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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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時賢 |
이칭/별칭 | 군망(君望,시북(市北),자시자(自是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군망(君望), 호는 시북(市北) 또는 자시자(自是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여경(安汝敬), 할아버지는 덕흥 대원군의 사위이며 선조의 매부인 광양군(廣陽君) 안황(安滉), 외할아버지는 최철강(崔鐵剛)이다.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을 지낸 안응원(安應元)이고, 한성부 좌윤을 지낸 안응형(安應亨)이 숙부이다. 조성립(趙誠立)의 딸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안시현(安時賢)[1601~?]은 1618년(광해군 10) 증광시에 진사 3등으로 급제하고 1626년(인조 4) 정시에 병과 2위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지평(持平), 정언(正言), 장령(掌令), 필선(弼善) 등을 역임하다 병자호란 때 인조(仁祖)를 강화도로 호종하여 그 공으로 이조 참의에 제수되었다. 문장이 뛰어나 오준(吳俊), 황호(黃㦿), 이경의(李景義) 등과 함께 8학사(八學士)로 불렸다.
그러나 1645년(인조 23)에 당시 개성 유수(開城留守)이던 숙부 안응형(安應亨), 고모인 전 현감 황효전(黃孝全)의 처 안씨와 집안의 재산 다툼으로 송사를 일으켜 황효전은 사판(仕版)[벼슬아치의 명부(名簿)]에서 삭제되고 안시현은 형신을 받은 후 청양현(靑陽縣)에 정배(定配)되었다.
이후 후세 교육에만 매진하여 아들 안사행(安士行)이 그의 학문을 이어 칭송을 받았으며, 후손 안정석(安鼎錫)이 기호(畿湖) 지방에서 사람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천안의 목천 남화리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살았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한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봉되었다.
[묘소]
목천읍 서면(西面) 원동(院洞)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