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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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茳 |
영어음역 | Yi Gang |
이칭/별칭 | 형보(馨甫),금학당(琴鶴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종석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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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573년 |
몰년 | 1623년 |
본관 | 영천 |
대표관직 | 정언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형보(馨甫), 호는 금학당(琴鶴堂).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아버지는 현감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응건(南應乾)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강(李茳)은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이덕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수학하였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었고, 1615년(광해군 7) 찰방으로서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는데 당시 동생 이로(李露), 이모(李慕)도 함께 합격하였다. 같은 해 낭리(郎吏)로서 사관에 추천되었다.
1616년 대교, 봉교, 부교리 등을 거쳐 1617년에 사서, 정언이 되었다. 그 뒤 수찬이 되어서는 이이첨(李爾瞻), 허균(許筠), 김감(金嵌) 등과 어울려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에 방조하는 구실을 하였다. 그 결과 1618년 허균의 역모에 연루되어 파직되었고 이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인조 즉위 뒤 처형되었다.
이강은 당시 드물게 보는 명경현사(明經賢士)로서 재주가 있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영남 사림들은 이강이 대북 정권의 지원을 받아 영남우도(嶺南右道)의 정인홍(鄭仁弘)이 회퇴변척(晦退辨斥) 사건을 일으켰을 때 영남좌도(嶺南左道) 유생들의 상소를 막았던 조목(趙穆)을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배향한 것을 비롯하여 영남좌도의 유생을 북인 정권에 끌어들이려고 회유한 점에 대해 가혹한 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