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양산시의 가야진 용신제를 보존하기 위해 창립된 예술 단체. 가야진용신제(伽倻津龍神祭) 는 가야진사(伽倻津祠)의 제례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용신제이다. 가야진사는 장병의 무운을 빌며 제사를 올리던 사당이며 가야진사에서 모시는 신은 용신이다. 가야진 용신제는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례로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당시에는 국가 의식으로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일제강...
-
1918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가홍정은 천성산 자락에 있는 흥룡사 앞쪽에 위치한다. 가홍정은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이 노병을 치유하고 난 66세이던 1918년에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와 함께 자신의 소유지였던 홍동의 흥룡폭포 아래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 이재영이 남긴 「가홍정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경구재는 동래정씨 경상도관찰부주사(慶尙道觀察府主事) 및 통정비서감승(通政秘書監丞)인 구계(龜溪) 정인휘(鄭寅暉)를 받드는 재실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새롭게 축조되었다. 경구재는 본래 고려 공양왕 때 승정원 비서를 역임한 정인휘의 묘실(墓室)이었다고 한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경덕재는 1983년 경주이씨 물금 입향조인 이경덕(李敬德)의 후손들이 이경덕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재명은 입향 선조의 휘를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경덕재라 하였다. 현재 60위를 모시고 있다. 경주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은 호가 표암(瓢巖)이며 신라좌명공신(新羅佐命功臣)을 지냈다. 중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臺). 1939년 박재화(朴宰華) 형제가 그의 선조 박치형(朴致亨)을 우모하여 축조하였다. 금산리 거주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200여 년 전부터 놀이터로서 자리매김하여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백중놀이 때 마을 사람들이 화전놀이를 하는 장소로 정해진 마을에서 가깝고 경치 좋...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금성나씨 재실. 경북재는 1941년 금성나씨 양산 입향조인 북간처사 북헌(北軒) 나이인(羅以仁)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후손 나진규와 나기흥이 중심이 되어 나이인을 비롯한 금성나씨 143위를 모시는 재실을 북정과 분암 사이에 세웠다. 금성나씨의 시조는 나총례(羅聰禮)로 고려 혜종과 정종 때 공을...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경의재는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재연(金在衍)·김재간(金在衎)·김재형(金在衡)·김우권(金禹權) 등의 재사이다. 경의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하나이다. 그의 후손인 김재연은 자는 영보, 호는 양심재이며, 성품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검소하였다. 늙어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경과...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경주이씨의 재실. 경주이씨는 현재 도정(都正) 이종운(李種運)의 후손은 화제리에, 가선대부겸이조참의(嘉善大夫兼吏曹參議) 이중우(李仲雨)의 후손은 내포리에, 병조참판(兵曹參判) 이순곤(李順坤)의 후손은 용당리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경춘재는 경주이씨 중시조 이거명(居明)의 17세손인 익제(益齊) 이제현(李齊賢)의...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달성서씨 감찰공파(監察公派) 증산 문중(增山門中) 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折衷將軍兼知中樞府事) 서두망(徐斗望)[1686~1746]을 기리기 위한 재사이다. 달성서씨는 입향조인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주부를 제수 받고 후에 증산사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울산으로부터 와서 매곡에서 살았다. 이후 증산문중의...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대(臺). 금호(琴湖) 이수생(李秀生)의 후손인 조선시대의 문신 이일녕(李一寧)이 글 읽기를 좋아하여 쌓은 누각이다. 이수생은 조선 명종 대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금산리에서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으로 첨정에 올랐고, 선무원종공신 삼등훈을 받았다. 이수생의 후손인 이일녕은 천성이 후덕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경...
-
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세거 성씨.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으로 광주군에 봉해진 안방걸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판사공 안몽득의 손자 안우(安宇)가 입향하여 형성된 봉사공파이다.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대에 대장군(大將軍)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라 천변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재사인 삼강사 앞에 위치해 있다. 옛날 지라천(旨羅川)에 큰 소(沼)가 있었는데, 그 소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았던 신용권(辛容權)이 부친 신도일(辛道日)의 유상처(遊賞處)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구룡대라고 이름하였...
-
조선 후기 양산군수를 지낸 인물.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권벌(權橃)의 6세손이다. 권만은 일찍부터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여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1747년(영조 23)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양산은 오봉산(五封山)[하북의 영축산, 상부의 천성산·석장산, 물금의 어곡산, 원동의 내포산] 설치로 여러 가지 폐단을 겪고 있어...
-
6·25전쟁 전후에 대한청년단을 이끈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인물.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신주마을에서 태어난 김갑조는 6·25전쟁을 전후하여 공비들의 출몰이 심해지자 의용경찰(대한청년단 전투대)에 앞장서 향토 방위에 힘쓰는 한편 공비 토벌 작전에도 참가하였다. 1951년 봄, 김갑조는 기습해 온 공비 몇 명을 기지로 유인, 생포하여 원동 지서에 인계하였다. 이 일...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익장(益章), 호는 송암(松庵). 사육신의 한 명인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선조인 김문기가 1731년(영조 7)에 복관되었고 1791년(정조 15) 정조가 규장각과 홍문관에 명하여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때 삼중신(三重臣:민신·조극관·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된 것이 배경이 되어 김광권이...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득인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기로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부친 시묘(侍墓)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나 적병이 그 행의를 보고 효성에 감복하여 해채(海菜)와 미곡을 보내준 일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문달(聞達)되어 복호(復戶)를 받고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정려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준여(俊如), 호는 둔재(鈍齋). 제숙공(齊潚公) 김곤(金稇)의 후손이다. 형은 고종 대에 무과에 합격하여 영장(營將)을 지내고 장수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를 받은 김재현(金載鉉)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중형(仲兄) 김재현을 부모처럼 섬기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1872년(고종 9)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국어학자이자 교육자. 1917년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 신전리에서 나기언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사범학교 연습과에 진학하였다. 23세에 동래 유락초등학교 훈도로 취임한 후, 부산·경상남도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59년 경남방언학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1963년 10월에 부산국문법연구회를 조직하...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선극예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수사로 재임하다가 1598년(선조 31)에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전공으로 대호군(大護軍)이 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옥배(玉杯)와 녹권(錄券)을 은사 받았다. 울산광역시 언양 지역 작괘천변의 선무원종공신비에 사적이 기록되었고, 울산 지역의 충의사(忠義祠)에...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군호는 1901년 9월 24일에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평산리(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던 손군호는 신학문을 배워야만 우리나라도 문명화가 빨리 되겠다는 생각에 보통교육과정의 명정학교와 중등교육 과정의 지방학림이 있던 범어사를 찾아갔다. 집과의 거리가 수십 리 원거리이었기에 범어사에 승...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기장(沙器匠). 신정희는 1930년 8월 29일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나 부산 지역에서 골동품 행상과 수집상으로 생활하면서, 전국의 오래된 옛 도요지 200여 곳을 탐사하여 깨진 그릇 조각을 수집하였다. 이것을 통해 태토와 유약을 분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68년에 자연 유약으로 진주 지방의 제기였던 황도사발(黃陶沙鉢) 재현...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상옥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서면 내포리(현 원동면 내포리) 사람으로 1919년 3·1운동 때 38세였다. 양산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많은 애국 인사들이 체포되어 악형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순모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각지를 순방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회의에 보낸 소위 파리장서 사건에 연루...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열녀. 임씨의 본관은 풍천. 아버지는 임광세(任光世)이며 남편은 안경로(安景魯)이다. 임씨는 남편 안경로와 혼례는 갖추었으나 우례(于禮: 신부가 처음 시가를 들어가는 예식)를 하지 않고 남편만 집으로 돌아갔다. 신랑을 떠나보내고 우례할 날을 고대하며 준비에 분주하였을 때 떠난 지 하루가 못되어 신랑이 별세했다는 급한 기별이 있었...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양산 신기리 고분군은 양산시 택지 조성 사업으로 인한 사적지 해제를 위해 1990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으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3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대부분 횡구식 석곽묘로 밝혀졌다.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구릉의 저지대에는 수혈식 석곽묘가 있으며, 그 나머지 지대에는 대부분 횡구식...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육영사업가.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경운(耕雲). 현감 윤홍(尹洪)의 아들이다. 형은 고성군수와 울산군수를 역임한 윤명은이며, 사촌으로 양산 지역 출신의 윤상은과 윤현진 등이 있다. 윤영은은 1907년(순종 1)에 문중의 재산으로 구명학교(龜明學校)[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의 구포초등학교]를 창립하였으며, 1908년(순종 2) 우...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서(成瑞). 진사 윤소(尹沼)의 7세손이다. 윤소는 1631년(광해군 5)에 진사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윤창응은 고종 때에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1898년(고종 35)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고, 1907년(순종 1)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의정부총무국관보과(議政府總務局官報課)에 근무...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학성(鶴城). 세조의 원종공신인 수사 이종실의 5세손이다. 이겸수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을 일으켜 여러 번 전공이 있었다. 1594년(선조 27)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대장으로 하는 왜적이 울산 서생포에 주둔하고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에게 화의를 청하였다. 그 해 3월 5일 조정에서 그 진위를 탐정하고자 장희춘(莊...
-
조선 말기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 이황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성 이휘준(李彙濬)이며, 이휘철(李彙澈)에게 입양되었다. 1866년(고종 3)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지냈다. 이후 홍문관부수찬·장령·지평·병조정랑·교리·응교·사간·집의 등을 역임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산. 조부는 이조판서 이만영(李萬英)이고 아버지는 순찰사 이전생(李全生)이다. 이전생이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정착하여 살았고 큰형 이징석(李澄石)이 세조 대에 추충좌익공신숭록대부예조판서중추부사(推忠佐翼功臣崇祿大夫禮曺判書中樞府事)로 양산부원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양산으로 하였다. 둘째 형은 세종 대에 함길도절제사를 역임한 이징옥...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암자. 통도사를 짓기 전인 진평왕 때에 자장율사가 바위 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으로, 자장율사 입적 후에는 율사의 제자들이 수도하였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 용복(龍福)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던 조선시대 누각 터. 경상남도 양산시에는 조선시대의 누각이 많이 있다. 이 가운데 춘설루에 대한 자료는 조선 후기에 양산군을 거쳐간 관리들의 시에서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조와 정조 때의 무신이었던 권만과 양산군수였던 이만도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에 이만도의 글 일부를 인용해 본다. “의춘에 무엇이 있더냐? 대나무 사방...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의 양산읍성 내에 있던 정자 터. 춘화당은 원래 양산읍성 내에 있었다고 전하는 조선시대 정자이나, 현재는 터만 전하고 있다. 춘화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묘사하는 선현들의 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춘화당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시 몇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거정 작) 말을 몰아 달린 병이 늙음과 함께 겹쳐서/ 동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