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8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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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수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 이원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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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9년 - 이원길 사망 |
출생지 | 이원길 출생지 - 경상남도 사천시 |
활동지 | 이원길 활동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 1가 7 진일 철공장 |
성격 | 기업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마산 상공 회의소 회장 |
[정의]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개설]
국내 기계 공업의 선구자. 8·15 해방 이전에 소규모 주물 공장으로 출발 1950년대 후반 육상용 디젤과 해상용 디젤기관을 대규모 생산 영세했던 기계공업을 궤도에 올렸던 기업인이다.
일제 후반, 일본의 한반도의 공업 중 규모가 기계공업은 대륙 진출을 위해 북한 지역에 집중되었고, 남한 지역은 농업과 상대적으로 영세한 경공업이 있었을 뿐이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의 공업은 거의 불모지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일제 때 시작한 진일 공업사는 그러한 면에서 기술과 판로를 갖춘 몇 안 되는 기업이었다. 이원길은 이러한 면에서 대한민국 기계 공업의 선구자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활동 사항]
이원길(李元吉)[1910~1989]은 경상남도 사천에서 출생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기계 공업 기술 습득한 후 귀국하여 1936년 1월 마산 해운동에서 소규모 주물 공장인 진일 기계 공업사를 설립하였다. 1943년 조선 총독부의 기업 통제령에 의해 군소 철공업의 통합으로 소화 철공주식회사로 개편되어 운영하다 해방 이후 1946년 10월 마산시 월남동 1가 7에 기존 시설을 이전 종업원 수 10인 미만의 영세 규모로 진일 철공장으로 재출발하였다. 6·25 전쟁 이후 여러 소규모 공장들이 있었으나 진일 기계 공업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다져온 기술과 판로가 앞서 있어 단기간에 지역 최대 규모의 철공장으로 성장하였다.
일제 후반, 일본의 한반도의 공업 중 규모가 기계공업은 대륙 진출을 위해 북한 지역에 집중되었고, 남한 지역은 농업과 상대적으로 영세한 경공업이 있었을 뿐이었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의 공업은 거의 불모지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일제 때 시작한 진일 공업사는 그러한 면에서 기술과 판로를 갖춘 몇 안되는 기업이었다.
1957년 내자 1억 8만 환, IAC 자금 42만 5000달러 투자하여 주물, 단조, 공작, 조립 등 공장과 창고를 개축하고, 시설 장비로서 공작 기계 공구 중단조 운반 설비 검사 설비를 설치하였다. 이후 육상용과 해상용 디젤 기관 각 2만대씩 연간 총 4만대의 디젤 기관을 생산하여 서울을 비롯 전국 20개의 판매 대리점을 확보하였다.
마산 상공 회의소 회장, 진일 기계 훈련소, 진일 장학 재단 이사장, 한국 농기구 협동조합 이사장, 한국 조선 공업 협동조합장, 한국 기계 협동조합장, 마산 지역 개발 위원장, 민주 공화당 중앙 위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3년 제2회 전국 국산품 전시회 진보상, 1964년 대한 상공 회의소의 모범 상공인 포창을 받았으며, 1965년 산업 경제 신문사 주최 전국 상품 전시회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