 사설 교육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하지만 1911년에 공포된 「사립 학교 규칙」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며, 그 시설이나 재산은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의 공립 보통학교에 편입되었다. 서산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는 1911년 9월 서령학교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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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서산 지역의 근현대사는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벽했던 서산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빈번했고,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인근 태안군 환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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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 산. 금강산은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에 있으며, 비룡산 바로 서쪽에 있다. 산의 밑에 있는 장군봉[203.5m]은 인지면의 역마산(驛馬山)과 연결된다. 이 사이에 있는 차리고개는 서산과 태안을 잇는 고개이다. 본래는 ‘서각산(犀角山)’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코뿔소산’이라는 뜻이다.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瑞山郡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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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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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鄭盛)을 시조로 하고 정충신(鄭忠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금성 정씨(錦城鄭氏)는 지곡면 대요리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성씨로 ‘한우물 정씨’라고 불린다. 임진왜란과 이괄(李适)[1587~1624]의 난, 정묘호란 등의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충신[1576~1636]이 사패지를 받은 후 350년 이상 세거하고 있다.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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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자금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은 경제상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의미한다. 즉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본 유통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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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금곡리의 ‘금’자와 추학리의 ‘학’자를 따서 금학리(金鶴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쇠골[金谷里], 츄학리[秋鶴里], 마져리[麻田里], 쇼길리[小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금학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영풍창면과 노지면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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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는 고분. 금학리 고분은 팔봉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5㎞ 내외의 거리에 있다. 이 지역은 서산시의 서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에 인접해 있다. 주변에 높은 산지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고분군은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남쪽의 높은 산에서부터 북동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분포한다. 금학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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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사기점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서북단 가로림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팔봉면에서 성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634호선 변에 있는 금학1리 소길마을[우길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소길마을 입구에서 연화산 쪽을 향한 동북~남서 방향의 긴 계곡 초입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연화산으로부터 남서쪽을 향해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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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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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기은리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금야재 우측에 서 있는 12기의 장승 앞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느 마을의 동제처럼 제관은 특별히 뽑지 않고 마을에서 연장자와 이장·반장·개발위원 등이 의무적으로 맡는다. 제수는 시루떡,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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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 고양골마을에 있는 널무덤. 기은리 토광묘는 고양골마을의 남쪽 배산인 둥근산의 북서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기은리 토광묘는 밭으로 개간된 경작지에서 유물이 노출되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현재 약 991.74㎡[300여 평]의 밭을 포함하여 주변의 완만한 구릉 지대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데, 지표상에서 유구의 존재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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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기응세(奇應世)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팔봉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덕송1리에 이르는데, 기응세 정려(奇應世旌閭)는 마을 입구 도로 좌측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기응세 정려는 기응세[1539~158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5년(선조 18)에 명정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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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지리(機池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 논에 두레 10개로 퍼도 마르지 않을 이름난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샘이 무너지지 않도록 둘레에 나무 빈지를 쌓았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지리,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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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기지2리 응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조선 후기에 지어진 사찰로서 알 수 없는 시기에 폐사되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절터 주변에서 초석과 관련 유물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민묘를 만들면서 유적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서 서쪽 2.5㎞ 거리에 기지2리 응골마을이 있는데, 기지리 절터는 응골마을 ‘당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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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되는 대기 또는 대기 현상의 종합적인 상태. 서산 지역은 2010년 기준 연평균 기온이 11.7℃ 내외이고, 연 강수량은 2141.8㎜ 이다. 지난 2009년까지의 연 강수량은 중부 지방의 연평균 강수량인 1,100~1,400㎜와 비슷하거나 다른 해안 지역의 강수량보다 다소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2010년 태풍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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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5대손으로 인조 때 문장가였던 안풍군(安豊君) 김득신(金得臣)이다. 부인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의 전주 이씨로 이동백(李東白)의 딸이다. 김가근(金可近)[1658~1740]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김가근이 어려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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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가근(金可近)의 정려. 김가근[1658~1740]은 안동의 안풍군 김득신[1604~?]의 손자로 1658년(효종 9) 충청북도 괴산의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김가근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를 모셨다. 그러던 중 조부가 병이 들어 지극히 간병하였는데 갑자기 화적들이 집에 들었다. 김가근은 자기 몸으로 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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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관룡(金寬龍)[1900~1975]은 1919년 당시 해미면에 있던 해미공립보통학교의 졸업반 학생으로 평소에 일제 식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19년 3월 24일 해미공립보통학교 졸업식 직전에 면사무소 서기인 이계성(李啓聖)으로부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를 받았다. 김관룡은 졸업생을 위한 고별회에 참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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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증조할아버지는 김숙문(金叔文)이고,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원록(金元祿)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국량(元國良)의 딸이다. 김대덕(金大德)은 큰아버지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된 후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 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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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산 출신의 학자이자 교육자. 본관은 경주. 자는 경필, 호는 소암(溯巖).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889년(고종 26)에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김학방(金鶴芳)[1746~1822]이다. 김상억(金商億)[1862~1938]은 서산의 오랜 세거 성씨인 경주 김씨[일명 한다리 김씨]의 후손으로, 서산군 대산면 광암동[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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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김서형(金瑞衡)은 1475년(성종 6)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를 지내면서 훈련을 핑계로 수시로 군졸들을 징발하여 사냥을 즐겼으며, 때마다 이를 맞이해야 하는 인근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부담을 주었다. 그러던 중 1475년(성종 6) 가야산에서 역시 사냥을 하다 금산(禁山)에 불을 놓아 국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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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출신의 노비. 김업돌(金業乭)은 지금의 서산시 인지면 야당리에 거주하던 유양렬(柳瀁烈)의 노비로, 주인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이 하였다. 1927년 발간된 『서산군지』는 김업돌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김업돌은 1858년(철종 9) 생으로, 나이는 69세[1925년]이다. 유양렬의 집에서 55년 동안 살면서 평소 조금도 게으름 없이 정성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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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서산의 경주 김씨 입향조. 본관은 경주. 고려 말의 충신인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이다. 아들은 증좌승지 김호윤(金好允)과 효릉참봉을 지낸 김호열(金好烈)[1534~?]이다. 맏손자[김호윤의 아들]는 송곡서원에 배향된 김적(金積)[1564~1646]이다. 증손자[김적의 아들]는 김홍익(金弘翼)[1581~1636]과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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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김옥현(金玉鉉)[1781~1800]은 1797년(정조 21) 5월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붙잡혀 서산 감옥에 투옥되자 16세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서 곁을 지켰다. 김옥현이 하도 간절하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옥리(獄吏)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다. 주변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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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이자 교육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봉은(鳳隱)이다. 김용돈(金容敦)[1898~1984]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7세 때부터 한문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주경야독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성장한 후에는 서당을 짓고 훈장을 지내면서 한시 수백 편을 비롯한 여러 장르에 걸친 문장을 지었다. 이때 시 작문을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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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유(德裕), 호는 용주(龍洲)·용곡(龍谷). 할아버지는 김자진(金自珍)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두징(金斗徵)[1646~1678]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파평 윤씨 윤필은(尹弼殷)의 딸이다. 김유경(金有慶)은 서산 대교[한다리]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김유경의 가계는 김연(金堧)[149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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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유경(金有慶)의 신도비와 묘역.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의 명문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 합격 후 1710년(숙종 36)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관직을 거쳐 1746년(영조 22) 좌참찬으로 관직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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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유경(金有慶)의 정려.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나 예법대로 복을 입지 못한 것을 늘 애통히 여겼다. 그러던 중 71세가 되던 해, 즉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는 해에 이르자 드디어 복을 입고 시묘(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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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단구자(丹丘子). 할아버지는 서산 지역에 자리 잡은 경주 김씨 입향조 김연(金堧)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부인은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아들은 연산현감 김홍익(金弘翼), 김홍양, 김홍필, 충청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이다. 김적(金積)[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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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이룡(而龍). 판서공 김불비(金不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손(金仲遜)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김취명(金就明)[1737~1812]은 1774년(영조 50) 무과에 급제하여 1790년(정조 14) 양주와 광주에서 일어난 민란을 평정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되었다. 또한 기장현감, 운봉현감, 충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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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김취명(金就明)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비석. 김취명[1737~1812]의 본관은 김해로, 177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운봉현감(雲峯縣監), 충주영장(忠州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대산의 평신진수군첨절제사겸감목관(平薪鎭水軍僉節制使兼監牧官)으로 부임하여 6년간 권학(勸學), 부역 폐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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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자는 은담(殷膽), 호는 의암(毅庵)이다. 김학방(金鶴芳)[1764~1822]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효성 또한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밤낮으로 시중 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병세를 알기 위해 변을 맛보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에는 여막을 지어 6년 간 시묘살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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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은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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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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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다. 아들은 안기도 찰방(安奇道 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다. 손자는 김홍욱(金弘郁)이다. 1500년대 중반 김연이 정계 은퇴 후 서산에 자리를 잡아 경주 김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모여 살았다. 마을에 큰 다리가 있어 유계리의 경주 김씨를 ‘한다리 김씨[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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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부인은 참의(參議) 오정(吳靖)의 딸 동복 오씨(同福吳氏)이다.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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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먹수지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54년(효종 5) 7월 효종에게 응지상소(應旨上疏)[나라가 어려울 때 임금이 직접 구언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완남군 이후원(李厚源)[1598~1660]에게 편지를 보내 “부모님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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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초취[처음 장가가서 맞이한 아내]는 파평 윤씨 참판 윤민일(尹民逸)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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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익(金弘翼)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익이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인조가 몽진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시신을 수습하여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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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홍익(金弘翼)의 정려. 김홍익[1581~1636]의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黙齋)로 경주 김씨(慶州金氏) 서산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의 증손자이자 찰방(察訪) 김적과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 화순 최씨(和順崔氏)의 아들이다. 1632년(인조 10) 충청도 연산현감으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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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은거하였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조선 개국 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남일성(南一星)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박(權瞨)의 딸이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와리에서 태어났으며, 송준길(宋浚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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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지역 남양 홍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군 인물조에 홍운해(洪雲海) 아들 홍성원(洪性源), 홍지원(洪智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형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문하에서 공부하다 광해군 대에 사마 급제한 이들로 사마방목에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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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군. 남정리 고인돌은 인지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남정1리 정동마을에 있다. 고인돌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남정1리 산214번지 일원의 공수골 일대 고인돌과 남정1리 전318번지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이 있다. 초기에 고인돌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때는 7기로 알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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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남산리의 ‘남’자와 정동의 ‘정’자를 따서 남정리(南井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남산뫼[南山里], 공슈골[葛山里], 얌골[井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남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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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일대에서 관찰되는 겨울 철새. 노랑발갈매기는 번식기에 발이 노랗게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에는 핑크빛을 띠고 있어 재갈매기류의 다른 갈매기와 혼동되기도 한다. 몽고의 민물 저수지 주변에서 번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바닷가와 강이 인접한 민물 지역에서 물고기를 비롯한 동물성 먹이를 먹으면서 번식한다. 노랑발갈매기는 몸길이가 약 56㎝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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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와 식민지 지주들의 억압과 수탈에 대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농민 저항 운동. 1930년대 초반 공황의 여파로 농민들의 경제생활이 열악해지자 전국적으로 대중 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 부당 수세 반대 운동, 국유지 부당 불하 반대 투쟁, 호세 연납 및 채권 문서 소작 투쟁, 산림 조합 반대 투쟁,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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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충청남도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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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 있는 현대그룹 산하의 농업 회사.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현대서산농장은 국토의 확장과 간척 농지조성을 통한 식량 증산 및 자급률 제고, 농산물 증산에 의한 수입 대체, 소득 증대로 국민 생활 향상 및 안정, 수자원 확보 등의 목적을 두고 건립되었다. 1979년 8월 24일 서산AB지구 매립 면허를 취득하여 1982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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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농협중앙회 서산 지역 지부. 농협중앙회 서산시지부는 농업협동조합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여 회원과 조합의 공동 이익을 증진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1년 8월 15일 기존의 서산군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 서산지점을 통합하여 서산군 농업협동조합이 발족했으며 부석, 해미, 대산, 안면, 태안, 원북 등 6개 지역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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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곳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정자는 누각보다는 작은 건물로,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주로 입지하였으며,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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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鞠周)를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담양 국씨는 조선 전기 서산의 지리지나 읍지의 성씨조나 인물조에 나타나지 않는 성씨로 임진왜란 이후 서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1646년 『인조실록(仁祖實錄)』 5월 23일 기사에는 서산 사람 조시응(趙時應)이 정원에 나아가 유학(幼學) 국성유(鞠聖兪) 등의 역모를 상변(上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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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심곡리(深谷里), 신흥리(新興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한틔골, 집푸실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대곡’이라는 명칭은 『조선지지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흥리의 한글 표현 한틔골의 한자 표기인 대치(大峙)의 ‘대’자와 심곡의 ‘곡’자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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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2리 지푸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대곡리 지푸실 산제는 매년 음력 1월 1일 새벽 산제당 옆에 있는 신목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지푸실에서는 5개의 반이 합동으로 정월 초하루에 산제를 지내는데, 산제를 앞두고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있으면 하루 이틀을 늦춘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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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을 흐르는 금강 서해권 수계 하천. 대교천(大橋川)은 도당천(島堂川) 또는 용두천(龍頭川)이라고도 부른다. 대교천과 교량의 이름은 대교리[지금의 유계리]에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지도(朝鮮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대교(大橋)가 묘사되어 있다. 특히, 조선 후기 한경춘(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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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두리(大頭里)는 대두리와 봉락리(鳳洛里)의 경계선상에 있는 한점산의 머리 위치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한점이 크다는 의미로 변하였다는 설과 마을 지형이 큰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한머리 또는 대두라 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머리[大頭里], 사양골[洛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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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대로리(大路里)의 ‘대로(大路)’는 말 그대로 큰길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에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한길이 있어서 마을의 명칭을 ‘한길말’이라 하였다가 ‘말’자가 탈락하여 ‘한길’이라 하였다. 후에 이를 한문으로 표기함에 따라 ‘대로’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반곡리(盤谷里), 노상리(路上里), 노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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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명지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고분. 대로리 명지 고분은 남쪽의 둥근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중하단부에 있는데, 행정 구역상 대산읍 대로리 2구에 해당한다. 지표 조사 당시 40~50㎝ 내외의 봉토가 확인되었는데, 이 가운데 15기는 명지마을 입구의 구릉사면에 분포하고 나머지 3기는 명지감리교회 주변에서 확인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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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대로리 주거지 유적(大路里住居址遺蹟)은 1983년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유적의 존재는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마을 주민인 이갑수가 산소의 봉분을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하던 중 수습하였다는 백제 토기 2점과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및 간석기[마제 석기] 10여 점을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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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사(浮石寺)에서 일본 대마도(對馬島) 관음사(觀音寺)로 옮겨진 고려 후기 금동 관음보살 좌상. 현재 대마도 소장 금동관음보살좌상(對馬島所藏金銅觀音菩薩坐像)은 일본 대마도 소강이라는 포구의 작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관음사 법당 내에 봉안되어 있다. 원래의 봉안 사찰은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의 부석사인데,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에 의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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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던 국영 목장. 조선 전기 서산 지역에는 다리곶(多利串)·흥양(興陽)·토진(土津)·맹곶(孟串)에 목장이 산포되어 있었는데, 1426년(세종 8)에 네 목장의 말을 합쳐 방목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한 결과 홍주(洪州)의 대산곶(大山串)으로 결정되었다. 대산곶은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고, 목장을 축조하는 공역도 편리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4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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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던 공립 대산초등학교의 오지분교장. 건강하고 심신을 다지는 건강인, 스스로 능력을 갈고닦는 자주인, 새롭게 궁리하고 처리하는 창의인,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덕인,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애국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슬기로운 어린이, 예의 바른 어린이, 씩씩한 어린이’였다. 1950년 4월 1일 대산국민학교 오지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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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산(大山)’이라는 뜻은 큰 산이라는 뜻인데, 이는 대산리(大山里)에 있는 망일산(望日山)을 뜻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젼리[山田里], 노상리(路上里), 노하리(路下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대산면 관할의 산전리와 노상리·노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였는데, 이 지역에 대산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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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세워진 8기의 비석. 대산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 대산 지역에서 어사(御使)와 첨사(僉使) 등을 역임한 인물들과 근대의 면장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대산리 비석군은 김봉환[1~3대 읍장으로 1944년~1960년까지 근무]이 대산읍장으로 재임할 때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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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서산시 대산읍 대산면 소재지에서 오지리 방면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2㎞ 가면 좌측으로 주민 이상은의 집이 있는데, 대산리 신석기 유적(大山里新石器遺蹟)은 이상은 집에서 동남방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개울가에 위치한다. 2011년 현재까지 대산리 신석기 유적에서는 갈돌과 갈판이 각각 2점씩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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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의 집성촌은 대체로 16세기 내지 17세기에 입향하여 정착한 성씨들이다. 대산읍 집성촌의 성씨는 본관과 지명을 함께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곰섬 김씨[김해 김씨], 갈머리 김씨[경주 김씨], 개화동 김씨[경주 김씨], 탑골 김씨, 그마재 장씨[인동 장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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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환성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심신을 단련하는 건전한 건강인, 나라를 사랑하며 긍지를 갖는 애국인, 부지런히 일하며 자립하는 면학인, 열심히 공부하는 슬기로운 자주인, 꾸준히 살펴보고 생각하는 과학인, 예절 바르고 질서를 지키는 예절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공부하고, 바르게 행동하자’였다. 194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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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수동[古水洞], 요동(要洞), 대조리(大鳥里)가 합해지면서 대조리에서 ‘대’자와 요동리에서 ‘요’자를 따서 대요리(大要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지와 요[要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대요리 지역은 원래 지곡면 고수철리와 대조곶리(大鳥串里)였으며, 1895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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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한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각리(大角里)의 ‘대’자와 죽엽리(竹葉里)의 ‘죽’자를 따서 대죽리(大竹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녹아리[大角里], 죽엽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대죽리는 조선 시대에는 대각리와 죽엽리로 대산(大山)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각리와 죽엽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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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와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를 연결하는 방조제. 정부는 간척지를 개발하여 다목적 수자원과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대호지구 농업 종합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9년간의 건설 공사를 통해 1984년 11월 16일에 대호방조제를 준공하였다.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삼길포에서 당진군 석문면 도비도까지 3,253m 길이의 1호 방조제와 석문면 도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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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천의장터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운동. 일제 강점기 3·1 만세 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운동 가운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가장 격렬했던 시위는 1919년 4월 4일 정미면 천의리 천의장터에서 발생하였다. 당시의 천의 장날 시위는 치밀한 사전 준비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남상락(南相洛)은 고종의 인산(因山) 날 참례를 위해 상경하였다가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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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대동의 ‘대’자와 황곡의 ‘황’자를 따서 대황리(大黃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대동리와 방길리(方吉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동[大同], 황골[黃谷里], 방길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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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덕동(德洞)의 ‘덕’자와 상송리의 ‘송’자를 따서 덕송리(德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덕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덕동, 위숄말[上松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문현면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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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을 흐르는 하천. 덕지천(德之川)은 ‘덕지내’라고도 부른다. 도당리 남쪽의 구릉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부장리·신장리를 거쳐 흘러간다. 덕지천동에서 해미천·대교천이 합수되어 내려오는 물과 만나 천수만으로 유입된다. 덕지천은 덕지천동과 웅소성리를 가르며 흐르고 하천의 양안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덕지천은 하천의 폭이 좁고 길며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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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일반적으로 덕지천동(德之川洞)은 덕지내라고 불려 왔다. 덕지천이라는 길고 큰 내[川]가 구불구불 흐르면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해서 붙여진 의미 깊은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덕지[德之川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서산군 오산면 덕지천리로 54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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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구도동에서 ‘도’자와 전당리(錢堂里)에서 ‘당’자를 따서 도당리(道堂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구슈동[求水洞], 화락리(花落里), 젼당리, 상암리(上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구수동, 왕시랑이, 구도동 지역과 부산리(富山里) 일부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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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있는 개항기에서 현대까지 세워진 5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국도 32호선에서 음암초등학교 왼쪽 담장을 낀 샛길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음암면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 도당리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 음암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 곳에 모아 둔 것이다. 1. 군수이공운재선정비(郡守李公雲栽善政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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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산. 도비산(島飛山)이라는 이름은 바다 가운데 ‘날아가는(飛) 섬[島]’ 같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매년 봄이면 산 전체에 복숭아꽃이 만발해 복숭아 ‘도(桃)’, 살찔 ‘비(肥)’를 써서 ‘도비산(桃肥山)’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도비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로 금북정맥에 속한다. 도비산 일대를 구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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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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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도원리(桃源里)의 ‘도’자와 성동(星洞)의 ‘성’자를 따서 도성리(道成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돗다란리, 셩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저주리(猪走里)이던 마을이 1895년 성동과 도원리의 두 개 리로 분리되었다. 1914년 도원리와 성동리가 합쳐져 서산군 지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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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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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독곶리 황금산 당제는 매년 음력 3월에 택일하거나 초파일[음력 4월 8일]에 임경업 장군과 박활량을 모신 황금산[156m] 정상에 있는 당집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출어를 떠나기 전에 뱃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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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로 국가보훈처에서 공식 인정한 인물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 탑재되어 있는 포상자 공적 조서 중 서산 출신은 147명[1명은 당진 출신자로 서산 지역에서 활동, 현 당진군 대호지면도 당시 서산군 소속이므로 합산함]으로 확인된다. 훈격별로 보면 애국장 5명, 애족장 49명, 건국포장 4명, 나머지는 대통령 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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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어린이, 창의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어린이, 옳게 판단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어린이, 고장과 나를 위해 헌신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1964년 10월 1일 명지국민학교 독곶분실로 개교하였다. 1966년 5월 4일 명지국민학교 독호분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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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서산읍의 동문이 있었다고 하여 동문동(東門洞)으로 불리게 되었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동문리(東門里), 향교골[校洞], 아션돌[下立石里], 위션돌[上立石里], 온젼골[溫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동문동은 조선 시대에 서산군 대사동면 읍내리, 율지리, 교동리, 탑동리, 남문원리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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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와 갈산리에 걸쳐 있는 토성. 동암산성(銅岩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확인되는 유물이 없어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당진 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운산면 가좌리에 이른다.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동쪽에는 갈산리와 경계를 이루는 동암산[17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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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이곳에 몽웅역(夢熊驛)이 있어 역말, 역촌, 역리라 불리던 것이 동암리(冬岩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동암리의 한글 표현은 역말로 기록되어 있다. 『서산의 지명사』에서는 마을이 동쪽 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 특히 겨울은 더욱 춥고 길게 느껴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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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사직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직단 터. 1927년 간행된 『서산군지』를 보면, 동암리 사직단(冬岩里社稷壇)은 면적 약 2,872.73㎡[약 869평]에 석축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908년(순종 2) 1월 칙령 제85호로 사직단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1910년(순조 4)에는 사직단을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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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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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두우사(杜宇寺)에 있는 조선 후기 삼존 불상.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杜宇寺大雄殿三尊佛像)은 모두 석조이며, 두우사 대웅전에 본존과 협시불로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모시는 불상과는 의궤(儀軌)가 달라 민간 신앙에서 미륵(彌勒)이라고 하여 모시는 불상으로 보인다. 두우사 대웅전 삼존불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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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둔산리(芚山里)의 ‘둔’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둔당리(芚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둔산[芚山里], 당갈미[棠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둔당리는 조선 시대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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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와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걸쳐 있는 산. 뒷산의 고개는 한티, 한치, 대티, 홍주한치 등으로 불렸다. 한티, 한치, 대티는 큰 고개라는 의미이며, 홍주한치란 조선 시대 내포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지금의 홍성]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뒷산 밑의 삼거리라는 지명 또한 덕산과 홍성, 해미로 간다는 의미에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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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29년 간척 매립이 있기 전 마룡리(馬龍里)에 애기장사 전설에 따라 이름 붙여진 용마(龍馬) 연못이 있었다. 부모가 애기장사를 죽여 버린 뒤 그 곳에서 검은 말[驪] 또는 용마가 나왔는데 3일간 연못 주변에서 하늘을 보며 울다가 어디론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전설을 따라 마룡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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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 있는 작은 망루. 서산 정씨 시조 정신보(鄭臣保)[?~1261]와 정인경(鄭仁卿)[1237~1305]과 관련된 사적이다. 양렬공 정인경은 14세기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서산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신보, 정인경 부자는 남송에서 망명하여 처음 간월도에 살다가 서산 시내 대사동으로 주거를 옮겼다. 서산에서 생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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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망운대(望雲臺) 정상에 세운 일제 강점기 때 비석. 정신보(鄭臣保)[?~1261]는 송나라 절강 사람으로 형부원외랑을 역임하였으며, 몽고를 피해 서해를 건너 간월도에 상륙하였다. 정신보는 이후 고창현[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람 오영로의 딸과 혼인하여 정인경(鄭仁卿)[1241~1305]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서산 정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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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망일산 170m 정도의 위치에 있는 망일사(望日寺)는 정충신(鄭忠信) 장군이 신병 치료 차 들렸던 절로 알려져 있다. 옛날 망일사에는 철마가 있었는데 한 청년과 더불어 외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청년이 휘두른 철도리깨와 철마는 현존하지 않지만 외적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바람이 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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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산. 『호산록(湖山錄)』에서는 망일산을 대산(大山)이라고 적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군의 북쪽 35리에 있으며 목장(牧場)이 있다. 이 산은 바다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듯해서 그 형체가 구릉보다 더 높고 크지 않지만, 바다 가운데 가리는 것이 없어서 대산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망일산 일대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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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면 행정 자문 기구. 1917년 6월 총독부 제령[제1호]에 따라 조선면제(朝鮮面制)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모든 면에 일종의 ‘법인격’[독자적인 사업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 아래 1920년 지방 제도 개혁 과정에서 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3·1 운동 직후인 1920년 총독부는 조선의 유력자 집단을 지배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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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산. 옛날 산 아래 향교가 있어 명륜산(明倫山)으로 부르던 것이 명림산으로 바뀌어 불린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주민들은 ‘울음산’으로도 부른다. 명림산 밑으로 맑고 깨끗한 하천이 암석 위를 흐르고 있어서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어 왔는데 이곳에서 두드리는 빨래 방망이 소리가 메아리쳐서 마치 산이 우는 것 같이 들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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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튼튼한 건강인,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자주인,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창조인, 건전한 시민 의식을 갖춘 도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성실, 봉사, 능력’이었다. 1966년 5월 20일 성연국민학교 명천분교로 설립되었고, 1967년 3월 1일 명봉국민학교로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7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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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명절은 계절적 변화에 맞춰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내온 축일이다. 서산은 농토가 넓으면서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명절 음식 역시 제철 농수산물이 풍부하게 활용되었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명절 음식으로는 떡국, 시루떡, 다식, 강정과 산자, 도소주, 오곡밥, 약식, 송편, 팥죽 등이 있으며, 별미로 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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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던 공립 명지초등학교의 삼길포분교장. 1964년 10월 1일 명지국민학교 삼길포분교로 개교하였다. 1968년 3월 1일 명지국민학교 삼길포분교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일 벽지 학교로 지정되었다. 1996년 3월 1일 명지초등학교 삼길포분교장이 되었으며, 2003년 3월 1일 명지초등학교에 통합되어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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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이 여울져 늘 나는 물소리가 우는 소리 같아 우르내, 울내라 하였다. 울내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울내말이라고 하였으며, 한역을 하여 명천(鳴川)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명천리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우루[鳴川里], 말우리[馬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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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명천리 사창(鳴川里社倉)은 조선 시대 서산군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명천리 사창 터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명천리 사창은 조선 시대 서산군의 해창(海倉)으로 ‘명천창(鳴川倉)’이라 불렸는데, 창고의 규모는 기와와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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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3리 창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천리 창말 당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저녁 명천3리 창말에 있는 산제당과 삼신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천3리 창말은 조선 시대 해창(海倉)이 있었던 마을로서 1960년대까지 배가 들어왔던 곳이다. 대호방조제에 의해 뱃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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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청(崔淸)의 사당. 모송사(慕松祠)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의 파조인 최청[1344~1414]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청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충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 호는 관가정(觀稼亭)·송음거사(松蔭居士)이다. 국도 29호선 구 도로변에 있는 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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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기대리(毛其大里)의 ‘모’자와 양월리(梁越里)의 ‘월’자를 따서 모월리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모기대리, 양월리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모월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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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의 서산 A·B지구에서 봄가을에 관찰되는 도요과의 나그네새. 목도리도요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겨울을 나며 시베리아 북부 지역에서 번식하는 나그네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에 관찰되며, 서산 A·B지구의 물을 댄 논이나 저수지 주변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목도리도요는 가을에 암수 모두 수수한 갈색을 띠며, 윗면에 비늘 모양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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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2개의 영현이 설치된 가운데 해미면과 고북면 및 홍성군 갈산면 일대는 이산군(伊山郡)의 영현인 목우현(目牛縣)으로 편제되었다. 삼국 통일 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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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에 있었던 역(驛). 몽웅역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현(縣)의 서쪽 9리에 있었다 하고, 딸린 지도의 서쪽에 역촌(驛村)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역말이라는 마을에 해당된다. 몽웅역은 남동쪽으로는 운주[홍성]로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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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서산 지역에서의 무용은 고전 무용으로 심화영류 승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로서의 무용 분야는 취약한 실정이다. 현대 무용으로는 발레 학원 두 곳 있어 주로 초등학교 학생 등 어린이를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산문화원에서는 지역 문화 학교를 통해 전통 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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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무수리(舞袖里)에서 ‘무’자와 부장동리(部將洞里)에서 ‘장’자를 따서 무장리(舞將里)가 되었다. 무장리는 조선 시대의 두모곡리(豆毛谷里), 돈지리(頓地里), 부장동리 지역이다. 1895년 두모곡리는 원천리로, 돈지리는 신동으로, 부장동리는 사동으로 분리되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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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3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지곡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1㎞ 정도 가다가, 도로 동쪽으로 개설된 마을 진입로에서 이 길을 따라 0.8㎞ 진행하면 무장3리 마을이 나온다. 무장리 유물 산포지(舞將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3구 마을 중앙의 한티골 능선부에 위치한다. 무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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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3리 절골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2.5㎞가량 진행하면 동쪽으로 늘푸른오스카빌 아파트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600m 정도 진행하여 늘푸른오스카빌로 진입한 후 아파트 단지의 외곽을 따라 동쪽으로 돌면, 동쪽에 위치한 구릉의 북쪽 사면 말단부에 자리한 민가가 나온다. 무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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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조선초 서산 출신의 승려. 법명은 자초(自超), 당호는 계월헌(溪月軒), 법호는 무학(無學). 속세의 성은 박씨(朴氏)로, 아버지는 숭정대부문하시랑(崇政大夫門下侍郞)에 증직된 박인일(朴仁一)이고, 어머니는 고성 채씨(固城蔡氏)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학[1327~1405]의 고향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기면으로 이곳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문집류나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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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무형 유산은 음악·연극·무용·공예 기술 및 놀이 등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서산 지역의 무형 유산은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 전해 오는 「서산박첨지놀이」와 심화영류 승무(僧舞), 그리고 고수관(高壽寬) 명창 등이 대표적이다. 「서산박첨지놀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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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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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문수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73년 발견된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에 따르면 적어도 1346년(충목왕 2) 이전에 문수사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기록이 보이지만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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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 극락보전(文殊寺極樂寶殿)에 있는 조선 후기 십육 나한상. 나한(癩漢)이란 산스크리트 어[범어] ‘Arhan, Arahan, Arhat’의 한역으로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다. 불법을 호지하는 수행자로서의 나한은 미륵이 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남아 중생을 제도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문수사 극락보전 십육나한상(文殊寺極樂寶殿十六羅漢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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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삼층 석탑. 석탑은 일반적으로 사찰 가람에서 중요 신앙과 예배 대상으로 건립되는데, 문수사 삼층석탑은 건립 배경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수사 삼층석탑은 문수사 극락보전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문수사 삼층석탑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모두 갖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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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전. 1973년 문수사 극락보전(文殊寺極樂寶殿)에서 발견된 문수사 금동여래좌상(文殊寺金銅如來坐像)의 복장 유물에 의하면, 1346년(충목왕 2)에 불상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문수사 극락보전도 적어도 고려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추정된다. 아마도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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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 극락보전(文殊寺極樂寶殿)에 있는 고려 후기 금동 여래 좌상. 문수사 금동여래좌상(文殊寺金銅如來坐像)은 문수사 극락보전[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3호]에 안치된 고려 후기의 단아한 금동불 좌상이다. 조성 연대는 발원문 중 ‘대원지정육년병술구월초팔일(大元至正六年丙戌九月初八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1346년(충목왕 2)임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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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소동리(小洞理), 장양리(章陽理), 회찬리(回贊里) 등 3개 리와 문기리(文起理) 일부를 합치면서 문기리에서 ‘문’자와 장양리에서 ‘양’자를 따서 문양리(文陽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뭉구리[文起里], 쇼동[小洞], 장양동(章陽洞), 회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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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문양리 까치절에 있는 석불 입상. 문양리 까치절 석불입상은 요사채와 대웅전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찰인 까치절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석불은 높이 210㎝, 어깨 폭 70㎝, 몸통 둘레 약 380㎝로 비교적 넓은 판석재(板石材)를 이용하여 몸체의 앞면만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머리 부분에는 나발(螺髮)과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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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은 지리적 특성상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한 곳이 아니었지만, 여유와 한가로움을 즐겼던 문인의 문학적 자취가 서려 있으며 다채로운 문학 작품이 남아 있다. 서산의 문학은 서산의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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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행위. 충청남도 서산 지역 문화예술의 형성과 발달은 지역의 자연적 조건과 관계가 깊다. 한반도의 서쪽 부분, 충청도의 서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서산 지역은 비교적 넓은 해안선을 끼고 있으며 높은 산과 큰 강이 없는 평야 지대이다.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개간이 용이하여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일도 적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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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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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조직된 지방 개량 단체. 1926년 1월 해미면, 고북면, 운산면 세 지역의 유지(有志)들이 서로 상의하여 해미보통학교[현 해미초등학교]에 미성회(美成會)를 설립하였다. 세 지역 내에 ‘품행단정지학우급유지자(品行端正之學友及有志者)’를 회원으로 조직하여 해미보통학교를 후원하고, 도덕심 배양, 문예 계발, 풍기 위생 개선, 산업 증진, 생활 개선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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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미술사는 조선 3대 화가의 한 사람인 안견(安堅)과 그의 작품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안견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산시 지곡면에는 안견기념관이 있고 매년 안견 예술제와 미술 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서해안고속국도의 개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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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생활 풍속. 민속은 전통 사회에서 주로 농민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 계층의 문화를 지칭하지만,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계층의 생활 문화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오늘날의 민속은 소외된 계층의 문화와 모든 한국인의 일상 문화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곧 민속은 민중[농민, 어민, 상공인 등]이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 속에 대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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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속과 생활의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서산 지역은 어촌, 농촌, 산촌 등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생활 모습을 반영한 놀이 문화도 고루 발달하였다. 민속놀이는 성별, 연령, 계절과 실내 또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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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문인. 호는 우보(牛步) 또는 부춘산인(富春山人). 아버지는 민삼현이다. 민태원(閔泰瑗)의 할아버지가 산청현감을 지낸 인물이라 사람들이 그의 집을 민산청 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민태원[1894~1934]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에 상경하여 수하동 공립 보통학교와 경기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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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좌(蕣佐), 호는 경암(絅庵)이다. 민태직(閔泰稷)[1868~1935]은 충청남도 서산시 오남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유진하(兪鎭河)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1885년에 부친상을 당하자 몹시 슬퍼하며 시묘살이를 하였고, 시묘살이 중에도 경서를 탐독하고 예를 강론하였다. 민태직은 근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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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천도교 지도자. 본관은 밀양. 초명은 박용호(朴龍浩), 자는 도일(道一), 호는 춘암(春菴)이다. 박인호(朴寅浩)[1855~1940]는 충청남도 덕산군 장촌면 막동[현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지가서(地家書)[풍수지리에 근거를 두고 묏자리나 집터 따위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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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전래되는 「서산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형.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주인공 박첨지를 통해 양반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마을 단위 민속 인형극이다. 이 놀이가 서산시 음암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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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경립(敬立),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고조할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박간(朴幹)이고, 아버지는 박현룡(朴顯龍)이다. 어머니는 현감 윤환(尹瓛)의 딸이다. 박홍미(朴弘美)[1571~1642]는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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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반계리(磻溪里)의 ‘반’자와 만양리(晩陽里)의 ‘양’자를 따서 반양리(磻陽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만양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만양니[晩陽里], 고현[磻溪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반계리의 한글 표현인 고현이란 명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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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반양리 미륵불(磻陽里彌勒佛)은 원래 들에 세워진 마을 미륵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초가집에서 슬레이트집으로, 그리고 2011년 현재는 화려한 사찰 속으로 들어간 미륵이다. 현재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미륵사의 용화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당초에는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반계마을 황성순의 집 마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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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확인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해미현 고적조에 “성산성(城山城)은 석축 둘레 1,403척으로 현재는 폐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현재의 반양리 산성 위치에 고성(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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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반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반양리 산신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산제당[상당 의례인 산신제]과 이튿날 산제당 아래[하당 의례인 미륵제]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반양리 산신제와 미륵제는 윗말과 아랫말이 번갈아가면서 지내는데, 만일 마을에서 부정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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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가지 기호[문자, 숫자, 도형, 도표, 이미지, 음성, 음향, 영상]로 이루어진 방송 프로그램을 유무선 통신을 이용하여 송신하는 일.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방송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서산에 라디오가 들어온 것은 『서산시지』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이었다고 하나 상세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45년 8월 15일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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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에 있는 문인석. 방죽골 문인석은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약 350m 거리에 있는 방죽골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41-1번지에 있는 김태용의 집 뒤쪽의 계곡을 따라 약 40m 정도 올라가면 조그마한 웅덩이가 확인되고, 웅덩이에서 약 60m 더 올라가면 방죽골 문인석이 쓰러져 있다. 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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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백암사지(百庵寺址)에서 확인되는 석등의 하대석(下臺石)과 옥개석(屋蓋石), 석탑 부재의 제작 기법으로 보아 보원사(普願寺)가 융성하였던 고려 전기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폐사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보원사의 사세가 기울던 조선 후기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인근의 보원사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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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마애불.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서산나들목에 다다른다. 그 다음 가야산 상왕봉으로부터 발원한 물길이 서산시 운산면의 용현계곡을 만들며 굽이쳐 흘러드는 용현리 입구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용현계곡의 물소리가 잦아드는 한쪽 골짜기를 찾아들면,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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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보원사지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장엄구. 보원사지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치는 1968년에 보원사지 오층석탑을 해체·보수하던 중 4층 옥개석과 5층 탑신석, 기단 적석층(積石層)에서 발견되었다. 4층 옥개석의 사각형 사리공에는 금동 사각형 사리합과 금동 직사각형 사리통, 녹색 유리 사리병, 5층 탑신석에는 유리 및 옥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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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봉동(鳳洞)의 ‘봉’자와 낙양동(洛陽洞)의 ‘낙’자를 따서 봉락리(鳳洛里)라 하였다. 봉락리라는 이름은 과거 이곳에 있었던 서씨 묘를 옮길 때 봉(鳳)이 나와서 뒷산에 떨어졌다는 전설에 기인한다는 설도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봉골[鳳洞], 사양골[洛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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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봉생리 사창 터는 조선 시대 홍주목에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 중 하나인 서창(西倉)이 있던 곳이다. 봉생리 사창(鳳生里社倉)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개간하기 전까지 바다에 접한 곳이었고, 그 위치로 보아 서해안 수로 교통에 바로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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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와 홍성군 갈산면 대사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시대 봉수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던 산으로 봉화산(烽火山)이라고 부르고 있다. 봉화산은 금북정맥 산줄기가 남쪽으로 흘러 형성된 뾰족한 봉우리 산으로, 산 전체가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봉화산 주변의 구릉지는 곡저 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봉화산 동쪽에는 대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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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흥동(富興洞)에서 ‘부’자와 산저리(山底里)에서 ‘산’자를 따서 부산리(富山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 부흥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두치면(豆峙面) 산저리와 부흥동이 1895년 산저리, 부흥동, 율리(栗里), 점촌(店村)으로 분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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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적돌강(積乭江)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부석면(浮石面)이라 하였다. 백제 시대에는 기군(基郡) 지역에, 신라 시대에는 부성(富城)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 서산군(瑞山郡)에 속하였다. 본래 마산면(馬山面)이라 하여 시동(柿洞), 갈마동(渴馬洞), 월계리(月溪里) 등 11개 리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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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는 강당 이씨(江堂李氏) 회안대군파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지산리에 지산 조씨[평양 조씨] 등이 있다. 강당 이씨는 전주 이씨로 부석면 강당리 일대에 거주하여 얻은 별칭이다. 또한 면(面)의 옛 이름인 화변에서 따서 화변 이씨(禾辺李氏)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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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부석사(浮石寺)는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浮石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있었던 고려 시대의 사찰이다. 돌이 떠 있다는 ‘부석(浮石)’이라는 절 이름은 마치 서해 바다에 떠 있는 절이라는 신비감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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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불전. 현재 일본에 있는 1330년(충숙왕 17) 제작의 금동관음보살상으로 볼 때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은 처음 고려 후기에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부석사 극락전은 1619년(광해군 11) 『호산록(湖山錄)』에도 등장한다.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된 1669년(현종 10) 제작의 범종과 극락전에 안치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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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浮石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1689년(숙종 15) 왕자 이균(李畇)이 태어났을 때 서원을 세우면서 제작된 목조 불상이다. 원래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에 있는 용봉사(龍鳳寺)에 봉안되어 있었다. 1905년(고종 42)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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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부석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동종. 불교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 내는 일체의 용구를 범음구(梵音具)라고 하는데, 부석사 동종은 범음구 중의 하나이다. 종은 당외(堂外)의 종루에 걸어 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는 청정한 불사(佛寺)나 범찰(梵刹)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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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누각.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도비산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 앞에 위치하고 있다. 부석사 안양루(浮石寺安養樓)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석사 극락전 상량문이 1950년에 만들어졌으므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 총 10칸의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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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부성산성(富城山城) 성내에서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오래전부터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성내에서는 삼국 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성산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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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던 공립 부성초등학교의 중왕분교장. 원 소속이었던 부성초등학교는 ‘바르고 슬기롭게 미래를 여는 부성 교육’이라는 비전 아래 꿈과 희망 그리고 알찬 실력을 지닌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참되어라 쓸모 있어라 끝까지’이다. 1966년 3월 1일 산성국민학교 중왕분교장 설립을 인가받았다. 1996년 3월 1일 산성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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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를 관할하였던 군(郡).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되었으며, 그 밑에 소태현(蘇泰縣)과 지육현(地育縣)이 설치되었다. 서산 지역은 통일 신라 시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중국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는데 최치원(崔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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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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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다리(富多里)에서 ‘부’자를 장산리(長山里)에 ‘장’자를 따서 부장리(富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울[蘆乃洞], 장산리, 셩동[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부다리와 노내동리(蘆乃洞里), 동음암면(冬音巖面) 부산리(富山里),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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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부조묘는 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함하여 선조 3대를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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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과 갈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읍내동(邑內洞)과 갈산동(葛山洞) 사이에 서산시의 주산이라고 불리는 부춘산(富春山)이 자리하고 있어 부춘동(富春洞)이라 하였다. 1989년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되면서 서산시의 중심인 읍내동과 농촌 지역인 갈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인 부춘동이 설치되었다. 부춘동은 가야산맥의 지맥인 부춘산,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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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산.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보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북산이나 북주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춘산이란 이름은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호산록』이 조선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사실을 감안하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부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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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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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체육 문화 공원. 부춘산 체육공원은 스스로 참여하는 범시민 생활 체육 풍토의 조성과 함께 생활 체육 활동의 욕구를 수용하는 접근성과 자연환경이 좋은 공원이다. 부춘산 체육공원은 시민들이 휴식과 예술 작품 감상, 운동을 겸할 수 있는 테마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의 건강 증진 및 여가 선용과 앞서가는 체육 문화를 창달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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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 농민 전쟁 때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최후 전투지.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특히 서산 지역의 농민군은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전주성 전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현재 서산시 소탐산에 위치한 매현(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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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북주산성(北主山城)은 아직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정확한 건립 경위 및 축조 시점을 알 수 없다. 성내에서는 삼국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어, 적어도 삼국 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서산시 읍내동 북쪽 서산시청 뒤편에 솟아 있는 부춘산 정상부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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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불교문화는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 불교의 중흥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고구려는 북조 전진의 아도로부터 372년(소수림왕 원년)에 받아들였고, 백제는 남조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384년(침류왕 원년)에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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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불교의 예배 대상을 조성한 조각상. 불상(佛像)이란 불교의 교리에 의한 예배 대상을 석재나 금속 또는 흙이나 나무 등의 시각 매체를 통하여 조성한 조각상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로는 붓다, 즉 여래(如來)의 존상만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조사상(祖師像), 천왕상(天王像), 명왕상(明王像) 등 불교 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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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성리에 있는 산. 비룡산 남동쪽 210m에 있는 죽사(竹寺)에는 대나무와 바위가 서로 누가 먼저 자라는지 내기를 하여 대나무가 이겼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때 바위와 대나무가 점점 커지는 바람에 산에 살던 용이 안식처가 좁아져서 산으로 올라가 벼락을 쳤다고 하며, 비룡산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비룡산 일대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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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절골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 사기리 고분은 서산시 고북면의 남서쪽 외곽에 있으며, 서쪽은 간척 사업이 이루어진 천수만에 맞닿아 있다. 고분군은 사기리의 북쪽에 위치한 절골마을 전방에 있는 경작지에 있다. 사기리 고분은 경작지를 밭으로 개간할 때 청동 합과 수저, 상감청자가 함께 출토되면서 확인되었다. 주민들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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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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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빛을 매체로 하여 물체의 상을 감광성 기록 재료 위에 기록하는 방법, 또는 그 방법으로 얻은 화상. 사진 예술은 과학 기술 발전의 결과물이다. 사진기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말하는 예술로서의 사진은 해방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산에는 일제 강점기에도 세 곳의 사진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소한 사진기 몇 대는 보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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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부처님의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스님들이 수행을 하거나 불교 신자들이 찾아가서 수행과 부처님의 법음을 듣는 곳이다. 서산 지역에 있는 사찰은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의 큰 자취를 남기고 있다.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전국 각지에 사찰이 세워졌다.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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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사회 복지와 사회봉사를 실천하기 위하여 설립된 조직이나 단체. 사회 복지 단체는 사회 복지 사업을 통해 시민이나 지역 주민의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예방하고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그 대상에 따라 일반 복지 단체, 아동 복지 단체, 노인 복지 단체, 장애인 복지 단체, 여성 복지 단체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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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분포되어 있는 주변에 비해 높이 솟은 봉우리. 충청남도 산지의 윤곽은 태백산맥으로부터 갈라져서 남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다가 충청남도 중앙에 있는 차령산맥, 그 북서쪽의 가야산지, 남동쪽의 계룡산지와 금산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산고원 등에 의해 결정된다. 서산 지역은 화강암 지층으로 오랜 시간 동안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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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산저리의 ‘산’자와 동막리(東幕里)의 ‘동’자를 따서 산동리(山東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저리·동막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山底里], 동막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동리는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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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1리에 있는 절터. 서산시 인지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부석 방면으로 4㎞ 가다 보면 서산시 공원묘지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산시 공원묘지 방향으로 접어들어 1㎞ 가면 산동리 절상골 절터에 도착하게 된다. 산동리 절상골 절터는 서산시 공원묘지에 인접해 있는 김동식 소유의 밤 과수원 안에 위치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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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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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2리 젓다리 골짜기에 있는 고분.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곡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5㎞의 거리에 있다. 산성2리의 북서쪽에 있는 굿박골산[50.1m]의 남향 사면에 고분군이 분포하는데, 이곳은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는 산림 지역이다.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표 조사를 통하여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남향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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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당산리(堂山里)의 ‘산’자와 수원동(水源洞)의 ‘수’자를 따서 산수리(山水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당산리, 수원동,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수원골[水源洞], 당산니[堂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수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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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계곡. 산수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동면 당산리와 수원동리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산리(堂山里)와 수원리(水源里)를 병합하여 산수리(山水里)라 했다. 계곡 이름은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산수리 계곡 일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중생대 쥐라기 대보 화강암이다. 석문봉 서쪽에서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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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사창벌마을에 있는 고분군. 산수리 고분군은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사창벌마을 동쪽 야산의 남동향 사면에 있다. 산수리 고분군은 지표 조사 과정에서 3, 4기가 확인되었다. 주로 주민들의 증언으로 유구 내용이 채록되었다. 현재 구체적인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고분군으로 전하는 지역의 상당 부분에는 고분 석재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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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읍 산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산수리 미륵불(山水里彌勒佛)은 원래 서산시 해미읍 산수리의 산수저수지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원효봉 서남쪽 산기슭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산수리 미륵불 좌우에는 약사여래상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2001년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높이 230㎝, 폭 90㎝, 두께 50㎝의 상으로, 머리엔 문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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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삼봉리(三峯里)의 ‘삼’자와 송치리(松峙里)의 ‘송’자를 따서 삼송리(三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삼봉리, 송치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봉니, 솔틔, 위터골[上基里], 위버드실[上柳谷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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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서산에서는 12개 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4월 4일 서산 지역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대호지면 만세 사건은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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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있는 산. 고려 때 고구현(高邱縣)의 땅이었다. 성터가 남아 있고, 고려 말부터 봉수(烽燧)를 올려 신호하던 봉수대가 있었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가곡리에는 자연 마을로 가곡, 노상, 동막, 삼준이 있는데 삼준산은 이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서산시 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접해 있는 산으로, 기반암은 화강암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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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튼튼한 몸을 가진 어린이,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꿈을 가꾸고 힘을 기르자’였다. 1964년 10월 18일 고북국민학교 성북분실로 인가받았다. 1967년 3월 1일 삼포국민학교로 승격되어 인가받았으며, 1985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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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 상례는 인간의 숙명적인 마지막 길에 예를 갖추어 보내 드리는 절차를 말한다. 상례는 크게 상례(喪禮)와 장례(葬禮)로 나눌 수 있다. 상례·장례 의식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분리하는 하나의 통과 의례로써 작용한다. 서산 지역에서 행하는 상례의 절차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초종(初終)·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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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상을 당하였을 때 입는 옷차림. 상례복은 한 인간의 죽음을 엄숙하고 정중하게 모시는 상례 절차에서 입는 예복으로, 망자에게 입히는 수의(壽衣)와 상주나 복인이 입는 상복(喪服)이 있다. 수의는 상례에서 염습(殮襲)할 때 망인에게 입히는 옷이다. 남자의 수의는 장단, 바지, 저고리, 속바지, 속저고리, 도포 등으로 구성된다. 여자의 수의는 장단,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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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촌동(上村洞)의 ‘상’자와 성동(城洞)의 ‘성’자를 따서 상성리(上城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궁말[上城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의 월경처(越境處)였다. 상성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에 속하였다가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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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서산시에는 과거 서산장·해미장·부석장·안면장·원북장·운산장·고북장·근흥장·소원장·대산장 등 13개의 정기 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과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 등으로 중심지의 서산장과 해미장만이 남아 있으며 모두 폐장 되었다. 서산시의 상업 활동은 서산동부시장을 중심으로 500여 점포가 운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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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산. 17세기 초의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상왕산을 가야산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서산에는 가야산이 따로 있어 과거에 가야산이 상왕산으로 불렸고 현재의 상왕산은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여러 짐승들 가운데 코끼리가 가장 힘이 세고 으뜸이니 코끼리에 빗대어 당시에 힘이 있는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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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상노치리(上蘆峙里)에서 ‘상’자와 홍천리(紅川里)에서 ‘홍’자를 따서 상홍리(上紅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가, 아가[下蘆峙里], 즁노치[中蘆峙里], 홍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두치면(豆峙面) 노치리(蘆峙里)와 홍천리였으나,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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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에 있는 토성.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은 성벽의 구조조차 확인할 수 없고, 유물도 확인되지 않아 성의 축성 시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산성의 축성 경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당진 쪽으로 약 8㎞ 정도 가면 음암면 상홍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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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음암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1.6㎞ 거리에 있는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의 북동쪽에는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이 있는 높이 70m 내외의 산지가 있는데, 상홍리 유물 산포지(上紅里遺物散布地)는 이 산의 서남향 사면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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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857~?]이 886년(정강왕 1)에서 893년(진성여왕 7)까지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부임했을 때 부춘산의 상부, 중부, 하부의 세 곳에 암자를 지었다고 하나 모두 확인할 수 없다.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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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간(柳成澗)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령 유씨는 서산 지방의 토성 집단 가운데 유력했던 성씨 중 하나로 여말 선초(麗末鮮初) 절의계 인물들을 배출하여 명성을 날렸다. 현재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柳方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의 후손으로 오래도록 재지 사족의 지위를 유지하여 향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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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청년 운동 단체.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최초로 조직된 청년회는 1920년 서산 지역 청년들이 조직한 서산청년회였다. 서산청년회를 뒤이어 서산 지역의 청년 활동을 이끈 조직이 바로 서령청년회였다. 창립 당시 유명무실하기는 했지만 서산청년회가 온존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서령청년회’라 이름하였다. 서산청년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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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축구회. 서령축구회는 회원의 체력 향상 및 친목 도모, 생활 체육 진흥, 앞서가는 체육 문화 창달, 축구 후진 양성 및 후원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80년 10월 5일 창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 허현이 취임하였다. 이후 1995년 시·군 통합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2000년 제23대 김맹규 회장을 선임하고 서령축구회로 명칭을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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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던 초등 교육 기관. 서산의 근대 교육 역사에서 풍전신숙(豊田新塾)과 서령학교(瑞寧學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풍전신숙은 1907년(순종 1) 당시 대지주 한동벽 등이 서산 읍내에 설립한 학교인데, 1908년(순종 2) 서령학교가 설립되면서 이에 흡수 통합되었다. 『서산군지』에 따르면, 서령학교는 당시 서산군수였던 박승준(朴承俊)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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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대한궁도협회 산하 궁도 단체. 서령정은 충청남도 서산 지역 궁도인의 인격 도야와 건강 증진 및 정신 순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7년 6월 24일 당시 군수이던 이승규(李承圭)가 초대 사두(射頭)가 되어 서산 부춘산 옥녀봉 기슭에 사장(師場)과 관혁(貫革)을 마련하였다. 1971년 9월 4대 사두인 조승형(趙昇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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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암(看月庵)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보살 좌상. 서산 간월암 목조보살좌상(瑞山看月庵木造菩薩坐像)은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역사는 오래되어 간월암을 창건한 승려 무학(無學)[1327~1405]이 조성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산 간월암 목조보살좌상의 뒤쪽에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 그리고 4대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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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년(성종 15) 중창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開心寺)의 중심 불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개심사 내에 위치하고 있다. 1941년 건물을 해체 수리하면서 찾아낸 상량문 기록에 의하면, 서산 개심사 대웅전(瑞山開心寺大雄殿)은 1484년 중창되었다고 한다. 다른 부재에서 이후에 기록된 2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인조와 숙종 때의 기록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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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開心寺)에 있는 고려 후기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은 본래 무량수전, 미타전, 아미타전 등의 전각에 봉안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개심사 대웅보전(開心寺大雄寶殿)의 경우는 석가여래 대신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봉안하고 있어 예외성을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아미타여래는 보통 양 협시 보살로 관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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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통 가옥. 서산 경주김씨 고택(瑞山慶州金氏古宅)은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농경지와 낮은 구릉이 펼쳐져 있는 평지 마을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소심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는 한다리마을이라고도 불리며,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경주 김씨 세거지(慶州金氏勢居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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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에 있는 군용 비행장. 국방부는 방대한 서해안 방어를 위해서 1989년 K-Z비행장을 계획하였는데, 당시 충청남도 서산군과는 사전 협의 없이 계획된 것으로 대상 지역인 해미면과 고북면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매일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비행장 설립 반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서산군이 공군과 협의하여 주민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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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0월 1일 동학 교도들이 충청남도 서산의 관아를 습격한 사건. 서산·태안 지역에서 조직적인 농민 봉기가 시작된 것은 1894년 음력 10월 1일[양력 10월 29일]이었다.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해 9월 14일 태안군수 신백희(申百熙)와 종친부에서 파견된 별유사 김경제(金慶濟)가 동학 두령 30여 명을 투옥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예포대도소(禮包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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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교육 종사자 단체. 서산교육회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 교육의 개선과 진보를 위해 설립되었다. 학교비나 학교 조합과는 별도로 존재했던 일종의 교육 종사자 단체로서 정식 명칭은 ‘조선교육회 충청남도교육지회 서산분회’였다. 서산교육회는 1923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장 1명, 부회장 2명, 평의원 약간 명이 두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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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개통된 충청남도 서산과 전라북도 군산을 연결하던 정기 항로. 1922년 6월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사설 철도로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을 개통한 이후 구간별 공사를 계속하여 1931년 8월 충남선[현 장항선] 전 구간을 완전히 개통하였다. 이와 더불어 장항 부두가 완성되면서 장항과 군산의 중요성이 커지자 서산 지역의 유지들은 뱃길로 장항과 군산을 잇는 정기 여객선의 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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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금융 조합. 1907년경부터 군을 단위로 지방 금융 조합이 설립되어 화폐 정리 사업, 납세 선전 활동, 농사 지도 장려 사업 등의 정책 사업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공은행의 말단 조직으로서 농업 자금의 대부, 농산물의 위탁 판매, 종자·비료·농구 등의 분배 및 대여 등의 업무도 수행하였다. 이는 서산금융조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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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운동 단체. 서산노동청년회는 지역 내의 노동자, 소작인, 머슴 청년들의 권익을 위해 조직되었다. 1928년 1월 노동자, 소작인, 머슴 청년들을 중심으로 서산노동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창립 당시 위원장은 박연(朴演), 부위원장은 조석구(趙錫九), 서무부는 한병욱·노영호(盧永鎬), 사업선전부는 이흥식·임국빈·최용안, 재무부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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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노인 요양 시설. 무료 노인 의료 복지 시설로서 쾌적한 주거 생활과 노인성 질환 및 요양 건강을 위한 취미 활동 등 종합적인 노인 복지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산 지역의 노인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시설이다. 서산노인요양원은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건강관리 체계 확립과 노인성 질환을 가진 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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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지역 농업 협동조합. 서산농업협동조합은 농업 생산력의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서산농업협동조합은 1972년 7월 25일 14개의 이동조합을 합병하면서 서산시 읍내동 141-9번지에서 설립되었다. 1975년 8월 8일에는 동부지소를 개점하였고, 1985년 온라인망을 구축하였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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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상설 시장. 일제 강점기 서산의 제1호 시장인 읍내장[2일, 7일]은 1년 매매고가 20만 원을 상회하여 1920년대 당시 대시장에 꼽히는 서산 지역 상권의 중심지였다. 당시 읍내장에서 가장 높은 매매고를 나타낸 것은 축류였다. 1926년에는 서산의 유지들이 상업의 개선과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소비조합을 창설하여 1938년까지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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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서산 마라톤 대회는 서산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서산 시민의 체력 및 삶의 질 향상을 이루며 앞서가는 체육 문화를 만들고자 1992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행사는 서산시 생활체육회와 대전일보사가 공동 주최하고 국민생활체육회 서산시 육상연합회가 주관한다. 서산 마라톤 대회는 5㎞·10㎞·하프 코스의 세 종목이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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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실과 비. 명종대왕 태실(明宗大王胎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모셨던 곳으로,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 두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대군춘령아지씨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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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문수사 금동여래좌상(文殊寺金銅如來坐像)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복장 유물.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 유물(瑞山文殊寺金銅如來坐像腹藏遺物)은 1973년 12월 17일 문화재관리국의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2008년 8월 28일 보물 제157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수덕사 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충청남도 유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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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지역 문화예술 진흥 기관. 서산문화원은 지역 문화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특수 법인이다.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거 지역 문화의 발전과 지역민의 문화 향수권 제고 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7년 6월 15일 서산문화원이 설립되었으며 초대 원장으로 안상혁이 취임하였다. 1991년 8월 23일 행정 구역 개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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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음력 1월 15일과 2월 1일에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를 재구성하여 연출한 민속놀이. 서산볏가릿대놀이는 서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볏가릿대 세우기와 화간제(禾竿祭) 등을 민속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서산볏가릿대놀이는 1985년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연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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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보물 제105호]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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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당간 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 지주라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는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배치되었는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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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坦文)을 기리기 위해 세운 승탑. 입적한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을 사리탑 혹은 승탑이라 한다.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이를 받쳐 주는 기단부(基壇部)가 있고 위로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서산 보원사지에 세워져 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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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석조. 보원사(普願寺)는 통일 신라 시대 화엄 10찰로 불린 사찰일 뿐만 아니라 고려 광종 때에는 국사를 파견한 큰 사찰이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는 보원사가 가장 융성하였던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찰에서 물을 담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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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 석탑.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1968년과 2003년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두 번의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內匣), 외갑, 사리병, 납석 소탑(蠟石小塔) 등이 출토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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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 김순일(金淳一)이 발간한 시집. 『서산사투리』는 서산 출신의 대표적 시인 김순일이 1986년에 발간한 시집이다. 1983년 발간한 동명의 첫 시집에 발표된 시 31편과, 그 이후 1985년까지 주로 『현대시학(現代詩學)』과 『백지(白紙)』에 발표되었던 『서산사투리』 69편을 다시 정리하여 함께 묶었다. 『서산사투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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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삼림 조합.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개항기부터 불을 때서 소금을 굽는 자염업(煮鹽業)이 발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 삼림은 심하게 황폐해졌다. 당시 서산 지역에 삼림조합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서산군청과 서산군 대지주들은 삼림조합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는데, 그 이유는 서산 지주들의 주요 사업인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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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5~6월에 열리는 생활 체육 동호인 축제. 서산시는 서산시 생활체육회를 중심으로 종목별 동호인 사이에 생활 체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산시 생활체육회는 생활 체육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활기찬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산 생활 체육 동호인 한마음 축제는 건강한 시민 정신 고취, 생활 체육 운동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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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소비조합. 1920년대 서산 읍내장의 상권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들은 서산 지역의 상업이 부진하게 된 원인으로 “첫째 자본 문제도 있거니와 대부분은 상업 경영 방침의 불충실, 불친절한 까닭, 둘째 일반 고객의 심리가 외인(外人)의 상회에서 매매(賣買)를 선호하는 까닭” 등을 손꼽았다. 1926년 서산 지역의 1년 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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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문화예술 단체. 일제 강점기부터 서산 지역의 내포제시조 동호인들이 활동한 것을 시초로 하여 내포제시조의 전수 및 계승 발전에 힘쓰고 있는 단체이다. 서산시우회는 전통 국악 시조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서산시 읍내동 소재의 과거 서산우시장 주변 주막에 시조를 사랑하는 국악인들이 모여 시조를 부른 것이 시우회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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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에 관한 1970년대 트로트풍의 노래. 「서산아가씨」는 서산 지역의 자연 경관과 인심을 목가적으로 표현한 노래로, 1970년대 당시 서산의 모습이 담겨 있다. 대중가요에 나오는 서산 지역은 주로 바닷가, 인심 좋은 고장, 농촌과 어촌의 삶 등이 표현되어 있다. 차민호 작곡, 김동찬 작사, 김상진이 불렀으며, 1974년 1월 15일 지구레코드(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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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과 관련한 트로트풍의 노래. 「서산아가씨」는 어촌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가씨를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이다. 특산물인 굴을 따는 모습을 통해 어촌 생활의 일면을 보여 주며, 어촌 생활의 고단한 일상을 바닷가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게 노래하였다. 예전부터 서산 지역과 관련하여 자연 경관과 어촌 지역의 생활 모습을 담은 노래들이 많았는데, 「서산아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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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양잠업자 협동조합. 서산 지역 양잠업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잠업의 생산력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다. 서산양잠농업협동조합은 1971년 3월 24일 설립되었다. 같은 해 4월 20일 설립 인가를 받아 6월 14일 설립 등기를 마치고, 6월 17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과거에는 견직물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양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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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안쪽 창리 해안에 위치한 포구. 창리포구는 부석면의 남쪽 끝 해안에 위치한다. 동·서·남 3면은 천수만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태안군 남면,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마주보고 있다. 창리에 속한 자연 마을은 창말·목말·구장터 등이 있고, 부속 도서로 대섬·쏘아섬·닭섬·검조도·시루섬·토끼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창리포구는 본래 서산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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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와 창리에 있는 방조제. 서산AB지구방조제는 국토의 확장과 간척 농지조성, 식량 증산 및 자급률 제고, 농산물 증산에 의한 수입 대체와 소득 증대로 국민 생활을 향상시키고 수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한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축조되었다.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은 1970년대 중동에 나가 있던 (주)현대건설이 장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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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서산여자중학교 소속 사격부. 서산여자중학교 사격부는 서산여자중학교 학생들의 체력 향상과 인격 형성 및 엘리트 선수의 육성을 위해 설립되었다. 서산여자중학교 사격부는 1992년 10월 13일 창단되어 20여 년간 우수한 성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감독은 서산여자중학교 체육 교사가 담당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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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 시대 마애 여래 삼존상.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 여래 삼존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산신령과 산신령의 두 부인으로 보고 건방지게 앉아 있는 둘째 부인에게 첫째 부인이 돌을 던지려고 하는 형상이라고 해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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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서산읍성(瑞山邑城)은 여말 선초에 축조된 대부분의 읍성이 그러하듯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1452년(문종 2) 삼도도체찰사였던 정분(鄭苯)의 건의에 의해 축조가 시작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475년(성종 6) 11월 축성이 완료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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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숫돌재마을과 샘골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서산 장치기는 농부들이 나무를 하기 위해 산에 가다가 양지(陽地) 바른 곳에서 쉬면서 추위를 이기고 여가를 이용하기 위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작된 놀이이다. 서산 장치기는 정초(正初) 또는 두레 일을 하다가 논바닥, 묵밭, 얼음판 또는 넓은 잔디밭 등에서 윗마을 아랫마을 두레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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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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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종합 경기장. 서산 지역 주민들의 체력 증진과 더불어 도민 체육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2001년 12월 28일 서산종합운동장을 준공·개장하였다. 도비 12억 원, 시비 276억 9100만 원, 이사회 기금 11억 원 등 총 299억 9100만 원이 투입되었다. 2005년에는 서산종합운동장 건립을 기념하여 충청남도 도민 체육 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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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한국청년회의소 서산 지역 지부. 서산청년회의소는 훌륭한 인격과 시민정신이 깃든 청년회의소 조직 활동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앞장서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0년 5월 10일 사단 법인 서산청년회의소 인증을 받았으며 같은 해 6월 27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2005년 1월 20일 서산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여 현재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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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청년 단체.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육로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타 지역보다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서산청년회는 3·1 운동 직후 시작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서산 지역 신문화 운동 전개를 위해 조직되었다. 1920년 창립 당시 서산청년회의 조직 구성이나 활동 상황은 알 수 없다. 1922년 7월 서산청년회 회장 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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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관한 1970년대 민요풍 노래. 「서산큰애기」는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산, 전설, 명소 등을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이다. 이 노래는 김세레나가 불렀는데 민요풍이다. 그 동안 여러 노래를 통해 서산 지역은 바닷가 혹은 어촌, 인심 좋은 고장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알려져 왔다. 김종유 작곡, 이상희 작사, 김세레나가 부른 이 노래는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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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관한 1970년대 트로트풍의 노래. 「서산큰애기」는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산, 전설, 명소 등을 주제로 하여 만든 노래이다. 이 노래는 나훈아가 불렀는데, 트로트풍이다. 그 동안 여러 노래를 통해 서산 지역은 바닷가 혹은 어촌, 인심 좋은 고장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알려져 왔다. 박시춘 작곡, 반야월 작사, 나훈아가 부른 이 노래는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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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여덟 곳의 아름다운 경치. 옛날에는 소수의 선비들이 이름난 경승지나 명승을 향유하면서 팔경이나 구곡을 선정하였는데, 최근에는 지방 자치 단체가 관광 대상물로 인식하면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서산팔경은 원래 충청남도 서산군 일부 지역과 서산읍 주변의 팔경이었으나, 1980년대 급격한 개발에 의해 원형을 유지하던 풍경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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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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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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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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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형평사의 지회. 조선 시대에는 도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흔히 ‘백정’이라 부르며 천대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완전히 철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자, 백정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1923년 4월 신분 차별 타파, 공평 사회 건설, 모욕적 칭호 폐지, 교육 균등 및 지위 향상, 사회 참여 진작, 동지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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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서산시청에 있는 ‘서령군문(瑞寧郡門)’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직선거리에 위치한다. 서산객사(瑞山客舍)는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에 있던 객사 건물로, 가운데에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달 1일과 15일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던 곳이다. 양편 익실[옆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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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읍성의 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의 건물이었던 관아문(官衙門)과 외동헌(外東軒)으로, 1867년(고종 4) 군수 오병선이 부임하면서 건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읍성의 입구 건물이며, 외동헌은 서산군에 부임하였던 수령이 근무하였다. 1917년 외동헌은 16.53㎡[5평]로 증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시청 입구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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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에 설치된 군(郡). 서산군(瑞山郡)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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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조선농회의 지부. 일제 강점기 서산 지역의 대지주들은 조선 총독부의 지도 감독 아래 농업을 개발하고, 농민을 수탈하고, 농촌을 통제하는 삼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1926년에 체계화된 이른바 계통 농회였다. 서산군 농회 역시 이러한 계통 농회의 하나이다. 주요 임원은 대부분 서산 지역의 재지 대지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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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교육 관련 자문 기관. 학교평의회는 부윤과 군수의 학교비(學校費) 자문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0년 제령 제14호 학교비령(學校費令) 제9조에 의거하여 설치되었다. 평의원은 면협의회가 선출하고 당연직 의장인 군수가 임명하였다. 평의원의 자격은 ‘제국신민으로서, 독립적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연령 25세 이상의 군내 1년 이상 거주자로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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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두징(金斗徵)을 기리는 묘비. 김두징[1646~1678]은 성균관 생원으로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 탐구에만 열중하다가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김두징의 묘비에 쓰인 오석을 운반하는 데 동원된 노비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두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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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고려 후기 당간 지주. 당간(幢竿)이란 당(幢)을 걸기 위한 시설물이며, 당간 지주(幢竿支柱)는 당간을 고정하여 세우기 위한 지주이다.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瑞山東門洞幢竿支柱)가 위치한 서산시 동문동 일대에는 고려 시대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대사동(大寺洞)’이라는 지명이 전해 오고 있는데,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 및 서산 동문동 오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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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오층 석탑.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은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에서 북쪽으로 약 50m 떨어져 있다.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은 전체 높이가 490㎝ 정도로, 현재 3층의 옥개석[지붕돌]만 남아 있어 확실한 층수는 알 수 없지만 탑재의 규모나 그 비례를 살필 때 오층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는 상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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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둔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인지면 소재지인 둔당1리에 있는 둔산마을의 서북쪽 야산 능선 상부에 위치한다. 고인돌 주변 지역은 동쪽의 풍전천 변에 넓은 충적 지대와 구릉 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확인되는 유적은 남서쪽에 둔당2리 고려장터 고인돌과 둔당리 토성산성이 있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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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인형극. 「서산박첨지놀이」는 고려 시대부터 전승되었다고 전해지는 인형극으로,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 주민들에 의해 시연되고 있다. 조선 시대까지도 유사한 인형극들이 전국에 산재해 시연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유일하게 「서산박첨지놀이」만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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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市). 서산시는 태안반도에 속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최근의 대산항 건설 및 서해안고속국도 개통이 맞물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이다. 가야산 인근의 내포 지방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며,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이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새는 가창오리와 장다리물떼새이다. 가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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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체육 시설. 서산시 농어민문화체육센터는 서산 지역 농어민들의 체력 증진과 도민 체육 대회 유치를 위해 2001년 12월 28일에 준공·개장하였다. 천안, 공주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농어민문화체육센터이다. 서산시 농어민문화체육센터는 면적 7,986㎡의 철골 돔형 건물이며 배드민턴, 배구, 농구 경기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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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여성 사회단체. 서산시 새마을부녀회는 서산시 새마을회의 하위 단체로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웃돕기 활동, 재활용품 수거 및 에너지 절약 운동 등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4년 3월 서산군 새마을부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89년 1월 1일 서산시와 서산군으로 분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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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유소년 축구 대회. 서산시 어린이의 신체 및 체력 발달을 꾀하고 건전한 놀이 습득 기회를 제공하고자 2002년 9월 30일 처음 개최하였다. 정신과 신체의 균형 잡힌 성장에 부모와 가족의 관심이 커지면서 가족 단위로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서산시 생활체육회가 주최하고 국민생활체육회 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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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충청남도 생활체육회 서산 지역 지부. 서산시 생활체육회는 생활 체육 진흥을 통한 시민의 건강 증진과 여가 선용에 기여하고 체육 문화 창달을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5월 25일 충청남도 생활체육협의회의 창립과 동시에 서산시 생활체육협의회가 창립되었다. 강춘식이 초대 회장부터 제6대 회장까지 연임하고 있다. 2009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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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6~7월에 열리는 청소년 스포츠클럽 대회. 서산시 스포츠클럽 청소년 생활 체육 대회는 종목별 대회를 통한 청소년 스포츠 클럽 활성화, 건전한 학교생활 정착 및 교우 관계 개선, 애교심 함양, 생활 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시작되었다. 1997년 6월에 처음 시작된 이래 매년 개최되고 있다. 서산시 생활체육회가 주관하고 서산시와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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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5~6월에 열리는 여성 체육 대회. 생활 체육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사회 참여 의식을 높이며 건강 증진 및 건전한 여가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2004년 서산시 어머니 생활 체육 대회를 처음 개최하였다. 스포츠를 관전하는 행사에서 직접 참여하는 행사로 전환하였다. 서산시 어머니 생활 체육 대회는 2008년부터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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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자원 봉사 센터. 서산시 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 및 수요처와 일감 개발을 통하여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고, 지역 자원봉사 단체와 타 지역 자원봉사센터 간의 협력을 강화하며, 자원봉사 활동에 관한 조사·연구와 전문가 양성을 통하여 자원봉사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서산시 자원봉사 활동 지원 조례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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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서산시 장애인 체육회. 서산시 장애인체육회는 내실 있는 장애인 체육 활성화 방안 마련, 장애인의 건강 증진 및 자긍심 고취, 장애인 생활 체육 프로그램 운영비 및 종목별 활동비 지원, 우수 인재 발굴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2008년 7월 18일 충청남도 최초로 장애인 체육회를 결성하였고, 서산시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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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사회·복지 기관. 서산시 종합사회복지관은 종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립 능력 배양과 지역 사회 문제를 예방·치료하며 시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역할 수행을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12월 18일 개관하였다. 1996년 4월 1일 제1기 기능 취미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99년 10월 9일 재가 복지 봉사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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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9~10월에 열리는 서산시 직장인 친선 생활 체육 대회. 주5일 근무제의 확대와 더불어 사원의 근로 복지에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생활 체육을 통한 건강한 심신과 건전환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되었다. 직장 대항 경기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 사원 간 협동심과 애사심을 높여 활기찬 직장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목적도 있다. 2006년 9월 2일~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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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에 있는 충청남도 체육회의 서산 지역 지부. 서산시 체육회는 서산시의 체육 활성화를 위한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 진흥, 시민의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 진작, 읍·면·동 체육회와 가맹 경기 단체 총괄 지도, 우수 선수 발굴·양성 및 지역 명예 선양 도모 등을 통하여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시민 화합과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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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시의 지리·역사·정치·경제·민속 등을 기록한 향토지. 충청남도 서산시는 서산 지역의 변천사를 정립하고 알리고자 1982년에 『서산군지』 증보판 발간에 이어 1998년에 『서산시지』를 발간하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집필자로 선정하여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보완·수정하였으며, 1998년 4월에 2,000부를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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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 관할 행정 기관. 서산시청은 서산시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서산 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하부 행정 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 발전을 추구한다. 서산시청은 1947년 5월 14일 가정노가 제1대 군수로 취임한 이후로 2010년 7월 1일 민선5기 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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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청 산하 공무원 야구단. 서산시청 공무원야구단은 직장 내 직원 간의 친선 도모 및 건강관리, 여가 활동을 통한 근무 여건 개선, 창의적인 업무 능률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창단되었다. 2008년 8월 서산시청 공무원야구단이 창단되었으며 초대 감독에 이수영이 취임하였다. 2009년 11월 16개 팀이 참가한 제6회 충청남도 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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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청의 사격팀. 서산시청 사격팀은 「국민체육진흥법」 제10조에 따라 엘리트 체육 인재 재원이 열악한 충청남도의 전국 체육 대회 상위권 도약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0년 3월 6일 서산시청 사격팀이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 지도자 1명과 여자 선수 소총과 권총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2008년 1월 남자팀과 여자팀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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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瑞山余美里石佛立像)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이문안마을 야산 아래에 서 있는 석불 입상으로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장마철에 전라산 부근의 용장천(龍獐川)에서 미륵이 발견되었으며, 서산군청에 신고한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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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다 보면 도로의 북쪽으로 여미리 마을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의 북서쪽으로 ‘큰말’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서산 유기방 가옥은 큰말의 가장 안쪽에서 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1919년에 건립되었다. 현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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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서산 유상묵 가옥은 1925년 유상묵[구한말 종5품]이 명당이라고 전해지는 현 위치에 서울의 운현궁(雲峴宮)을 본떠 건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행랑채는 원래 초가로 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에 양식 기와로 교체하였다. 약 4,770㎡의 넓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좌향은 남향이며 배산하였고 전망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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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양대동에 있었던 항구. 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충남선[현 장항선]의 건설이 시작되어 1922년에 천안~온양 구간, 1931년 8월에 온양~장항 구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자 주로 인천을 통하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물류가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 지역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경성과 호남 지방으로 가는 것은 천안이나 대전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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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유적의 존재는 마을 주민 이천호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을 신고하면서 확인되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1968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모두 청동기 시대 주거지 11기와 야외 노지 1기, 그리고 신석기 토기편이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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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출신의 향리. 서세린(徐世獜)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관아의 예방 소속 서리[구실아치]였다. 1894년(고종 31) 서산·태안까지 동학 운동이 번져 농민군이 관아를 습격하였다. 농민군은 군수 박정기(朴錠基)와 구실아치의 우두머리[首吏]인 송병훈(宋秉勳)을 살해하고 관아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서세린은 객사에 봉안되어 있던 전패[임금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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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했던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전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교화 기구이다. 서원은 서재(書齋)·정사(精舍)·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사(祠)·리사(里社)·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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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석지리(石旨里)의 ‘석(石)’자와 남원리(南院里)의 ‘남(南)’자를 따서 석남리(石南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율곶면에 남원리, 셕지리, 구만이[九萬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석남동은 조선 시대에 서산군 대사동면 남원리로 41호에 150여 명이 사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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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 미력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석남동 미력말 미륵제는 음력 1월 15일 새벽 1시경 석남동 석불입상(石南里 石佛立像)에서 석남동 주민센터 직원을 중심으로 마을의 평안과 화합을 위하여 지냈던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석남동 석불입상은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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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석불 입상. 석남리 석불입상(石南里石佛立像)은 서산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석남동 미럭말의 낮은 구릉 상에 위치하고 있다. 둘레에는 석재로 만든 보호책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에 송림과 정자 터가 있다. 현지에서는 미륵불로 불리고 있는데, 마멸이 극심하여 세부적인 조각 수법을 살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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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석지리(石旨里)의 ‘석(石)’자와 죽림리(竹林里)의 ‘임(林)’자를 따서 석림리라 하였다. 석림동은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석지리 지역으로 1895년 서산군 대사동면 평리(坪里), 석지리, 죽림리로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평리, 석지리, 죽림리를 합하여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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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산. 가야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있다. 원효봉[605m], 옥양봉[621m]과 이어져 있다. 석문봉의 정상에서 남쪽으로 가야산과 옥양봉, 북서쪽으로 일락산이 보이고, 서쪽 해미 방면으로는 서해가 내려다보인다. 석문봉은 흑운모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석문봉에서 가야산에 이르는 능선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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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에 있는 대한불교 총화종 소속의 암자. 『석가탑불사방명록의서』에 의하면 석천암은 1875년(고종 12) 밀양후인 박보살의 꿈에 부처[혹은 백발의 노인]가 나타나 굴속으로 인도하여 물줄기가 세차게 치솟는 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여 그곳에 부처님을 받들어 안치하고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 했다고 한다. 1980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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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석천암(石泉庵)에 있는 조선 시대 석조 불상군. 석천암의 주 불전인 원통보전 뒤로는 자연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석천암 석조불상군(石泉庵石造佛像群)은 이들 암괴 아래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석천암의 주지 승려 혜선에 의하면 재임 초기에 약 40여 구의 불상이 전하였다고 하나, 조사해 본 결과 약 18구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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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에 있는 석천암 원통보전에 보관된 지장보살상과 석사자상.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이 사찰의 중심 법당일 때 주로 붙이는 이름이며,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건물이 주불전이 아닐 때에는 관음전이라 이름 붙인다. 석천암 원통보전에는 관음보살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 협시 보살로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관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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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우리나라에 있어 선사 시대라 함은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역사 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서력기원 전후인 삼국 시대 형성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0여 년 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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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 선사 유적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남긴 생활·분묘·생산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이다. 선사 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서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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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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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수면에 둘러싸인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 국제수로기구[IHO]에서는 섬의 표면적이 1㎢ 미만이면 암도(rock), 1~10㎢이면 소도(islet), 10㎢ 이상이면 도서(island)로 분류하고 있다. 서산을 포함한 충청 해역은 해안의 출입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여러 섬들과 크고 작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산 지방의 섬은 주로 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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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서산 지역은 백제 시대 때의 기군(基郡)이 모태가 되었다. 기군은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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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마을이 쥐뿌리재라는 고개 아래에 있어 잿골 또는 성동(城洞)으로 불렸으나, 의성 김씨가 살게 되면서부터 잿 ‘성(城)’자를 이룰 ‘성(成)’자로 바꾸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1914년 이전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나 『구한국지방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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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성암서원(聖巖書院)의 제향 인물은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후기 인조부터 효종 대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사암 유숙은 고려 때부터 서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성장한 서령 유씨(瑞寧柳氏)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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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중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성암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유허지에 석회로 광을 만들어 위판을 도자기에 넣은 후 분묘처럼 매안하였다. 이후 1897년 성암서원 터에 양가의 후손들이 유허비를 세웠다. 성암서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7월에 중건되었는데, 성암서원 중건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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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연혁과 관련 인물에 대해 기록한 책. 성암서원(聖巖書院)은 서산시 읍내동 서문 밖 부춘산 기슭에 자리한 서원으로, 1719년(숙종 45)에 건립되어 1721년(경종 1)에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제향 인물로는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시대 인조에서 효종 대의 문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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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어귀에 북극성 및 북두칠성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있어 별바위 또는 별바위마을이라 불리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성암리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洪州牧) 운천면(雲川面) 보산리였으며 홍주목의 월경처였다. 1895년 해미군(海美郡) 운천면으로 바뀌면서 모산리, 성암리(星岩里), 장산리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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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고남리에 있던 공립 성연초등학교의 일광분교장. 1962년 5월 31일 성연국민학교 일광분교장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67년 3월 1일 일광국민학교로 승격하여 분리되었다. 1993년 3월 1일 다시 일광분교장으로 격하되어 성연국민학교에 예속되었다. 1996년 3월 1일 성연초등학교 일광분교장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8년 9월 1일 폐교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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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성연면(聖淵面)에 위치한 왕정리(旺井里)에 옥동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옥동샘에서 용이 승천한 다음부터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고 번성하였다고 하여 면의 이름을 성스러운 연못이라는 뜻인 ‘성연(聖淵)’이라 지었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성연면에 성연부곡(聖淵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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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의 집성촌은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입향한 후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성연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성씨로는 오사리 이씨[전주 이씨], 새방 한씨[청주 한씨], 예덕리 민씨[여흥 민씨], 일람리 박씨[밀양 박씨] 등이 있다. 오사리 이씨(梧沙里李氏)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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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의 동남부를 흐르는 지방 2급 하천. 성연천의 이름은 하천이 통과하는 성연면에서 유래하였다. 성왕산·부흥산·부춘산으로 이어지는 산지의 북쪽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비룡산·연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지의 동쪽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 북쪽으로 흐르는 성연천은 평리를 지나 명천리에서 명천(鳴川)과 함께 명천포구로 흘러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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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산리에 있는 사찰. 전하는 말에 의하면 934년(태조 17) 혜량국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태조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거사 시손(市孫)이 성왕사로 고쳤고, 1631년(인조 9) 송근춘이 성왕사로 출가하여 교화 활동을 하였다. 1644년(인조 22) 유대춘(柳帶春)이 요사채를 지었고 이후 개운암으로 개칭되었으며 1933년 예산 수덕사의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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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산리에 있는 산. 성왕산은 음암면과 성연면의 경계가 된다.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성왕산의 돌이 모두 청색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산의 돌은 크거나 넓적해 큰 것은 온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왕산 일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중생대 쥐라기 대보 화강암이다. 가야산맥의 줄기인 성왕산은 서쪽·남쪽·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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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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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각 지역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광산물, 수공업품, 해산물, 농산물 등 각종 특수 물품을 생산하는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이었다. 또한 소는 향(鄕)이나 부곡(部曲)과 마찬가지로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특수한 촌락 집단이었다. 향과 부곡은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소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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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인인 이석태(李錫泰)의 문집. 『소매고(小梅稿)』의 저자인 소매 이석태[1884~1967]는 개항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 격동기를 살았던 인물로, 1914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서산문화원에서는 이러한 이석태의 여러 유고(遺稿)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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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서사적 산문으로 표현한 언어 예술. 충청남도 서산에서 소설은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전개를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문학이 새로운 가치 지향을 모색하면서 서산에서 소설도 발전하게 되었고, 서산 문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서로 다른 인물간의 성격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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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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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소동(小洞)의 ‘소’자와 중리(中里)의 ‘중’자를 따서 소중리(小中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터[新基里], 동거리(東巨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소중리는 조선 시대 때 서산군 동음암면 동거리와 홍주목 운천면 상성리에 속한 지역이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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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고분. 소중리 고분군은 소동마을 입구에서 남서쪽 민가 주변의 야산에 있다. 소중리 고분군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쟁기 끝에 청자 3점이 겹쳐진 상태로 걸려 나옴으로써 확인되었다. 유구의 형상을 알 수 있는 별도의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물의 출토 상태나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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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 중앙에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높이 30m의 야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물의 존재는 나지막한 야산 구릉을 밭으로 개간하여 경작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 1점이 수습된 것으로 전하는데, 2011년 현재 유물은 확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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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 송덕암(松德庵)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약사전을 개축할 때 발견된 대들보 상량문에 1785년(정조 9)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보이며 1991년에 세워진 상왕산 송덕암 중건시주공덕비에 의하면 1785년(정조 9) 승지 임하(任夏)가 말을 타고 가다 미륵여래를 발견하고 이곳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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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송덕암(頌德庵)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송덕암은 상왕산의 서남쪽 산기슭에 있는 위치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솔뜸마을 근처로, 해미면에서 덕산 쪽으로 향하는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1973년 승려 성원(成圓)이 약사전과 산신각, 범종각 등을 새로 지었으며, 이외에 요사 2채와 칠층석탑, 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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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출신의 향리. 송병훈(宋秉勳)[?~1894]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관아의 수리(首吏)[이방 우두머리]였다. 1894년(고종 31) 10월 1일 서산·태안 지역에서는 조직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서산에서는 관아가 습격 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농민들이 서산관아를 공격하자 송병훈은 군수 박정기(朴錠基)를 도와 관아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그러던 중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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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송정리(松亭里)의 ‘송(松)’자와 시동(枾洞)의 ‘시(枾)’자를 따서 송시리(松枾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숑졍리[松亭里], 감골[枾洞], 내숄[內松里], 갈마곳[渴馬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마산면 불모동리(不毛洞里)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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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하장수동(下長壽洞)의 ‘수’자와 묵당리(墨堂里)의 ‘당’자를 따서 수당리(壽堂里)라 이름 붙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아장사무골[下長壽里], 산밋[黑堂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당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생동리의 일부분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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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에서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수당리 장승제와 산신제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즉 음력 1월 14일 저녁에는 산신제를 지낸 뒤 이튿날인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3개소의 장승에 각각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는 장승이 세워진 방위에 따라 동쪽 장승은 ‘동방맥이’, 북쪽은 ‘북방맥이’, 중앙은 ‘중앙맥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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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수산물의 어획·양식·가공과 관련된 산업. 수산업은 수산물을 생산하는 업태에 따라 어업·양식업·수산 가공업 등으로 구분된다. 어업과 양식업은 유용 동식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으로서 어업은 천연의 수산물을 채취·어획하는 것이고, 양식업은 수산 자원의 번식과 성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증식시키는 수중 농업이다. 그리고 수산 가공업은 수산물을 원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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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동(壽洞)의 ‘수(壽)’자와 강석리(江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수석리(壽石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암면에 직동(直洞), 익동(益洞), 회동(會洞), 쥴동[內注乙洞], 외쥴동[外注乙洞], 강석리, 슈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석동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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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장수동(上長壽洞)의 ‘수’자와 와평리(瓦坪里)의 ‘평’자를 따서 수평리(壽坪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장사무골[長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평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생동리였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와평리, 상장수동, 하장수동(下長壽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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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수평리 문수산 산신제와 서낭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수평리 왜벌[瓦坪]의 공터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수평리 왜벌은 20여 호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왜벌이란 옛날에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자리하기 때문에 유래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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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1리 점골에 있는 야철 터.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는 고산리, 수평리 등의 마을이 있는데, 수평리 야철 터는 수평1리 점골에 위치하고 있다. 수평리 야철 터가 자리한 곳은 고풍저수지의 동쪽에 위치한 높이 278m의 험준한 산지가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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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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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토착어. 충청도 사투리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있다. 또한 은근하고, 투박하며, 점잖은 인상을 풍긴다. 느릿느릿한 어투에 속 깊은 정감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또한 온기 넘치는 여운 속에 평화로운 선량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사투리의 성향 때문에 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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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운문으로 표현한 언어 예술. 충청남도 서산은 수려한 풍광과 여유로운 삶의 모습이 조화로운 특성을 지닌 고장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내력을 지닌 서산에서 문학은 자연스럽게 함께 발전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 시는 작가의 내적 정서를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르였다. 한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시의 전통이 강한 서산은 문학성이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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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제 강점기 서산 지역에는 서산 읍내장, 태안 남문장, 해미 읍내장, 운산 용장장, 정미 천의장, 성연 평리장, 대산 대산장 등 7개의 정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1922년 당시 서산 읍내장의 매매고는 20만 8540엔이었는데 충청남도에서 가장 낮았다. 이와 같은 부진을 해결하기 위하여 1926년 12월 서산소비조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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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신간회의 지회. ‘민족 독립 쟁취’, ‘기회주의 배격’ 등의 강령을 내걸고 창립된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 조직된 민족 운동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였다. 창립 당시 신간회 지부는 전국 141개 지역[회원 수 약 4만 명]에 걸쳐 조직되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는 서산을 포함하여 강경, 공주, 당진, 대전, 부여, 예산, 천안,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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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역사 문화 축제. 해미읍성 축제는 서산시에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지역 축제로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문화재, 민속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병영성의 특성을 살린 국내 유일의 ‘병영 체험 축제’라는 것이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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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소식이나 정보를 정기적으로 인쇄·발행하거나 인터넷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언론 매체. 서산 지역 최초의 신문은 1989년 8월 15일 창간된 『충서신보(忠西新報)』이다. 그때까지는 중앙지와 충청남도 지역지가 서산 지역의 정보를 단편적으로 다룰 뿐이었다. 『충서신보』는 김현구(金顯龜), 정계훈(鄭啓薰), 한흡(韓洽), 유석동(柳錫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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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상리 날새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8㎞ 거리에 있는 신상리 날새마을 입구의 동남향 사면 구릉지에 위치한다. 신상리 유물 산포지(新上里遺物散布地)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이 출토되었다. 2011년 현재 유물 산포지로 전하는 지역은 공장 개발 과정에서 지형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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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에 있는 석성. 신송리 산성(新松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는 만큼 누가,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축조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주목 봉수조에 “고구성산 봉수는 남쪽으로 결성현의 고산과 응하고, 서쪽으로는 서산군의 도비산과 호응한다[高丘城山烽燧南應結城縣高山西應瑞山郡都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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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의 동쪽에 자리한 봉화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높이 4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新松里遺物散布地)가 자리한 능선은 행정 구역상 홍성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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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탑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신송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고, 또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찰의 명칭이나 내력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절터 주변에서 어골문(魚骨文) 등이 시문된 기와편이 확인되고 있어 고려 시대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고북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0.9㎞ 정도 가면 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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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탑동에 있는 민간 신앙의 대상물. 신송리 탑동 선돌은 1985년에 준공되어 한국농어촌공사 서산·태안지사에서 관리하는 신송저수지 동쪽 끝부분에 서 있는 2기의 바위이다. 이를 ‘칠성바위’라고도 한다. 신송리 탑동 선돌은 고북면 일대의 선돌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나머지는 대개 1m 남짓에 불과하다. 마을 사람들이 일명 칠성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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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신동(新洞), 오이동(梧伊洞), 장림동(莊林洞)을 합하면서 신동에서 ‘신’자와 장림동에서 ‘장’자를 따서 신장리(新莊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신동, 오리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암면 탄동리로 되어 있다. 1914년 신동, 오이동, 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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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불당골에 있는 고려 전기 석불 좌상.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 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신장리 불당골 석불좌상(新莊里佛堂골石佛坐像)은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위치한 일락사(日樂寺)에서 옮겨 놓은 것으로 전한다. 발견되었을 당시 불상은 지금의 위치에서 약 1.5m 정도 앞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마을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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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불당골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음암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2.4㎞ 정도 이동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남동쪽의 서산시 음암면 부장1리 방향으로 1.5㎞가량 이동하면 불당골이 나오는데, 신장리 절터는 불당골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불당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도 신장리 절터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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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 아래황골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해미면과 고북면의 경계 지역에서 서쪽으로 개설된 4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4㎞ 정도 가면 도로 남쪽으로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 2구 아래황골마을이 나온다. 신정리 유물 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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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 종교에 비해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종교로 신흥종교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종교는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발생하였으며, 사회적 변화 및 혼란에 따른 민중의 구원 의식의 발로와 기존 종교의 설득력 상실 등으로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서산 지역에서도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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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동신리(東新里)에서 ‘신’자와 고창동(高昌洞)에서 ‘창’자를 따서 신창리(新昌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고창골, 벌말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신창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동음암면 개심동리, 고창동리, 벌리(伐里)가 속한 지역이다. 벌리는 현 원벌리(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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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 고려 후기 유학자인 안향(安珦)의 14세손이다. 서산의 순흥 안씨는 병조판서 안국인(安國仁)이 입향한 이후 수백 년 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와 양길리 일대에 모여 살았다. 순흥 안씨는 서산의 토성으로 여러 기록에 나오는데, 조선 초기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안만흥(安萬興)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서 태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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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한내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안만흥(安萬興)의 정려. 안만흥은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심이 깊어 널리 알려졌는데, 특히 병든 아버지를 지극히 봉양하였다. 어느 날 안만흥은 아버지의 병에 죽순이 좋다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대밭에 나가 항아리를 엎어 놓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이튿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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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안천년(安千年)은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솥을 여러 개 걸어 놓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골라 드시게 하였다. 넉넉한 양을 준비하여 함께 먹고자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나누었다. 안천년은 또한 아버지를 위해 후처를 구해 드리고자 노력하였는데, 하루는 여자 거지가 동냥자루를 들고 찾아오자 대문 밖으로 나가 큰절로 맞이하였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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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러기 떼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여 안호리(雁好里)라 하였다가 안호리(安好里)가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방죽이 있어 이로 인하여 안수리(安藪里)로 불렸을 적도 있었으며, 겨울이 되면 기러기 떼들이 방죽에 날아와 겨울을 지내다가 돌아가는 철새 도래지여서 안호리(雁好里)라 했다는 주장이 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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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애당리의 ‘애’자와 언정리의 ‘정’자를 따서 애정리(艾井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애당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쓕당리[艾堂里], 은졍리[彦井里]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애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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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야촌(野村)의 ‘야’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야당리(野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들말[野村], 원당리(元堂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야당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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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야당리를 흐르는 하천. 하천의 이름은 마을 이름인 야당리(野堂里)에서 유래하였다. 『서산군지』에는 야당천(野堂川)이 야당리천(野堂里川)으로 나와 있다. “야당리천은 갈산리(葛山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남쪽으로 풍전리 앞들로 흘러 개앙보(開仰洑)·송급보(松急洑)·전보(前洑)가 되고, 차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쪽 화수리로 흘러 석보(石洑)·순경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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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교육 운동. 일제 강점기에 보통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대략 20~30% 정도의 아동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는 공립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학부형들의 부담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조선의 농촌에는 사설 강습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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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사양동의 ‘양’자와 우길리, 방길리(方吉里)의 ‘길’자를 따서 양길리(陽吉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방길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방길리, 사양골[斜陽洞], 우길리(牛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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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죽성동에 있는 양대산에서 유래하여 양대동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율곶면에 구만이[九萬里], 양리[良垈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765년(영조 41)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양대동은 서산군 율곶면 구만리로 39호 113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후 1895년 서산군 율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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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림리(良林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이 평평한 곳에 입지하여 햇볕이 잘 들므로 일명 ‘해말’ 또는 ‘양동(陽洞)’이라고도 한다. ‘양림’이란 명칭은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양동의 ‘양’ 자와 마을 곳곳에 조성되어 있던 소나무 숲을 의미하는 ‘수풀 림(林)’ 자를 합쳐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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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물고기나 해조류 등을 전문적으로 기르는 곳. 1956년 천수만 간석지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등에 소규모의 양식장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굴, 바지락, 김 등 세 종류만 양식하였다. 이후 수역에 따라 양식장이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천수만 내의 양식장 면적은 약 2,840㏊로 1956년에 비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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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기독교 선교사. 양치옥은 서산 출신으로, 서산에 처음으로 개신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다. 본래 홍성교회에 소속된 전도사로, 1907년 태안군 안면도에 들어가 선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나이는 40세였다. 안면도의 포구 마을을 돌면서 어민들을 상대로 4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였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홍성으로 돌아갔다. 이후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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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어은동(漁隱洞)의 ‘어’자와 송치리의 ‘송’자를 따서 어송리(漁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어은동리(漁隱洞里), 정자리(亭子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은동, 졍자동[亭子洞], 숄테[松峙里] 등 관련 명칭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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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1리 곧우실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마을에 자리한다.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내려오면 도로의 동쪽에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들 계곡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높이 350m의 팔봉산 서향 가지 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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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대문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대문다리마을에서 확인된 백자 가마터로, 서산시와 태안군을 잇는 국도 32호선의 중간 정도 부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일대는 서산과 태안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 영풍창(永豊倉)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현재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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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창개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군. 어송리 창개 고분군은 창개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팔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어송리 창개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조사 당시 지역 주민들이 고분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대부분 도굴 및 자연적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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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쓰이는 어업과 관련된 특유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 서산 지역의 어업 관련 방언은 매우 발달한 편이다. 어류, 풍명, 어구 등 일부에서 충청남도 서해의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징적인 방언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산의 어업 관련 방언은 어류와 도구 관련 방언과 바람과 조류 관련 방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지락,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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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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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억대리(億垈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업더지[億垈里]·업터지 등으로도 불린다. 그 명칭은 『서산의 지명사』에서는 옛날 살기가 어려웠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살았던 것에서, 또는 해미장과 근거리에 있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데서 연유하였다고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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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과 출판 활동의 총칭. 서산 지역에서 2011년 현재 발행되는 지역 신문으로는 『서산신문』, 『서산타임즈』, 『내포시대』, 『서산뉴스』, 『서산인터넷뉴스』, 『서산교차로』, 『서산벼룩시장』 등이 있다. 이 외에 서산시청에서 매월 1회 발간하는 『서산시보』와 서산문화원에서 월간으로 발행하는 『스산의 숨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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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조선어 신문사 지방 지국의 투쟁.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지방판에 소개된 민원 사건으로는 1926년 1월 서산 소방조 문제 관련 민원, 1927년 6월 소작 관계 개선 문제[특히 경성 지주의 이중 운반 강요, 운반비 강요 문제]에 관한 민원, 1931년 1월 서산 지역 유치원에 관한 민원, 1930년대 초반 해미 수리 조합 문제 관련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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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엘리트 체육 현황. 세계적인 평화 공존의 시대에는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의 하나로 올림픽 성적이 활용되고 올림픽 메달은 국민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체육 정책 또한 소수 대표 선수 중심의 육성 체제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의 경기력 향상과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한 시설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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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여미리는 백제 이후 조선 초기까지 여미현(余美縣) 지역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여미리와 이문리(里門里)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여미리와 리문리를 통합하여 서산군 정미면 여미리로 개편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비변니[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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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여미리 미륵제, 장승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오후 3시에 전라산 기슭의 산제당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 및 목장승 2기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여미리 동제당은 산제당과 장승으로 이루어진 상당과 하당의 이당 구조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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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여미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수습되는 기와편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판단된다.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빈대 때문에 폐사하였다고 한다. 운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가량 진행하면 운산교차로가 나온다. 운산교차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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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점말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및 옹기 가마터. 서산시 운산면의 여미리 점말은 여미리 윗장터로도 불리는데, ‘점말’은 바로 장터의 다른 이름으로, 여미리 일대가 조선 시대 시장 혹은 도자기와 같은 수공업품 생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미리 점말 백자·옹기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 있는 높이 85m의 전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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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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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박해 당시 매장 터.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와 조산리 접경 부근의 해미천 주변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기에 신자들을 생매장, 익사, 교수 등의 방법으로 처형하던 형장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일대는 이른바 여숫골로 불리기도 했다. 조산리의 해미천 변은 배교를 거부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처참하게 순교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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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관할하는 혜군(槥郡) 예하에 여촌현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촌현 성립 이전 시기에도 서산 지역에는 강력한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해미면 기지리 유적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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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교단 소속 교회.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생겨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믿으며 현실적인 제도를 거부하는 생활로 유명하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본부가 있으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R.R. 홀리스터에 의하여 전파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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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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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보여주는 무대 예술. 서산 지역에서의 연극은 오늘날의 극단 개념 이전의 악극단에서 시작되었으며 1940년대 설립된 서산악극단이 서산 최초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힘들게 살아가는 당시의 궁핍한 민중들을 위로하기 위해 『흥부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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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견성산은 현의 동쪽 9리에 있다”, “견성산성(犬城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960척이며, 지금은 폐성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연암산성(燕岩山城) 성벽은 석축이며, 조선 초기에는 폐성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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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와 해미면 대곡리 경계에 있는 산. 연암산(燕岩山)의 ‘연암(燕岩)’은 제비바위를 뜻하며,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연암산은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연암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의 남쪽에 속한다. 가야산 줄기가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남북 양쪽이 급경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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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쪽의 연화산과 주변의 산지에 의해 형성된 분지인지라 마을의 형태가 물 위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리(蓮花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문현면에 연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연화리는 조선 전기에는 문지촌이었고 후에는 문현면 이화리로 변경되었다. 이 지역은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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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미륵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일대에서 확인되는 유적으로, 남서~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미륵골 계곡의 남쪽 북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가로림만으로 유입되는 여러 하천들과 높이 100~200m 내외의 능선들이 동~서, 남~북으로 복잡하게 형성되어 주변에 둘러져 있다. 연화리 미륵골 백자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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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서 마을의 화합과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화리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5일에 석조 입상 미륵불 앞에서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화리 마을회관에서 남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석불 입상이 위치한다. 마을 사람은 이 석불 입상을 ‘미륵불’이라고 부른다. 연화리 미륵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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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화리 볏가릿제는 음력 1월 15일과 2월 1일 마을 회관 앞 논배미에 세운 볏가릿대에서 주민의 화합과 풍년 농사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화산[234m] 기슭에 위치한 연화리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마을의 형상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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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마을의 남서쪽에 ‘미륵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는데, 연화리 석불입상(蓮花里石佛立像)은 미륵골 입구의 산기슭에서 마을을 등지고 서 있다. 연화리 석불입상에 관한 기록은 『서산군지』[1927]에서도 보인다. 『서산군지』에는 “연화리 연화산 고려조의 미륵(彌勒) 석불이 있다”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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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연화골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사찰은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되는 기와편에 고려 시대에 유행한 어골문(魚骨文)과 어골문이 혼합된 복합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인접한 미륵골에서 확인되는 석불 입상이 고려 시대의 양식을 띠고 있어서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사찰의 폐사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이나 전언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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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있는 산. 연화산은 성연면, 지곡면, 팔봉면 세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연화산 북동쪽과 동쪽에는 큰 골짜기가 있다. 북동쪽 골짜기는 지곡면 화천리이고 동쪽 골짜기는 성연면 오사리이다. 골짜기 사이의 능선이 면의 경계가 되는데 연화산은 서산 지방의 문화권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이 경계에 있는 봉우리가 대치봉이며, 대치봉에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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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열녀(烈女)와 열부(烈婦). 전통적으로 열녀란 남편이 죽어서 개가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는 여인을 뜻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주로 상층 지식인들이 엮은 한문본 『열녀전(烈女傳)』에는 대체로 남편을 따라 죽은 소위 종사(從死) 여인들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어, 결과적으로 열(烈)과 죽음을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관습을 만들었다. 열녀 개념의 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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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바닷물을 끌어 들여 논처럼 만든 곳. 대산반도와 이원반도로 둘러싸인 가로림만은 천수만 연안과 같이 염전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히 대산반도의 북단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화곡리, 오지리 일대에는 조선 시대부터 자염(煮鹽)[원주민들은 화염(火鹽)이라고 함] 생산이 성하였고, 그 후 천일제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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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탑리(令塔里)는 조선 시대에는 영전리(令田里)와 탑동(塔洞)이었는데, 영전리는 전씨(田氏)가 많이 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탑동은 마을에 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전리의 ‘영’자와 탑동의 ‘탑’자를 따서 영탑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영젼리[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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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솔예동(上率禮洞)과 하솔예동(下率禮洞)의 유씨, 박씨, 장씨의 세 성씨가 수백 년간 예와 덕을 숭상하며 살아 왔다고 한다. 따라서 솔예에서 ‘예’자와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덕천에서 ‘덕’자를 따서 예덕리(禮德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덕쳔[德川里], 위쇼리[上率里], 아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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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예덕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성연면 소재지인 평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1.5㎞ 정도 가면 창말삼거리에 이른다. 창말삼거리에서 다시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방면으로 가다가 명천리 말우리마을에서 북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2㎞ 정도 가면 예덕2리 하솔마을에 다다른다. 예덕리 유물 산포지(禮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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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상여전리(上余田里)·하여전리(下余田里)의 ‘여(余)’자를 따려 한 것이 ‘예(禮)’자가 되고 모천리(毛川里)에서 ‘천(川)’자를 따서 예천리(禮川里)라 하였다. 유래에 대한 다른 견해로는 나무장골의 옛 지명인 예천을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노지면에 공림리(公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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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오산리(內吾山里)의 ‘오(吾)’자와 대남지리(大南池里)·소남지리(小南池里)의 ‘남(南)’자를 따서 오남리(吾南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오산면에 안오뫼[內吾山里], 남광지[大南里], 쇼남광지[小南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오남동(吾南洞)은 조선 시대에 서산군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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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지리(梧枝里)의 ‘오(梧)’자와 사동(砂洞)의 ‘사(砂)’자를 따서 오사리(梧砂里)가 되었으나, 광복 전후까지만 하여도 조선 시대의 이름인 사장골[沙場골]로 불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성연면에 오지평[梧枝村], 직동(直洞), 사장[砂洞], [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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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생동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3.2㎞가량 진행하면 오사교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쪽의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방면으로 1㎞가량 이동하면 북쪽으로 불당골이라는 골짜기가 자리한다. 오사리 불당골 절터는 불당골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이 일대의 지형은 동서 방향으로 구릉지가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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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1구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3.2㎞가량 남쪽으로 진행하면 오사교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쪽의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방면으로 3㎞가량 이동하면 외들 제일 서단에 절골이 나오는데, 오사리 사장골 절터는 절골의 북쪽에 형성된 구릉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오사리 사장골 절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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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오동(烏洞)의 ‘오’자와 백학동(白鶴洞)의 ‘학’자를 따서 오학리(烏鶴里)가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오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금골[烏洞], 아골[白鶴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오학리는 조선 시대 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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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옥녀봉에 있는 단군전.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부터 단군신앙이 전해 왔다. 단군신앙은 일제 침략기에 대종교로 발전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전국의 사당이 전국에 걸쳐 대대적으로 설립되었다. 옥녀봉 단군전(玉女峰檀君殿)은 서산 부춘산(富春山) 아래에 있는 단군전으로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였다. 서산시청에서 북동쪽으로 부춘산에 난 경사진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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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왕정리 왕정마을에 있는 샘. 옥동샘을 일컬어 성인 ‘성(聖)’자와 못 ‘연(淵)’자를 썼는데, 이 연못 이름을 따서 지역의 지명을 성연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왕정리에는 예로부터 영험성이 있다고 하는 옥동샘이 있다. 옛날 이 샘은 검푸르게 맑은 물이 솟았다고 한다. 그 시절 이 샘가에 칠순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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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사찰.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1979년 편찬된 권상로의 『한국사찰전서』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창건 연대도 현대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옥천암이라 했다가 옥천사로 절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이며, 서산시를 감싸고 있는 부춘산의 옥녀봉(玉女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절 이름을 여기에서 취한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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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온천이 나왔다는 전설에서 온동(溫洞)이라 하였으며, 뒷산에 바위가 있어 입석리(立石里)라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온동의 ‘온(溫)’자와 상입석리(上立石里)·하입석리(下立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온석리(溫石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에 위션돌[上立石里]·아션돌[下立石里]·온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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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온석동에 있는 절터. 서산시청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2㎞가량 진행하여 내동2길을 따라 0.6㎞가량 가면 온석골이 나오고, 온석골로 진입하여 가다 보면 구릉의 남서쪽 사면 말단부에 온석동 절터가 위치한다. 온석동 절터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지표 조사 과정에서 석축이 확인되어 절터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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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누운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누운고개라고 하기도 했고, 또는 마을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와우리(臥牛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암소고리[牛峴里] 등 관련 명칭이 보인다. 와우리는 조선 시대에 덕산군 외야면 슬치리에 속한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해미군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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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단군전. 단군전은 천진궁(天眞宮)이라고도 부르는데, 단군의 영정을 봉안한 집을 말한다. 1909년(순종 3) 1월 15일 중광절에 대종교를 개창한 홍암대종사(弘岩大倧師) 나철(羅喆)은 대종교를 널리 펴기 위하여 단군 영정을 다량으로 모사하여 국내에 보급시켰다. 서산시 운산면의 고창저수지를 지나 서산 용현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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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위치한 단군전에서 행하는 종교 의례. 와우리 단군전 제향은 매년 음력 3월 15일[어천제], 10월 3일[개천제]에 단군 영정을 모시고 있는 와우리 단군전(臥牛里檀君殿)에서 지내는 의례이다. 단군 영정은 대종교(大倧敎)의 초대 교주이자 독립운동가 나철(羅喆)[1863~1916]이 1909년 대종교를 전국에 널리 펴기 위하여 다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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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청의 전답으로 왕자에게 소속된 토지. 왕자제(王子堤)의 둔전(屯田)은 서산시 석남동 망운대 아래에 위치한 둔전으로, 왕가(王家)의 대군(大君)에 소속된 궁의 전답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어떤 대군에게 소속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둔전은 고려 때부터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로, 왕자제의 둔전 역시 같은 목적으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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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895년 행정 개편 당시 왕동(旺洞)의 ‘왕(旺)’자와 세정동(細井洞)의 ‘정(井)’자를 따서 왕정리(旺井里)라 하였다. 또는 성왕산의 ‘왕’자와 우물의 ‘정’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상성연면에 왕동, 세정리[細井洞], 직동(直洞)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왕동, 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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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왕정리에 있는 절터. 서산시 성연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거리에 왕정리 성왕골마을이 있는데, 왕정리 성왕골 절터는 높이 252m의 성왕산 북쪽으로 분기된 사면의 서향 비탈 중하단 평탄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1997년 충청남도 지역의 문화 유적 조사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서산시 문화 유적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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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용암3리 매령마을에 있었던 민간 신앙의 대상물. 용암리 매령 선돌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만지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는 남근(男根) 형태의 기자 바위였다. 실제 주민들에 따르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가 만지면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용암리 매령 선돌은 매령마을 대추나무 과수원 안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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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용연리(龍淵里)의 ‘용’자와 장항리(獐項里)의 ‘장’자를 따서 용장리(龍獐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룡못[龍淵里], 노로목니[獐項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용장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항리, 묵현리(墨峴里), 장평리(場坪里), 숙용평리(宿龍坪里)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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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에 있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4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에 있는 운산면사무소 왼쪽의 농협 창고 앞에 용장리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다. 1. 항일애국지사용곡허후득선생기념비(抗日愛國志士龍谷許後淂先生紀念碑)는 옥개형으로, 2004년에 건립되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183㎝이며, 비신은 높이 137㎝, 너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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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당진군 고대면 사이를 흐르는 금강 서해권 수계에 속하는 지방 2급 하천. 당진에서는 용장천을 역천(驛川)이라고도 한다. 용장천은 서산시에서 가장 큰 하천으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高豊里)와 용장리(龍獐里) 경계를 기점으로 하여 종점인 당진군 고대면까지 흐른다. 운산면 원평리를 흐르는 원평천은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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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계곡. 가야산 계곡의 하나로 수려한 산세와 맑은 물 때문에 사계절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삼림욕장으로 용현자연휴양림이 있다. 2005년 문을 연 용현자연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같은 숙박 시설과 숲속 교실, 숲속의 집, 숲 탐방로, 전망대[임도] 등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멀리 서해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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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자연 마을인 용비동(龍飛洞)에서 ‘용’자와 보현동(普賢洞)에서 ‘현’자를 따서 용현리(龍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해미군 부산면 갈골[葛洞], 보현동, 벌말[伐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용현리는 용현1리와 용현2리로 구성된다. 용현1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동음암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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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던 비로자나불 좌상. 용현리 비로자나불좌상(龍賢里毘盧舍那佛坐像)은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에서 발견되어 1980년대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 관리사무소 인근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러나 2005년 3월 19~3월 20일 사이에 도난당해 현재는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 도난당하기 전까지는 일부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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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등의 대석. 용현리 석등대석(龍賢里石燈臺石)은 보원사(普願寺)에서 고려 후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 가는 길목인 불이문의 서쪽에 위치한다. 원래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에 있던 것으로써 언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너비 70㎝, 높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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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석불 입상. 용현리 석불입상(龍賢里石佛立像)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과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로 통하는 길목의 용현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강댕이 미륵불’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원래 강댕이마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개명을 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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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 아랫강댕이에서 가정 및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7일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개인의 무탈함과 마을의 평안, 풍요, 무사태평 등을 위하여 지내는 제의이다. 따라서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개인제와 동제(洞祭)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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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인근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여래 입상. 용현리 출토 금동여래입상(龍賢里出土金銅如來立像)은 1968년 4월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普願寺址出土金銅如來立像)이 발견된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약 10m 떨어진 밭에서 출토되었다. 장유성 소유의 밭을 경작하던 정장옥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후 횡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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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 지역에는 기군과 그 영현으로 지육현(知六縣), 성대혜현(省大兮縣)의 1군 2현이 설치되었다. 반면, 현재 서산시와 홍성군이 인접한 해미면·고북면 일대를 중심으로 마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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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리에 있던 공립 운산초등학교의 남중분교장. 본래 운산국민학교 소중분교장이었으나, 분교장 개설 시점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1973년 3월 1일 남중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개교하였다. 1994년 3월 1일 격하되어 운산국민학교 남중분교장이 되었다. 1996년 3월 1일 운산초등학교 남중분교장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2006년 3월 1일 운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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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 있던 공립 운산초등학교의 원평분교장. 본래 운산국민학교 소속 분교장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분교장 설치 시점은 기록이 미비하여 알 수 없다. 1949년 12월 31일 원평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개교하였다. 1969년 3월 1일 영락분교장을 운산국민학교로부터 이관받았다. 1993년 3월 1일 분교장으로 격하되어 운산국민학교 원평분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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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3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운산리 청량골 절터는 고려 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사찰의 명칭이나 내력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수습되는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며, 전언에 따르면 빈대에 의해 폐사되었다고 한다. 대산읍사무소에서 북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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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대산읍에서 동쪽으로 운산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약 5㎞ 정도 가면 운산리 갈마리마을이 나오며, 갈마리마을을 지나면 전백마을에 이른다. 운산리 토끼섬 조개더미 유적이 자리한 토끼섬은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전백마을의 북쪽 해안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조개더미 유적은 육지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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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횟개마을에서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운산리 횟개 볏가릿제는 음력 1월 15일에 볏가릿대를 세우고 2월 초하룻날 이를 내리면서 풍년 농사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기풍 의례(祈豊儀禮)이다. 횟개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주민들이 볏가릿대를 마을 회관 앞에 세운다. 음력 2월 1일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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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운천면(雲川面)에서 ‘운’자와 부산면(夫山面)에서 ‘산’자를 따서 운산면(雲山面)이 되었다. 운산면이라는 이름이 가야산에서 유래하였으며 구름 속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가야산과 전혀 관련이 없이 생겼다. 운산면은 서산시에서 연혁이 가장 복잡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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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와 당진군 면천면 삼웅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곰이 살았던 산이라는 의미와 산의 형상이 곰처럼 생겼다 하여 웅산(熊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웅산 주변에는 곰이 나타나는 계곡의 마을이라는 곰실마을이 있다. 웅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이 가야산에서 갈라져 나간 지맥으로, 산은 높지 않으나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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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에 있는 토성. 웅소성(雄梳城)은 어리성이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건립 경위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천수만과 가까이에 있고, 주변 지역이 원래는 바다로 되어 있었을 것을 고려해 볼 때, 바다 즉 항해와 관련된 산성이 아닌가 한다. 서산시 해미면에서 국도 29호선을 타고 서산 쪽으로 약 3㎞쯤 가다 보면 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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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웅소성리(雄梳城里)는 마을 동쪽 지붕재 남쪽 끝에 웅소성[어리성]이라는 토성이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웅소성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루셩니[雄梳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 해미현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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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방죽골마을에 있는 절터. 서산에서 해미 방면으로 6㎞ 가면 음암면 유계리와 해미면 웅소성리로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방면으로 접어들어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돌면 방죽골마을이 나타나는데, 웅소성리 절터는 방죽골마을의 골짜기 남향 사면에 위치한다. 1997년과 1998년에 실시된 서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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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금리(元琴里)의 ‘원’자와 벌리(伐里)의 ‘벌’자를 따서 원벌리(元伐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장동(壯洞), 원금의[元琴里], 별말[伐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원벌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운천면 벌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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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잠홍동에 있는 원불교 서산 지역 교당. 원불교 서산교당은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출신 유병덕(柳炳德)이 원광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1983년 8월 원광대학교 원불학과 학생들의 서산시 하계 봉사 활동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당시에 입교한 신자는 서산시 동문동 31통에 거주하던 신영식, 서산시 동문동 51통에 거주하던 정원각심[미국 거주], 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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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때 홍주목(洪州牧)의 교통 요지로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어 원벌 또는 원평리(元坪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원벌, 졀[元上里], 으름[義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홍주군 합북면 북원당리, 남원당리, 영산곳리 등 세 마을이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부산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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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을 흐르는 하천. 가야산의 북동부인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과 접하는 해발 150m의 계곡인 원평리 계곡과 와우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원평(院坪)을 지난다 하여 원평천(院坪川)이라고 한다. 원평천은 폭이 좁고 하천의 유로가 길지 않은 소하천이다. 원평천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고풍저수지로 유입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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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시냇물에 비친 달빛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달내, 달내말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역하여 월계리(月溪里)라 하였다. 또는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맑아서 달빛에 비치면 하늘에 있는 달이 냇물 속에도 보여 달내[月溪]라는 이름을 얻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월계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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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도곡마을 큰절골에 있는 절터. 부석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0.5㎞가량 진행하다가 강경벌 태안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2.4㎞ 정도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 정도 더 가면 월계리 도곡마을에 도착한다. 월계리 절터는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 도곡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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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유산리(遊山里)에서 ‘유’자와 명계리(明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유계리(遊溪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암면에 베틀말[機村], 노루뫼, 가벌[石川里], 셕바탕이[石亭里], 명게리, 다리[大橋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대교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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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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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 가옥. 유기정 가옥(柳基定家屋)이 위치한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는 ‘산막’이라고도 불리며, 마을 북쪽에 은봉산이 자리하고 있다. 1905년(고종 42)경 건립되었다. 1970년경 사랑채의 좌측 조적벽이 무너지고 아궁이가 훼손되어 보수하였으며, 1976년경에는 우측 황토담의 일부분이 무너져 보수하였다. 2005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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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서령(瑞寧)[서산]. 아버지는 유침(柳忱)이다. 유민수(柳敏遂)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살면서 공부하였던 유생이다. 풍채가 좋고 마음 씀씀이가 공명정대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다. 1582년(선조 15)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한 뒤 서산 군내 20세 이하의 청년 30여 명을 뽑아 가르쳤다. 이들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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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아버지는 유기(柳沂)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낸 이종덕(李種德)의 딸이다. 아들은 유윤경(柳允庚)과 유윤겸(柳允謙)이다. 유기는 태종이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보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봉된 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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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유방택[류방택, 柳方澤][1320~1402]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천문 지리에 밝았다. 그가 만든 역서(曆書)는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중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름을 받아 천문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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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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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유백순(柳伯淳)[?~1420]은 조선 개국 후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학문과 경서에 뛰어나 성균관대사성을 지냈으며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또한 효경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서령[서산]. 호는 위촌(葦村).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형은 유백유(柳伯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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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순부(淳夫), 호는 저정(樗亭).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동생은 유백순(柳伯淳)이다. 유백유(柳伯濡)는 동생 유백순과 함께 이색(李穡) 밑에서 공부하였는데, 사람들은 형제를 ‘유씨쌍벽(柳氏雙璧)’이라고 불렀다. 유백유는 목은이색의 손서(孫壻)이다. 유백유는 춘추관수찬으로 박실(朴實)·김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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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정착했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이칭은 유성재(柳成梓). 문화 유씨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9세손으로, 밀직(密直) 유순(柳淳)의 아들이다. 이제까지 나왔던 자료에서는 서령 유씨는 유성간(柳成澗) 대에 문화 유씨에서 분적하였고 유성간을 서령 유씨의 시조로 보았으나,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1607∼1683]이 편찬한 통합보『씨족원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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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유숙(柳淑)[1324~1368]은 고려 후기 공민왕을 호종하여 정국을 이끈 당대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340년(충혜왕 1) 과거에 급제한 뒤 연경에서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즉위 초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홍건적이 침입하자 또 다시 왕을 호종하여 남행하였고 이에 공신으로도 책록되었다. 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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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시채(柳始采)의 정려. 유시채[1681~1751]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문보(文甫), 호는 봉암처사(鳳岩處士)이다. 아버지는 유중배(柳重培)이며, 연기군 남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늘 좋은 음식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1711년(숙종 37) 흉년으로 사람들이 추위와 허기에 지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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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아버지는 유회(柳淮), 할아버지는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다. 서령 유씨는 고려 때 서산 지역에 정착한 토착 성씨다. 유윤(柳潤)[?~1476]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1455년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리고 청주 무동[현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세조가 여러 차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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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형수(亨叟).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에 서산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거 성씨이다. 하지만 유기가 태종의 처남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아들 유방선·유방경(柳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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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관아의 서리. 유윤당(柳潤塘)의 가계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호산록(湖山錄)』에 ‘전춘(全春), 경준(景俊) 형제도 비록 서리라고 하나 천성이 양순하고 착하여 집에 살면서 모친을 봉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관리들이 모두 피란을 가 버렸지만 구실아치인 유윤당은 서산 관아에 남아 예부터 전해져 오는 문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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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입부(立夫). 서산의 유력 성씨인 서령 유씨 유백순(柳伯淳)[?~142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 유방익(柳邦翼)이며, 형은 유경립(柳景立)이다. 유지립(柳之立)[1555~?]은 1575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79년(선조 12) 25세에 생원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사마방목에 나타나는 서산 거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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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에 정착하여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기계. 자는 천일(千一), 호는 존재(存齋). 아버지는 유치섬(柳致暹)이다. 유진하(兪鎭河)[1846~1906]는 1846년(헌종 12) 8월 4일 경기도 고양군 벽제[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태어났다. 1865년 20세가 되던 해에 이미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권세가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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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경(柳方敬)이다. 삼촌은 유방선(柳方善)[1338~1443]이고, 사촌동생은 유윤겸(柳允謙)[1420~?]이다. 유휴복(柳休復)은 일찍이 삼촌인 유방선에게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이에 1443년(세종 25) 사촌동생인 유윤겸과 함께 『두시언해(杜詩諺解)』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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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령[서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유백순(柳伯淳)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진현감을 지낸 유억수(柳億壽)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시대 이래로 서산에 자리 잡은 토착 성씨이다. 유흡(柳洽)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유억수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먹게 하였다. 또 종기가 나서 침과 약으로 치료해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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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본관은 칠원. 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윤정학이고, 아버지는 윤병규(尹炳奎)이다.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다. 부인은 온양 예안 이씨 가문의 이용완이다. 윤곤강(尹崑崗)[1911~1950]은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777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할아버지 윤정학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는 등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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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인. 윤덕구(尹德九)[1929~1989]는 1929년 서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서령중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서령고등학교 교감에 이르기까지 교직 생활과 문학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63년에는 시인 이생진(李生珍)과 함께 동인지 『문(門)』을 창간하였다. 1964년에는 송종학(宋鐘學), 김영삼(金永三), 강현서(姜顯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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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이 원적인 근현대 아동문학가. 본관은 파평. 호는 석동(石童). 아버지는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윤덕병[1885~1950]이고 어머니는 조덕희다. 부인은 박용실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윤석중(尹石重)[1911~2003]은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 자녀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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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홍양일기(洪陽日記)』의 저자. 본관은 파평. 아버지는 윤선필(尹善必)이다. 윤시영(尹始永)[1855~?]은 1891년(고종 28) 문과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 홍문관교리, 홍문관부수찬, 중학교수, 양호선무사종사관, 부안현감, 홍문관시독, 비서원승을 지냈다. 1902년(고종 39) 함흥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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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윤찬구 가(家)에 소장되어 있는 윤시영(尹始永)의 일기와 관련 문서. 윤시영(尹始永)[1855~191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1902년(광무 6) 함흥 민요(民擾)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령의 장부(臧否)를 조사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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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송곡서원에 제향된 고려 말 충신.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후송(後松). 할아버지는 합문지후예조전서(閤門祗候禮曹典書)를 지낸 윤영찬(尹英贊)이고, 아버지는 도평의록사(都評議錄事)를 지낸 윤수균(尹守均)이다. 부인은 지안주사(知安州事)를 지낸 이광필(李光弼)의 딸 신평 이씨다. 윤황(尹璜)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살았던 문신이다.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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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율리(栗里)에서 ‘율’자와 목과동리(木果洞里)에서 ‘목’자를 따서 율목리(栗木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두치면에 밤실, 시골[排時洞], 모과울[木果洞], 즘말[店村], 장양동(章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두치면 배시동과 목과동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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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모과울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율목리 모과울 서낭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오전 10~11시 사이에 느티나무 서낭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율목리 모과울은 서산에서 당진 정미장(貞美場)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 따라서 예전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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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장작울마을에 있는 토성. 율목리 산성(栗木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성연면 쪽으로 8㎞쯤 가다 보면 음암면과 성연면의 경계를 이루는 모가울고개가 나오는데, 율목리 산성은 모가울고개의 동쪽에 솟아 있는 성재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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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에서 은을 캐냈던 광산. 조선 전기에 조정에서 은광을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서산 지역에 은장(銀匠)을 보내 은을 채굴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7년(태종 17) 해미현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지곡현(地谷縣)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보고하자, 관가에서 이를 확인하고 파내어 납 1근 8냥을 녹여 정련하니 백은(白銀) 1전 3푼가량이 나왔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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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음암면 탑곡리와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에 걸쳐 있는 산. 은봉산(隱鳳山)은 봉황이 숨어들은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또는 봉황이 숨어 있는 형상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은봉산 일대의 지질은 원생대의 태안층이 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류 및 편마암류 위에 부정합으로 놓여 구성되었다. 정미면 봉화산에서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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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충청남도 서산시는 중고제(中高制)의 산실로 그 명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고수관(高壽寬) 등 유명한 국악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전통 국악의 명맥을 잇고자 고수관 전수관을 짓고, 교육에 임하는 등 국악 전승을 위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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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문양1리의 들림바위[音岩, 소리 나는 바위, 두룸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동음암면(冬音岩面)이었으나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동을 떼고 음암이라고 불렀다. 또한, 동음(冬音)은 둥글다는 뜻인 둠의 표기로 쓰였으며, ‘동음암(冬音岩)’은 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문양1리 두룸배[일명 들음배] 마을은 말발굽같이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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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는 과거 경주 김씨 문중의 세거 모습을 알려 주는 유적이 남아 있는데 김홍익 정려, 김유경 정려, 서산 김기현 가옥, 정순왕후 생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안동에 세거하고 있었으나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 명종 조[재위 1545~1567]에 만년 은거지로 서산을 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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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서산의 중심지로서 조선 태종 때 쌓았다는 읍성의 내부에 있던 지역으로 성내마을, 중앙촌, 성밑마을 등의 지명에 근거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大寺洞面)의 동문리(東門里), 군내면의 셔문리[西門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읍내리, 남문원리와 군내면 노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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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의 서산시청 앞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건립된 31기의 비석. 읍내동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산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 서산 지역 곳곳에 위치하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서산시 읍내동 서산시청 앞에 조성된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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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邑內里)는 조선 시대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해미현의 중심 마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산 해미읍성은 1418년(태종 18)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이 해미현으로 옮겨진 후 1651년(효종 2) 다시 청주 상당성으로 옮길 때까지 233년간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이었던 곳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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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건립된 8기의 비석. 읍내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해미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는 해미면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이와 같이 비석군은 통상적으로 해당 지역에 도로 공사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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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귀부석. 읍내리 귀부석(邑內里龜趺石)의 건립 경위나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없으나, 형태적으로 보았을 때 2기의 귀부석이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산시청 정문 앞에 있는 서산관아문(瑞山官衙門) 정면의 동쪽과 서쪽에 귀부석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원래 위치는 아니지만 개발로 인한 훼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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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응평리(鷹坪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에 산이나 언덕, 숲 등이 없이 거친 흙으로 이루어진 넓은 들판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서산의 지명사』에는 옛날 동암리가 역말이었을 때 말들이 병들어 죽게 되면 거친 벌판에 버렸고, 그 죽은 말고기 때문에 매들이 모여들게 되어 ‘매벌’이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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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 주민들이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질 좋은 의류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요즘은 예전처럼 집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과거에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삼베, 모시, 명주 등의 길쌈은 이제 박물관 진열장이나 무형 문화재 재현 행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서산 지역의 의생활을 평상복, 의례복, 기능복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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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열녀. 이검손(李儉孫) 처 덕비(德妃)는 어려서부터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려도 잔칫집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정숙하였다. 이검손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낳고, 살다가 스물다섯에 남편을 잃었다. 삼년상을 치르는 사이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그만할 것을 권했으나 기어이 기한을 지켰다. 사람들이 위로할 때마다 덕비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잃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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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지역을 목으로 승격시켜 달라고 상소를 올린 인물. 본관은 알려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산(李山)이다. 이상(李相)은 고려 시대 이후 서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토착 세력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는 지곡과 인정에 토착 성씨인 이씨가 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지방의 행정 체제 개편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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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서천(舒川). 호는 소매(小梅). 아버지는 이우규(李禹奎)이다. 이석태(李錫泰)[1884~1967]는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에서 이우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10세 때 홍주목사가 개최한 경서 강의에 나가 유생들과 함께 실시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였다. 1900년에는 국비 장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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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전주 이씨 사족. 본관은 전주. 전주 이씨 덕천군파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인(李惟仁)이다. 어머니는 경주 최씨이고 아들은 이호익과 이우익을 두었다. 장남 이호익은 사마시 생원에 급제하였고, 차남 이우익은 선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에 올랐다. 이순(李淳)은 향촌에 살면서 사족을 단속하고 향촌의 질서 유지에 힘썼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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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약(仲約).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이다. 동생은 충청병사를 지낸 이유직(李惟直)이다. 이유검(李惟儉)[1538~1592]은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순찰사 김수(金睟)는 초계군수 이유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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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정종의 6세손으로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아들은 이순(李淳)이고, 손자는 사마시 생원 이호익과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에 오른 이우익이다. 이유인(李惟仁)은 서산의 음암면 신장리와 도당리에 모여 살았던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문관으로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냈다. 그는 향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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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온(仲溫). 전주 이씨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효수당한 김해 수문장 이유검(李惟儉)이다. 이유직(李惟直)[155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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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종교인, 정치가. 본관은 성주. 아호는 황산(凰山), 도호(道號)는 보암(普菴).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 아버지는 이교칠(李敎七)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다. 유복자로 태어나 작은아버지 이교삼(李敎三)의 양자로 들어갔다. 부인은 심은택의 딸 심인화이다.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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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효자 이종형(李宗馨)의 정려. 서산시 팔봉면 소재지 어송리에서 동편으로 3.5㎞ 가면 국도 32호선이 나오는데,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방향으로 2㎞쯤 가면 북측 도로변 송림 안쪽에 이종형 정려(李宗馨旌閭)가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경주 이씨(慶州李氏) 이종형의 효행이 알려져 1932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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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교육자. 아버지는 한학자인 소매 이석태(李錫泰)이다. 이지풍(李之渢)[1929~2002]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이석태에게 한학을 배웠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탁월한 한학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아 1957년 『중도일보』에 특채로 입사하였다. 평기자로 출발하여 충청남도청 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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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태소(太素), 호는 서암노인(西巖老人).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戊生)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고, 어머니는 부사를 지낸 조기(趙祁)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 심씨이다. 아들은 이택(李澤)과 이연(李沇)이다. 이진백(李震白)[1622~1707]은 1657년(효종 8) 35세에 사마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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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보현동에서 발생한 동학 농민군의 재지 양반 습격 사건. 서산 지역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서산·태안 지역을 포함하여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동학이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1907년 천도교의 제4대 교주로서 활약한 덕산 출신의 박인호(朴寅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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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 자는 윤숙(允淑), 호는 부재(復齋) 또는 정우(靜寓). 문충공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인승(李仁承)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다. 이철영(李喆榮)[1884~1945]은 1910년 8월 서산 읍내에 있는 경찰서 게시판에 한일합방에 대한 방문이 붙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포고문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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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운몽(雲夢). 정종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며, 아버지는 참판 이진백(李震白), 어머니는 청송 심씨이다. 동생은 이연(李沇)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는 전주 이씨들의 동족 마을로, 이곳에 세거하는 전주 이씨를 속칭 ‘예미 이씨’라고도 부른다. 전주 이씨가 서산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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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택(李澤)을 기리는 신도비. 이택[1651~1719]은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택 신도비는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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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이한용(李漢鎔)[1918~1985]은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 예비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언론인이 되었다. 『서울신문』 기자로 이직한 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민주일보』 기자, 정치부장·사회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에는 『평화신문』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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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열녀. 아버지는 방동(方同)이고, 남편은 이희석(李希石)이다. 아들은 이무안(李武安)이다. 막개(寞介)는 이웃 마을에 사는 이희석과 혼인하였다. 이희석은 활을 잘 쏘아 사수(射手)로 뽑혔는데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다쳐서 죽었다. 막개는 가난한 살림에도 지극정성으로 남편의 삼년상을 치렀다. 제사도 정성껏 지냈다. 바른 몸가짐으로 수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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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그 집단. 인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전체 혹은 특정 인간의 집단을 지칭한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인구는 1976년 26만 6669명을 최고점으로 계속 감소하였다. 인구 감소의 원인은 1960년대 이후의 이촌향도 현상과 관련이 있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1989년 1월 1일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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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충청남도 서산시의 절대적 위치 즉, 수리적 위치는 북쪽 끝이 북위 37°00′[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남쪽 끝이 북위 36°36′[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동쪽 끝이 동경 126°39′[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서쪽 끝이 동경 126°22′[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이다.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충청남도의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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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 있던 공립 인지초등학교의 인정분교장. 1957년 5월 1일 인지국민학교 모월분교장으로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60년 9월 1일 인정국민학교로 승격되어 인지국민학교로부터 분리하였다. 1995년 3월 1일 인지국민학교 인정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 1996년 3월 1일 인지초등학교 인정분교장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인정국민학교로 존재하였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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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인정면(仁政面)의 ‘인’자와 노지면(蘆旨面)의 ‘지’자를 따서 인지면(仁旨面)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인정면·노지면·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인정면·노지면에 속한 여러 동리(洞里)와 군내면 역리, 마산면 월계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인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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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집성촌은 고려 후기인 1300년대 후반에 형성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20년에 발간된 『조선의 성(姓)』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당시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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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일락사는 663년(문무왕 3) 의현선사가 세웠다고 하지만 의현선사란 인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1918년 제작된 「일락사 대웅전 중창기」에 의하면 1487년(성종 18), 1530년(중종 25), 1649년(인조 27)에 걸쳐 여러 차례 중창하였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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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사(日樂寺)에 있는 고려 시대 삼신불상.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여래가 주존불이지만 일락사의 경우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지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9세기 이래로 비로자나불이 유행하게 된 신앙 형태의 변이(變異) 양상이 지속된 결과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1993년 원래의 대웅전을 이전하여 명부전으로 사용하고, 그 자리에 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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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일락사의 불전. 일락사(日樂寺)는 663년(문무왕 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믿기 어렵다. 일락사 대웅전(日樂寺大雄殿)은 1487년(성종 18)과 1530년(중종 25), 1649년(인조 27) 등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고 한다. 1918년 제작된 일락사 대웅전 중창기를 볼 때, 현재 건물은 1919년 새로 고쳐 지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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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 일락사 삼층석탑은 사찰 가람에서 중요한 건조물 중의 하나이다. 건립 시기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탑의 형태는 고려 전기 양식으로 보이는데, 승려 의현(義賢)이 일락사를 창건한 때인 7세기와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락사 삼층석탑은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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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와 해미면 황락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일락산(日樂山)은 일악산(日岳山)이라고도 불린다. 일락산이란 볕을 즐기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락산은 가야산에서 북서북으로 갈라져 나가 형성된 산줄기 중에 가장 높은 산이며, 중생대 쥐라기 대보 조산 운동 말기에 화강암이 관입하여 형성된 대보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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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일호리(日豪里)와 남동리(籃洞里)에서 한 자씩 따서 일람리(日藍里)라 하였다. 일호(日毫)는 마을을 개척할 때 햇무리가 나타나 햇무리 또는 햇물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역하면서 일운이 또는 이후니라 부른 것으로 보이며, ‘일운(日暈)’의 오기로 추정된다. 람동(籃洞)은 마을 뒷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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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에 있는 청동기·조선 시대 주거 유적. 일람리 유적(日藍里遺蹟)은 그동안 구석기 유적 출토지로 전해져 오던 지역이다. 유적이 자리한 지역 일대에 서산시 국도 대체 우회 도로 음암~성연 간 도로 개설이 예정되면서, 2004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당시 기존에 알려진 구석기 시대 관련 유적과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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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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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각종 임산물에서 얻는 경제적 이윤을 위하여 삼림을 경영하는 산업. 임업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왔다. 초기에는 천연림(天然林)을 벌채하여 생산된 목재를 이용하는 것에 국한된 원시적인 약탈 행위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기에는 산림을 인공적으로 조성 및 보육하여 임산물의 영속적인 수확을 꾀하는 육성적인 토지 생산 활동을 의미하였다. 조림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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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입향조인 임윤(林潤)의 7세손이다. 임영주(林榮周)[1828~1865]는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깊어 어버이를 성심성의껏 섬겼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세 차례나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고, 수염을 태워서 약과 함께 먹게 하였다.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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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임영주(林榮周)의 정려. 임영주[1828~1865]의 본관은 평택으로 자는 선화(善化), 호는 효당(孝堂)이다. 천성이 후덕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니 임영주의 효행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은 1905년(고종 42)에 이종림(李種林)이 쓴 정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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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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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지리적 조건. 서산 지역은 대부분의 산지가 심층 풍화를 받아 남동부 일대에 높이 400~600m 내외의 산으로 이루어진 가야산지를 제외하고 대부분 서산시 팔봉면의 팔봉산[362m], 부석면의 도비산[352m]과 같은 높이가 낮은 산들이 형성되어 있다. 즉, 낮은 구릉 형태의 침식 평탄면과 해안 지방의 간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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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누에를 치는 산업. 우리나라의 양잠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잠업의 역사는 삼한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고관의 의복이 비단으로 지어졌을 정도로 발달하였다. 양잠업은 성쇠를 반복해 오다가 1970년대 중반 약 1,000㎢에 이르던 뽕밭의 면적이 쇠퇴를 거듭하여 1990년대에는 약 30㎢로 줄어들었다. 서산의 잠업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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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잠동(潛洞)의 ‘잠(潛)’자와 마을 앞을 흐르는 홍천(紅川)에서 ‘홍(紅)’자를 따서 잠홍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大寺洞面)에 쟌골[潛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잠홍동(潛紅洞)은 조선 시대 서산군 대사동면 잠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에 잠동, 홍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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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와 인지면 차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산 정상에 장군바위가 있어 장군산(將軍山) 혹은 장군봉(將軍峰)이라고 부른다. 장군산은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선의 한 줄기가 금강산에서 남서로 뻗어 이루어진 산이다. 장군산 일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의 태안층이며, 태안층은 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류 및 편마암류 위에 부정합으로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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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3리에 있는 장기덕(張基德)의 처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정려. 창녕 성씨는 정려가 위치한 호리에 살고 있는 장기덕에게 시집와 살다가 1933년에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전언에 의하면 창녕 성씨의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온 집안사람이 모였는데, 창녕 성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이미 목숨을 끊은 후였다고 한다. 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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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시조(市鳥)로, 서산 지역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 장다리물떼새는 봄가을에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갈 때 잠시 우리나라에 들리는 나그네새로 알려졌지만, 1998년 서산에서 처음으로 번식이 확인되면서 대표적인 여름 철새로 알려지게 되었다. 원산지는 아시아 중·남부, 아프리카, 유럽 남부이다. 장다리물떼새는 몸길이가 48~51㎝, 날개 길이가 21.9~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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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전체의 모양이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를 써서 장동(獐洞)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오산면에 쇼장동[小獐洞], 장동[大獐洞], 왜장이[下獐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장동은 조선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서산군 오산면 장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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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개항기 때 서산 지역의 포구 상업은 어느 정도 발달하였으나, 지방 장시는 대단히 미약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야 상설 점포가 늘어나는 등 서서히 상설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으나, 1930년대 후반까지 기본적으로 재래의 경제 구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상업 활동은 여전히 정기 시장[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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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3리 절골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장요리 절터는 조선 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절터의 명칭이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관음사 혹은 대흥사라 불렸다고 하며, 빈대에 의해 폐사되었다고 한다. 고북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0.9㎞ 정도 가면 문화마을 사거리가 나오고, 문화마을 사거리에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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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거쳐 천안과 장항을 잇는 철도.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 등의 내포 지역은 일제 강점기 철도 교통의 사각지대에 속하였다. 1931년 8월 천안과 장항을 잇는 충남선[현 장항선]의 완공으로 기존에 바닷길을 통해 인천을 경유하던 서산 지역의 물산이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천안 경유] 방면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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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장이치리(長而峙里), 어현리(於賢里), 독주동(犢走洞)이 합해지면서 장이치리에서 ‘장’자와 어현리에서 ‘현’자를 따서 장현리(長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장이[長而洞], 어현이, 독쥬[犢走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속한 어현리와 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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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장현2리에 있는 절터. 지곡면사무소에서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방면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2.1㎞가량 이동하면 산성초등학교가 나온다. 산성초등학교 갈림길에서 남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연화마을이 나오고, 연화마을에서 남동쪽으로 개설된 마을 길을 따라 0.5㎞ 정도 진입하면 절골과 이어지는 독주골이 나온다. 장현리 절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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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저성리(猪城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이 두툼하여 도투성 또는 저성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옛날 마을 주변에 있던 작은 토성의 생김새가 마치 돼지처럼 생겼다 하여 돼지성으로 불렀는데, 당시 방언으로 돼지는 ‘돗’으로 불렀기 때문에 돼지성을 돗성 또는 도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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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조직된 사설 금고. 총독부가 저축조합의 설립을 장려했던 것은 ‘근검저축’, ‘식산(殖産)’ 차원에서였다. 서산의 저축조합은 1919년경 군수 지희열이 군내의 모든 면민들로부터 매년 하모추조(夏牟秋租)를 몇 승(升)씩 거두어 조직한 조합 형태의 조직이었다. 조합장은 해당 면장이나 해당 지역의 중심인, 즉 면 단위 유지들이었다. 서산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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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천리(前川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 앞에 해미천이 흐르고 있어 앞내·전내 등으로 불렸다 하는데, 이것의 한자 표기가 ‘전천(前川)’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상전천리·하전천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쳔[上前川里]·아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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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 이전 시기의 교육.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 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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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사찰이 없어지고, 그 터만 남은 곳. 절터는 과거의 융성했던 사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초석이나 유물만 남아 있는 곳이다. 서산 지역 절터의 대부분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건물의 터였던 곳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축대, 초석, 기와, 자기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 확인된 절터들은 문헌 기록상에 전하지 않던 곳이다. 대부분이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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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차리와 부석면 강수리에 걸쳐 있는 산. 정금산(貞金山)은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선의 한 줄기가 금강산에서 남서로 뻗어 나가 이루어진 산이다. 정금산 일대 지질은 원생대 태안층이며, 태안층은 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류 및 편마암류 위에 부정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강산 남쪽에서 뻗어 내려 온 산줄기가 차리고개, 연마산을 지나 남정리 부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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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출신으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英祖)의 계비. 본관은 경주.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耉)[1723~1769]와 원주 원씨의 장녀이다. 김한구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황해도관찰사를 지내다 강옥 사건(姜獄事件)으로 장살당한 김홍욱(金弘郁)의 현손이다. 김한구 가문은 경주 김씨의 양대 명문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하여 8명의 정승과 정순왕후를 배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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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생가. 정순왕후 생가(貞純王后生家)는 조선 시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1745~1805]가 1745년(영조 21)에 태어난 집이다. 정순왕후가 태어나던 날 집 주변에 상서로운 기가 맴돌고 아름다운 새들이 집으로 날아들어 마을 주민들이 ‘장차 인물이 될 징조’라 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오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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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 서산 정씨의 시조.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으며, 몽골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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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족들이 일으킨 의병 운동.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서산 지역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군현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사족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리로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정유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 유흡(柳洽)·곽설(郭說)·한효순(韓孝純)[154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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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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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정자동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군. 정자동 고분군은 정자동과 대문다리마을의 경계에 해당되는 띠앗골 능선의 서향 사면 중앙부에 있다. 정자동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고분 2기가 도굴된 상태로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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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정자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3.7㎞ 가면 어송교차로가 나온다. 어송교차로에서 북동쪽의 마을 길로 진입하여 북동쪽으로 경작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로 1.7㎞가량 이동하면 산이고개를 넘기 전에 느티나무 집이 나온다. 정자동 절터는 느티나무 집을 마주 보는 구릉의 사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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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 있는 선돌.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홍성 방면으로 1.5㎞ 가면 서쪽으로 정자리와 봉생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정자리 선돌은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4㎞ 거리에 있는 서해안 청소년 수련원의 맞은편 제7일 안식일교회 옆 공터에 위치한다. 원래 2기였으나, 1기는 쓰러져 땅속에 묻혀 있고 현재 1기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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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정자리 선돌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선돌 앞에서 가정의 무탈함과 안녕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는 2기의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은 마을에서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는 것을 금기시했으며, 매년 정초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다만, 선돌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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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1리 초막골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에서 남서쪽으로 1㎞ 정도 가면 정자1리의 초막골마을에 이른다. 정자리 유물 산포지(亭子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고북면 양천리와 정자1리의 경계 지점인 초막골에 조성된 과수원 부지에 해당한다. 수습된 유물은 청동기 시대 석기로, 북쪽으로 흘러내린 높이 30m의 낮고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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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은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고려 말의 명장 정지(鄭地)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이다.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이인조(李仁祚)의 딸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이다. 아들은 정빙(鄭砯)이다. 정충신(鄭忠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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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묘. 정충신[1576~1636]과 부인 하양 허씨(河陽許氏)의 묘가 나란히 있으며, 주위에 묘비·상석·망부석·무인석·동자상 등이 있다. 정충신 묘는 진충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국사봉 남향 사면에 있다. 정충신 묘역은 1633년(인조 11)에 정충신이 아들 정빙(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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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정충신(鄭忠信)[1576~1636]은 원래 전라남도 광주 일대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1633년(인조 11) 당진에 유배된 이후 서산 대산에서 은거하다가 지곡면 대요리의 지세를 살펴보고 자신의 묘소를 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일대는 인조반정의 논공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괄(李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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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振忠祠)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유품.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정충신 장군 유품은 총 5종으로 영정(影幀) 1점, 갑옷 1착,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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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갑옷. 정충신 장군 유품[갑옷]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갑옷의 바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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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명기(司命旗). 정충신 장군 유품[서군사명기]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호-3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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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영정(影幀). 정충신 장군 유품[영정]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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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로(香爐). 정충신 장군 유품[향로]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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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합(香盒). 정충신 장군 유품[향합]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향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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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서산 지역의 정치 활동으로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시 의원 등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서산시청과 서산시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국회나 시 의회에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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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정해현은 현재의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때에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이 만들어졌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해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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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열린 제8회 충청남도 농아인 체육 대회. (사)한국농아인협회 충청남도협회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 및 충청남도 농아인의 복지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충청남도 농아인 체육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제1회 충청남도 농아인 체육 대회는 2003년 6월 23일 충청남도 보령시 정심체육관에서 열렸다. 제8회 충청남도 농아인 체육 대회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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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열린 제18회 충청남도민 생활 체육 문화 축제. 충청남도민 생활 체육 문화 축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 체육 운동을 펼쳐 자발적인 범시민 생활 체육 풍토를 조성하고자 열린다. 정부의 생활 체육 정책에 따라 다양한 생활 체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여 생활 체육 대회의 지원, 생활 체육의 적극적인 홍보, 생활 체육 문화 축제의 활성화, 생활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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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소금 생산업.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는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화염(火鹽)이나 자염(煮鹽) 생산이 활발하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천일염 생산 방식이 보급되면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염전을 활용한 천일염 생산이 확산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서산 지역에서도 갯벌에 염전을 만들어 바닷물을 졸인 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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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산업 중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드는 업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 건설업 등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표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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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실시된 선거. 1945년 12월 공표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신탁 통치 반대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무산되자 미국은 한국 문제를 UN총회로 넘겨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안’을 가결시켰으나, 소련의 반대로 이 또한 무산되었다. 그러자 미국은 UN 소총회를 통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총선안[단독 정부 수립안]’을 가결시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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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연안 해역에 발생하는 주요 현상으로, 조석 간만의 차로 인해 발생하는 해수의 주기적인 흐름. 일반적으로 조류는 어떤 지점에서 저조로부터 고조로 조위가 높아질 때 육지로 향하는 창조류(漲潮流)가 흐르고, 고조로부터 저조로 조위가 낮아질 때 외해로 향하는 낙조류(落潮流)가 흐른다. 조류는 해저 지형 및 해안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간석지 지형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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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산리(造山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1974년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해미읍을 위해 과거 조그마한 산을 만들고 숲을 조성하였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조산리가 위치한 해미읍 서남쪽은 서해로 열려진 허허벌판이기 때문에, 바람이나 추위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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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에서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조산리 미륵제는 음력 1월 14일 마을 중앙에 있는 미륵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였다. 지금은 마을 사람이 공동으로 미륵에 정기적인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미륵에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주민에 의하면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미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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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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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조시인. 조재억(趙載億)[1921~2005]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서 출생하였다.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서산농림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같이 근무한 한담(韓湛)과 함께 학생들의 동인지인 『수라장(修羅場)』의 발간을 지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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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용호(龍湖) 또는 정곡(鼎谷). 할아버지는 증판서 조연손(趙連孫)이고 아버지는 조준수(趙俊秀)다. 부인은 용인 이씨로 이신충(李藎忠)의 딸이다. 둘째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조존성은 증좌찬성 조남(趙擥)에게 입양되었다. 조존성(趙存性)[1554~?]은 성혼(成渾)·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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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양주. 자는 선계(善繼), 호는 청호(聽湖). 할아버지는 좌참찬 조사수(趙士秀)이고, 아버지는 조지(趙摯)이다. 조존세(趙存世)[1562~?]는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0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의 찬수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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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 종교계가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들 종교는 독립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 문화 발전 창달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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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성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비룡산 정상부 남향 사면에 위치한 죽사(竹寺)는 풍광이 좋은 절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비룡산의 바위와 대나무가 산에 빨리 오르는 내기를 했다고 한다. 대나무는 가늘게 올라가서 위태하게 보였으나 바위는 옆으로 넓게 퍼지면서 올라갔다. 바위가 거의 승리할 무렵에 산에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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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죽전리(竹田里)에서 ‘죽(竹)’자를 따고 을호리(乙湖里)에서 ‘을호’의 별칭인 석성제언의 ‘성(城)’자를 따서 죽성리(竹城里)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견해로는 죽성 지역은 대나무 밭이 무성했던 곳으로 주변 마을이 대나무 성처럼 둘러친 것 같아 보여서 지어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율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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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유파.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음 판소리로서 경기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판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는 지역적으로 구분하는데, 잘 알려져 있는 동편제와 서편제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나뉜다. 강의 동쪽의 판소리는 동편제로 칭하고, 서쪽의 판소리는 서편제라고 칭한다. 중고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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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중리(中里)와 왕산리(旺山里)가 합해지면서 중리에서 ‘중’자와 왕산리에서 ‘왕’자를 따서 중왕리(中旺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즁뫼, 왕산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왕산리와 중촌리(中村里)로 되어 있었으나 1895년 중촌리의 명칭이 중리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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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서산 지역 최초의 중학교는 1927년 서산공립농업보습학교로 개교한 서산여자중학교이다. 이후 1946년에 서산중학교가 서산공립중학교로 개교했으며, 이어 1951년 해미중학교, 1956년 서령중학교, 1958년 대철중학교, 1963년 대산중학교, 1967년 신성재건중학교[서일중학교], 1971년 성연중학교·고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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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증산도 서산 지역 도당. 증산도는 증산교의 일파로서 우리나라의 국조 3신을 믿으며 강증산(姜甑山)[증산교 창시자 강일순(姜一淳)]을 도조(道祖)로 하는 신흥 종교이다. 증산도는 후천(後天) 직전에 닥치는 ‘쌍시름’, ‘병겁’, ‘지축 정립’이라는 세 가지 환란을 극복하고 ‘지산선경문명’ 또는 ‘후천 선경세계’의 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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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서 지곡이 본관인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서산과 관련된 지리지 성씨 조에는 서산과 지곡의 토성으로 문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본관은 분명치 않지만, 서산이나 지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산록』에 등장하는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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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지육현(知六縣)으로 불리다가 통일 신라 시대에 지육현(地育縣)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지곡현(地谷縣)으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54개국 중의 하나인 치리국국(致利鞠國)이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지육현(知六縣)으로 변경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부성군에 예속된 지육현(地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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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지곡면은 지리적으로 당진군 대호지면과 가까운 곳으로 당진 지역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지역이다. 각종 문헌에서 지곡의 토성(土姓)으로는 안씨, 문씨, 이씨, 박씨를 들고 있는데 이들 성씨들의 집성촌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오래 거주한 성씨는 전주 이씨로 효령대군의 넷째 아들 낙안군(樂安君)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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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대산읍·성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지곡현은 현재 서산시 지곡면, 대산읍, 성연면 일대에 해당된다. 고려 시대에 현재 서산시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성현(富城縣)에는 속현이 2개 있었다. 지곡현은 소태현(蘇泰縣)과 함께 부성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지곡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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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지파동(芝巴洞)의 ‘지’자와 산저리(山底里)의 ‘산’자를 따서 지산리(芝山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지파동(芝把洞), 산져리[山底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지산리는 조선 시대 화변면 산저리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저리, 달천리(達川里),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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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전체를 관할하는 기군(基郡) 예하에 지육현(知六縣)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편입 이전에 서산은 마한의 치리국국(致利鞠國)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육현(知六縣) 설치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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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모든 암석이나 지층 등의 성질 또는 그 상태. 서산 지역의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서산층군과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 화강암이 기반암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을 제4기 충적층이 부정합(不整合)으로 피복하고 있다. 이밖에 소규모의 쥐라기 섬장암류, 백악기의 불국사 관입암류에 속하는 산성 맥암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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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이전 반대 운동. 1932년 10월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면서, 도내 지역 지방 관공서의 이전 혹은 재배치 문제가 지역 사회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의 폐쇄 문제를 둘러싼 민원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이 폐쇄된다는 정보가 알려지자 193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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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지표면의 기복 형태. 서산시는 산지가 대부분 300m 내외로 고도가 낮고 저평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산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야산의 서쪽은 해안 평야와 해안 지형들이 발달해 있고, 동쪽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연화산과 팔봉산 등이, 남쪽에는 도비산 등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 산지로부터 북쪽으로는 대산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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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의 여숫골 일대에는 해미천과 인접하여 들판으로 이어지는 늪이 많았다. 늪지대에는 움푹 패어 물이 고인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는데, 진둠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가리키는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이다. 진둠벙은 박해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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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진산리(榛山里)의 ‘진’자와 장북리의 ‘장’자를 따서 진장리(榛墻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고성리, 장북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진산리, 고셩리[古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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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위치한다. 지형상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평풍산[175m]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한다. 진장리 유물 산포지(榛檣里遺物散布地)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실시하는 도중 간돌도끼[마제 석부]가 출토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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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진장리에는 2개의 절터가 있는데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이하 진산 절터]과 진장리 3구 신대[이하 신대 절터]가 위치하고 있다. 진산 절터는 높이 137m의 장군산에서 남쪽으로 달리는 사면의 서쪽 중하단 사면에 자리한다. 태안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어송삼거리에서 1㎞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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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진주 강씨는 지리지 및 읍지의 성씨조에 등재되지 않은 데다, 관련 기록도 부족하여 서산에 입향한 시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 기록 중 강몽서(姜夢瑞)의 본관이 ‘진주’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부터 서산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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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충청남도 도령(道令)에 따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조직된 단체. 1916년 8월 충청남도 도장관 오하라 신조[小原新三]가 각 군에 훈령으로 미풍양속 보호 및 유지, 지방 개량을 목적으로 옛날부터 내려온 향약례를 모방하여 마을 단위로 진흥회를 조직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26년 10월 24개 면의 진흥회 회장들이 서산군청의 농회장(農會場)에서 모여 서산군연합진흥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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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同姓)의 여러 집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를 동족마을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특히 17세기 중엽 이후의 향촌 사회는 조선 전기와는 다른 친족 의식이 일반화되었다. 이전까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공평한 재산 분배 등의 풍습에 따라 사위, 외손자 등 성(姓)이 다른 친족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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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금강산과 장군봉 사이 수리봉[車峯, 鷲峯] 또는 현재 차리1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인 수랑재와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보인다. 1974년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는 수리재 아래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수릿골 또는 차동(車洞)이라 부른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1911년 간행된 『조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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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차리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차리 산신제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 1일] 저녁부터 초사흘[음력 1월 3일]까지 3일 동안 마을의 주산인 장군산[해발 300m] 뒷골과 산신각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관은 섣달 스무날에 산제당 밑에 있는 장군암에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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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리(倉里)는 창말, 창촌(倉村), 또는 왜현리(倭懸里)라 불리었다. 조선 시대에는 주사창(舟師倉)이 있어서 창말 또는 창촌이라 불렀다. 왜현리는 옛날 침입해 온 왜구들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으므로 이때부터 왜현리라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챵말[倉村]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창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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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원은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사면 하단부가 바다와 닿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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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창고 터. 창리(倉里)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지역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운을 통해 운반되는 세곡의 저장 공간이었고, 또한 배를 만드는 창고인 선박소의 기능도 하였다. 창촌 창터는 1800년대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화변면 왜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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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 1670년경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로 입향한 채근후(蔡謹後)의 5세손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이다. 채홍우(蔡弘宇)[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8세 때 이미 효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봉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병든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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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 있던 개항기 효자 채홍우(蔡弘宇)의 정려. 채홍우[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성년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공양하고 효행이 각별하여 내외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을 얻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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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천도교 서산 지역 교구. ‘한울림’의 덕과 진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포덕천하(布德天下)’, 널리 창생을 구제하는 ‘광제창생(廣濟蒼生)’, 국가를 보위 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하는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을 위해 설립하였다. 서산 지역의 천도교 전래는 지곡면 장현2리 경주 최씨 최형순(崔亨淳)이 종사(宗事)로 경주를 왕래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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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천도교 사무 행정 기관. 천도교 종리원은 제3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사후 중앙과 지방에 있었던 천도교의 사무 행정 기관이었다.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내포 지역 농민 전쟁의 진원지라 이야기 될 만큼 동학의 교세가 강력한 지역이었으며, 이런 교세는 천도교 창립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대 말부터 서산 천도교 종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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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조선 전기 천문학자 유방택(柳方澤)[류방택이 제작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1395년에 석재에 새겨진 천문도로, 1247년에 제작된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보았던 1만 원짜리 지폐에 나와 있을 정도로 귀중하지만 그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근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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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식염을 결정시키는 방법.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서산군에 염소(鹽所)가 1곳, 염정(鹽井)이 2곳, 염분(鹽盆)이 3곳, 해미현에는 염분(鹽盆)이 1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본래 가마솥에서 바닷물이나 농축된 소금물을 끊여서 생산해 낸 소금인 자염(煮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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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천장사는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운화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나 담화선사는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며 시대가 올라가는 유물이나 유적도 현존하지 않는다. 천장사 칠층석탑으로 유추할 때,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생각된다. 법당 내부에 관음사의 후불탱화로 1788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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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칠층 석탑.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건조물로, 사찰 가람에서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천장사 칠층석탑의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초기 건립은 천장사의 창건 시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탑의 상태는 옥개석과 옥신 및 상륜부 등에서 이질성이 관찰되며, 이것은 무너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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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사회 운동. 일제 강점기 때 서산은 교통이 불편하여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보통학교 교육이 보급되고, 동경이나 경성 등지의 외지 유학생들까지 대거 귀향하면서 청년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농촌 개량이나 농민 계몽을 목표로 한 실력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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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인,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이치를 탐구하는 창의인, 건강하게 생활하는 건강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서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교훈은 ‘자율, 성실, 책임’이었다. 1968년 3월 1일 대산국민학교 운산분교로 설립되었다. 1969년 3월 1일 대산국민학교 청운분교장이 되었으며,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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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정덕(韓正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청주 한씨는 서산의 유력한 세거 성씨로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찬술한 한여현(韓汝賢)의 가문이다. 『호산록』을 비롯해 서산의 지리지와 읍지 인물조에 등장한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원래 본관이 면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서는 1500년대 이후 크게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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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 및 체육 활동과 관련 체육 단체. 서산의 체육은 자연적으로 전래되어 오는 전통 체육과 광복 후의 근대 체육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서산의 근대 체육은 1911년 9월 1일 서산초등학교와 1912년 5월 10일 해미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여러 가지 체육 활동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력을 향상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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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육 관련 단체. 서산에서 체육회가 창립된 것은 1952년이다. 공주·대전·천안 등 인근 지역에 비해 비교적 늦은 편이었지만 다양한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호인들 간의 친선 도모 및 건강관리는 물론 경기력 향상을 통해 지역 사회 체육 문화 발전을 꾀하고 있다. 각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체력과 건강 증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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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체육 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그 부대시설.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보조 체육 시설 등 서산시의 체육 시설은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 진흥, 시민의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 진작, 읍면동 체육회와 가맹 경기 단체 총괄 지도, 우수한 선수 발굴 양성을 통한 지역 명예 선양, 스포츠를 통한 시민 화합과 지역 발전 등에 기여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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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서산에 있었던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승려. 속세의 성은 김씨로 웅진[충청남도 공주]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다. 체징(體澄)[804~880]은 7~8세 때 불가에 뜻을 두어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다. 화산(花山) 권법사(勸法師) 밑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24세 때인 827년(흥덕왕 2) 서산의 가량협산[현 가야산]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불교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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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서산시의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서산초등학교이다. 서산초등학교의 전신은 1908년에 설립된 서령학교이다. 서령학교는 풍전신숙과 함께 구한말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근대적 사설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사립학교 규칙’을 통해 그 시설 및 재산을 강탈하여 보통학교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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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 있는 고분군. 초록리 고분군은 고북면 소재지를 통과하는 옛 국도 29호선에서 동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가구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르게 되는 신촌마을에 있다. 초록리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연암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표고 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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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개항기 최광순(崔光淳)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최광순은 오위장(五衛將), 횡성현감(橫城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부임하여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만인산이란 고을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수령에게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바치던 물건으로, 비단으로 만들었고, 모양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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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완산. 아버지는 최효민(崔孝敏)으로 세종 때 효행으로 유명한 완산 최씨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1세손이다. 서산의 완산 최씨 집안은 5세6효(五世六孝)로 널리 알려졌는데, 최효민을 비롯하여 그의 둘째 아들 최만징(崔萬澄), 셋째 아들 최운두(崔雲斗), 최만징의 아들 최위성(崔渭星), 손자 최종혜(崔宗惠), 후손 최흥철(崔興鐵)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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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정려가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계명(啓明), 호는 율암(栗庵).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최인(崔隣)이고 할아버지는 최안세(崔安世), 아버지는 최확(崔確)이다. 어머니는 유경심(柳景深)의 딸이다. 최몽량(崔夢亮)[1579~1627]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 2등에 합격하였고, 1617년(광해군 9)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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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충신 최몽량(崔夢亮)과 효자 최호주(崔鎬周), 열녀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삼강 정려. 최몽량·최호주·나주 정씨 삼강정려(崔夢亮·崔鎬周·羅州丁氏三綱旌閭)는 충신 최몽량[1579~1627]과 효자 최호주, 그리고 최호문(崔鎬文)의 처 열녀 나주 정씨의 명정 현판을 한데 모은 정려각이다. 서산 지역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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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출신의 체육인이자 교육자. 최범수(崔範洙)는 우수한 체육 활동으로 서산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학교 체육 및 사회 체육의 진흥으로 시민의 체력 향상과 지역의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나아가 체육 활동을 통한 시민 화합과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최범수[1925~1983]는 서산시 고북면 기포리 238번지에서 태어났다. 고북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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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통일 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일진(崔日鎭)[1727~1781]은 효심이 깊어 정성과 예로써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들자 6년 동안 백방으로 치료법을 수소문하였다. 부모의 병세가 위중해졌을 때는 그 상태를 알기 위해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부모가 죽어 장사를 지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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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부성군[현 서산시] 태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이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육두품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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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나주. 아버지는 정명학(丁明學)이다. 남편은 최호문(崔鎬文)이고 시아주버니[남편의 형]는 효자 최호주(崔鎬周)이다. 최호문 처 나주 정씨(羅州丁氏)는 서산 지곡의 최호문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최호문이 담질(痰疾)에 걸려 여러 달 고생하였는데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정성으로 약을 써서 완치시켰다. 이듬해 병이 재발하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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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및 개항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자는 귀혁(貴赫), 호는 옥천(玉泉).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인 최사(崔泗)의 후손이다. 최사는 경기도 양주에 살다가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로 옮겨 갔다. 이때 고려 말의 충신 최청(崔淸)[1344~1414]의 영정을 가져가 부성사(富城祠)에 모셨다고 한다. 정묘호란 때 죽은 최몽량(崔夢亮)의 정려도 이때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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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효민(崔孝敏)과 최만징(崔萬澄)의 정려. 서산 지역의 완산 최씨(完山崔氏)는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후예들로서, 최효민은 최유경의 11세손이다. 최효민은 부친이 병이 들자 잠시도 의대를 풀지 않고 매일 안색을 살피는 등 백방으로 간호에 힘썼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법을 따라 3년간 시묘(侍墓)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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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가축을 사육하거나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활동. 축산업은 토지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각종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따라서 축산업을 축산물의 생산은 물론 그 생산된 축산물을 가공 또는 처리하여 유통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목축업이 발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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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아이들이 신을 불러서 춤추고 노는 놀이. 춘향아씨놀이는 15세 안팎의 여자아이들이 음력 정초에 날씨가 춥고 특별히 다른 놀이를 하기 어려울 때 방안에 모여서 했던 일종의 접신(接神) 놀이이다. 여자아이들이 대개 음력 정월 대보름 때 방안에 모여 먼저 가위·바위·보로 술래 한 사람을 정한다. 이때 술래가 된 아이는 두 손을 펴서 마주하고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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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아이의 출생과 관련하여 행하는 의례. 출생 의례는 아들[혹은 아이]을 얻기 바라는 기자(祈子) 의례부터 임신·출산까지 단계를 지낼 때마다 행하는 의식이다. 이를 출산 의례(出産儀禮)라고도 한다. 다만 출산 의례가 기자, 임신·출산과 관련된 의례라고 한다면 출생 의례는 출산 이후의 생육(生育) 과정을 포함하는 의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출생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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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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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시 관할 교육 행정 기관. 충청남도 서산교육지원청은 서산시의 교육·과학·기술·체육 및 기타 학예에 관한 사무를 지원하여 서산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2년 6월 4일 교육 자치제의 실시로 농업협동조합 건물에 서산교육청으로 설립되었다. 1958년 7월 9일 서산군 서산읍 읍내리 491번지의 건물로 이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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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의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취포리(翠浦里)의 ‘취’자와 평동(坪洞)의 ‘평’자를 따서 취평리(翠坪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翠坪里], 토골[坪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취평리는 조선 시대 마산면(馬山面) 토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산면 사동(社洞), 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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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옻나무밭이 많으므로 옻밭굴, 옻밭말[漆田村], 또는 칠전(漆田)이라 하였으나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옻 ‘칠(漆)’자를 쓰는 칠전리(漆田里)에서 일곱 ‘칠(七)’자를 쓰는 칠전리(七田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옷박골[七田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칠전리는 조선 시대 화변면 칠전리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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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는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가 확인되는 지역은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마을에 위치한 야산의 서사면 말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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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성저울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서산시 부석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약 4.5㎞ 정도 가면 칠전리 못밧골마을에 다다르게 되는데, 칠전리 절터는 못밧골마을의 서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1997년과 1998년에 이루어진 문화재 조사를 통해 유적이 발굴되었다. 칠전리 절터는 성절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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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KT의 서산 지역 지사. KT 서산지사는 통신의 대중화와 정보화를 위해 첨단 인터넷망과 위성 통신망을 확보함으로써 서산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3년 3월 26일 서산우편국이 개국되었다. 1958년 12월 31일 처음으로 자석식 전화가 개통되었으며 1970년 12월 31일 자동식 전화가 개통되었다.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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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서산 보원사(普願寺)에서 입적한 승려.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 속세의 성은 고씨(高氏)이다. 탄문(坦文)[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승려의 뜻을 품었으며 원효(元曉)가 살던 향성산(鄕聖山)의 옛 절터에 암자를 지어 수년간 수행하였다. 북한산 장의사(莊義寺)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 등을 배운 후 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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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탑동(塔洞)에서 ‘탑’자와 중곡리(中谷里)에서 ‘곡’자를 따서 탑곡리(塔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음암면에 탑동, 즁곡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안치리(雁峙里), 가토곡리(加土谷里), 고양동리(高陽洞里)였으며, 현재의 부산리(富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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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胎)가 묻힌 태봉(胎峰)이 지역 내에 있어서 태봉골[胎封洞] 또는 태봉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운천면(云川面) 장동(壯洞)과 부산면(夫山面) 봉골[胎封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태봉리는 조선 시대 서산군 동음암면 갈동과 홍주목 운천면 장동에 속하여 있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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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에 있는 토성. 토성산성(土城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부석으로 통하는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부석면 쪽으로 3㎞쯤 가다 보면 인지면 인지초등학교에 닿게 되는데, 인지초등학교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1㎞쯤 더 나아가면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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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통일 신라 시대는 신라가 신라·당 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676년부터 후백제가 건국한 901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북쪽의 발해(渤海)[698~926]와 남쪽의 통일 신라가 병립했던 점에 주목하여 남북국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삼국 통일과 함께 서산 지역에는 웅주(熊州) 부성군(富城郡)과 지육현(地育縣)·소태현(蘇泰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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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통일교 대전충남교구 소속 교회. 통일교는 전지전능한 무형의 부모인 신(神)을 신앙하고, 신의 체(體)를 쓰고 있는 동시에 신과 분리된 존재인 문선명에게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 통일교 서산교회는 교회 전도와 세계 평화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산 지역의 통일교는 1960년 7월 25일 문흥권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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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서산 지역은 유기질이 풍부한 황토 토양과 서늘한 서해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곡물류·과물류·채소류·화초류·조수류·어패류·약재류·광물류·공예품류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특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간척 농지에서 재배되는 친환경 곡물류와 황토 토양에서 재배되는 채소류가 특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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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팔봉면(八峰面)은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팔봉산(八峰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팔봉산은 군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여덟 봉우리가 기이하게 산 위에 나열되어 있으므로 팔봉산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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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팔봉면 산신제는 매년 음력 2월 그믐 팔봉산 정상에 있는 제단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팔봉면 산신제는 본래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지냈으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청년들의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되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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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팔봉면의 가장 오래된 집성촌은 금학리의 경주 최씨로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는 최사(崔泗)인데 최사는 최몽량(崔夢亮)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서산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경주 최씨가 서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곡면 산성리이며, 최몽량의 정려가 남아 있다.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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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에 있는 산. 해발 361.5m의 낮은 산이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가파른 암릉 코스, 서해안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이다. 등산로는 이웃한 장군산과 금강산으로도 이어진다. 팔봉산의 제일 높은 제3봉은 삼면이 석벽으로 되어 있다. 팔봉산에는 운암사지를 비롯하여 정수암지, 천제 터 등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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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의례. 팔봉산 기우제는 조선 시대 때에 날이 가물면 지방관[서산군수]이 팔봉면의 주산인 팔봉산(八峯山)[해발 361m] 상봉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행하였던 제사이다. 팔봉산은 서산시의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산이다. 기암 기석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팔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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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팔곡리(八谷里)의 ‘팔’자와 중산리(中山里)의 ‘중’자를 따서 팔중리(八中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팔고리[八谷里], 즁뫼리[中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팔골리와 중산리가 있었던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산리에서 이티리가 분할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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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평한 지형에 생긴 마을이라 평리(坪里) 또는 벌말이라고도 하며, 신라 시대에는 벌이라고 불리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下聖淵面)에 상평쵼[上坪村], 신당리(新塘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평촌, 파평촌, 신당리가 한 마을로 통합되어 서산군 성연면 평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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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기복이 작고 평탄하며 해발 고도가 150m 이내인 저지대. 서산 지역의 평야는 산지나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어 면적이 작으며, 서해안에 면한 평야는 하천 양안의 범람원과 갯벌의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산 지역은 높은 산지가 없고 고도가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이여서 규모가 큰 하천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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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趙椿)을 시조로 하고 조아(趙雅)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평양 조씨의 시조는 조춘으로 고려 시대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樞密院副使)를 지냈다. 당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金)나라를 정벌한 공로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의 선조는 중국에서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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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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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에 있던 사립 교육 기관.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어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 기준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교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다.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 교육 기관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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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전리(豊田里)는 조선 시대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에 속한 풍전역(豊田驛)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풍전역을 확인할 수 있어 그 명칭의 기원이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역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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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한국SGI의 서산 지부. 한국SGI[Soka. Gakkai. Interational]는 『법화경(法華經)』의 정수(精髓)인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계승해 그 근본이념인 생명 존엄 사상을 실천하는 종교 단체로 회원국만 192개국에 이른다. 대승 불법을 근간으로 세계 평화와 문화 교육을 기본 이념으로 하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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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충청남도연합회 서산 지역 지부.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상호간의 교류를 활발히 해줄 수 있는 매개체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결성한 지역 문화예술인 단체이다. 미술협회를 시작으로 국악협회, 사진작가협회, 무용협회 등이 가입하면서 현재의 사단 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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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산하 서산 지역 지점. 한국전력공사 서산지점은 서산 지역에 고품질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1930년 1월 서산전력주식회사로 발족한 이래 1961년 7월 한국전력주식회사 대전지점 예산영업소 서산출장소로 개칭되었다. 1977년 한국전력주식회사 대전지점 서산영업소로 승격되었다. 1982년 2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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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교육자. 한담(韓湛)[1917~1950]은 어린 시절 한학과 신학문을 동시에 수학하였다. 1937년 성균관에서 주최한 전국 한시 대회에 장원을 수상하였으며, 1940년에는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한담은 1940년대 서산농림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였다. 당시 조재억(趙載億)[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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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한자로 표현한 시 작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한시(漢詩)는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뿌리 깊은 전통성을 내재하며 발전해 왔다.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과 넉넉한 인심이 어우러진 서산에서 시심(詩心)을 토로하고 운치를 표현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유명한 시인 묵객들은 서산과 인연을 맺고, 한시를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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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4월 5일경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거나 묘소를 손질하는 풍습. 한식(寒食)은 동지를 지낸 후 105일째 되는 날에 해당된다. 대개 춘분과 곡우 사이의 청명(淸明)과 같은 날이거나 그 다음날이 된다. 양력으로는 4월 5일 혹은 6일에 닿는다. 한식은 설날·단오·추석 등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이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겨울 동안에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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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자는 희중(熹仲), 호는 우재(愚齋). 증조할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고, 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한익(韓翼)이다. 아들은 한경춘(韓慶春)이고, 손자는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영희(韓暎憙)[1518~?]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은 서산과 인접한 당진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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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리. 본관은 면천. 고려 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한자희(韓自禧)의 후손이다. 아들 한인국(韓仁國)[1552~?]은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시에 생원 3등 24위로 급제하였다. 한우(韓雨)는 서산 지역에서 여러 해 구실아치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지냈다. 공평하게 일처리를 한 덕분에 그가 호장을 지내는 동안 구실아치들 사이에 잡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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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다. 한서정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였다. 후에 북방우후(北方虞侯)에 제수되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배(李裵)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 유씨로 현감을 지낸 유석정(柳碩汀)의 딸이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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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최초로 서산에 입향한 청주 한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할아버지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한준(韓浚)이며, 아버지는 군기감사(君器監事)를 지낸 한경선(韓敬善), 어머니는 판관 구연(具珚)의 딸 능성 구씨이다. 부인은 해주 최씨로 고성군수 최광준(崔光俊)의 딸이다. 아들로는 판서를 지내고 서산에 입향한 한정덕(韓正德)과 예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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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던 사립 학교.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설립되어, 이른바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순종 2)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개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는데,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의 교육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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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조직된 노동조합. 해미노동조합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지역 민중들의 계몽과 지역 사회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28년 창립 당시 회관 건축, 노동 야학, 의무금 중징, 조합원 소비 절약, 순회강연 등에 관한 사항을 주요 안건으로 상정했던 것으로 보아 해미노동조합은 단순한 노동조합이 아닌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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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미 대곡리 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산제당 옆의 제단에서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신제이다. 마을에서는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3~5명의 제관을 뽑는다. 제관들은 각자 역할 분담을 한다. 한 사람은 산신제를 지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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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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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비석. 해미읍성 비석군은 박민환(朴民煥)이 1847년(헌종 13)에 해미현감겸영장으로 부임하여 1848년 9월까지 쇠퇴해진 해미읍성을 중수한 사실과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49년(헌종 15)에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의 북동쪽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의 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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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407년(태종 7)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해미면(海美面)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동면과 남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면과 남면에 속한 동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으로 개편하고, 관유리, 귀밀리, 기지리, 대곡리, 동암리, 반양리, 산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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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는 다양한 성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다만 현재에도 조사를 통해 그 유서가 확인된 해미면의 집성촌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에 입향한 조선 후기의 성씨들이 형성한 마을들이 대부분이다. 해미면에는 대곡리 전주 이씨, 대곡리 경주 김씨, 황락리 여양 진씨, 관유리 전씨[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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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현. 해미현(海美縣)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한 서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현(夢熊縣)의 아전 한씨(韓氏)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작호를 내리고,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고구현(高丘縣)[현재의 서산시 해미면(海美面)·고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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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바다에서 침입하여 들어오는 도둑을 막으려고 3면이 바다에 접한 해안에 성을 쌓은 데서 연유하여 해성(海城)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해성리(海城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셩쵼[內城村], 외셩쵼[外城村]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행정 개편 때 내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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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 해안에서 파랑의 침식 작용을 받아 형성되는 해안 절벽. 서산의 해식애는 파랑의 에너지로 인해 절벽이 깎이고, 그 과정에서 암설이 떨어져 내리면서 급경사를 유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해식애는 한반도의 동해안과 같이 큰 파랑이 발달한 산지성 해안에 잘 발달하지만, 노년기의 구릉성 지형이 바다로 돌출한 서해안에도 비교적 규모가 작은 해식애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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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조류와 연안류를 따라 운반된 모래가 사빈(sand beach)과 간석지에 퇴적된 뒤, 바람에 의해 그 후면으로 이동하여 쌓인 모래언덕. 해안 사구는 대기 중에 노출된 모래의 양이 충분하고 사빈 뒤쪽에 식생이 자라고 있어 모래의 퇴적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는 곳에 대규모로 발달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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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행정은 중앙 및 지방 행정 기관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공적 행위를 지칭한다. 이러한 공적 행위는 주로 공공 정책을 입안하거나 결정, 집행,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구현하게 된다. 반면 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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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토속 음식. 향토 음식은 특정 지역의 자연 환경 및 생활 풍습을 배경으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독특한 조리법에 따라 조리하여 과거부터 지역민들이 먹어 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서산시는 해안과 내륙이 접해 있어 해산물과 농산물을 비교적 풍부하여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이 많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는 밀국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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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편찬된 향토의 지리, 역사, 사회, 전승(傳承) 등에 관한 기록. 향토지는 향토에 관한 다방면의 정보를 기록한 자료로 조선 시대의 읍지와 지리지, 현대에 제작된 군지와 시지, 그리고 읍지·면지 등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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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서산 지역도 커다란 정치적 변화에 직면하였다. 일제 강점기 ‘유지(有志) 명부’에 올라 있었던 주요 인물들과 ‘요주의·요시찰인 명부’에 올라있던 사람들의 정치적 지위가 갑작스럽게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른바 ‘당국신용(當局信用)’을 가진 지방 유지들은 ‘친일파’나 ‘반민족 행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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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리(虎里)는 마을의 지형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호두리, 그리고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내호두리(內虎頭里), 외호두리(外虎頭里)라는 명칭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風水) 형국상 호랑이 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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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 2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호리 절터가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호리 2구는 전체 지형이 북동~남서 방향의 구릉 지대를 이루고 있다. 해안가에 형성된 낮은 구릉 지대 사이로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고, 교통로를 따라 자연 마을도 위치하고 있다. 호리 절터는 구릉의 동쪽 사면 말단부에 해당하며, 교통로와 인접해 있다. 폐교된 팔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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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호리성(虎里城)은 1516년(중종 11)에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1,337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산과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적이 왕래하는 요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진영을 설치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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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명정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창원. 아버지는 황민수(黃敏洙)이고, 남편은 홍종학(洪鍾鶴)이다. 홍종학 처 창원 황씨는 홍성군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군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과 혼인하였다. 2년 만에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치른 후 독약을 먹고 자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덕마리에 묘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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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1리에 있는 개항기 열녀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정려. 홍종학의 처 창원 황씨는 인근 홍성에서 황민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당진 석문면 삼봉리에 사는 홍종학에게 출가하였는데, 혼인 2년 만에 사별하였다. 그 뒤 정성으로 삼년상을 마쳤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901년(고종 38)에 음독하였다. 서산 시내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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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홍천리(紅泉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의 분홍리, 천곡리, 동산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홍천리로 하고 서산군 지성면에 속하게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분홍리(分紅里)가 보이며, 1911년 간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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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1리에 있는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세워진 4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1리 마을회관 앞에서 동쪽으로 화곡리 비석군이 세워져 있다. 1. 첨사박후윤묵영세불망비(僉使朴侯允黙永世不忘碑)는 귀접이 양식으로, 1884년(고종 21)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28㎝, 비신은 높이 112㎝, 너비 53㎝, 두께 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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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2리 산수골에 있는 고려 시대 청자 가마터. 화곡리 청자 가마터는 충청남도 최서북단에 위치한 대산반도의 북쪽 끝자락인 대산읍 화곡리 산수골 일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서산시 대산읍의 독곶과 대호방조제를 잇는 국도 29호선의 중간 부분 정도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서쪽을 향해 ‘Y’자 형태로 갈라지는 화곡리 산수골 계곡의 곡간 능선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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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계리(花溪里)의 ‘화’자와 수현리(秀峴里)의 ‘수’자를 따서 화수리(花秀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성산리(星山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분토골[花溪里], 반계리(磻溪里), 수현리, 성산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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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있는 토성. 화수리 산성(花秀里山城)은 서산시 관내의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불분명하여 산성인지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에 건립 경위 또한 분명하지 않다. 산성이라면 천수만을 지키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산에서 태안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쪽으로 4㎞쯤 가면 인지면 화수리 양지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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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천리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위치한 흑점리(黑店里)와 율곡리(栗谷里)였다. 1895년 흑점리가 화동으로 바뀌고 율곡리가 율리(栗里)와 목곡리(木谷里)로 각각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천리를 편입하여 화천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머[遠川里],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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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 아랫말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화천리 아랫말 토기 가마터는 북서쪽으로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와 연접해 있는 화천리 화동골 초입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화동골 북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성 산지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주변 지형이 대부분 밭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며, 경작지를 중심으로 토기편과 가마 소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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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환성리(環城里) 지역은 마을 모습이 문고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골환이[谷環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문곶리(門串里)와 지곡면 대요리(大要里) 사이에 동서로 쌓은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이 있었으므로 골환이의 ‘환’자와 토성의 ‘성’자를 따서 환성리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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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계곡. 황락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동면 일악동리였다. 일악동리라는 이름은 가야산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비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895년(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동면 황조촌과 일락촌의 두 개 마을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두 동리의 이름을 따서 황락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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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황조촌(皇朝村)의 ‘황’자와 일락촌(日洛村)의 ‘락’자를 따서 황락리(皇洛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일악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일낙골[日洛洞], 터골[皇朝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일락동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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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불 입상. 황락리 석불입상(皇洛里石佛立像)은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서 일락사(日樂寺)로 가는 길에 있는 황락리 일락골 마을 회관 뒤편으로부터 약 5m 지점에 서 있다. 악귀 등을 막으려고 서산시 해미면 사방에 세운 비보 장승 가운데 하나로, 해미면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륵(彌勒)이다. 하반신이 시멘트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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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읍 황락리 일락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골 황락저수지에 유입되는 황락천을 따라 오르면 황락리 절골, 산수리 등으로 이어지는 소로들이 나뉜다. 소로가 나뉘기 시작하는 부분의 북쪽에 위치한 남향 사면 하단부가 황락리 일락골 가마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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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황진(黃璡)이다. 외삼촌은 중종 때의 명신 진우(陳宇)[?~1535]와 진식(陳寔)[1519~1568]이다. 황유성(黃有誠)은 오랫동안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인 유향소(留鄕所)의 향임으로 활동하였다.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의를 대변하는 향임의 역할에 충실하여 백성들에게 불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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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황필대(黃必大)는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치료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산 사람의 피를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7일 후에 죽었다. 황필대는 통곡하면서 10일 동안 물과 장을 입에 대지 않았다. 또 직접 흙을 져 날라 봉분을 만들고, 3년 동안 여막에 살면서 조석으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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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일컫는다. 효(孝)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조선 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효도를 국왕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했다. 반대로 불효하거나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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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2리 지파동마을에 있는 효자 유동원(柳東源)과 효부 밀양 손씨(密陽孫氏)를 기리는 정려.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孝子柳東源·孝婦密陽孫氏旌閭)는 유동원[1789~1873]과 유동원의 처 밀양 손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이다. 유동원은 서산을 본향으로 하는 서령 유씨(瑞寧柳氏)이며, 효자 유동원·효부 밀양 손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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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부엉이처럼 생긴 부엉바위가 있어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부엉바위를 의미하는 휴암리(鵂巖里)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후에 ‘부엉이 휴(鵂)’자가 ‘쉴 휴(休)’자로 바뀐 것 같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부흐산[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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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들 가운데 볏섬 크기 정도의 커다란 검은 바위가 있었다고 하여 검은돌, 거문들, 흑석 등으로 불렸다고 전하지만, 농지 정리 작업 과정에서 없어져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일설에는 대황2리 마을 바닷가에 있는 검은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흑석리(黑石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