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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03
한자 馬山浦事件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9년 5월 1일 - 마산포 개항
저술 시기/일시 1900년 3월연표보기~1901년 11월연표보기
소장처 경남 대학교 기록물 보관 센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성격 문서철
편자 일본 외무성|해군성
표제 馬山浦事件

[정의]

일제 강점기 일제가 외교부와 해군성 등의 주도 하에 마산만 지역에 대한 정세를 조사·보고한 극비 문서를 모은 문서철.

[편찬/간행 경위]

1899년 조선은 마산포를 비롯해 세 곳에 개항장을 설치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일본은 러시아와 개항장으로 지정된 마산 일대, 즉 마산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이곳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천혜의 요항이었던 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진출과 함께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에 양국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정찰과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는데,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 문서철도 그러한 과정에서 생산되었다.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은 1900년 3월 하순부터 동 1901년 11월 16일까지 마산과 마산포 일대에 관한 동정을 일본 해군성의 주도 하에서 한국에 주재하고 있던 마산 영사, 또는 한국 영사 등이 당지의 정세와 근황 등을 파악한 후 본국의 해군 대신이나 외무 대신 등에게 보낸 전신과 보고서 등을 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서철의 곳곳에는 ‘극비(極秘)’라는 문서인(文書印)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정보 수집 과정에서 작성된 극비 문서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서지적 상황]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의 원본은 미국 국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인데, 경남 대학교의 기록물 보관 센터에서 확보하였다.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은 문서가 처음 생산될 때의 양식 그대로 묶여져 있다. 문서철의 맨 앞표지는 영문으로 작성되어 있으며, 미국 국회 도서관 소장 목록 번호인 것으로 짐작되는 ‘(Ⅱ) NT(C) No. 178’라는 표기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5항의 목차가 적혀 있다.

1. MAZAMPŌ(MASAMPO) JIHEN

MEIJI 33NEN 3GATSU-34NEN 11GAUSU

(SINKOKU JIHEN. SAICHŪ NI OKERU ROKOKU NO MAZAMPO YOKYŪ)

2. NAVY

3. MARCH. 1900 - NOVEMBER. 1901

4. KAIGUN DAIJIN KAMBŌ FILE

5. NA 11015

위의 목록은 원래 일본의 해군성이나 외무성에 보존되어 있던 것을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국이 자국으로 가져가 재분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페이지에는 애초 일본 해군성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지가 나온다. 거기에는 본 문건의 작성 주체임을 보여주는 ‘해군 대신 관방(海軍大臣 官房)’ 표기와 함께 ‘馬山浦 事件 自明治卅三年 三月 至同 卅四年 十一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따라서 이 문서철의 이름을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으로 명명하였다. 문서는 대부분 필기체로 기록되어 있어 판독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며, 전체 분량은 모두 363매에 달한다.

[의의와 평가]

이 문서철에서 중요한 부분은 러시아의 군사 시설, 마산포와 인근 지역의 지형도, 마산포 시찰 보고, 마산포 개항과 함께 전행된 마산포 지역의 조계설치에 따른 토지 경매 과정 등과 관련된 기록이다. 특히 본 문서철에는 마산포와 그 인근에 관한 지형도가 23매 포함되어 있어, 당시 일본인들과 러시아인들이 특별히 중요시하였던 곳이 어디였는지를 대략적으로나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지도들은 마산포 주위의 인근 지역과 그 해로 등을 정밀하게 조사하였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와 일본 모두 마산포의 서쪽에 있는 남포(濫浦)나 명주만(明珠灣) 등의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관심과 조사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 측도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였다는 사실을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 문서철이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마산포 사건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진동[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과 구산면[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와 그리고 그 인근 해안을 차지하기 위해 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간 연구에서는 양국 사이의 갈등과 경쟁을 주로 마산포 내의 율구미 쪽으로 한정시켜 온 점에 비추어 볼 때,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 문서철은 그것이 한정적인 연구였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곳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우선 지정학적으로 대한해협을 제압하거나 일본과 교통하는데 마산만 보다 매우 유리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산포 사건(馬山浦 事件)』 문서철은 종래 마산만을 중심으로 연구된 러일 사이의 분쟁을 좀 더 넓은 지역에 걸쳐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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