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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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炳 |
이칭/별칭 | 소문(小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창열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박병(朴炳)[1587~1663]은 천안 군수 재임 시 병자호란 때 불탄 관아를 다시 지었다.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소문(小文)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낸 박응천(朴應川)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다. 큰아버지인 박동현(朴東賢)에게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어릴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고, 이후 김현성(金玄成)에게 사사하였다. 성품이 대쪽 같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으며,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면 비록 왕명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광해군의 난정에 과거 시험에 응시할 뜻을 버리고 집에 들어앉아 독서로 소일하다가 인조반정 후 6품관에 제수되었다. 곡성 현감을 거쳐 충훈부 도사를 지냈고, 토산 현감과 진위 현령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천안 군수로 있었는데, 적이 침입하자 군졸을 동원하려고 했지만 관찰사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좌절되었다. 공주 목사로 부임하였으나, 불법 행위를 보고도 처리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1644년 공청도(公淸道) 암행어사 유륜(柳倫)의 장계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얼마 뒤 철원 부사에 임명되었고, 이어 사복시 첨정과 임천 군수·청주 목사 등을 역임한 뒤 향리에서 여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