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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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極模 |
영어음역 | Yi Geukm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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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 |
성별 | 남 |
생년 | 1898년 |
몰년 | 1942년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8년(고종 35) 지금의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와룡면 서지리 195번지로 이주하여 살다가 1942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극모는 1919년 예안면의 3·1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의 만세 시위는 면장 신상면(申相冕)의 발기에 의하여 이시교·이남호·이광호·이호명·신응두·신동희 등이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시위 계획을 논의하였고, 조수인을 필두로 한 유림 세력과 예안 만촌교회(지금의 예안교회)의 장로와 교인들이 합세한 대규모 시위였다. 이극모는 3월 17일 예안장날에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시위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돌과 기와를 던져 주재소의 유리창을 깨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던 시위 군중 가운데 이극모를 비롯한 25명의 참가자들은 안동에서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극모는 1919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