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37 |
---|---|
한자 | 尹泰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50년 1월 19일 - 윤태영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윤태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윤태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윤태영 출생지 - 충남 천안군 동면 송연리 517번지 |
활동지 |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태영(尹泰英)[1850~1919]은 1850년 1월 19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송련리 51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 외 가계나 학력은 알 수 없고,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가,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유관순의 서울 3·1 운동 보고 이래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 계, 동면(東面)의 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계로 나뉘어 계획되었다. 조인원 등은 아우내 장터가 충청북도와 천안군의 장꾼이 모이는 곳이므로,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합의하였다.
3월 31일 밤 자정 조인원 등은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4월 1일 아침 아우내 장터에 몰려갔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윤태영을 비롯한 약 3천여 명의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들고서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사상자가 수십 명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가 또다시 있었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윤태영도 이날 일제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