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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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得臣 |
이칭/별칭 | 백곡(栢谷),귀석산인(龜石山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허용기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목천 지역에 우거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백곡(栢谷) 또는 귀석산인(龜石山人)이다. 할아버지는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 아버지는 경상 감사(慶尙監司)를 지낸 안흥군(安興君) 김치(金緻), 어머니는 목첨(睦瞻)의 딸 사천 목씨(泗川睦氏)이다. 장령(掌令)을 지낸 김성발(金聲發)의 딸 경주 김씨(慶州金氏)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고, 다시 이계도(李繼道)의 딸을 계실로 맞아 5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아버지 김치가 1601년부터 4년간 괴산의 능촌리 방하현(方下峴)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과 김득신이 어려서 청안 삼성당[현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내성동]에 살면서 공부하였다는 문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증평이나 괴산 능촌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호인 백곡(栢谷)은 할아버지 김시민 장군의 출생지인 목천현 백전동(栢田洞)[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잣밭]에서 따온 것이고, 귀석산인(龜石山人)은 청안현(淸安縣) 좌구산(坐龜山) 아래의 귀석산(龜石山)에서 따온 것이다.
본격적으로 김득신이 문명을 떨치게 된 것은 당대 일류 문장가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을 만난 후였다. 김득신은 시에 능해 오언·칠언절구를 잘 지었으며, 늦은 나이인 1642년(인조 20)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62년(현종 3)에는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성균관학(成均館學), 장악원 정(掌樂院正), 지제교(知製敎),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성균관 전적(行成均館典籍) 겸 중학 교수(中學敎授)를 지냈다.
1663년(현종 4)에 병조·공조·예조의 좌랑(佐郞)을 거쳐 이후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 제용감 정(濟用監正). 사복시 정(司僕寺正), 풍기 군수(豊基郡守),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 어모장군 행용양위 부호군(禦侮將軍行龍驤衛副護軍), 사도시 정(司導寺正), 사도시 정 겸 증광시 시험관, 승문원 판교(承文院 判校), 강원 도사(江原都事), 홍천 군수(洪川郡守), 정선 군수(旌善郡守) 등을 지냈다.
김득신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끝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시를 지으며 세월을 보냈다. 1684년(숙종 10) 81세가 되던 해 가을 8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백곡집(栢谷集)』이 있고, 시화집인 『종남총지(終南叢志)』와 평론집인 『종남수언(終南粹言)』 등이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체(假傳體) 소설 「환백 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 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국순전』, 『국 선생전』 등 고려 시대에만 한정된 줄 알았던 가전체 계통의 소설이 조선 시대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곡집』에는 고향인 괴산과 증평을 읊은 시와 청주와 금강, 그리고 당시 청주목에 속했던 할아버지 김시민의 고향인 목천과 병천을 읊은 시들이 많이 들어 있다. 김득신은 한국의 한시사(漢詩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묘소]
김득신의 묘소는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산8-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2004년에 증평군 향토 유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