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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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有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박유복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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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박유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박유복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박유복 출생지 - 충남 천안군 갈전면 |
활동지 |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유복(朴有福)[?~1919]은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지금의 병천면]에 거주하였으며 생년월일이나 가계 등은 미상이다.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였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유관순의 서울 3·1 운동 보고에 따라 천안에서도 2개의 계열로 나누어 아우내 장터 시위가 계획되었다. 하나는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 계이며, 나머지 하나는 동면(東面)의 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계이다. 박유복은 유관순계에 참가하였다.
3월 31일 밤 자정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았다. 4월 1일 아우내 장날이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장터에 모여들었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박유복을 비롯한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나눠준 태극기를 들고서 군중들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사상자가 수십 명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가 또다시 있었고, 이로 인해 박유복이 사망하였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