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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나루. 가야진은 본래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산군 원동면 용당리에 편입되었다. 가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뜻에서 가야진이라 하였다. 위치상으로 양산군 용당리에서 김해군 상동면 여차리 용당으로 건너가는 나루 터이기 때문에 용당나루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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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 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향을 받다가 5세기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삽량(歃良)으로 불리다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양주로 개칭되었다. 양산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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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삼국사기』김유신전과는 달리『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 인용된 문무왕의 제서(制書)에는 김서현이 구형왕의 손자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 잡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김유신비」에는 김소연(金逍衍)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며, 아버지는 김무력이다. 부인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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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양주방어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서현(金舒玄)의 후손이다. 김원현은 『고려사』에 1044년(정종 10) 진사 을과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산군수인 이만도가 찬한 비명에 의하면 문종 때 양주방어사에 임명되었을 때 왜적이 군선 190여 척을 이끌고 삼차강(三叉江)에서 양산으로 진격하자, 김원현은 전투복을 갖추고 힘써 싸워 많은 적을 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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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일대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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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 마고산성은 양산시 교동과 원동면 화제리 간 경계를 이루는 오봉산(해발 479.9m)의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산성이다. 마고산성은 주민들에 의해 ‘할미산성’, ‘마고성’, ‘산성고개’, ‘성산만딩이’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고산성은 5~6세기에 쌓은 테뫼식이 아닌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인 점으로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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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는 각자 특색 있는 향기를 내뿜는 소노마을, 율리마을, 효충마을이 있다. 이제부터 마을의 향기를 따라, 마을 찾아 역사 찾아 소토리 여행길을 떠나보자. 경부고속도로 양산 IC에서 벗어나 우회전하여 통도사 쪽으로 방향으로 300m 정도 오면 좌측에 어곡터널과 공단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면 벌써 소토리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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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면 범어리 일대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증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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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 산성 터. 삼호리 성지는 우불산(于弗山)의 지봉(支峰) 정상부에 있다. 이 성터의 주변에는 우불산성이 있다. 성 안에는 잡목이 무성하여 성의 구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산 정상부의 등고선을 따라 돌로 쌓은 성으로 판단된다. 규모는 둘레 약 800m, 폭 2m, 높이 4m 정도이며, 성벽은 대부분은 무너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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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 평지 행정성. 『삼국사기』에 의하면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의 삽량성 침입 기록에서 보아 삽량성은 5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418년(눌지마립간 2)에 박제상이 삽라군(歃羅郡) 태수(太守), 또는 삽량주(歃良州) 간(干)이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 신라가 양산으로 진출한 것은 5세기 초반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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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지명으로 신라 9주(九州) 가운데 하나. 삼국통일 직후 신라는 지방 행정 구역인 9주를 설치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로 상주(上州)·하주(下州)의 땅을 떼어내 양산 지역을 중심으로 삽량주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卷) 34 잡지(雜志) 3 지리(地理) 1 양주조(良州條)의 설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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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 성곽은 본래 내성(內城)만을 뜻하는 성(城)과 외성(外城)을 가리키는 곽(郭)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곽은 거주 주체의 일정한 공동 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건조물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축성 재료에 따라 목책·토성·토석혼축성·석성·전축성(塼築城)으로 나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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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극기 등이 쌍벽루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쌍벽루(雙碧樓)는 양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누각 아래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줌으로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쌍벽루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겼다. 특히 김극기(金克己)[1379~1463]와 명(明)나라 사람 장청(張淸)의 시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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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신라시대 용신 사당. 양산의 자연 숭배는 대천 숭배와 고산 숭배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대천 숭배는 용신 사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용왕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용신, 용왕할머니, 수신이라고도 부르며, 비를 내리게 하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용신제나 용왕굿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이다. 특히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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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신라시대 테뫼식 산성. 양산 북부동 산성의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緣邊)에 두 성을 쌓았다”고 한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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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 양산 신기리 산성의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沿邊)에 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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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박창과 이공미의 효자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양산군 효자조에 의하면 박창(朴暢)은 부모상을 당해 깊은 골짜기에 여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 하니 왜적도 감동하여 해치지 않아 무사히 3년상을 마쳤다. 이공미(李公美)는 어미의 무덤을 3년 동안 지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리고 세금을 면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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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봉수대. 조선 전기에 설치된 양산 원적산 봉수대는 동쪽과 서쪽 주변에 깬돌[割石]로 쌓은 석축이 있으며, 동쪽은 둥글게 석축을 쌓아 그 안에 기와집과 고사(庫舍)를 지었던 흔적이 있다. 서쪽은 능선 정상부를 따라 석축을 경사지게 사각형으로 쌓았고 안에 화덕을 두었다. 주변 석축은 기단 부분은 내탁(內托)하여 쌓고 그 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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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과 북부동에 걸쳐 있는 고려시대 읍성. 양산읍성의 조성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삼국사기』나 『양산군지』에는 신라 자비마립간대(458~479)부터 삽량성에 대한 기록에 나와 있지만 이것을 양산읍성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1381년(우왕 7)에 “왜적이 양산에 침범하여 그 백성들이 그 땅을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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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걸쳐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침략한, 일본에 근거지를 둔 해적 집단. 왜구는 1223년(고종 10)에 금주(현 김해시)를 처음 침략하였으며, 1350년(충정왕 2)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169년 동안 총 519회나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왜구가 침략할 무렵 고려는 내적으로 무신정권·대몽항쟁으로 정치권력이 불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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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을 초대하는 향연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용당의 가야진이다. 가야진은 예로부터 가야와 신라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던 곳으로, 가야진의 진은 군대가 주둔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용신을 모시는 가야진사는 낙동강을 건너는 장병의 무사귀환과 승리를 기원하던 사당이었다. 문헌에 보이는 가야진사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 따르면 신라는 강에 대하여 4곳에 국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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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양산군지』에 따르면 윤산(輪山)은 유산리 앞들 가운데 있는 둥근 야산으로 일명 반월산(半月山)이라 한다. 지금의 양산지방산업단지 한전변전소 서쪽에 있는 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神祠)가 있었다가 해방과 동시에 없어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40여 개의 찰방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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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명산·대천 등의 자연물이나 사찰·그림·누각 등의 인공물에 시구를 적어 넣은 것. 사람들은 절경의 자연물이나 역사적 혹은 문화적 함의가 있는 인공물 등에 제영하여 자연물에 인간적인 색채를 더하고 인공물에 의미를 배가하여 대상물이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유명한 장소는 유명한 시인을 불러들이고, 또 그로 인해 그 장소가 더욱 유명해지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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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문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명환(名宦) 조에 “역락(亦樂)이 양주(지금의 양산)의 원으로 부임한다고 하여 아들 조진(趙眞)과 종들이 새벽부터 천수사 문에서 기다렸으나 역락은 친구에게 이끌려 점심때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조통(趙通)이 양산수령으로 부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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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구경 등이 징심헌의 풍광과 삶의 자세에 대하여 읊은 한시. 징심헌(澄心軒)은 박제상(朴堤上)이 양산태수로 있을 당시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구경(金久冏)을 필두로, 강희안(姜希顔)[1418~1465],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종직(金宗直)[1431~1492] 등 쟁쟁한 문사들이 시를 남겼다. 이들의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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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신라 말 고려 초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던 토착 집단. 호족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지방에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일정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을 말한다. 호족은 수(帥)·성주(城主)·장군(將軍)·적수(賊帥)·적(賊)·웅호(雄豪)·호걸(豪傑)·호족(豪族)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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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군이 쌓은 석축 성터. 호포 왜성지는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에 의하면 원래 호포원지(狐浦院址)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호포원은 호포의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530년경에는 역원 기능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인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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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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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정포가 유배 중 황산강에서 읊은 칠언고시의 한시.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에 「황산가(黃山歌)」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황산강(黃山江)은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작자인 정포(鄭誧)[1309~1345]가 울주(蔚州)[지금의 울산광역시]에 유배되었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정포는 유배 생활 중에도 태연자약하여 활달한 장부의 기질을 잊지 않고 풍류 생활을 즐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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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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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朴堤上)은 4세기 말 5세기 초반에 활동한 신라 사람으로, 신라의 변경 지대인 양산 지방의 관리(혹은 세력가)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왜·백제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왕자 두 명을 고구려와 왜에 각각 인질로 보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두 아우를 구하고자 하는 눌지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