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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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侃 |
영어음역 | Gim Gan |
이칭/별칭 | 사행(士行),죽봉(竹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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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
성별 | 남 |
생년 | 1653년(효종 4) |
몰년 | 1735년(영조 11) |
본관 | 풍산 |
대표관직 | 장례원판결사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행(士行), 호는 죽봉(竹峯). 아버지는 김필신(金弼臣),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통덕랑 이천표(李天標)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났으며, 고산(孤山) 이유장(李惟樟)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01년 김장생(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배향하는 데 반대하는 소를 올린 것으로 인하여 2년 동안 광양에 유배되었다. 1710년 58세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듬해 황산찰방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임지를 떠난 뒤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이수익(李壽益)의 천거로 사재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예조좌랑, 예조정랑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유승현(柳升鉉)을 장수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가 난리가 평정되어 파하였다. 그 뒤 사예, 병조정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732년 통정대부에 오르고 호군(護軍)에 임명되었다가 바로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다. 평소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밀암(密庵) 이재(李栽),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동애(東厓) 이협(李浹), 창포(滄浦) 나학천(羅學川), 북계(北溪) 안연석(安鍊石) 등과 교우를 맺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죽봉집(竹峯集)』 4권 2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율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 이진동(李鎭東) 등이 이인좌의 난에 공을 세우고 포상 받지 못한 31인의 치적을 상소할 때에 제일 앞에 놓였다. 낙연서원(洛淵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