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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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英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신영칠(申英七)[1868~?]의 본적은 충청남도 목천군 북면 오송정으로 되어 있고,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도 같다. 박관실(朴官實) 의진에 소속되어 1907년 8월 충청북도 진천·충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퇴위와 그해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인 의병 전쟁이 격화되어 가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천안의 목천에 거주하던 신영칠은 1907년 박관실(朴官實) 의진에 가담하여 충청북도 진천·충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27일 동료 의병 40명과 함께 진천에서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9월 7일에는 충주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8월 31일 공주 지방 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신영칠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