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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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형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교육가·민족 운동가.
[활동 사항]
이승규(李承奎)[1860~1922]는 경남 마산의 유지로 1906년 창신 학교(昌信學校)의 전신인 독서숙(讀書塾)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그는 호주 선교 본부의 승낙을 얻어 1913년 4월 5일 의신 여학교(義信女學校)를 설립하고 창신 학교 유지회를 조직하였으며, 1914년 5월 7일 추산정에서 민족 자주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마산 최초의 시국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19년 2월 23일 서울의 대한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마산에 내려온 이갑성을 만나 마산의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창신 학교 교사 임학찬과 기독교 장로 이상소 등과 함께 3월 21일의 거사를 추진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구마산(舊馬山) 장날 3천여 명의 시위 군중은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에 일본 경찰과 일본군 헌병 포병대대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이어 3월 26일 장날 독립 운동의 불길은 다시 타올랐고, 일경과 헌병포병대대는 또 다시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진압하여 50여 명의 시위 군중을 체포하였다. 이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1년 국내외 독립 운동 단체는 한국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서 보장받고자 지도자들의 서명을 받고 서한을 워싱턴 회의에 보내기로 하였는데, 이때 마산 지역의 대표로 서명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