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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신기가 담긴 애일당 현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443
한자 鶴-神氣-愛日堂懸板
영어의미역 Aeildang Hanging Board Which is Included in Spirit of the Crane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
주요 등장인물 농암선생|제자|명필가
관련지명 애일당 지도보기 |중국
모티프 유형 글씨를 써 준 중국 명필가|학의 신기가 서려 있는 애일당 현판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애일당 현판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조선 중종(中宗, 1488~1544) 때의 문신으로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다.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만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시가를 읊조리며 생활하였다. 작품에 「어부사(漁夫詞)」·「춘면곡(春眠曲)」·「효빈가(效嚬歌)」가 있고, 저서로는 『농암집』 등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일조각에서 출간한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1983년 한국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설화의 유형적 연구』와 1984년 안동군에서 출간한 『내고향 전통가꾸기』, 그리고 1991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과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옛날에 농암선생이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애일당을 짓고 현판을 걸기 위하여 중국에 있는 명필가에게 글씨를 받으려고 제자를 보냈다. 고생 고생하여 반 년 만에 중국에 도착한 제자는 명필가를 찾아 또 한 달이 넘도록 헤매고 다녔다.

한참을 다니다가 드디어 깊은 산중에 있는 명필가를 발견한 제자는 조선국의 농암선생 이야기를 하면서 애일당 현판 글씨를 청하였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의 글씨를 받으려고 그 머나먼 길을 왔으니 내 대번에 글씨를 써 주도록 하지.” 명필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산에서 꺾어 온 칡 줄기에 먹을 듬뿍 찍더니 단숨에 ‘애일당’ 석 자를 써 주었다.

좋은 붓에 근사한 먹을 갈아서 정성스레 써 줄 것을 기대하였던 제자는 명필가의 글씨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건 명필이 아니라 장난으로 휘갈긴 글씨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자는 다시 써 줄 수 없느냐고 재차 청하였다. 그러자 명필가는 “왜, 이 글씨가 마음에 안 드시오?” 하더니 글씨를 쓴 종이를 두어 번 흔들었다. 그러자 글자가 마구 꿈틀거리더니 세 마리의 새하얀 학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제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써 줄 것을 간청하였다. 제자가 며칠 동안 간절히 청하였지만 명필가는 끝내 글씨를 써 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가서 하는 말이 “이 아래에 내려가면 나보다 더 낫게 쓰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자는 할 수 없이 명필가가 말한 대로 산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명필가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명필가가 하는 말이 “산중에 계신 분이 우리 스승님인데 그곳을 찾아가 보시오” 하였다.

제자가 산 위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하니 그 명필가는 “중국에서도 남에게 글씨를 주지 않는 분이신데. 특별히 조선국에서 왔다 하여 써 준 것 같은데……”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내 글씨는 스승 글씨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오. 학 세 마리는 못 되어도 한 마리 정도는 될 것이오” 하며 붓을 들어 정중히 글씨를 써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글씨를 받아 가지고 돌아온 제자는 농암선생 볼 낯이 없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다가 농암선생이 세상을 뜬 후에 사실을 밝혔다.

그러던 어느 해 큰 홍수가 나서 애일당이 쓸려 갔는데, 현판도 같이 떠내려가서 영영 잃어버렸다며 포기하고 있었다. 얼마 후 한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고 강에 나갔는데, 무언가 금빛 찬란한 것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건져 보니 그게 바로 애일당 현판이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학의 신기가 담긴 애일당 현판」의 주요 모티프는 ‘글씨를 써 준 중국 명필가’와 ‘학의 신기가 서려 있는 애일당 현판’이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복합된 구조로서, 애일당 현판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간 제자의 가벼운 눈으로 인해 학이 세 마리 날아갈 정도의 좋은 현판을 아쉽게 놓쳐 버렸다는 설화와 애일당 현판에 서기가 어려 있어 홍수로 유실되어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설화가 합쳐진 것이다. 각종 명당 이야기에서도 사용되는 어리석은 판단 모티프와 서기 어린 현판이라는 모티프가 결합한 구조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쉽게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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