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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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榮坤 |
영어음역 | Gim Yeonggon |
이칭/별칭 | 창복(昌福),죽포(竹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경혜 |
성격 | 독립운동가|교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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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서상동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
몰년 | 1947년 |
대표경력 | 창원면장 |
[정의]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영곤은 현 경상남도 창원시 서상동 출신으로 7세부터 17세까지 창원읍 북동 사숙(私熟)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8세부터 22세까지는 창원부 창흥사립보통학교에서 보통과 및 측량과를 공부하였다. 이 후 25세부터 26세까지는 창원사설한습회(昌原私設韓習會)를 개최하고 향토 청소년을 지도하였다. 29세 때인 1919년 3·1운동 때에는 창원을 중심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후 청년운동을 하다가 교육계에 투신, 마산창신학교에서 5년간 후배 양성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부단한 감시로 인해 교육계에서 나와 농사에 종사하면서 농촌운동에 전념하였다. 농가의 부업을 권장하는 한편, 솔선하여 양계·양잠·양모·목양 등을 실천하여 효과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촌협동조합운동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창원면장에 취임하여 창원면의 행정에 헌신하였다. 이 후 병을 얻어 1946년 9월 10일 창원면장직에서 퇴직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영곤의 장례는 창원 동정리에서 창원면민장(昌原面民葬)으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