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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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山郡 |
이칭/별칭 | 천안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중남부 지역의 조선 전기 행정 지명.
[개설]
고려 충선왕 때 천안을 영주(寧州)로 고쳤다가 공민왕 때에 다시 천안부로 환원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는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다가 3년 후 천안으로 환원함으로써 단 3년간 쓰였던 지명이다.
영산군은 조선 시대 천안군 고을의 영역으로 지금의 천안시 중남부 지역 일대가 이에 해당된다.
[관련 기록]
영산군이란 지명은 조선 초기 3년간 쓰인 지명으로 『태종실록(太宗實錄)』에서 몇 차례 언급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1414년(태종 14) 영산(寧山) 임내(任內) 풍세현(豊歲縣) 광덕사(廣德寺)에 소장된 『대반야경』 전부를 일본 규주에게 내려 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416년(태종 16)에는 충청도 영산(寧山) 등 4군(郡)이 모두 실농(失農)하여 호저화(戶楮貨)를 면제하고, 기민(饑民)을 구제하였다. 같은 해에 죄인 권완(權緩)을 영산(寧山)에 부처(付處)하였다.
[변천]
영산이란 지명이 사라지게 된 과정은 1416년(태종 16) 8월에 군현의 칭호를 고치면서 소리가 서로 비슷한 각 고을명을 바꾸게 되는데 이때 영산(寧山)은 예전 이름 그대로 천안(天安)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후 일제 강점기에 천안군, 목천군, 직산군 세 고을을 천안군으로 편제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안이란 지명이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