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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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郞 |
이칭/별칭 | 김재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활동한 무용가.
[활동 사항]
김해랑(金海郞)[1915~1969]의 본명은 김재우(金在宇)이다. 6·25 전쟁 직후에 한국무용 예술인 협회[현 한국 무용 협회 전신]를 창설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마산에 무용소를 개설하여 한국 무용계의 대들보 노릇을 하며 평생을 후진 양성에 이바지 했다. 어릴 때부터 춤추기를 좋아하여 부산 동래 고보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야마구치 중학과 일본 예술 대학에서 수학하고 당시 현대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시이 바쿠[石井 漠], 다카다 세이코 등에게서 현대 무용을 배웠다. 그리고 당시 이시이 바쿠 무용소 문하생으로 같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에게서 춤을 배웠다.
1939년에 귀국하여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조선 일보 주최 전국 무용 경연대회에서 고전 무용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해 무용 연구소를 설립하여 자신의 연습 공간을 확보하고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전에는 마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6·25 전쟁 직전까지 마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무용인, 음악인들과 함께 유엔군 위문단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상경하여 한국 무용계의 중흥에 이바지하였다. 1953년에는 현대 무용, 발레 계열의 한국 무용가 협회와 협의하여 한국 무용 예술인 협회를 창설하였고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되었다. 문예 중앙 위원, 한국 무용 예술인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서울 음대, 이화 여자 대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기도 했다.
1956년 11월 지금의 오동동 고려 호텔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던 명태 곡간자리에 김해랑 무용 연구소를 설치하였고 1960년대 초 추산동 대자 유치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이때부터 마산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다.
1964년에는 한국 무용 협회 경남 지부를 창설하였고, 그해 8월에는 광복 19주년 및 한국 무용 협회 경남 지부 결성 기념 합동 무용 예술제를 마산 강남 극장에서 개최하였다.
[묘소]
묘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부산 시립 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지역 무용 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1962년 제1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66년 제3회 한국 무용 협회 제정 무용 공로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