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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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州南院樓記 |
이칭/별칭 | 남원루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문철영 |
성격 | 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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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호문 |
[정의]
강호문이 지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 있는 태조 왕건의 유적인 고정과 왕자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글.
[개설]
강호문(康好文) 찬으로 되어 있으며, 1478년(성종 9) 편찬된 『동문선(東文選)』과 1852년(철종 3)에 편찬된 충청도 천안군[지금의 천안시] 읍지인 『영성지』에 전하고 있다.
[저자]
저자는 강호문(康好文)으로 생몰년은 미상이고, 자는 자야(子野), 호는 매계(梅溪)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시문에 능했으며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이르렀다.
[구성/내용]
『영주 남원루기』는 영주[천안의 고려 시대 이름] 남쪽에 남원루의 건립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영주 남원루기』에 보이는 남원루의 건립 과정을 보면, 영주는 천안의 고려 시대 지명으로 본래 이 지역 남쪽에 원(院)이 있었는데,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 버린 것을 강호문이 재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가에서 탐라와 전쟁이 있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영주 군수 임군석(任君碩)이 완공하였다.
『영주 남원루기』에는 영주가 설립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공격하기 위한 군영을 천안에 설치하였는데, 군영을 설치한 곳을 ‘고정(鼓庭)’이라 하였고, 그 성을 ‘왕자성(王者城)’라 하였다. 여기에서 비롯하여 천안이 설치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주 남원루기』를 통하여 천안의 옛 지명인 영주가 설립된 연원과 태조 왕건의 유적인 고정과 왕자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