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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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習 |
영어공식명칭 | Kim Siseup |
이칭/별칭 | 열경(悅卿),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설잠(雪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출생 시기/일시 | 1435년 - 김시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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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93년 - 김시습 사망 |
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김시습 교서관에서 문집 간행 |
추모 시기/일시 | 1621년 - 김시습 청일사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70년 - 김시습 매월사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85년 - 김시습 창절서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04년 - 김시습 서산서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84년 - 김시습 청간 추시 |
사당|배향지 | 청일사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 190 |
사당|배향지 | 매월사 - 경상북도 경주시 |
사당|배향지 | 창절서원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
사당|배향지 | 서산서원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원북리 537-2]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강릉 |
[정의]
조선 전기 부여 지역에 은거하였던 문인.
[가계]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사 장씨(仙槎 張氏)이다.
[활동 사항]
김시습은 다섯 살 때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세종은 시문(詩文)을 시험하고는 학업이 성취되면 장차 중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시습은 단종이 왕위에 오른 뒤 3년 만에 쫓겨나자 서책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시대 상황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면서 명승지에 정착하였고, 예전의 도읍지에서는 슬픈 노래를 불렀다. 특히 양주의 수락산(水落山), 춘천의 사탄향(史呑鄕)을 비롯하여 설악산과 경주의 금오산(金鰲山) 등을 즐겨 찾았다. 늦게 혼인한 아내 안씨(安氏)가 사망하자 승려가 되어 강릉, 양양, 설악 등에 머물렀고, 1493년(성종 24)에는 병이 들어 부여 소속의 홍산현 무량사(無量寺)에서 생을 마쳤다. 유해는 불교식으로 다비(茶毗)하여 무량사에 부도(浮圖)로 안치되었다. 생전에 자신이 늙었을 때와 젊었을 때 두 가지 화상(畵像)을 그려 놓고 찬(贊)을 스스로 지었다.
[학문과 저술]
김시습은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 등을 공부하여 유가의 본지를 유지하였다. 유가 이외에도 불교나 도가 등의 제자백가서는 배우지 않고서도 섭렵하였다. 고금의 문적에 정통하여 다른 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저서로는 『매월당집(梅月堂集)』, 『금오신화(金鰲新話)』, 『유관서록(遊關西錄)』, 『유관동록(遊關東錄)』, 『유호남록(遊湖南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시습의 문집은 1583년(선조 16) 왕명으로 교서관에서 간행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심종직(沈宗直)이 홍산현의 수령이 되어 화상을 봉안하는 각(閣)을 건립하였다. 이후 ‘청풍각(淸風閣)‘으로 불렸으며, 청풍각을 포함하여 사당으로 조성되어 ‘절의사(節義祠)’, ‘동봉사(東峯祠)’ 등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에는 청일사(淸逸祠)로 불리고 있다. 한때는 청일서원(淸逸書院)이라고도 하였다. 1670년 경주의 매월사(梅月祠), 1685년 영월의 창절서원(彰節書院), 1704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1784년(정조 8) 청간(淸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