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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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璡 |
영어공식명칭 | Hwang Jin |
이칭/별칭 | 군미(君美),아술당(蛾述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효자.
[가계]
황진(黃璡)[1634~1666]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아술당(蛾述堂)이다. 할아버지는 황신(黃愼)이고, 아버지는 의주부윤 황일호(黃一皓)[1588~1641]이다. 첫 번째 부인은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 宋氏)이다. 아들은 황하신(黃夏臣)·황하민(黃夏民)·황하필(黃夏弼)이다.
[활동 사항]
황진은 1634년(인조 12)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황일호가 의주부윤으로 재직 시 명나라와 내통다는 역관 정명수(鄭命壽) 등의 거짓 고변으로 청나라 사신에게 체포되어 1641년 11월 9일에 죽임을 당하자, 황진은 칼을 움켜쥐고 원수를 갚게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황진은 이후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학문에 매진하면서도 홀로 된 어머니를 효성으로 받들어 극진히 봉양하다가 1666년(현종 7)에 사망하였는데, 황진의 행적은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창원황씨대동보(昌原黃氏大同譜)』 등에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황진은 1688년(숙종 14)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1816년(순종 16) 효자로 정려되었다. 황진의 효자각은 6세손인 황호성(黃浩性)의 사저에 창건하였다가 1867년(고종 4) 지금의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58에 있는 황일호 신도비 옆으로 이건하였다. 황진의 효자각은 부여 황일호 신도비 및 황진 효자각이라는 명칭으로 2001년 1월 3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5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