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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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濟 最高- 傑作品, 金銅大香爐 |
영어공식명칭 | The Gilt-bronze Incense Burner of Baekje |
이칭/별칭 | 백제금동대향로,용봉봉래산향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라선정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향을 피우는 도구.
[개설]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부여 왕릉원과 사비 외곽성 동성벽 사이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인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앞발을 높게 올린 용 한 마리가 연꽃송이의 밑부분을 입으로 물고 하늘로 올라 갈 듯 고개를 쳐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연꽃송이의 중앙이 아래와 위로 각각 분리되어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루고 있다. 백제 왕이 주관한 제례에 사용된 특별한 용기로 보인다.
[국보의 발견, 그 역사의 현장]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사지에 출토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부여 왕릉원 주차장 부지 선정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기와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그 후 11차의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것이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부여 능산리 사지의 창건 시기와 발원자, 건립 배경 등은 목탑지에서 발견된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에 기록된 명문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명문의 내용은 “백제 창왕(昌王) 13년[567년]인 정해년(丁亥年)에 (왕의) 누이인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창’은 백제 25대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의 휘이고, 재위 13년인 정해년은 567년을 말하며 위덕왕의 누이, 즉 성왕의 맏공주가 원주(願主)가 되어 왕실의 사찰을 건립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부여 능산리 사지는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사망한 성왕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위덕왕은 원로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나섰다가 실패하였다. 이에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고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하여 사원을 조성하였고, 제사나 법회를 지낼 때 백제 금동대향로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사지의 서회랑지 북쪽에 있는 공방지 1로 명명한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남북 15.72m, 동서 5.16m로 중앙실과 남실, 북실로 나누어져 있는 공방지 1에서는 백제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다양한 누금 장식품, 투조 장식, 금은 장식, 채색 칠판, 유리 구슬, 옥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중앙실 연도 남쪽 수혈 내부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몸체와 뚜껑이 분리된 상태로 출토되어 처음부터 뚜껑과 몸체를 분리해서 비스듬하게 수조에 집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놓여 있던 부분은 각종 금속 조각과 토기 조각, 기와 조각 등으로 충전되어 있었고, 특히 평평한 기와가 층층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일부러 백제 금동대향로를 묻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제 금동대향로 뚜껑의 여러 부위에 그을음으로 추정되는 검은 물질이 묻어 있었고, 바닥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직물의 흔적이 붙어 있어, 백제 금동대향로를 퇴장(退藏)할 때 비단과 같은 직물로 싸서 수조 안에 숨기듯 매장한 것으로 여긴다. 갑작스런 위기 상황을 맞아 나중에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면서 급하게 숨겨둔 것이 오랜 기간 땅 속에 고이 묻혀 있었고, 13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백제 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백제 역사의 한 장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산악의 세계, 뚜껑[개(蓋)]]
뚜껑은 정상부에 날개를 활짝 핀 새 한 마리가 동그란 보주(寶珠)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그 아래로 5명의 악사와 다섯 마리의 새가 있고, 그 아래 뱀을 물고 있는 짐승 등 상상의 동물과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코끼리·원숭이·멧돼지 등 모두 42마리의 짐승[먹이로 잡혀 먹히는 두 마리와 어미 뒤에 있는 새끼도 포함], 5명의 악사를 비롯한 17명의 인물이 74곳의 봉우리와 그 사이사이에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 밖에도 6종류의 식물, 20군데의 바위, 산 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는 폭포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인물과 짐승들은 대게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전개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한편 뚜껑에 뚫린 연기 구멍은 새의 가슴 윗부분에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뚫은 2개의 작은 구멍과 함께 다섯 마리의 새가 앉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 다섯 악사 앞에 솟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를 둥글게 돌아가며 배치하였는데, 봉황의 가슴에 뚫린 2개를 제외하고는 솟아오른 산악의 뒤편에 가려져 정면에서는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5명의 악사는 정면을 바라보는 봉황 아래에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를 기준으로 그 왼쪽으로 종적, 배소, 거문고, 북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현악기 2개, 관악기 2개, 타악기 하나로 구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선율을 구성하며 연주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악사는 한쪽으로 다리를 모으거나 무릎을 꿇는 자세, 허리를 쭉 펴고 바르게 앉는 자세 등 악기를 연주하기 편한 자세를 자유롭게 취하고 있다. 또한 저고리와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그 위에 포(袍)를 착용하였다. 허리띠는 한 번 또는 두 번 둘러 매거나 매지 않는 등 자유롭게 착용하였으며, 여밈 역시 직령교임(直領校衽)이나 직령합임(直領合衽) 등 자유로운 형태이다. 이는 자세나 복장이 규격화된 형식이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로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고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연꽃의 세계, 몸체[노신(爐身)]]
백제 금동대향로의 노신에 해당하는 몸체는 8엽의 연꽃잎이 반전하는 3단으로 돌아가며 장식된다. 연꽃잎의 끝부분은 짧고 가느다란 실선이 음각되어 있다. 연꽃잎과 연꽃잎 사이, 연꽃잎 위에는 새와 물고기, 네 발 달린 짐승 등 동물 25마리와 2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뚜껑은 사방으로 10여 개의 봉우리들이 중첩된 형상인 데 반하여, 몸체는 8엽의 연꽃잎이 겹쳐 올라가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어 구성의 차이를 보인다.
받침의 용이 물고 있는 기둥 바로 위 첫째 단의 연꽃잎에는 내부에 타원 모양으로 2줄이 음각되어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둘째 단에는 파충류로 추정되는 동물과 날개 달린 네 발 짐승, 신수를 타고 있는 선인(仙人) 등이 연꽃잎 안에 조각되어 있다. 셋째 단에는 주로 새가 묘사되었는데, 11마리의 새와 날개 달린 물고 날개 달린 네 발 짐승, 수렵을 하고 있는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몸체에 표현된 25마리 동물 중 12마리가 새에 해당한다. 특히 몸체뿐만 아니라 뚜껑에도 새의 비중이 높은 것은 영혼의 전달자로서 새의 상징성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하늘과 인간을 잇다, 받침[대좌(臺座)]]
백제 금동대향로의 받침은 마치 용트림을 하면서 날아오르려는 용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입으로 몸체인 연꽃봉오리를 받치고 있다. 용의 입안에 물린 짧은 기둥은 향로 몸체의 하부 받침과 연결시켰고, 몸체의 둥근 안쪽 면으로 약간 솟아 올라 끝에 별도의 고리를 끼워 고정시켰다. 받침의 우측면을 살펴보면 용이 한쪽 발을 치켜들고 있으며, 세 다리와 꼬리로 둥글고 안정된 원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승천하는 듯한 역동적인 자세를 취한 용의 굴곡진 몸체의 뒤와 그리고 몸체의 뒤에서 뻗어 나온 구름 모양의 갈기를 투각 장식하였다. 용의 정수리에서 솟아오른 뿔은 두 갈래로 목 뒤까지 길게 뻗어 있고 길게 찢어진 입안으로 날카로운 이까지 세밀히 묘사되었다.
[향로에 담겨진 세상]
백제 금동대향로는 중첩된 산 위에 봉황이 앉아 있는 형태의 뚜껑과 연꽃 장식의 몸체, 용모양의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 61.8㎝의 크기로 뚜껑에 해당하는 상부는 높이 28.8㎝, 몸체와 받침에 해당하는 하부는 높이 34.5㎝이다. 전체 무게는 11.85㎏이며, 상부 무게 4.7㎏, 하부 무게 7.15㎏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전체적인 형태는 바닥에서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용이 용트림하여 뿜는 기운을 받아 그 위에 연꽃이 피어나고, 다시 그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산봉우리를 배치하여 용이 몸체와 뚜껑을 입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악의 정상에는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뚜껑에 표현된 산악의 세계는 중국 한대(漢代) 박산향로 뚜껑에 표현된 야생성과 수렵의 세계를 넘어 신선의 세계가 중심적인 주제가 된다. 그러한 신산(神山)에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괴수를 비롯한 상상의 동물이 살고 있는데, 그러한 세계의 주인은 인물들이다. 인물들은 신선이 되기 위하여 수련하는 도사들로서 신성한 산악에 거주하며 약초를 먹거나 명상, 목욕재계를 하면서 신선이 되기를 꿈꾼다. 결국 백제 금동대향로 뚜껑에 표현된 산악은 불사에 초점이 맞춰진 신산 세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몸체는 연꽃으로 상징되는 불교적 세계가 형상화되었다. 본래 연꽃은 재생과 부활을 의미한다. 연꽃은 불교가 보급되기 전부터 재생이나 부활, 창조의 상징으로 활용되다가 불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불교의 상징처럼 널리 사용되었다. 불교 미술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청정한 꽃을 피우는 자연의 이치로부터 깨달음과 극락왕생을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백제 금동대향로 몸체에 표현된 연꽃은 불교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재생이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연꽃과 불사와 영원이라는 신산의 모티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된다.
받침으로 사용된 용과 뚜껑 꼭대기에 자리한 봉황은 본래 하늘의 사자로서, 승선할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상서로운 새이다. 평화와 조화, 상서로움, 천하의 태평을 상징하고 있다. 봉황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오악사를 배치함으로써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산봉우리에 앉아 있는 악사의 복장이나 연주 자세, 연주하는 악기 등을 고려하여 유교의 의례를 위한 악기 연주라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차원으로 볼 개연성도 충분하다. 특히 용과 봉황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용은 음(陰)을 대표하고, 봉황은 양(陽)을 대표하는 신수인데, 둘이 짝을 이루고 있어 음양사상(陰陽思想)과 연결된다. 또 용과 봉황이 상징하는 지하와 천상의 세계, 여기에 다섯 봉우리 사이에 앉아 있는 오악사를 포함하면 음양오행 사상의 구현으로 보인다. 용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도, 모습을 보이기도 숨기기도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인 데 반하여, 봉황은 자연과의 조화, 우주 질서와의 조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대비가 나타난다.
백제 금동대향로에 나타난 도상은 보물로 지정된 ‘부여 외리 문양전(文樣塼) 일괄’에 보이는 문양과 매우 유사하다. 문양전에 보이는 구름이 흐르는 하늘, 날아다니는 용, 봉황, 연꽃, 도깨비 등의 도상은 도의 깨달음이나 꿈과 현실의 동일성, 자연 속에 동화된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가 사상과 관련된다. 그리고 문양전의 부조로 표현된 문양과 기법들이 백제 금동대향로에서 입체화된 형태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사상적으로도 연관성이 깊다고 할 수 있고, 특히 백제 금동대향로의 제작국 문제에서도 백제 제작설을 보강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제의 르네상스, 백제금동대향로]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중국의 박산향로 형식을 수용하여 백제적으로 변형한 독창적인 예술품이다. 백제 금동대향로에 보이는 완벽한 비례미와 파격적인 디자인은 백제인의 예술성과 사상적 성취를 유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충청남도 공주시의 무령왕릉이나 부여 왕흥사지,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뛰어난 금속 공예품들은 백제 장인의 뛰어난 기술 수준과 안목을 잘 보여 주며 백제 금동대향로가 만들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문양은 단순히 장식만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음양오행설이나 도교 사상, 불교적인 세계관이 아무런 충돌 없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음과 양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 불교적 상징인 연꽃, 도교적 이상향인 산악과 다섯 명의 악사 등은 백제의 정신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이 향유하였던 문화와 종교 사상, 그리고 신화 세계가 응축된 백제 사비기 문화 예술의 정수이자 신품(神品)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