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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가 개창한 이후 1392년 멸망할 때까지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영월은 궁예(弓裔)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918년 왕건(王建)이 왕위를 찬탈하자, 강릉의 토호(土豪) 김순식(金順式)은 왕건에게 복속을 거부하였다. 그렇다면 영월 지역도 왕건의 영향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순식이 왕건에게 복속하면서 영월 지역은 고려의 영역에 포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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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고씨굴과 고씨 형제의 의병 이야기. 영월 고씨굴은 약 4억 8000만 년 전인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에 퇴적된 석회암이 분포한 지역에 위치한 석회동굴이다. 굴의 길이는 주굴(主窟) 약 950m, 지굴(支窟)은 약 2,438m, 총 연장 약 3,388m인데, 이 중 620m 구간만 공개되고 있다. 굴 내부에 4개의 호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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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강원도 영월 지역의 근현대사는 1876년 개항부터 일제 강점기를 근대, 1945년 8월 15일 일제 강점에서의 해방 이후부터 현대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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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통일신라[676~935]와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부터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 신라는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676년 당나라를 축출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때부터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를 통일신라 시대라 칭한다. 한편 698년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靺鞨族)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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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지역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던 시기의 역사.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되기 전까지인 42~562년까지는 고구려·백제·신라뿐 아니라 가야도 존재하였던 만큼 사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는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 체제로 성장하였으나, 가야는 고대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이런 이유로 사국 시대보다는 삼국 시대가 더 폭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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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뗀석기와 간석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 강원도 영월 지역은 산악지대이면서 남한강 상류에 있는 만큼 산과 물에서 다양한 생활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석기 시대 이미 영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석기 시대는 뗀석기[打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磨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영월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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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문자로 남긴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 선사 시대는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 한국사에서 선사 시대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의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전기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기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후까지를 의미한다. 선사 시대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선사 시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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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사실을 기록한 이후 강원도 영월군의 역사. 인간의 역사는 선사 시대,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원사 시대[protohistory], 역사 시대로 구분된다. 역사 시대는 문자로 쓰여진 기록에 의하여 과거를 알 수 있는 시대를 가리킨다. 영월 지역의 경우 삼국 시대, 후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근대와 현대가 역사 시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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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 철기 문화가 유입되는 단계부터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 우리나라 역사에서 철기 시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시작된다. 철기 시대는 다시 청동기 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후부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원삼국 시대는 선사 시대로부터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데, 청동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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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효자 금사하와 호랑이의 무덤. 의호총(義虎塚)은 효자 금사하와 의로운 호랑이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무덤이다. 조선 시대에 금사하(琴師夏)라는 선비가 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강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장마로 강을 건널 수 없자 울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선비를 등에 태우고 거센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게 하여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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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강원도 영월군을 포함하여 조선 전역을 침략한 일본군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였고, 이튿날 부산진성을 공격하면서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14일 만에 도성을 함락시켰고, 선조는 평안북도 의주군까지 피난하였다. 명군이 참전하여 평양성을 탈환하였지만, 명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후 일본과 강화 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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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는 법흥사를 창건한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는 643년 강원도 영월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흥녕사(法興寺)를 창건하였다. 흥녕사는 징효국사(澄曉國師)에 의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중심 사찰이 되었고, 1902년에 법흥사(法興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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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의 건국부터 1876년 개항까지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영월의 행정구역은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1399년(정종 원년) 영월은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고, 원주진(原州鎭)에 소속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때 지군사(知郡事)가 군수(郡守)로 바뀌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魯山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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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에 있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 호랑이로 인한 재앙인 호환(虎患), 호랑이 입에 들어간다는 뜻의 호람(虎嚂)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전근대 시대 호랑이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컸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중앙에 착호갑사(捉虎甲士), 지방에 착호인(捉虎人)을 두어 호랑이가 출몰하면 포획하도록 하였다.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람을 위하여 호식장(虎食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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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던 흥녕선원에서 활동한 승려. 징효국사(澄曉國師)[826~900]는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흥녕선원(興寧禪院)을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중심 사찰로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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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제작·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제작하기 전까지의 역사.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1500년경 사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간단한 소형 제품을 만든 동검(銅劍) 이전 시기, 단검(短劍) 등의 각종 무기와 공구 등을 본격적으로 제작·사용하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동검 이전 시기는 한국 청동기 시대의 상한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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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도기와 토기를 굽던 가마터. 토교리 사기도요지(土橋里砂器陶窯址)는 17~18세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368.5m의 야산 경사면에 있었는데 현재는 밭으로 변하였다. 밭 가장자리로 무덤 형태의 사기 파편 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굽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기편도 많이 발견되었다. 토교리 가마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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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가 정립하였던 시대의 역사. 신라는 하대[선덕왕~경순왕대](780~935)에 이르러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거듭되는 실정으로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지방에서 독립한 세력들은 점차 호족(豪族)이 되어 갔다. 이 중에서도 견훤(甄萱)과 궁예(弓裔)는 국가를 수립하여 신라에 정면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