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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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龍 |
이칭/별칭 | 천용(天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개설]
김치룡(金致龍)[1654~1724]은 천안 목천 출신으로, 성품이 단아하고 서(書)·사(史)에 몰두하였으며 일처리에 민첩하였다.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천용(天用)이다. 아버지는 문경 현감을 지낸 김남갑(金南甲), 어머니는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洪得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출생지는 직산인 것으로 추정되며, 목천면에는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활동 사항]
1675년(숙종 1)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691년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소론에 속하였던 관계로 남인 집권 시기에는 뚜렷한 벼슬을 지내지 못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 이후 국가의 공식 기록을 담당하는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부터 시작하여 전적,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정랑을 역임했다.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에는 호서 지방의 군전(軍田)에 대한 폐해를 상소하였다. 1677년 지평에 이어 문학, 장령, 군자감 정, 봉상시 정, 사서 등을 역임했다.
1697년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때는 집의 이정겸(李廷謙), 사간 여필용(呂必容), 응교 김시걸(金時傑), 장령 유명웅(兪命雄), 지평 김두남(金斗南), 헌납 정제태(鄭齊泰), 정언(正言) 최중태(崔重泰), 교리 박권(朴權), 부교리 이익수(李益壽)·이인병(李寅炳), 수찬 남정중(南正重)·조대수(趙大壽) 등 삼사의 관원들과 함께 숙종에게 청대(請對)를 요청하면서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오빠 장희재(張希載)의 사형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700년(숙종 26) 장령 역임 시에는 과거 시험장의 문란상과 폐해를 지적하면서 금란관(禁亂官)[시험장의 혼란을 금지하기 위해 임명된 관원]의 파직을 요청하여 관철시키기도 하는 등 국정의 혼란상 극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1703년 필선(弼善)을 역임한 이후 사복시 정, 헌납, 사간, 집의, 사성, 보덕, 동부승지, 병조 참의, 호조 참의, 예조 참의, 병조 참판, 동지의금부사, 공조 참판 겸 부총관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지방직으로는 안주 부사, 의주 부윤, 광주 부윤, 강원도 관찰사, 풍덕 부사, 안변 부사 등을 지냈다.
1708년 동지부사를 거쳐 1711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1721년(경종 1)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승지가 되었다. 1724년(경종 4) 8월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내직과 외직을 역임할 때 많은 업적이 쌓았는데, 특히 외직으로 나갔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그곳 주민들과 조정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