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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653
한자 趙砬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 1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조립 정려를 받음
현 소재지 조립 정려 -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가산1리 토산 마을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가산 1리 토산 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의 정려.

[개설]

조립(趙砬)은 조선 시대의 효자로 조모와 모친을 섬김에 있어 효를 다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노모를 업고 산으로 들어가 난을 피하였고 오랑캐가 조립을 잡으려 하였으나 노모를 봉양하는 효성에 감격하여 그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위치]

조립 정려(趙砬 旌閭)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가산 1리 토산 마을에 있다. 입장 중학교를 지나면 토산 마을 입구에 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마을 진입로의 끝에 정려가 위치한다. 토산 마을 내의 남향 사면 하단의 도로변에 대지를 평탄하게 조성하여 조립 정려를 세웠다.

[변천]

당시의 도 관찰사는 조립의 행실을 조정에 알려 조정에서는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위계(位階)를 내렸다. 그 후 조립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 조진형(趙震亨)이 효자문 세울 것을 상언하고 이어서 암행어사 황구하(黃龜河)[1672~1728, 1714년 충청좌도 어사 역임]가 별도로 이 사실을 적어 올려 1715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러 하늘이 낸 효자라 하였다.

[형태]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에 방풍판을 갖추고 있으며, 자연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정면 좌우에는 홍살을 설치하고 후면엔 목판으로 벽을 만들었다. 벽에 두 마리의 용이 싸우는 형상이 그려져 있으나 퇴색된 상태이다.

[현황]

조립 정려의 내부에는 중앙 상단에 현액이 걸려 있는데 ‘효자 통정대부 조립 지문 숭정 기원후 을미 사월일(孝子通政大夫趙砬之門崇禎紀元後乙未四月日)’이라고 각서되어 있다.

정려의 주변에는 최근에 세운 진보 조씨(眞寶趙氏) 선조들의 비석이 있는데 좌측은 ‘효부 조운형 처 강릉 김씨지비(孝婦趙雲瀅妻江陵金氏之碑)’이며, 우측은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시문정 진보 조공 휘 용 신도비명 병서(崇綠大夫議政府左贊成諡文正珍寶趙公諱庸神道碑命竝書)’라고 새겨진 신도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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