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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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勞動夜學校 |
영어의미역 | Changwon Labor Night School Movement |
이칭/별칭 | 창원노동야학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노동 야학.
[설립목적]
창원노동야학교는 창원 지역에서 보통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창원청년단의 문화부 사업의 일환으로 1920년에 설립되었다. 1925년 경비 부족으로 운영난을 겪자 창원청년회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이 경비를 모을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에도 노동야학은 계속 재정난에 시달렸다. 1926년 창원의 유지인 전병환(全秉煥)이 3백원의 동정금을 내놓아 폐교의 위기에서 벗어나 150명 정도의 무산아동이 취학할 수 있게 되었다.
1929년에는 부산부립병원의 의사인 정규용(鄭圭用), 1930년에는 창원군 소답리의 김정헌(金禎憲) 등의 기부로 야학이 문을 닫지 않고 아동들을 계속 교육시킬 수 있었다. 1925년 이 후 야학에 대한 일제의 폐쇄와 탄압이 본격화되는데 1930년 말 창원노동야학교도 교사가 불온하다 하여 폐지 명령을 받았다.
[활동사항]
1930년 3월 24일 창원노동야학교에서 제1회 학예회를 개최하여 많은 학부형과 노동자, 농민 및 일반인들이 참석하였다. 1925년 당시 창원노동야학교의 교원으로는 학감 김한용(金漢龍)을 비롯해 주영견(朱寧見)·김성호(金聖鎬)·추인조(秋仁祚)·강익수(姜益守) 등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노동야학은 청년단체의 핵심 사업 중의 하나로 창원 지역 노동자·농민의 자제들을 위한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일제에 의해 폐쇄되기 전까지 지역민들의 도움을 받아 아동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