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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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星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59년 11월 13일 - 이성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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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이성하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이성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이성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이성하 출생지 - 충남 천안군 동면 수남리 215번지 |
활동지 |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성하(李星夏)[1859~1919]는 1859년 11월 13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수남리 21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려져있지 않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였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주모자 중의 한 명이었던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이성하를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그 동안 군중들에게는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은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도합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에게 큰소리를 내고,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또다시 야만적인 발포가 있었고, 이때 이성하가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